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2) 부모와 자식이 행복하게 살려면
엡6:1-4
오늘은 교회 설립 25주년 되는 교회 생일이 있는 주일임과 동시에 어버이 날입니다. 오늘은 부모와 자식이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대부분 부모는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자식들은 부모님이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전문적인 지혜가 있겠지만 이 시간에 인간을 만드시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행복하게 한평생 행복하게 건강하고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잘 되고 장수하는 행복을 누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1. 부모님에게 주 안에서 순종해야 부모와 자식이 잘되고 행복하게 삽니다.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식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먼저 부모가 되기 전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순종은 결혼하기 전 우리가 자녀로써 부모에게 대하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기본적인 윤리적 태도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농경 사회나 통하는 윤리라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인의 인격과 창의력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순종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국 다이애나비가 순종 서약을 거부했다고 해서 옛날에 신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순종을 힘없는 자의 비굴함 정도로 생각하며 잘 사는 지혜가 아니라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기를 살려 주어야 한다고 제멋대로 살도록 방치하는 부모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순종을 강조하면 성경을 너무나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억지라고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생각해 보십시오. 주변의 사람들, 친구들을 보십시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고 제멋대로 산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런 사람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부모 말 듣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가출한 사람들 별로 잘 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사장의 정당한 권위를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 보았습니까? 교회에서 목회자의 정당한 권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교회생활하는 사람들이 잘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까? 자녀가 잘 되고 건강하여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면 어릴 때부터 정당한 권위에 대한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결혼하여 독립적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시행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주신 부모의 권위를 주님 안에서 철저히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결혼한 후에도 마마보이 마마걸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파파보이 파파 걸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권위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옳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실행하는 것이기에 정당한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 권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의 권위, 교권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의 통치적 권위, 통치권이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의 영적권위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합니까?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는데서 출발합니다. 권위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권위까지 부정하면 안 됩니다. 권위가 살아 있어야 질서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권위가 존중되어야 나라가 잘되고 교회가 잘되고 가정이 잘되는 것입니다. 질서가 없는 사회는 지옥과 같은 사회입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옮기는 결정을 할 때도 어머니가 합니다. 어머니는 실제 아들 딸 의견에 따라 결정합니다. 여행을 갈 때도 아이들이 여행지를 결정합니다. 식당에 갈 때도 아이들 위주입니다. 하나 둘을 키우가 보니 아이들이 왕자고 공부입니다. 어릴 때부터 순종교육을 시키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참으로 버릇이 없이 자랍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할머니와 부부 그리고 3형제가 살고 있었답니다. 아이들을 잘 기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아이들 하는 대로 그대로 길렀답니다. 기 꺾지 않고 자존감 세워주워 준다고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버릇없는 아이를 만든 것입니다. 거센말로 싸가지 제로 아이를 만든 것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모처럼 집에 있었는데 학교에 갔다 온 큰아들이 안방 문을 활짝 열면서 아버지에게 책가방을 던졌답니다. "야! 나 학교 갔다왔다." 둘째 아들도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놀랐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큰절을 하면서 "아버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음. 그래. 너밖에 없다"며 흐뭇해했답니다. 그러자 막내아들이 두 형을 쳐다보면서 말했답니다. "제, 좋단다."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빠, 아빠 머리카락 중에 하얀 머리는 왜 있어?" "네가 말 안 듣고 말썽 피울 때마다 하얀 머리가 하나씩 난단다." 그러자 이 아이가 "그럼 할머니 머리는 왜 전부 다 하얘?" 라고 반문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너무나 부모의 권위가 상실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되어 가고 있습니다. 과거 니체는 조로아스터교(拜火敎)의 교조(敎祖)인 차라투슈트라의 입을 빌어 최고의 권위를 누려온 신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세기 후인 20세기에 미국의 사회학자 마르쿠제 역시 차라투슈트라의 입을 빌어 아버지는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21세기는 모든 권위를 파괴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부모의 권위가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잘 되고, 가정도, 나라도 잘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조건을 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의 본문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 3:20)”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기는 순종하되 모든 일입니다. 선별적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순종하되 단 주 안에서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거슬리는 것까지 순종할 것을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에 부모를 통하여 통치되기는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가정을 권위를 가지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녀가 마음대로 하는 것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 부모의 권위가 살아지면 그 사회는 질서가 무너지고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삼손을 보십시오. 