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안경
딤전4:4:4-5
한 대 기업에서 강사가 감사 교육를 하고 감사 문자를 가족들에게 보내도록 했답니다. “여보, 못한 남편 만나 지금껏 집안 살림에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 많았어. 표현은 못했지만 항상 미만하고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라고 문자를 보내게 했답니다. 평소에 감사하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남편에서 이런 문자를 받자 한 아내가 “너 농약 먹었냐. 왜 그려, 죽을 때 된겨”라고 문자를 보내왔답니다. 늘 남편의 술 때문에 불평하던 어떤 아내는 남편의 감사 문자를 받자 “아직 술이 덜 깼나”라고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답니다. 어떤 아내는 “뭐에요. 갑자기 소름 돋네요. 회사에서 나가래요”라는 문자가 오기도 했답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도 어색해 하고 진심 어린 진지한 감사를 받는 것도 낯설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 감사절입니다. 이렇게 보리나 밀 농사를 직접 재배하고 추수하지 않아도 우리가 전통적으로 7월 첫주일이면 맥추 감사주일으로 지키는 것은 일년의 중간 지점에서 다시 한 번 감사를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사는 도움 받은 사람이 도움을 준 사람에게 느끼는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원수의 유효기간은 긴 데 비해 감사의 유효기간은 짧습니다. 감사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기는 인간 마음의 속성 때문에 감사는 쉽게 잃어버립니다. 사람은 10번 감사한 일을 받아도 어느 날 1번 서운한 일을 당하면 그때부터 10가지의 감사는 다 살아지고 1가지 서운한 일이 마음을 지배해 버려 인간관계가 틀어지고 심하면 원수가 되어 결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 마음을 많이 탐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질병 중에 만연한 것 중의 하나가 감사 불감증인 것입니다. 풍요 속에 나타나는 질병입니다. 안락한 부모의 집에서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살다 보니 모든 것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드셔서 인간을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은 7대 절기를 만들어 놓고 일년 내내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감사가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핵심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지그 지글러라는 사람은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라고 말합니다. 감사가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말입니다. 심리학에서 오랜 연구 결과 행복해 지려면 긍정적이 감정으로 오래 동안 유지하면 된다고 합니다. 행복하려면 긍정적 정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복권이 당첨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등과 같은 성취하것으로 얻는 긍정적 정서는 오래 가지 못하지만 감사하면 긍정적 정서가 오래 간직된다는 것입니다. 소유나 성취는 감사와 병행되어야 오래동안 행복을 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감사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행복학 전도사 샤하르 교수는 그의 책 <하버드대 52주 행복연습>에서 행복연습 첫 주를 '감사하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에먼스와 마이클 맥컬로는 자신의 연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크든 작든 간에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고, 결단력 있게 행동할 줄 알았으며 활력이 넘치고 더욱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더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파동이고, 힘이며, 에너지가 되어 고마움을 느끼면 정서적 행복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며, 신체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감사하면 손해 보는 일이 없고 성공과 행복과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에먼스 박사는 "감사가 많은 사람들은 감사가 부족한 사람들에 비해 긍정적인 감정이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우울증이나 근심, 질투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적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들은 또 이해심이 많고, 용서를 잘하고, 협조적이고, 도움을 베푸는 사회 지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립건강관리소의 담당자였던 그는 감사와 건강이 연관이 있는지를 실험해 보았답니다. 그는 10주간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에는 매주 다섯 가지의 감사를 기록하게 했답니다. 다른 집단에는 다섯 가지의 걱정거리를 기록하게 했답니다. 그 결과 감사 집단은 불평 집단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상승하고 건강이 좋아졌답니다. 두통, 기침, 어지러움 등이 줄었답니다. 또 다른 만성 질환자 집단 실험에서도 기쁨과 자부심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많아지고 이웃들을 돕고 깊은 숙면을 취하면서 건강이 좋아졌답니다.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에머슨 박사는 '감사하는 습관만으로도 몸의 면역력이 좋아져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고 그에 따라 행복지수도 올라간다'고 결론을 내렸답니다. 감사는 세포를 병들게 하는 분노와 불평, 불만과 원망, 비난과 시기... 등의 제초제입니다. 매일 감사를 마음에 가득 담으면 세포를 병들게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지고, 감사하면 건강해지며, 감사하면 대인관계가 좋아지고, 감사하면 성공하고, 감사하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4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버릴 것이’는 ‘아포블레톤’이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멀리 던지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포발로’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멀리 던져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다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사람마다 많은 상황과 많은 사건을 당하며 삽니다. 그 모든 것을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게 사용하며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지난 과거 모든 것을 복음적 관점에서 감사 안경을 끼고 감사로 해석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5절까지 문맥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미래에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배교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잘 다니다가 이단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코로나 19같은 상황이 오니까 믿음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못 알고 있는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을 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의 출처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단입니다. 1절을 보시면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유혹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이탈되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는 그리스도인들의 배교의 배후에는 사단의 활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을 믿음에서 떠나도록 유혹하는 자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2절을 보세요. 