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7) 사라의 믿음
히11:11-12
올해 들어와서 3월부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한 주에 한 사람씩 살펴보았는데 다시 이어서 오늘은 사라의 믿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구약 성경에 부부가 함께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된 것은 유일하게 아브라함의 부부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만 주연이고 사라는 조연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본문에 의하면 사라도 주연으로 한 시대 쓰임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라는 미모가 출중한 여인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미모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믿음도 출중했다고 오늘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성으로서 나이와 인생 스토리와 죽음과 매장지까지 언급된 유일한 인물은 사라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탁월한 분인 것을 성경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할 때 부부는 자칫 잘못하면 하향 평균화가 되기 쉽습니다. 남편이 믿음이 좋고 아내가 믿음이 없으면 아내 수준의 믿음 생활하기가 쉽고, 아내가 믿음이 좋고 남편이 믿음이 없으면 남편 수준의 믿음 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마치 나무 물통에 물을 담으면 한 쪽 나무 토막이 낮다면 그 수준만큼 물이 담기는 것처럼 하향 평균화가 되기 쉽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고향을 떠나고자 할 때 사라가 못간다고 버티면 쉽게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너무나 사라가 아름다워 왕에게 아내는 빼앗길 것같고 자신은 죽을 것같아서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애굽 왕에게 아비멜렉의 왕에게 주었는데 그때 마음 싹 바꾸고 왕궁에서 왕비로 살겠다고 주저앉았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손바닥만한 땅도 없는데 남편에게 헛된 꿈을 깨라고 하며 그곳에서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사라가 그렇게 했다면 히브리서에 믿음의 영웅으로 기록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1. 믿음의 능력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은 사라의 믿음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라는 말씀은 ‘생의 적절한 단계를 지나’라는 말입니다. 인생의 왕성했던 시기가 다 지나고 석양과 같은 단계에 이를 시기를 말합니다. 사라 나이가 89세까지 아이를 갖지 못했는데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사라는 늙어서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불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노인이 되어 이미 경수가 끊어지고(창18:11) 잉태는 불가능한데 아이 낳을 수 없는 사람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잉태가 가능한 몸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성취할 만한 능력을 얻었다는 것입니까?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은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사라가 어떻게 노년에 이런 믿음을 가졌는지 창세기 18장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해 주십니까? 창세기 18장 1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 셋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여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엿듣기를 잘하는 데 이 말을 듣고 사라가 어떤 반응을 합니까? 음식 준비하다 이 말을 들으니까 어이가 없는 것입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냉소적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해 주십니까? 14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전능성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몸의 상태는 소망이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늙어 소망이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불가능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성도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10년 동안 통증으로 고생하시는 성도님들은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년 동안 취업이 되지 않는 젊은이가 있다면 이제 내 인생 다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50대에 직장을 그만 둔 사람은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치의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게 되면 이제 내 인생, 우리 가정 다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되어진 상황 속에서 학습 무기력증에 빠져 버릴 수 있습니다. 65세에 아들 준다고 했는데 89세까지 무려 24년 동안 아이가 없었는데 이제 다 끝난 나이에 무슨 아이가 생기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냉소적으로 비웃었습니다. 나같은 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자신의 속마음 까지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두려워하며 부인하면서 웃지 아니하였다고 하얀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다 자신의 속마음까지 다 알고 자신이 혼자 웃었던 것까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 믿음이 능력있는 믿음입니다. 전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불가능한 것같은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는 이 믿음이 능력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세 가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의 능력은 세가지 대표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라는 말씀을 믿으면 진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는 말씀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신비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으면 생명의 한계를 극복하여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은 불로초로 되지 않습니다. 권력으로 돈으로 지식으로 명예로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말씀을 믿는 믿음, 복음을 믿는 믿음,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는데 이 말씀을 믿음으로만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둘째는 믿음이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생의 홍해를 건너고,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고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성과 과학과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법칙을 만든 하나님께서 그 법칙을 초월하여서 기적을 일으켜 주십니다. 믿음의 역사는 불가능한 곳에서 일어납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라는 책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간증이 나옵니다. 그의 어머니는 1981년 간암으로 몇 주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전에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이 누구보다 건강했답니다. 현대의학으로 포기하고 집에 돌아왔답니다. 온 가족은 어머니의 생명을 구해 달리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답니다. 그의 어머니는 불평이나 원망, 패배의 말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입에 두고 믿음 충만한 말을 했답니다. '나는 죽지 않고 살 거야.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선포할거야.'
