믿음(8)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
히브리서 11:13-16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은 4자를 싫어하고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 죽음학을 검색해 보면 학문적으로 죽음에 대하여 다수의 강의를 하는 분 두 교수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죽음학 개론>, <사후생 이야기> 등 죽음 관한 다수의 책을 저술하신 이화여대 교수였던 최준식 명예교수입니다. 단지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연구할 때도 죽음 후에 또다른 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분은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라는 책을 쓴 정현채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내과학 교수입니다. 그분은 의사로 죽음 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눈에 보이는 육체에 국한된 것이고 영혼이란 건 존재하지 않으며 뇌가 작동을 멈추면 우리의 의식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03년 부모님과 가까운 친척의 죽음을 지켜 보면서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합니다. 그 후 수백 권의 문헌과 의과학 논문과 근사체험이나 임종을 앞둔 환자가 겪는 삶의 종말 체험 등을 보면서 실증주의 교육을 받아 체화한 과학자로서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던 영적 체험이 단순한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라 분명한 실재임을 역시 과학적 입장에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고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 믿음만이 아니고 그걸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영적인 현상인 근사 체험, 심장이 멎고 사망 판정을 받았던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통해 다시 살아나며 뭔가를 보고 들은 체험을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삶의 종말 체험, 임종하는 사람이 눈을 감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마중을 받는, 또는 임종한 환자가 멀리 떨어진 지인들의 눈에 띄는 그런 현상이 근거가 된다고 합니다. 근사 체험을 한 사람을 보면 대개 밝은 빛을 보고, 죽은 가족을 만나고, 체외 이탈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자신의 삶이 파라노마처럼 펼쳐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도 2018년 암에 걸렸지만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계기로 삶의 귀함을 깨닫게 되었고, 죽음 준비를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으며 설암이나 후두암이 아니어 죽음학을 계속 강의 할 수 있어 감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암을 불평할 일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이유를 찾고 오히려 축복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히브리서에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믿음의 선조들은 죽음 후에 무엇이 있다고 믿고 살았습니까?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죽음 후에 가는 영원한 본향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본향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그런데 15절에 나오는 본향은 육신의 고향입니다. 14절 16절에 나오는 본향은 영혼의 본향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말합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믿었던 본향은 어떤 곳입니까? 16절에 보면 “더 나은 본향”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에 있는 고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6절에서는 두 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첫째는 그 곳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땅에 있는 세상 고향과는 다릅니다. 하늘의 처소는 하나님의 처소를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20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처소이기 때문입니다.(16) 하나님이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은 25:34을 보면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2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에비하러 가노니"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21:2에서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1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라고 했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에 바로 천국입니다. 죽음도 슬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죽은 후에 우리는 영원한 본향 천국에 갑니다. 인간이 이 사실을 잘 믿지 않으니까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해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불신자들은 지옥도 천국도 없으니 인생을 즐기라고 외치지만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가장 많이 말씀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고통도 질병도 눈물도 없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힘든 일을 당하면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죽으면 천국갑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아무리 실패하고 잘못되어도 죽으면 가장 좋은 천국에 갑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으니까 교회 다니면서도 힘없고 초라하게 살게 됩니다.
C. S. 루이스는 “요즘의 우리는 천국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도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그림의 떡’이라는 조롱을 두려워한다.…그러나 천국은 있든지 없든지 둘 중 하나다. 이 교리가 기독교의 모든 부분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천국이 없다면 기독교는 거짓이다.”라고 말하며 평생 그는 천국을 믿는 기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C. S. 루이스는 "천국을 목표로 삼으면, 그 안에서 지상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상을 목표 삼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것을 먼저 추구해서는 곤란하다. 첫 번째 것을 먼저 추구해야만 비로소 두 번째 것을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역사를 더듬어 볼 때, 이 세상을 위해 가장 많이 일한 사람은 누구인가? 천국을 가장 많이 생각했던 크리스천 들이었다!”라고 말하며 “그러나 교회가 타락하여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천국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 때 기독교는 세상에서 그 힘을 잃고 말았다. 교회가 천국을 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으로 향하면, 천국도 잃게 되고, 세상도 잃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을 확실히 믿고 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지만 영원히 돌아갈 본향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이 땅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궁극적으로 돌아갈 본향을 사모며 살아야 합니다.
