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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15)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 3(요21:15-1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157 추천수:5 220.120.123.244
2022-06-19 04:16:26

회복(15)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 3

요21:15-18

 

6월 들어와서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시는 장면을 통하여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떠나버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20:21)”라고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너희는 나를 보는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보다는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새벽까지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부활하여 세 번째 찾아 오셔서 회복을 시켜 주십니다. 부인하고 배신하고 도망갔다고 우리 주님을 베드로를 책망하고 버리신 것이 아니라 회복시켜 1세기의 초대교회 교회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그를 앞으로 초대교회를 시작시키시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중요한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앉은 뱅이를 일으시키시고, 고벨료와 그 가정을 변화시키며, 하루에 3천명, 5천명씩 회개하고 돌아오게 만드는 사람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죽음과 위협 앞에서도 담대하게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으냐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인물로 쓰실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고 병든 자를 일으키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의 사람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께서 가장 먼저 회복시키신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앉은 뱅이를 일으킬 수도 없고,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없고, 3천명 5천명을 회개시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여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처럼 순종을 거부하고 고기잡는 세상 바다에 간 베드로를 부활하여 찾아 오신 주님께서 먼저 순종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처음 부을 받았을 때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잡은 것처럼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153마리의 고기를 잡게 만들었습니다. 실패에서 회복하기를 원하시면, 무기력에서, 낙심에서, 무기력에서 회복하시길 원하시면 첫 번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회복됩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회복의 길은 열립니다.

두 번째, 회복시킨 것은 사랑입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면서 사랑의 동기로 예수님을 따를 것을 회복시켰습니다. 내가 하는 일, 고깃배, 고기, 그물 등, 내가 기대하는 것 그 무엇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말입니다. 너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고(마26:33) 나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고백했는데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보다 고기보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할 사랑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이 사랑의 동기가 회복 될 때 삶의 열정과 일의 기쁨과 인생의 재미와 의미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베드로를 찾아와 회복시킨 세 번째 회복입니다. 그것은 사명 회복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명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삽니다. 사명을 잃어 버리고 인생을 허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학생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스마트폰 중독이 되고 이룸보다 누림에 관심을 가지고 세월을 허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학교에 가는 신학생도 사명 없이 출세를 위해 신학교에 갔다가 포기하고 고기잡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명이 없기 때문에 개척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작은 교회는 우습게 보고 큰 교회 담임을 하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성가대나, 교사나 사명이 아니라 하나의 계급으로 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폼나게 하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는 직분을 우습게 보고, 회피하고, 마음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면 사람마다 꼭 해야 할 사명을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베드로의 사명을 회복시키시는지 본문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사명을 회복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우리는 실패했다고 사명을 포기 말고 다시 사명 붙들고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맡기고 배신하고 도망간 사람들은 상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능한 사람, 실패한 사람 다시 쓸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부인한 베드로, 배신한 베드로,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가서 무엇을 합니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간 베드로를 찾아가 예수님을 사랑의 질문을 통해 사랑을 회복해 주었습니다. 세 번이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신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내 어린 양을 먹이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어린 양(아르니아)입니다. 먹이다(보스코)는 “먹이다. 치다. 무리를 보호하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 9번 나오는데 안먹으면 죽고 성장을 멈춘다는 것입니다. 먹어야 생명과 건강을 유지합니다. 새끼 양은 돌봐야 할 대상이 동물 중에서도 나약한 새끼양인데 사랑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돌보되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희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돌보라는 것입니다. 