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백부장의 신앙고백(막15:3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007 추천수:5 220.120.123.244
2022-04-10 13:36:51

백부장의 신앙고백

막15:39

 

지난 주에 제가 91세 되신 집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한 달 전에 코로나에 걸렸다 치료받았는데 후유증으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계셨습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었고 의사는 마지막을 준비하시라고 한다는 이야기듣고 어쩌면 그 집사님 앞에서 그 집사님을 위한 마지막 기도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도하고 왔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반드시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릴까요?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세부류로 인간을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이 난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안심하세요. 지옥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즐기세요."라고 살아갑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둘째,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가지론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라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셋째, 죽음 이후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유신론자들입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히 사는 천국이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은 다 천국이 있다고 믿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님들인 줄 믿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삶이 끝나면 그 후 또 다른 영생의 삶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부자는 죽어 지옥에 가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최종 지옥인 불못에 던져질 것이고 거기서 통곡하며 이를 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3:50). 그래서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마10: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 영생과 영벌의 관문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자는 것이고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과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 어떤 사람은 천국에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10여 년 동안 1300여 명의 임사체험자를 조사한 미국의 종양학 전문의 제프리 롱 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 그 후>에서 임사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의식이 몸 밖으로 나오는 유체이탈 체험이라고 주장합니다. 레이몬드 무디(Raymond Moody)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그는 철학과 교수였다가 의과대학에 다시 들어가 의사가 된 분인데 임사체험을 한 163명의 사례를 모아 <사후의 세계(Life After Life)>란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과거의 어두웠던 삶을 청산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였고 기회만 있으면 사람들을 도우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임사체험 이야기를 하면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실제 일어난 일을 부인할 수 없으니까 임사체험도 극도의 스트레스 하에서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일대에서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를 이끌어 온 셀리 케이건 교수도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임사체험'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는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이 계속되는가'에 대해 대립되는 두 견해를 설명합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인간이라는 '이원론'과 인간은 육체만으로 이뤄진 인간이라는 '물리주의'입니다. 이원론자들은 임사체험을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으로 설명하지만 물리주의자들은 "생물학적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육체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엔도르핀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이 때문에 희열의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 것" 또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시신경이 특별한 방식으로 반응함으로서 터널과 눈부신 빛을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을 쓴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 M.D.) 교수는 물리주의 입장을 취했다고 합니다.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인 그는 과학 학술지에 150여 편이 넘는 논문들을 게재했고, 국제의학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의 연구 발표를 하는 등 뇌와 의식의 작용에 관해 뛰어난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라고 합니다. 그가 유명 신경외과 의사로서 이름을 떨치던 어느 날 그 자신이 임사체험을 한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뇌 부위가 완전히 정지된 거의 죽은 상태였고 결국 동료 의사들은 치료를 중단하고 생물학적 사망 판정을 내리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7일 째 되는 날,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단 하나의 사례가 된 '임사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후 체험을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말합니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그는 이 세계를 넘어선 곳에서 천사 같은 존재를 만났고 초물리적 존재계의 가장 깊은 영역으로 안내되었다고 합니다. 뇌기능 매핑 연구를 한 그는 의식이나 자유의지 혹은 비물질적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답니다. 지상에 있는 물질이 유일한 현실이고 나머지 모든 것들(생각, 의식, 관념, 감정, 영혼)은 그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즉, '의식'이라는 것은 뇌의 생화학적인 기능에 의해 발생하는 산물로 받아들였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임사체험을 한 후에는 뇌, 의식, 생명에 대한 그의 신념들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부정해왔던 영혼, 하나님, 사후세계 등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임사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 아니라 '완전한 실제(Ultra-Real)'라고 말합니다. 천국, 하나님, 영혼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의학적인 지식과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한 후 하나님과 영혼이 실재하며 죽음이란 다만 다른 상태로의 전이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7일 동안 그의 뇌는 잘못된 방식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의 고유한 면을 담당한다고 설명하는 그 부분은 완전히 나가 버린 상태였고, 대뇌 신피질이 이미 꺼져버린 상태였던 것을 엑스레이 사진, 병원 기록, 신경 기록 등 모든 의학적 자료들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것들은 "뇌가 꺼져도 의식 존재한다는 결정적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뇌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임사체험을 했다는 것은 임사체험이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나 망상이 아니라 뇌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강조해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정신이상자가 아닙니다.