더 좋은 영원한 본향 천국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다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16절 초반부를 다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라고 말씀합니다. 간절히 갈망하였다는 말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바랐다고 말씀합니다. 기대하고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14절을 보면 찾았다는 말씀입니다. 목적과 사업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지금 약속한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였지만 실제로는 차지하고 누리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을 것을 확신합니다. 더 나아가 환영합니다. 냉담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환영합니다. 약속된 것을 실제 누리기 전에 그것을 붙잡고 즐거워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살면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집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하늘에 있네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히브리서를 받을 당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고난을 당하여야만 했습니다. 11장 36-3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조롱과 채찍질,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하는 것과 짐승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해야만 했습니다. 네로 황제 이후 핍박으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까? 10장32절 이하를 보십시오. 비방당하였습니다. 환란, 사람에게 구경거리, 산업을 빼았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쁘게 감당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0장 3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영원한 나라가 있는 것을 알고 그 나라를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11장 15절 보세요. 돌아갈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습니다. 왜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로 가는 길도 알고 있었습니다. 시간도 재산도 있었습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사모했기에 옛생활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를 받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버리고 옛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계십니다. 루마니아의 공산 치하에서 14년간 감옥생활을 하며 그리스도를 전하신 분입니다. 그는 유대계 루마니아인으로 어릴 때 무신론자였는데 루마니아의 한 산간 마을의 늙은 목수가 “죽기 전에 유대인을 주님께 인도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다가 그를 만나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순교자로 불리우는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공산국가 루마니아에 침투하여 비밀리에 복음을 증거하다 붙잡혀서 모진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해 수차례 기절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루마니아인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인 소련군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답니다. 그는 공산주의 자들에게 잡혀 척추와 뼈들이 부러지고, 12군데나 칼자국을 당하고, 18군데의 화상 자국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과 아내가 잡혀간 후 아들 미하이는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유랑아가 되었으며, 미하이를 불쌍히 여겨 몰래 도와 주었던 두 자매님들도 잡혀가 매를 맞아 불구자가 되었답니다. 거꾸로 매달아 채찍으로 때리는 고문 정도는 예사였고 속옷만 입고 냉동실에 끌려가 얼어 죽을 것같으면 따뜻한 방으로 옮겨 살리는 반복적인 고문을 당했답니다. 후르레스끄라는 성도는 죽도록 매를 맞았답니다. 붉게 달아오른 쇠갈고리와 칼로 고문을 당한 후, 굶은 쥐들을 감방에 넣어 잠을 자지 못하도록 했답니다. 2주일 내내 밤낮 없이 선 채로 그가 고문받은 이유는 동역하는 성도들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답니다. 그가 굴복하지 않자, 그들은 14살 난 그의 아들을 데려다 그 앞에서 사정 없이 채찍질하기 시작했답니다. “아들아, 나는 이들에게 말해야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차마 볼 수가 없구나.” “아버지, 저는 주님을 파는 아버지를 원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십시오. 만약 이들이 저를 죽인다면 저는 예수님과 조국을 위해 죽겠습니다.” 악의에 찬 간수들은 소년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였답니다. 감방 벽은 붉은 피로 물들었고, 소년은 주님을 찬양하며 숨을 거두었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고문과 회유를 통해 밀고자가 되게 하기도 하고, 밀고자들의 ‘밀고자’가 되도록 제안하기도 하며, 심지어 동료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의 고문자가 되게 하는 극악한 방법까지 동원했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고문을 견디어 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주님을 증거했답니다.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지하교회만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남아 있는 유력한 저항세력이었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는 집어 넣을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없앨 수 없음을 알기에 더 철저히 성도들을 핍박했답니다. 그가 14년간 복역하고 가족과 함께 지하교회를 서방에 알리기 위해 서방 신학교를 방문할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답니다. 어떤 신학교들에서는 창세기에 관한 내용이 거짓이고, 노아의 홍수 그리고 모세의 기적들도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며, 동정녀 탄생도, 예수님의 부활도 전설에 불과하다고 가르치는 것이었답니다. 실로 그들은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늘 나라 본향을 사모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국이 하늘나라가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나그네로 사는 이 땅을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이란 천국과 연관이 될 때 참으로 가치있고 의미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이 이 땅으로 끝나지 않고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활기가 있고 의미가 있고 능력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이 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삶을 통하여 외국인과 나그네로서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13).
더 좋은 본향이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 땅에 살면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믿음의 실례로 든 선진들 즉,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라 모두 이 땅에서 자신들이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거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외국인(크세노이)’이란 낯선 사람, 적 법의 보호에서 벗어난 사람, 야만인 취급 받는 사람, 회원이 아닌 사람, 피난민 등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비천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본국 사람들에게 좀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 언어, 풍속, 생활 양식이 달라서 이방시 되고 끝까지 이질적으로 취급되고 멸시받는 사람을 통틀어 본문에서는 외국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그네’라는 말을 헬라어로 '파레피데모스'라고 하는데 이는 임시로 거주하는 자를 말합니다. 자기는 자기대로 고향이 따로 있음을 알고 사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증언하다”는 것은 고백하고 공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자신들은 외국인이고 나그네인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속하신 기업이 이 땅에 있지 않음을 죽음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야만인 취급받고, 피난민처럼 살았으며 항상 위험에 노출되면서 살았지만 잠시 체류하는 나그네로 살았지만 그런 삶을 통해 천국이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거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하나로 세상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기피당하고, 가치관과 인생관의 차이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영원한 본향은 천국에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며 살아야 합니다.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언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찾는다는 말은 계속해서 찾는다는 말입니다. 열심히 따라다니며 집요하게 추구하는 것이 천국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타내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족장들은 땅에서 마치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삶과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고향이 따로 있으며 그 고향을 찾아가는 삶을 산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을 나그네라고 했습니다.(창23: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창23:4)"
야곱도 그랬습니다.(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우리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 분명하게 우리의 본적 본향이 하늘에 있을 드러내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우리는 생활 원칙이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삶인 것을 들어내야 합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벧전 4:14)" 이 세상은 잠깐 숙박하는 곳입니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대상 29:15)“
우리는 나그네로서 육체의 정욕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벧전2:11-12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게 되면 결국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이 땅은 잠시 사용하다가 다 놓고 가는 것입니다. 소유도, 지위도, 지식도, 명예도, 인기도 잠시 누리다가 다 놓고 가는 것입니다. 영구적으로 자기 것은 없습니다. 나그네로 사는 것은 마음 떨어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외로운 삶일 수도 있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최소한 것들만 가지고 사는 삶이라 궁핍할 수도 있습니다. 사치품이나 장식품이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누울 곳만 있으면 되는 삶일 수 있습니다.