또다시 16절에서는 “내 양을 치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어린양이 아니라 프로바타로 수컷과 암컷 모두 포함한 양의 총칭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뜻합니다. 치다(포이마이노)는 “진심으로 보호하다. 경계하다. 주의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인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 11번 나오는 단어인데 양을 달래서 먹이고 안 되면 지팡이와 막대기로 징계하더라고 양을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과 자원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의 백성인 양무리를 헌신적인 사랑으로 섬기고 돌보는 영적 지도자들로 사명을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벧전5:2). 18절에서는 “내 양을 먹이라”라고 하십니다. 다시 내 양을 강조하며 목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인 양을 치는 사역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에게 목양의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부족한 너라는 것을 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임한다"는 말입니다. 실패하고, 결점과 약점 많은 베드로이지만 다시 사람 낚는 어부로 사명을 맡기십니다. 약하지만 너를 통해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무엇이든 지 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친 베드로이지만, 위기를 당하니까 결국 도망간 베드로, 배신한 베드로이지만 예수님을 그에게 다시 사명을 맡기십니다. 배신한 사람에게 이 막중한 사명을 맡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목회자로 평생 목회를 하고 있지만 성도들에게 어떤 일을 맡길 때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배신자에게, 도망자에게, 부인하는 자에게, 미숙한 자에게 맡기질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능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배신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실패한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다시 사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찾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실패했지만 다시 찾아 가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모세에게 다시 사명을 주어 민족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아브라함을 찾아가 회복시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형을 속이고 도망간 야곱은 찾아가 회복시켜 12지파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부하의 아내를 간음한 다윗을 찾아가 회개하게 하고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도망간 요나를 찾아가 다시 기회를 주시고 니느웨를 변화시킬 사명을 주셨습니다. 절망한 엘리야를 찾아가 회복시기시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연약하여 사역지를 피한 마가를 찾아가 사명을 회복시켜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핍박한 바울을 찾아가 회복시키시고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시켰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이 시간도 찾아와 사명을 회복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어떤 처지, 어떤 상황에 있던지 부활하여 찾아오신 우리 주님 만나 다시 사명을 회복하고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헬렌켈러는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했지만 주님 만나 사명 붙들고 정신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링컨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빚에 쪼들려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 만나 사명 붙들고 일어섰습니다. 폭풍 앞에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1만 번 이상 넘어진 후에야 겨우 걸음마를 배운다고 합니다. 바람이 있어 연을 날릴 수 있는 것이며, 강렬한 햇빛이 있기 때문에 곡식은 여무는 것입니다. 강풍을 두려워하면 물은 파도를 만들지 못합니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높은 파도를 기다립니다. 영웅은 평상시에 나오지 않고 위기에서 나옵니다. 다윗이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골리앗 때문입니다. 골리앗이 없었다면 다윗은 목동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10년 동안 사울이라는 강풍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강풍은 다윗을 성군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사명을 붙들고 나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체험을 하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오순절 날 그가 설교할 때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세 번에나 감옥에 갇혔지만 기적적으로 놓임 받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도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거하였습니다.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룻다에서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쳤습니다. 욥바에서는 죽은 다비다를 살렸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은 전파하여 그의 가정을 변화시켜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마지막 로마에서 순교당하기까지 오직 예수를 전하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명 붙든 베드로의 삶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사명 붙들고 나가면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주님께서 하시는 역사를 체험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사명 붙든 세브란스 한 사람의 헌신을 통해 세브란스 병원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사명 갖은 하버드 한 사람의 헌신을 통해 세계적인 대학 하버드 대학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사명 갖은 홀트 부부가 한국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영화를 보고 8명의 아이를 입양하는 데서부터 홀트라는 기관이 생겨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맡겨준 일이 내 일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명자로 회복할 때 주의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회복해야 할 사명은 바로 베드로의 양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을 치고 먹이는 사역임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계속 “내 양”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 예수님을 어떤 사명을 주었습니까?