첫째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았습니다. 화인은 낙인을 찍는 것을 말합니다. 마비되고 그을려 지는 것을 말합니다. 가축이나 노예의 몸에 내 것이라고 낙인을 찍는 것을 말합니다. 사단이 사단의 것이라고 낙인을 찍은 양심입니다. 화인을 맞으면 감각이 없어집니다. 양심 불감증에 걸린 자들입니다. 어떤 이단처럼 이단에 빠지면 어머님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단에 속하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없어져 버립니다. 깨닫지도 느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둘째는 외식을 합니다. 배우의 연기를 말합니다. 배우처럼 연기를 합니다. 위선을 떨고 가식을 합니다. 셋째는 거짓말을 합니다. ‘프슈돌로고스’는 로고스는 말씀입니다. 가짜 말씀, 가짜 로고스입니다. 가짜 말씀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교묘하게 하나님의 말씀처럼 위장하여 엄청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에 나오는 그들이 전하는 신자들을 유혹하는 가짜 로고스는 무엇이겠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욕 억제입니다. 혼인을 금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며 결혼을 하지 말아야 믿음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에 근거한 거짓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은 혼인을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둘째는 식욕을 억제입니다. 금식하라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적 극단적 금욕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가려먹는 엄격한 채식주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런 사상은 1세기 교회에 들어와 2세기 경까지 교회에 두루 퍼졌습니다. 구약의 정결법에 근거한 유대주의 자들로 먹기에 합당한 코셔 음식만 먹어야 하고, 제사드린 고기는 먹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류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하고, 조류는 닭 칠면조, 집오리 비둘기는 먹을 수 있으나 독수리, 매와같은 육식성 조류는 먹을 수 없습니다. 육류는 되새김과 발굽이 가라진 짐승 즉 소 양 염소 등은 먹을 수 있으나 말 당나귀 등을 먹을 수 없습니다. 먹을 수 있는 조류나 육류라고 할지라도 피를 제거해야 합니다. 먹을 수 있는 육류라고 할지라도 우유나 치즈 등과 함께 먹으면 안됩니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코셔 음식을 따로 구분하지 말고 어떤 음식이든지 음식물은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부정한 음식이라고 먹지 못하겠다고 할 때 하나님이 환상중에 부정한 음식도 먹으라고 한 것처럼 감사함으로 코셔 음식이 아닐지라도 받아 먹으면 유익하다는 것이니다.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의미를 더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다 선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하매(칼론)’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이라는 의미에서의 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한 후에 보이시게 “좋았더라”라는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극단적 금욕주의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나님께서 제정하셨듯이(창2:24), 인간이 먹는 음식 역시 하나님께서 지으셨을 뿐 아니라 인간이 먹도록 허용한 것입니다(창9:2). 음식에 대해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잠시 금지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해방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한 것입니다(4절). 따라서 모세의 금지법이나 영지주의적 사고에 따라 음식을 제한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허락하신 더 근본적인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모든 것은 다 쓸모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감사에 대하여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받는 교훈은 감사는 복음 안에서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4절 상반절에 음식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라고 확장한 것처럼 이 말은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서 모두 일으키셨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어떤 사람들은 우연이 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저 사람 때문에 라고, 어떤 사람은 자신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이 지어졌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지어졌다고 믿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물을 볼 때 하나님의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려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마음에 맞는 일이든 맞지 않는 일이든, 원하는 일이든 원하지 않는 일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지나온 범사를, 주어진 범사를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범사를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서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롬11:36)”을 믿고 감사로 해석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났어도 우리가 버릴 것이 없는 것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해석하며 살았습니다. 형들이 인신매매했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라고 형들 앞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였습니다. 형들의 시기와 오해 때문에 팔려갔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음욕의 노예가 된 중년 여성의 사악함 때문에 감옥에 갇혀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자식이 일찍 떠날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배우자가 먼저 떠날 수도 있고, 심각한 통증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도 있으며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실직을 할 수도 있고, 이혼할 수도 있으며,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고 장애 아이를 양육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좋은 일만 감사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절 고통과 가난, 쓰라림, 실패, 억울함 등을 감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버릴 것 없는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화차 한 칸을 자기 화학 연구실로 꾸몄다가 불이 나서 매를 맞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답니다. 많은 발명품을 만든 다음에 그가 기자들에게 이런 인터뷰에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나는 귀가 멀었기 때문에 더 열심으로 내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귀가 만약에 멀지 않았더라면 이 많은 업적들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자신의 신체 장애마저도 감사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감사로 해석하고 감사하니까 감옥문이 열리고 간수의 마음도 열리고 가정의 문도 열리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2. 현재 지금 주어진 일을 감사로 선택해야 합니다.