헨리 C.모리슨이라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40년 동안 선교하다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기도 하고 이젠 늙은 선교사가 되어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타고 돌아오던 배에는 아프리카의 한 국가를 방문 후 코끼리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데오도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었답니다. 배가 뉴욕 항구로 입항하고 대통령이 내리자, 붉은 레드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레 소리로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었답니다. 40년 간 선교하고 돌아온 모리슨 선교사 앞에는 레드 카펫도, 군악대의 팡파레도 환영 나온 사람도 없었답니다. 선교사는 저녁 노을 진 하늘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답니다. "주님, 이것이 40년간 아프리카에서 저의 청춘을, 저의 건강을, 그리고 저의 일생을 바친 결과란 말입니까?" 그때 그는 저녁 노을 사이로 말씀하시는 조용한 한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헨리야,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에 오지 않았단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레드 카펫이 아닌 황금의 유리길로 군악대가 아닌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너를 마중 나오마" 우리의 본향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본향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이 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삶을 통하여 외국인과 나그네로서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영원한 본향 천국을 바라보며 믿음 따라 살다 믿음을 따라 죽어 영원한 본향에서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13,16)
믿음 안에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까지 신앙대로 살다가 인생을 마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할지라도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됩니다. 마지막까지 믿음 따라 살아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죽기 위해서는 믿음대로 살아야 한다. 참으로 믿음 따라 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믿음이 변질됩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믿음대로 살다 믿음 따라 하늘 나라 가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 18:8)"
처음에는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은 비참하게 끝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처음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욱 중요합니다. 조금 어렵다고 믿음 팔아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 배웠다고 믿음 부정하지 마시시 바랍니다. 조금 가졌다고 교만해져 믿음 무시하기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 인기있다고 믿음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는 사람을 어떻게 보십니까? 16절 중반절을 보십시오.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워하지 안는다는 말은 흔쾌히 여기시고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사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이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부대가 되게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믿음대로 살다 믿음대로 죽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과거에도 그랬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렇게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는 자들에게 어떻게 해 주십니까? 한 성을 예비해 주십니다. 천국에 들어갈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삶에 대하여 다 보상해 주십니다. 에녹은 세상의 모든 불의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살다 들림을 받았고, 노아는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냉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방주를 믿음으로 지어 자신과 그의 가족을 구원했으며, 아브라함은 이해는 되지 않았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친척 아비집을 떠났으며 사라는 전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초월한 믿음으로 이삭을 잉태했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이 희미하지만 결국 상급이 주어집니다.
미국의 목사이며 소설가인 헨리 벤다이크의 <대저택>이라는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국에 도착한 부자는 천사의 인도를 따라 자신이 천국에서 살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너무 작고 초라한 오두막으로 보기에도 민망하고 허술했습니다. 마침 그때 자기 집 곁에 천사들이 화려한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집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자기와 한 동네 살던 가난한 의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에 비해 형편없는 그가 어떻게 저런 화려한 대저택에서 살 수 있는지 항의했습니다. 천사는“당신도 알다시피 지금 짓고 있는 건축 자재는 모두 다 본인이 세상에 사는 동안 부지런히 보내온 것입니다. 당신은 너무 적게 보냈어요. 당신이 평생 보내온 자재만으로는 이 오막살이의 지붕도 덮어씌울 수 없답니다. 저 대저택을 보십시오. 당신이 잘 아는 그 가난한 의사는 평생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의 시간, 재물 등 다른 사람을 위해 쓴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에 다 도착했습니다. 자재가 너무 많아 저렇게 큰 저택을 짓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이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천국에 투자하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마태6:19-20)"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40-42절에서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열심히 이웃에게 열심히 베풀고, 복음 전하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것들 결코 상을 잃지 않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 결코 상을 잃지 않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평가받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억울하고 고달프고 힘겨워도 우리의 눈물을 다 닦아 주고 마지막날 잘했다 칭찬받는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그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그 나라에서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땅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궁극적으로 돌아갈 본향을 사모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삶을 통하여 외국인과 나그네로서 증거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본향 천국을 바라보며 믿음 따라 살다 믿음을 따라 죽어 이 땅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예비된 성과 예비된 상급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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