누가복음 5장 1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밤을 새워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두 배에 가득 채울 정도로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횡재를 주시는 주님을 보고 얼마나 기대를 가졌겠습니다. 이제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고생 끝 행복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그 모든 기대는 끝이 나버리고 다시 고기잡으로 왔는데 그날 밤도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와 “내 어린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강조하여 사명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사명을 회복하려면 첫 번째 주의 할 것이 맡겨준 일을 내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로 바라보는 인식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베드로 너의 양치는 것이 아니라 내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강조해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신앙 고백을 했을 때도 예수님은 기뻐하시면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자꾸 내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명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사명의 주체가 자신이 될 때는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내게 유익이 있으면 하고 내게 편리를 주고 내게 기쁨을 주면하지만 내게 유익이 없고 내게 불편을 주고 내게 불쾌를 주면 고기 잡으러 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자꾸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니까 내게 이익이 되면 맡은 일을 열심히 내지만, 맡은 일이 내게 손해가 되면 식어지고 멀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자기 이익에 따라 이 교회 저 교회로 방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든, 사업이든, 직장이든, 교회일이든, 전도하는 일이든, 선교하는 일이든, 구제하고 봉하사는 일이든 주님께서 맡겨준 주님의 일로 받아들여야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명감이 부족하니까 성가대도, 교사도, 구역장도, 청소 봉사, 주방 봉사도 유급직원에게 맡기고 외주를 주자고 합니다. 소명을 받은 자는 반드시 사명을 가지고 살게 되어 있는데 소명과 사명은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보내심'입니다. 소명(召命)이란 '부를 소'에 '목숨 명'을 써서 소명입니다. '부름 받은 목숨'이란 뜻입니다. 사명(使命)이란 '심부름 사'에 '목숨 명'을 써서 사명입니다. 사명이란 '심부름하는 목숨'이라는 뜻입니다. 사명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왕으로부터 받은 명령 혹은 맡겨진 임무를 뜻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천지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준 것이라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명의식을 품고 사셨고 마지막에 다 이루셨다고 운명하였습니다(요 17:3, 8, 18, 23, 25). 요한복음 20장 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런데도 베드로는 이 일을 망각하고 여전히 고기를 잡으러 간 것입니다. 다시 찾아 오셔서 예수님은 너에게 맡겨 준 일, 너가 평생 사명으로 삼아야 할 일은 내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라고 강조하여 사명을 부여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명이 회복되어야 인생도 회복됩니다. 사명이 회복되어야 열정도 삶의 의지도 회복됩니다. 심장이 몇 분이라도 중단되면 육체가 죽는 것처럼, 사명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죽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으로 변화시키실 때, 필수적으로 사명 회복시켜 사용했습니다. 사명회복은 영적 심폐소생술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인생 중에 끝까지 붙들고 평생 사명으로 간직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에는 세 가지 큰 명령이 나옵니다. 첫째는 창세기에 말씀하신 문화명령입니다. 둘째는 사랑하라는 대 명령입니다. 셋째는 제자를 삼으라는 대위 명령입니다. 문화명령과 대명령이 이루어지려면 대위명령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이 바뀌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인류 구속사를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이 사명을 다 이룸으로 사명의 완전한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부활승천하시면서 더욱 명확하게 우리를 향해 사명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 후 베드로는 사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무식했던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러자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행2:41). 베드로 자신도 놀라고 자빠졌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런 일일 일어날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예수님께서 맡겨준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걷기도 하고 뀌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를 합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사도행번 4장 4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사명 붙들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 사명자를 통하여 이루십니다.

물고기 잡으려고 사명 잃지 말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집중하고 회복하여 평생 사명붙들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명 갖은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로 인해 수많은 교회와 YMCA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변화되었습니다.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1838-1922)는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여 12살 이후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예수님을 만나 교회에 다녔는데 13세 소년 때였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벽돌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였는데 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로 가는 길이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창길이 되어 몹시 불편했답니다. 어른들은 모두 팔짱을 끼고 아무도 길을 고쳐보려고 나서지를 않았답니다. 그는 자기가 받던 하루 임금 중에서 7센트(약 1천원)를 떼어 날마다 벽돌 한 장씩을 자기 공장에서 사 가지고는 교회로 가는 길에 깔기 시작했답니다. 존 혼자서 완성하려면 2년이 걸릴 일이었지만 이 사실이 교인들에게 알려지고 교인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크게 반성하고 모두 힘을 합쳐 낡은 교회당 건물까지 다시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사명으로 사업을 한 그는 31세 때 세계 최초로 거대한 백화점을 세웠습니다. 