나실인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방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 눈을 빼임당합니다. 짐승이 돌리는 맷돌을 돌리다 죽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을 보십시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성전에서 방탕합니다. 고기를 도둑질해 갑니다. 간음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방치합니다. 겨우 권면하는 것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물게 됩니다. 성경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 22:15)"라고 말씀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어릴 때부터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이것을 양보하고 포기하면 자식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착각입니다. 결코 자식이 부유하며 건강하게 장수하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만드는 길이 아닙니다. 오늘날 부모님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식 신앙교육 방치한 엘리제사장 집의 부모와 자식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아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엘리도 전쟁터에서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아이를 가진 며느리도 아이를 낳고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즉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지어 주고 죽었습니다. 얼마나 비극적인 가정이 되어 버렸습니까?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잘 되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삭을 보십시오(창22:9-10) 결혼할 배우자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는데도 순종합니다. 결국 이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2-14)" 잘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잘되고 아들도 잘 되었습니다. 잘 되었을 뿐 아니라 장수하였습니다. 아브라함 175세, 야곱 147세에 비해 이삭은 1백 80살까지 장수합니다. 기운이 진하여 죽습니다. 얼마나 건강하게 살았다는 말입니까?(창35:29)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창 35:29)"
감리교위 창시자 요한 웨슬리 어머니 수산나는 19명의 자녀를 출산하였습니다. 가난한 가운데 이 많은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이들을 훌륭하게 양육하였습니다. 그녀는 순종 교육을 철저히 시켰답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배우면 부모에게도, 선생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순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길이 그 자녀가 영원히 효를 행하며 살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소름끼치는 무서운 경고를 보십시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잠 30:17)" 객사하는 이야기입니다.
신21:18-21에서는 성 밖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2. 부모를 공경해야 부모와 자식이 잘 되고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부모 공경이 하나님의 약속을 보장받는 방법입니다. 그 약속이 3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복을 받고 오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서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 중 제 5 계명으로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이 땅에서 장수하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5장 16절에는 더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 5:16)"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장수할 뿐 아니라 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공경이란 말은 우리말 사전에 "공손히 받들어 모심."이라고 뜻풀이를 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공경은 '카베드'라는 단어로 "존경하다. 영광되게 하다, 기쁨이 되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잠3:9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 공경과 같은 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되 마치 하나님을 공경하듯 섬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순종과 비교하면 순종은 결혼 전의 효도 윤리라면 공경은 결혼 후까지 자신이 부모가 된 후에도 적용되는 효도 윤리입니다. 순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은과 봉양, 양지까지를 포함합니다. 부모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유일합니다. 부모 공경 없이 사람답게 잘 사는 사회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나이가 들어서도 살아계실 때 조금 더 부모에게 효도할 것이라는 후회를 가지게 됩니다. 제도 6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지금도 5월이 되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끔 생각나고 살아계셨을 때 충분히 효도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많이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 주보 표제시에 “5월이 되면 아버지가 그립습니다”라는 시를 올렸습니다. “오월이 되면/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초가집 처마에/고드름 열리고/지치지 않은 문풍지 소리/겨울을 얼리면//건넌방에 쌓아 놓은 고구마/화롯불에 올려 말없이/구워주시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어둠이 쌓인 눈 삼키고/문풍지 소리 깊이 잠들며/초저녁 따뜻한 온돌 방/식어지는 새벽녘이면/설 잠자는 아들을/따뜻한 품으로 끌어 앉고/데워주시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겨울이 오면 논에 물 담아두고/얼은 논바닥에서 팽이 가르쳐주시며/썰매 끌어 주시던 아버지,//눈 쌓인 아침이면/잠자던 아들 깨워 마당을 쓸고/동네길 눈을 같이 쓸던 아버지,//......//지금,/문풍지 소리 들리지 않고/처마에 고드름 열리지 않는 겨울이어도/어버이 날이 있는 오월이 오면/식어진 방바닥에서/품으로 몸을 데워주시던/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아마 누구나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런 그리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누워 부모님을 생각하면 충분히 효도하지 못한 아픔들이 밀려올 것입니다. 효도는 저축해 놓았다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 그 때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다. 효도를 미루면 지나고 나면 후회만 남을 뿐입니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는 “부모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었으니, 우리는 그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아버지의 부성애를 가시고기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수놈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작은 물고기랍니다. 가족을 위해 수고하다 조용히 한세상을 마감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모성애의 물고기를 연어라고 합니다. 바다에서 사는 어미 연어는 알을 낳은 후 한 쪽을 지키고 누워있는다고 합니다. 이는 갓 부화되어 나온 새끼들이 아직 먹이를 찾을 줄 몰라 어미의 살코기에 의존해 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미 연어는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새끼들이 맘껏 자신의 살을 뜯어먹게 내버려 둔답니다. 새끼들은 그렇게 성장하고, 어미는 결국 뼈만 남게 되어 소리 없이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어떻습니까?