그의 어머니는 가장 좋아하시는 치유의 말씀을 3O~40개 정도 찾아내 종이에 적어 매일 읽고 큰 소리로 선포하셨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시작되었답니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답니다. 조금씩 병세가 호전되었답니다. 식욕이 돌아오고 몸무게가 불어나기 시작했답니다. 하나님이 그의 어머니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상처를 치유하고 계셨답니다. 몇 달이 지나자 회복세는 더욱 빨라졌답니다. 몇 주밖에 살 수 없다던 어머니는 20년이 흘렀어도 천국에 가지 않았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치유의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믿음과 승리, 건강에 관한 말을 하지 않고서는 집을 나서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어머니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지만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었답니다. 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하는 삶을 살았답니다.
세 번째로 믿음은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초월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죽음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됩니다. 진정한 인생의 행복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일차원의 세계, 2차원의 세계, 3차원의 세계만 아는 것이 아니라 4차원의 세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육안, 심안을 너머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혜와 돈과 힘을 활용하듯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을 능력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부부 관계 자녀교육, 경제 생활, 건강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라는 89세에도 믿음의 능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능력있는 믿음을 가시고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2. 사라의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는 믿음입니다.
사라가 믿는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사라가 믿음의 능력을 얻게 된 근거는 무엇입니까? 11절 하반절을 보면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녀는 약속하신 이가 신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사라가 믿은 것은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미쁘심은 신실하심입니다. 한마디로 사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즉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빙성, 신실성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인 사라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믿을 만한 것만 믿지 말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믿지 말고 비록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을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 없고 합리적이지 않을 지라도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의 신실성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라에게 주신 약속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 논리적이니까? 89세된 여인에게 아들을 줄 것이라는 말이 얼마나 황당합니까? 이 약속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와서 지금 부도 위기에 처해 있는 집사님에게 와서 내년에 부도를 극복하고 중견 기업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불경기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장에게 와서 내년에 반드시 상장되어 매년 2천억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회사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5년 동안 취업이 되지 않아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져 있는 젊은이에게 “내년에는 대기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그 약속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통증으로 10년 동안 고생하고 있는데 “내년이면 모든 통증이 살아지고 건강해 질 것입니다”라고 말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결혼하여 이제까지 지긋지긋 집안 문제 해결되지 않는데 “내년이며 네 가정의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다”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조동식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14대 외 아들인 형님이 일찍 결혼을 하여 형수님이 시집을 왔는데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형수님을 모시고 교회에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 우리 집에는 자손이 귀하니 시집온 우리 며느리가 아들을 많이 낳도록 안수 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답니다. 시어미니가 목사님이 안수 기도할 때 “아멘”하라고 했는데 이 젊은 색시가 부끄러워하면서 “아유 몰라유”그러면서 ‘아멘’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답답해서 “아멘, 아멘”을 했답니다. 그런데 “아멘”을 한 시어머니가 임신을 하여 10달 후에 애기를 낳았는데 어머니 나이가 44세로 늦둥이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자기랍니다.
내용이 문제가 아닙니다. 약속하신 분의 신실성을 믿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며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만 믿는다면 나이도, 잉태하지 못한 과거의 경험도, 현실적인 장애물도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지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라는 말씀을 들으면 “뭐 해보고 또 해보았지만 그 말씀대로 나는 안되데”라고 포기하지 말고 그 말씀을 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믿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31)”라는 말씀을 들으면 “그렇게 해 보아도 피곤만하고 내려가기만 하네”라고 낙심하고 불평만 하지 말고 그 말씀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실성을 믿는 것입니다.