필라델피아에, 뉴욕에 백화점을 세워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명으로 살았기 때문에 장하하여 얻은 수익으로 수많은 교회를 세웠고, YMCA 총제가 되어 65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헌신하며 세계 곳곳에 수많은 YMCA 건물을 지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업적을 남긴 1903년 시작된 한국의 황성기독교청년회(한국의 YMCA)의 종로 2가 회관의 벽돌도 1907년 미국의 워너메이커가 기증한 것으로 건축이 시작되었답니다. 그의 위대한 사업가였지만 사명이 분명했습니다. 미국 23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이 자신을 체신부 장관으로 제의받았을 때 워너메이커는 조용히 거절했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교회학교 교사입니다. 만약 장관을 맡음으로 인해 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안 되지요." 그 때 대통령은 장관직을 맡아도 워너메이커에게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답니다. 그때서야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는 장관으로 봉사하면서 자신의 말대로 주일성수를 위해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까지 먼 거리를 4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베다니 교회에 출석하여 하나님과의 약속을 신실히 지켜냈답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한번은 기자가 "장관직이 주일학교 교사직만도 못하냐"고 질문했답니다. 그는 주저함 없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장관직은 몇 년 하다 말 부업이지만, 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 동안 해야 할 본업입니다." 그는 17살부터 주일학교 보조 교사로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19살에는 정식으로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21살 때, 베다니에 주일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처음 27명의 아이들로 시작했습니다. 사명으로 이일을 감당하여 워너메이커의 베다니 주일학교는 1천 2백 개가 넘는 학급(학생은 6천 명이 넘음)이 운영되었고, 교사의 숫자만 해도 보조 교사와 서무를 포함해서 1천 5백 명이 넘는 주일학교로 성장하였답니다. 세계 최대 백화점을 이루어 백화점 왕인 그는 67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으며 수많은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다가도 사업이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면 세상 모임이 많아져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 사역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교회 출석까지도 등한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워너메이커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교회 모임에 참석하려 했다고 합니다. 주일성수는 흔들릴 수 없는 삶의 원칙이었답니다. 그의 생애는 주일을 기다리고, 주일을 준비하며, 주일 예배를 통해 새 힘을 공급받는 삶이었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기도보다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한다면...성경보다 더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면...교회보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면...주님이 베풀어 주신 식탁보다 더 좋은 식탁을 발견한다면...예수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발견한다면...천국보다 더 좋은 희망을 발견한다면...여러분은 신앙에 경보를 울려야 합니다." 그는 매 주일 아침 9시 반부터 밤 9시 반까지 12시간 이상을 교회에서 봉사했다고 합니다.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쉬라고 권면할 때마다 그는 "주일은 나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입니다. 교회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은 나의 최고의 기쁨이자 특권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가 임종 전에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서 노력하고, 하나님 안에서 땀 흘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내 인생의 표어였으며, 내 인생의 전부였다."라고 합니다. 한 평생 예수님을 만나 사명을 붙들고 산 사람의 숭고한 신앙 고백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3. 우리는 주님이 맡겨준 일을 생명처럼 귀중하게 여기며 열정을 다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왜 사명을 팽개치고 고기잡으러 갔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은 많은 고생을 하고 장로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나름대로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고난없는 좋은 세상을 기대했는데 난데 없이 예수님일 고난과 죽음을 이야기 하니까 강하게 항변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게 되는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을 시작하면서 마귀 사탄은 광양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제 왕국, 정치 왕국, 종교적 기적의 왕국으로 미혹했지만 그 사탄을 물리쳤는데 베드로를 통해 또다시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인류의 대속 방법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해 목숨으 잃으면 찾으리라(마17:24,25)”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십자가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혔을 때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사명을 부탁했는데도 고기 잡으로 간 것입니다. 그를 찾아와 예수님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다시 부여한 후에 그 다음에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젊을 때는 인생 초창기 시절을 뜻합니다. 띠 띠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 싶었던 모든 일에 대해 필요한 것들을 자신이 중심이 되어 미리 챙기고 준비하여 다녔다는 말입니다. 늙어서는 만약 네가 늙는다면이라는 말입니다. 네 팔을 벌리리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팔을 내밀어 영혼의 병을 치유한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19절을 보면 순교를 한다는 말입니다. 남이 데려갈 것이라는 말은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양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돌보다가 순교당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명자로 부름받은 베드로가 자신을 위해 챙기는 삶에 마음을 두지 않고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명의 길을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인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목숨 걸로 하라는 것입니다. 박조준 목사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어느 여집사님께서 목회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여 그 집에 심방을 갔답니다. 남편과 아들이 목사님 옆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데, 부인이 기뻐 어쩔 줄을 몰라 앉았다, 일어섰다 했답니다. 부인의 말이 “목사님, 우리 남편이 예수 믿어 너무 달라졌습니다. 남편이 예전에는 깡패 두목이었는데, 집에 들어와 조금만 기분이 나빠도 상을 엎어버리고 대문쪽으로 던지곤 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천사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부인의 말을 듣던 전직 조폭 두목 남편 “씰데 없는 소리. 