요즘 경로당에 가면 노인들 사이에 이런 유머를 한다고 합니다. “아들만 둔 엄마는 모시기를 서로 미루는 바람에 이 아들 집 저 아들 집 다니다가 길에서 사망하고, 딸 둘 가진 엄마는 국외 여행 가고, 딸 하나 가진 엄마는 딸 집에서 설거지 하느라 싱크대 앞에서 사망하고, 아들 하나 둔 엄마는 양로원에서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딸 둘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 둘이면 은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랍니다. 어떤 의사의 글을 보니까 요양병원에 와서 서 하는 태도를 보면 금방 아들과 딸과 며느리 사위를 알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부모님 침대 곁에서 눈물흘리면 분명 딸이고 그 옆에서 아내 위로하는 사람은 사위고, 유리창으로 먼산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아들이고, 부모님 곁에 가지 못하고 어물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며느리랍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가시고기가 되고 연어가 되지만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 군대가면 손님, 장가가면 사돈,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미친 여자 3인방은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라는 유머도 있지 않습니까? “재산 안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쫄려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는 유머도 있습니다. 세태를 풍자한 유머들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행복하게 잘 살려면 부모 공경하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하고 결혼한 후에서 후회없이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에 대하여 성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두 가지만 성경에 근거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주어진 사역을 지혜롭게 성취함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네 부모님을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잠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잠15:20)"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부모를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부모에게 근심 걱정을 끼쳐 드리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늙었다고 없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부담으로 여기고 창피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늙어지면 누구가 외모적으로는 볼품없고 초라해 집니다. 부모님이 파출부한다고, 청소한다고, 궂은일 한다고 창피하게 생각하고 업신여기면 안됩니다. 어떻게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 인물 중 국무총리가 되어 아버지 야곱의 노년을 기쁘게 살게 한 요셉을 통해 그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을 공경할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도 부모라는 한 가지 이유로 공경합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사기 친 사람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뿐입니까? 아내를 4명이나 두었습니다. 이정도 되면 어디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아버지에 대하여 자신의 가정에 대하여 창피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에 대하여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담을 쌓고 살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지금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어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돈이나 많으면 효도하는 체라도 하겠지요. 요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습니다.(창50:14) 국무총리가 되어 아버지를 모셔다가 바로에게 안수하게 하였습니다(창47:7). 형들로부터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45장 9절 11절을 보십시오. 지체하지 말고 요셉에게로 오시라고 말합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아무리 환경과 조건이 좋지 않을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비전을 이룸으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요셉의 가정환경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분인데 어머니는 네 분입니다. 작은 어머니이면서 이모입니다. 배다른 형제가 10명이나 있습니다. 어머니들이 서로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하여 투기합니다. 형제들이 질투하고 시기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요셉은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비전을 갖고 그 비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요셉의 가정처럼 복잡하지는 않겠지만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가정에는 있습니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술주정, 부모의 무식, 남보다 못한 직업, 경제적인 어려움, 형제들의 시기, 불신, 가족 간의 대화의 단절, 부모님이 공부강요, 간섭 등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이 땅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은 먹을 것 사드리고 용돈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성취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잠 23:24)"했습니다.
둘째는 마지막까지 부모님 업신여기지 말고 잘 돌보는 것입니다.
국민 10명중 5명 “부모 모시기 꺼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 번도 여행시켜 주지 않던 아들이 어느날 제주도에 가자고 하면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기 한 번 제대로 사주지 않던 아들이 좋은 양로원 가자고 하면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짐으로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럽을 기준으로 고대 그리스 때에 19세, 16세기에 21세, 18세기에 26세, 19세기에 34세, 20세기 초에 45~50세였는데 지금은 평균 수명이 83세를 넘었습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이제 100세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노년이 되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경제 문제, 건강문제라고 합니다. 예전 농경 사회에서는 자식들이 부모님을 잘 섬기기 때문에 조선은 노인이 부러운 사회라고 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세상을 떠나기 이태 전인 86세에 한국의 효를 극찬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답니다. “장차 한국 문화가 세계 인류 문명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효 사상일 것”이라며 부모를 끝까지 모시는 우리의 경로사상을 부러워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노인빈곤율 oecd 1위입니다. 정성국 박사에 따르면 전체 살인사건에서 존속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이 2%, 영국 1%, 프랑스 2.8%인 반면, 한국은 약 5% 전후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들의 발길이 줄어든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도 나왔습니다. 정재기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의 '한국 가족. 친족간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 양상: 국제 간 비교' 논문에 따르면 부모 소득이 1% 높아지면 부모가 자녀와 1주일에 한 번 이상 대면 접촉할 가능성이 2.07배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효도를 낭비나 손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효도는 낭비나 손해가 아닙니다.