누가 결혼을 하지 말야 한다고 말하고, 코셔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말해도 문제는 결혼을 하고 안하고 음식을 먹고 안먹고는 본인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결혼 제도를 만들어 돕는 배필로 결혼하여 살게 만들었습니다. 감사함으로 결혼하여 사는 사람도 있고 그저 감사함으로 평생 홀로 살겠다고 선택하여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불평과 원망으로 홀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홀로 사느냐 결혼하여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불평으로 사느냐 감사로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먹는 음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불평과 원망으로 먹는 사람이 있고 맛없는 음식도 감사로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감사로 먹고 사느냐 불평으로 먹고사느냐의 문제입니다. 똑같은 사건이라고 우리가 어떤 태도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건과 결과 사이에는 항상 선택이라는 태도가 있는 것입니다. 사건 곱하기 선택하면 결과나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수가 주어져서 거기에 마이너스를 곱하면 마이너스 크면 클수록 결과의 숫자는 더 큰 마이너스 숫자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 일어난 사건과 과업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버릴 것이 없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버려야 할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익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유익하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현재의 선택에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믿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먹는 문제가 이미 다 해결되었다고 진리를 아는 자들은 감사함으로 선택하고 먹는 것입니다. 진리가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제사법, 의식법, 도덕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제사법을 다 성취하였습니다. 이제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단 번에 속죄 제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제사법의 목적을 십자가에 달려 성취함으로 율법을 완성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 안에서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음식 규례, 제사장의 구별 규례, 명절 규례, 할례 등의 의식법은 구별된 삶 즉 이방인과 달리 유대인으로 살아야 할 성별에 관한 법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이방인과 유대인의 담을 헐어 버린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는 유대인의 의식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먹는 것이, 할례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민족 누구나 지켜야 할 도덕법은 예수님께서 더 강화시켜 놓았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예수님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살인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이 진리에 근거하여 감사함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4절 말씀 하반절을 보세요. 다시 강조하여 “감사함으로 받으면”이라고 말씀합니다. “받는다”는 ‘선택하다’, ‘선택해서 강하게 붙잡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 우리가 선택하는 것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먹지 않기로 선택하면 안 먹고 사는 것이고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하면 독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감사로 선택하면 감사로 사는 것이고 불평으로 선택하면 불평으로 사는 것입니다. 선택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선택하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강력하게 붙잡고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우리는 감사를 선택하고 감사함을 강력하게 붙잡고 살면 그것은 우리에게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받았다”는 히브리어로 ‘카발’입니다. ‘환경적으로는 거절하고 싶지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상황으로는 받고 싶지 않은데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바로 헬라어로 번역되면 디모데전서의 말씀의 ‘받으면’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십시오’라고 했던 겟세마네의 그 고백도 받는 것입니다. 나는 원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뜻이라면 받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생활을 하려면 현재 주어진 일을 감사로 선택하며 강력하게 감사로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똑같은 환경일지라도 감사하면 천국이 될 수 있지만 불평과 원망으로 선택하면 지옥같은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하면 그 사람은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만 불평하면 마귀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제도나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감하면 그곳이 천국이지만 불평하면 그곳은 지옥이 됩니다. 감사로 선택하면 모든 것은 쓸모 있는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선택은 순간이지만 결과는 영원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선택은 씨앗과 같습니다. 풍요로운 것이 많아도 감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를 선택하면 얼마든지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감사를 선택하면 감사의 결과는 감사의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행복은 풍요로움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비례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감사로 선택하기로 결단하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하박국3:17-19)”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넘치는 풍족함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힘겹고 치열한 환경속에서도 감사로 선택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100% 완벽한 축복도 100% 완벽한 고난도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50년 동안 목회했는데 하루도 염려와 근심이 없는 날이 없었다고 정직하게 고백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자연스럽지만 감사는 선택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선택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시편 34편에서 다윗은 블레셋와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는 굴욕적인 상황가운데서 원망을 선택하지 않고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욥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결국 감사와 찬송을 선택했습니다. 