옛날 이야기 그만해.”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그 남편을 보니 몸집이 왜소하고 힘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조폭 두목 같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보아하니, 덩치도 크지 않고, 힘도 저보다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깡패 두목이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깡패 두목,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목사님이 “아니면, 기술로 합니까?”라고 하자 “아니요. 그까짓 거 목숨 하나 걸면 됩니다. 이쪽에서 목숨 걸고 싸우려고 대들면, 저쪽에서 이미 느끼고 ‘형님’ 하고 무릎을 꿇는 겁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도 목숨 걸고 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 줄 알고 목숨 걸고 공부하면 1등도 합니다. 목숨 걸고 사업하면, 사업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목숨걸고 기도하고, 목숨 걸고 전도하고, 목숨 걸고 봉사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목숨 걸고 회사 일하면, 회사에서도 임원도 될 수 있습니다.

목숨 걸고 사명을 감당한 베드로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1세기를 변화시키는 초대 공동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오순절 때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그 후 한 번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사명자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네로의 박해 가운데서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성도들을 이끌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전서 2장 20-21절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 전서 4장 12-13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사명을 감당하는데 십자가를 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1:7절에서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사명을 이루는 일에 고난을 회피하려고 하면 어떤 사명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좋은 일 하면 모두가 칭찬할 것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은 가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조금 어려움이 오면 사명으로 시작한 일을 포기해 버립니다.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사명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이루라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터툴리안은 베드로가 네로 황제의 통치 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어 순교했다고 말했습니다. 유세비우스는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과 관련하여 그가 자청하여 머리를 아래로 두는 형태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바른 자세로 처형되었는데 내가 어찌 주님처럼 바로 매달릴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로 그렇게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중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베드로는 그리스도에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네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하니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려고 로마로 간다"라고 대답하셨답니다. 이 대답을 들은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로마로 되돌아가 사역을 계속하다 체포당한 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처형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명자의 죽음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희생과 순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사명 붙들고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일을 열정을 다해 하는 것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어 세계적인 인물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어부였습니다. 시골 벳새다 지방에 사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갈릴리 어부로 살다 생을 마감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다가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예수를 믿은 일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유명한 신앙인 16명의 신앙 고백이 실려있습니다. 그중 첫 번 나오는 분이 연세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을 했던 송자 장로님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예수쟁이가 된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원서를 사러가다 설교 소리가 나 채플실에서 예배를 드린 후 한 번도 예배에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락준 총장이 그를 기억하고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서 힘들었던 대학원 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태평양을 건너가게 하셨을 때는 결코 낙제하라고 보낸 것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은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지도교수님은 “예수를 믿어서 덕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송자’”라고 하실 정도로 믿음은 그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기왕 믿을 바에야 철저한 기독교인이 되어 보자라고 했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이만열 교수님은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때마다 내가 보지 못하는 10년 앞까지도 보시고 생을 인도해 가신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님은 "나의 빽이 하나님인데 절망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앞날은 그분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므로..."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시다 천국에 가신 김정문집사님도 그 책에 나오는데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베드로도 분명하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예수를 믿은 일이다”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예수를 믿은 일이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다시 한번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실패했다고 사명을 포기 말고 다시 사명 붙들고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맡겨준 일이 내 일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겨준 일을 생명처럼 귀중하게 여기며 열정을 다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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