어제도 제가 주례를 섰는데 제가 주례할 때마다 아이들을 5주 동안 미리 교육을 시키고 꼭 부모님께 평생 효도할 효도 통장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리고 약속을 하고 매달 월급의 10분의 1을 양가 부모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부모님을 자식들 이제 결혼 시작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받지 않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해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들 그렇게 부모를 공경하게 하는 것이 자식들이 행복하고 부모가 행복하게 장수하며 사는 길입니다. 자식들이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매달을 용돈을 드리게 한다고 망하는 것 아닙니다. 그렇게 할 때 더 행복하고 잘 살고 건강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효도하는 자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신문에 나온 4남 1녀를 둔 아버지 아야기입니다. 평생 사업을 하면서 효도교육을 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흑판 제작 기업 지분 50%와 대표직을 둘째아들에게 넘겨주었답니다. 다른 아들과 달리 대학에 다니지 못하고 밤낮으로 아버지 일을 돕던 둘째아들에게 평생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자 다른 아들들이 “왜 둘째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느냐?” 들고 일어서자 큰아들에게 대표자리를 넘기고 둘째는 회사에서 쫓겨나와 막노동판에 나서야 했답니다. 홀로 되어 늙으신 아버지를 셋째 아들집에 보냈답니다. 셋째아들 내외는 설악산으로 여행을 가면서 가스 코드와 전화 코드를 뽑아버려 아버지가 얼어죽고 말았답니다. 어릴 때부터 돈으로만 자식을 기르고 효도교육을 시키지 못한 아버지의 말로입니다. 재산을 놓고는 부모 자식 간에 눈물도 피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자식을 잘 못되게 하려고 부모 공경하라고 말씀했겠습니까?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보다 더 지혜롭고 고상하다고 생각하며 우길 필요가 없습니다. 어질 때부터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게 만들어야 자식들이 건강하고 잘되어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무섭게 강조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잠언 23장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잠15:20)"
성경은 말합니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를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부모를 없신 여기며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며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신 21:18-21)”
성경의 인물 중 끝까지 시어머니를 잘 돌보아 참으로 복받은 사람은 이방 여인 룻이라는 사람입니다. 시어머니 라오미가 있습니다. 남편이 죽었습니다.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시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곤고하고 고통스럽겠습니까? 며느리들에게 자기는 자신의 고향으로 갈터이니 너희들은 너희 집으로 가라고 합니다. 한 며느리는 그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룻은 효부였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을 나도 섬기겠노라하며 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로 옵니다. 늙고 외로운 어머니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일을 핑계로 부모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잘 되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룻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효와 성공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윤제중)>라는 석사 논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효도와 성공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에서 얻는 성품은 겸손이라는 것인데 겸손한 자가 결국 세상에서도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짐콜린스가 지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에 의하면 리더의 감탄을 자아내는 겸손함이 위대한 기업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모 봉야에서 봉사 정신과 절제, 인내없이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몸에 배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보면 성공의 기본 요소가 이런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명예를 존중히 여기는데 명예 존중에서 얻는 성품은 자긍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긍심이 강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효도의 사람입니다. 전쟁터에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키자 아무 소리 않고 순종합니다. 도망다니면도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다닙니다. 정치한다고 어렵다고 부모님을 소외시키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삼상 22:3)" 결국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권을 가지고 참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다윗에 대하여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대상 29:2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노인 천국으로 일컬어졌습니다. 고종황제의 밀사노릇까지 했던 미국인 헐버트는 `이 세상에서 관습적인 노인복지가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가 조선'이라 했고, 미국공사를 역임한 샌즈의 회고록에는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땅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했으며 선교사인 알렌도 `노인과 망인사이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즐거운 노인천국'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나 늙으신 부모를 천대하는 사회로 전락되어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순종하며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공주 왕자로 대우하며 모든 것을 자식 위주로 하다 보니 결국 자식이나 부모나 행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빈다. 우리 사회가 우리 가정이 건강하고 잘 사는 비결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데 있습니다. 부모님게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오늘이 우리 교회 설립 25주년 기념주일인데 우리 교회의 표어는 성숙한 성도,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이 먼저 건강하고 잘 되어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될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과 영광을 받게 된다고 하나님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만사에 형통하여 물심양면으로 번성을 하게 된다고 하나님은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심신의 건강과 평안과 행복 속에서 장수하게 된다고 하나님은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함으로 공경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림으로 공경하며, 부모님을 끝까지 잘 보살핌으로 공경하여 부모와 자식이 이 땅에서 잘되고 건강하고 장수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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