감사를 선택하여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첫 번째 추수감사절도 조건이 좋을 때가 아닙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갔지만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맞이해야했습니다. 각종 질병으로 다음해 봄을 맞이하기까지 함께 승선했던 102명중 46명만이 생존하게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며 정착한 지 한 해가 되었을 때에, 그들은 모든 역경속에서도 감사의 축제를 열어 이웃을 초청하고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멜로디 비티라는 여성 상담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성적 착취와 강간, 마약과 알콜중독이라는 끔찍한 인생의 고통에서 치료받고 새롭게 되어 이제는 수많은 이들을 돕는 상담가로 일하고 있답니다. 그는 감사함의 태도가 가져다주는 삶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는 인생의 풍족함을 여는 열쇠요, 지금 내가 가지고 있은 것이 얼마나 귀한 지를 알게하며, 거부하고 부정하는 인생관에서 수용하고 용납하는 정신적인 안정을 가져다주고, 모든 내적 혼란스러움이 질서를 회복하는 경험을 가져오게 한다”고 말합니다. 개그맨 이동우라고 있습니다. 한때 인기 있는 개그맨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한 실명상태에 있답니다. 그는 5년 동안 거의 절망과 우울과 낙담가운데 살았답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생각이 났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 감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낱말들이 있습니다. 사랑, 행복, 믿음, 소망, 희망, 축복--하지만 이런 말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지 피부로 실감하면서 사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완전하게 잃어버린 사람들, 바닥까지 떨어져 본 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말합니다. 제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제가 실수한 것도 아니지만 어느 날 병이 찾아왔습니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감당해야할 저의 몫이었기에 아파할 만큼 아파하고 나니까, 사랑이 뭔지, 희망이 왜 소중한지, 내 주변에 있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고 했습니다. 정말 깊은 절망에 빠져 본 분이라면 감사를 선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다가올 미래를 하나님의 선하심 믿고 감사로 기대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감사로 해석하고 감사로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까? 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음식물을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라고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라고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으신 것은 ‘창조하다’는 동사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선하다’는 것은 해롭다고 할 것이 전혀 없는 상태로 하나님의 목적에 딱맞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선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유익하게 유용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감사함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가르침은 감사를 빼앗아 감으로 그것을 불가능 하게 한 것입니다. 버린다는 것을 멀리 던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 멀리 던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불신앙의 처사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어떤 일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믿는 것,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믿고 사는 것을 믿으면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키가 작고, 직장이 없고, 조건이 좋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 같은 인간을 통해 이루실 선한 일을 기대하면 얼마든지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모든 것은 그 이유가 있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면 미래를 감사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보아도 감사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을 만나도 감사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가지 조건들을 보아도 감사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버릴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결국 우리에게 좋은 사람으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버릴 사건도 없습니다. 결국 그 사건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버릴 고통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을 통해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을 견고케 하고 성숙을 가져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버릴 환경도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환경도 결국 우리에게 축복의 도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미래의 기적을 만드는 열쇠가 됩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며 감사하면 우리를 비상하게 합니다. 다니엘이 감사 기도를 드리니까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남편과 불편한 관계가 이루어 질 것을 알면서도 가정을 떠나지 않고 그저 감사하면서 부부생활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있으면 목사님과 불편한 관계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저 감사하며 교회 생활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미래가 어떻게 전개되든 감사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말썽 피우는 자식들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양육을 합니다. 미래를 보고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무조건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상대적인 감사가 아닙니다. 타인과 비교해서 느끼는 이기적인 감사가 아닙니다. 결과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골로새서 3장 1 절에 보면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하였는데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기대를 가지고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장정만 오천명이 있습니다. 