사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몸에 일년 후에 아들을 준다고 하니까 믿지 못하고 웃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것입니다. 약속의 내용은 좋은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약속의 내용보다 그 약속을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고 그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약속의 내용은 홍해를 갈라진다는 것이나 요단 강이 갈다진다는 것이나, 여리고성이 무너진다는 것이나 만나와 메추라기를 준다는 것이나 광야에 길을 내고 황무지가 옥토가 된다는 것이나 상관이 없습니다. 약속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인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을 계산하고 따질 필요없이 신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사라를 보십시오. 창세기 18장 12절에서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라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4)”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게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다시 약속합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도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 말씀이 사라같은 상황을 만난 우리 성도님들에게 확실한 약속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다만 각 개인에게 기한이 이을 때가 있습니다.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은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어떻게 됩니까? 창세기 21장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돌보아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외면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우리 하나님은 행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적같이 아이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1장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우리 성도님들의 고백도 이런 고백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결국 우리는 부족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신신하게 지키어 우리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라의 믿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20장을 보면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어떻게 사라로 하여금 알게 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또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속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을 오빠라고 하게한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자신의 남편을 오빠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라가 원조같습니다. 이제 나이가 늙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름다웠는가 봅니다. 사라가 127세에 죽었으니까 죽기 전 38년 전 일입니다. 지금으로 평균 연령으로 말하면 한 50대 쯤 되었을 것같습니다. 나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아내가 아름다우니까 24년 전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창세기 20장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왕에게 꿈에 나타나 이 여인 범하면 너 죽어 남편 있는 여자야 라고 말씀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아비멜렉이 출산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출산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사라에게 분명하게 믿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사라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합니다. 이사야 51장 2-3절에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지라고 우리를 향하여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라고 약속하면 그 약속을 믿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오늘 제가 주보에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 미국 선교사 스탠리 존스의 이야기를 소개해 놓았는데 어느 날 그의 나이가 89세에 중풍으로 쓰려졌답니다. 미국 보스턴으로 후송이 되었는데 그는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에게 이런 부탁을 했답니다. "의사 선생님, 제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저를 보실 때마다 이렇게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스탠리 존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이렇게 좀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의사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답니다. "아니, 선교사님! 저는 베드로도 아니고, 요한도 아니고 또 부흥사도 아닌데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외칠 수가 있습니까? 저는 못 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스탠리 존스가 강권하니까 의사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볼 때마다 그렇게 외쳤답니다. "스탠리 존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그러면 그는 침상에 누워 있다가 큰 목소리로 "아멘! 아멘!"으로 화답했답니다. 스탠리 존스는 의사들뿐만 아니고 심지어 간호사들에게까지도 똑같은 부탁을 했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를 보면 똑같은 소리로 외쳤답니다. "스탠리 존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그러면 그는 누워서 "아멘! 아멘!"이라고 화답했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6개월 만에 일어났답니다. 그가 병원에 들어올 때는 들것에 실려서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자기의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서 건강한 몸으로 퇴원해 다시 선교지로 갔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했답니다. 약속은 하나님이 하시고 믿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불가능한 말씀을 보면서 스스로 염려하고 걱정하며 불신하지 말고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하나님은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같지만 시간 지나면 성취되는 것입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46:10)” 너무나 믿지 못하는 세상인데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분명하게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3. 사라의 믿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입니다.