아마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2만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이 감사하고 떡을 떼니까 장정만 5천 명이 배불리 먹고 12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죽은 나사로 앞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라고 말씀하십니다. 미래에 되어질 일을 예측하며 자꾸 불평과 원망하지 말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기대를 가지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왜 이렇게 감사하여야 합니까?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말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앞절의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으로 모든 음식이 거룩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감사하라고 하니까 감사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앞절과 연관시키면 감사함으로 받으면이라는 구절과 연결지어 기도하는 가운데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지은 바 된 것으로 알고 소중하게 받아들이면 성별된 것이 되어 자신에게 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당장은 불평과 원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다가 와도 결국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선하게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죽자 장례를 치른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보복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예수 믿는 사람이 어려운 일을 만나도 두려워할 것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슬픔의 노래를 불렀던 예레미야는 눈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 3:32-33)”
하나님의 일을 선하다 믿는 삶은 미래를 감사로 기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미래를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떤 교회의 한 사모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개복을 했답니다. 그런데 너무 암이 커져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답니다. 크리스천 의사였던 주치의는 공책과 볼펜을 가져다주며 '사모님! 특별히 할 일도 없으시니까, 일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했던 일이 있으면 열심히 적어 보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감사를 적으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쉽지 않았답니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자고 감사를 적기 시작했답니다. "첫 번째, 예수 믿어 구원 받게 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두 번째, 못된 성격이지만 이렇게 목사 사모가 되어서 교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 번째, 우리 아이들이 믿음 안에 건강 안에 잘 자라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만에 137개를 적었답니다. 그렇게 감사를 적었을 때 의사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까 '사모님 이제 복수에 물이 차면 와서 한 번씩 빼시면 될 것 같고 이제 집에 가서 쉬시는 게 낫겠다고' 퇴원을 시켰답니다. 그런데 퇴원하며 매일 감사일기를 적었답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한 것을 계속 적기 시작했답니다. 계속 감사를 적다 보니 은혜가 충만해졌답니다. 내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았는가에 감격하게 되고 기쁨이 샘솟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교인들을 심방하고 불신자에게 가서 전도도 하고 또 기도도 해주고 이런 일을 반복했답니다. 교인들은 걱정했답니다. '사모님이 곧 돌아가신다는데 저러고 돌아다니시면 어쩌나?' 그런데 사모님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고 미음이나 죽을 먹고 또 밥을 먹으면 소화도 못 시키는데 어떨 때는 그냥 밥을 먹는데도 소화가 잘 되었답니다.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기 시작했답니다. 너무나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여 몇 달 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았답니다. 검사를 한 의사는 "사모님!! 암이 기적처럼 다 나았습니다."라고 놀라워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감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어주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시기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감사는 막힌 담을 헐어 형통케 하는 기적을 일으켜 줍니다. 감사는 비판과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녹이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는 고칠 수 없는 내 성품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기적의 힘이 있습니다. 감사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 받는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앞에서도 감사하면 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감사하십시오. 불평한다고, 원망한다고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를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하면 언제나 생기가 있습니다. 감사를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하면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마음의 질병, 육신의 질병, 영적인 질병이 치료됩니다. 감사하면 근심 걱정이 없어집니다. 감사하면 공허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감사하면 분노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시기와 질투가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탐욕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나누고 싶어집니다. 감사하면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집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미래가 보장됩니다. 감사를 하면 더 받아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한 선물입니다.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집니다. 감사로 받겠습니까? 불평과 원망으로 받겠습니까?
그 모든 것을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쓸모 있게 사용하며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지난 과거 모든 것을 감사 안경을 끼고 복음적 관점에서 감사로 해석해야 합니다.
2. 현재 지금 주어진 일을 감사로 선택해야 합니다.
3. 다가올 미래를 하나님의 선하심 믿고 감사로 기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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