사라의 믿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사라는 죽은 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건강으로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직장이나 사업으로 때로는 죽은 자와 같은 사람이 될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삶도 단순한 삶이 없습니다. 골이 없는 산이 없듯이 인생은 늘 골이 있습니다. 사람의 삶을 보십시오. 결혼하여 시아버지를 모시고 조카를 양육하며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쉬운 것이 아닙니다. 결혼할 때 그저 혜택만 받고 간섭과 부담을 지지 않고 둘만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혜택만 누리고 의무나 부담을지지 않으려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어디 그런 환경과 조건을 가진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겠습니까?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고, 비바람 맞지 않고 자라는 나무가 어디있겠습니까? 골이 깊으면 봉우리도 높은 것입니다. 골짜기가 깊으면 깊을수록 메아리도 큰 것입니다. 태풍이 있기 때문에 심해의 고기도 산소를 마시고 사는 것입니다. 사라를 보십시오. 고난 없는 사라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고난 없는 믿음의 영웅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사라는 미스코리아처럼 예뻤던 것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미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아 좋기도 하지만 괴로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 미인으로 소개되는 장희빈, 황진이, 장녹수, 어우동, 미실 등 얼마나 복잡한 인생을 삽니까?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첩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우습게 봅니다. 그런데도 남편이라는 아브라함은 자신 살기 위해 사라는 두 번이나 요즈음 말하면 성상납을 하게 합니다. 물론 그들과 잠자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아 주었지만 얼마나 불쾌하고 얼마나 자존감이 상하였겠습니까? 그런 남자와 함께 살고 싶었겠습니까? 남편은 꿈은 거창하지만 땅 한 평도 없는 떠돌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남편이 첩을 얻은 후는 13년 동안 하나님과 어떤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교회 다니다가 첩 얻고 그 죄책감에 교회도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89세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들을 주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겠습니까? 주실려면 그 지긋지긋한 고생시키지 말고 진작 주시지 왜 그러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바랬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라가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이었지만 이삭이 태어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야곱이 야곱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12지파가, 이 열두 지파가 이스라엘 민족이 되고 결국 신약 시대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죽은 자 같은 그를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육체적 후손의 번성과 영적 후손의 번성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늘의 별이나 바다의 모래라는 표현은 사람이 그 숫자를 능히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라의 믿음으로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가문이, 한 민족, 한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삭을 낳고 이삭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후손들을 얻었습니다. 그 후손 가운데 예수님이 태어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수많은 영적 자녀들이 생겼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9)”
오랜 침묵을 깨고 99세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17:15-16)라고 약속해 주었는데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은 진실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믿음의 결과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탄식에서 환호로 마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믿음을 가지면 결과는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분명하게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면 손해같이 보여도 합력하여 결국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모세도 믿음으로 살 때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살인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를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처가살이 하며 목동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했습니다. 야곱은 형들에게 인신매매되고 억울하게 감옥살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자식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결국 세월지나면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스웨덴의 페트로라는 어부가 겪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촌의 여러 사람들이 배를 몰고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페트로도 아들과 함께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갔답니다. 그런데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이 돌아와야 할 시간에 돌아오지를 못했답니다. 풍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온 동네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바닷가에 나가서 남편 혹은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파도소리 외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답니다. 이때에 설성가상으로 어느 집에서 어린아이가 집을 보다가 촛불을 넘어뜨려 불이 났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합심하여 이 불을 끄느라고 남편, 아버지를 기다리는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물동이를 동원해 정신없이 몇 시간을 싸우는 소동이 벌어졌답니다. 그러는 중에 배가 돌아왔답니다. 아침이 되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어제 밤에 일어난 불난 이야기를 하는데 페트로가 말하기를“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웬 불인지는 몰랐으며 어쨌든 불이 보여서 그 불을 바라보고 결국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집에 불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배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답니다. 그 집이 불타는 일이 있어야만 어부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음을 우리는 미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왜 불이 나야 했는지,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는지, 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결국 믿는 사람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는 것입니다. 미신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는 것이고 불신앙과 무신론은 사실인데 사실로 안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사실을 사실로 믿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위험한 장벽을 넘는 것이 믿음입니다. 현실은 전혀 가능성이 없게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현실의 불가능을 하나님의 능력을 가능하게 바꾼다는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환경의 한계, 경험의 한계, 논리 한계, 이성의 한계 앞에 절망하며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망 가운데 방치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라고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합력하여 새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소원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라의 믿음을 통해 배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어차피 믿음 생활할 때 능력이 있는 믿음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내용이 합리적이지 않고 내 마음에 맞지 않아도 그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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