매년 두 차례 학습 세례식을 합니다. 학습 세례 문답 때마다 제가 꼭 물어보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질문은 “그럴 리는 없지만, 오늘 밤 죽으면 천국에 가있겠습니까? 지옥에 가있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어제도 문답을 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 다 천국에 가 있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딸 유아세례를 받는 김목사님 사모님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사모님인데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목사님 아내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두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천국에 갔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천국에 왔느냐고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느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학생은 “죽어서 왔다”고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죽었기 때문에 갑니다. 그러나 죽었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죽어서 불못에서 형벌받는 지옥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서 천국에 왔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6:40)"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주일 학교를 다닌 성도님들은 주일 학교 시절 “돈으로 못가요”라는 찬양을 많이 불렀을 것입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 그 믿음으로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이 질문에 “아멘”입니까? 이 질문에 정직하게 “아멘”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가 싱싱한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다른 물고기가 타이릅니다. "저 지렁이는 낚시바늘에 걸려 있는 거야. 저것을 잘못 삼키면 바늘에 걸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아." 그러나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누가 믿어? 아무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잖아. 어디 사람들의 식탁까지 갔다 온 물고기가 있으면 증명해 봐. 네가 저 지렁이를 욕심내는 거지?" 그 물고기는 덥석 지렁이를 삼켰습니다. 그러자 다시는 바다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지렁이를 삼킨 물고기처럼 지옥에 가 그때 후회해도 이미 기회를 잃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백부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하고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생물학적인 아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죄를 사해주는 권세를 통해, 예배를 받음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예수님를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요8:19; 14:7), 예수님를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고(12:45; 14:9), 예수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12:44; 14:1). 예수님를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고(막9:37), 예수님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과 같으며(요15:23), 예수님에게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였습니다(5:23).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니까 유대인들이 신성모독죄로 죽이려한 것입니다. 사람이면서 자신을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했다고, 하나님이라고 했다고, 죄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했다고 예수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요한복음 10:33). 결국 예수님은 신성 모독죄로 재판정에 세웠습니다. 대제사장이 물어봅니다.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 26:63). 이때 예수께서는 주저함 없이 "네가 말한 대로 그러하다고" 답하셨습니다. 그들은 빌라도 법정에서도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 19:7)라고 고소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죄목으로 예수님을 십자가 형으로 처형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자가의 처형 장면을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본 사형 집행관인 로마 백부장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39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그런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사실을 믿는 것은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통해 믿는 것인데 그는 직접 경험을 한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관찰의 결과입니다. 형 집행관으로, 로마의 장교로서 관찰력을 가지고 정확히 지켜본 결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고 그렇게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겠습니까?

 

1. 예수님께서 죽음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처형하는 형 집행관으로 집행 책임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는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못박히기 전에 빌라도 법정에서 심한 채찍질을 당하였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옷을 벗기고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묶었다고 합니다. 채찍은 여러 조각의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고, 끝 부분에 뼛조각과 납이 박혀있었답니다. 대게 두 명의 남자가 양쪽 옆에서 채찍을 때렸답니다. 무거운 채찍이 어깨와 등, 다리에 반복해서 힘쎄게 내려쳐졌고, 처음에는 무거운 가죽끈이 피부만 찢어내지만 계속되면 피하조직이 찢기고 모세 혈관 및 정맥에서 피가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문을 당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죄목 때문인 것을 백부장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하면 그런 고문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렸을 때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희롱합니다. 무엇이라고 희롱했습니까? 마태복음 27장 42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마27:42-43)”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려 있던 다른 강도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4절입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대제사장도, 서기관도, 장로도, 강도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다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하루 종일 이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반복적으로 논의된 주제이고 사람들은 온통 진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일까에 대하여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을 보니 일반 범죄인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는 백부장으로 많은 십자가 형을 집행했을 것입니다. 죽을 때 모두 힘이 없이 죽어가는데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마가복음 15:37)”라고 말씀한 것처럼 패자의 비굴한 침묵이 아니라 승리자의 함성으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이들은 숨을 쉬지 못할만큼 약했었고, 조용히 죽었었습니다. 대부분은 고통을 못 이겨 참혹하게 죽어가면서 발악을 하며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저주하다 힘을 다 잃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간혹 마지막 순간에 “유다 독립만세”를 외치고 장렬하게 죽는 애국투사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습니다” 죽는 방법이 일반 인간과는 다른 것입니다. 여섯 시간이나 십자가에 못 박혀 그 큰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종교지도자들이나 자신을 조롱하는 백성과 관원들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가 가까이 지켜보는데 조롱하고 침을 뱉고 책찍을 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같이 십자가를 달린 우편 강도의 죄를 용서해 주시면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라고 하시는 소리를 똑똑히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다이루었다'(요19:30)라는 소리를 분명하게 들으신 것입니다. 저 놀라운 용서와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백부장은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분은 분명 사람이 아니다. 저분의 말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가 이런 현장에 있으면 감동이 되지 않겠습니까? 공감하는 사람은 90%가 바뀐다고 합니다. 그 죄목 때문에 고발되었는데 죽음의 순간에도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어떻게 가능하겠냐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저 예수, 죽어가는 순간에도 우편강도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는 저 예수,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자기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맡기시며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시는 저 예수.... 이러한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백부장은 굉장한 충격과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는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진실한 신앙 고백을 한 것입니다. 신학자 R.C. 스프라우트는 "모세는 율법에 대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마호메트는 칼을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부처는 개별적으로 상담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자는 현명한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인간 세계의 죄악에 대한 속죄를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무한한 섬김과 예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백부장은 많은 십자가 처형을 주재해왔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지막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돌아가신 분은 처음 본 것입니다. 그는 결국 확신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적이 틀렸다는 것을! 그 자신이 틀렸었다는 것을! 십자가 위에 죽은 예수님을 올려다보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가복음 15:39)”.

그 광경을 보았다고 다 이런 고백을 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비웃과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경꾼으로 온 유대 백성들도 많이 있었고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관원, 그리고 로마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끝까지 예수님의 죽음을 지킨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고백한 사람이 바로 백부장뿐이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듣고 본다고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믿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태복음 16:15)라고 물어보셨을 때 베드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태복음 16:16)이라 고백했듯이 백부장도 그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를 내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마태복음 16:17)”라고 하신 것처럼 백부장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어 그런 믿음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이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앞에서 이방인인 사형 집행관이 예수님을 보면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도 정직하게 예수님에 대하여 이런 고백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4절에 보면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1-52절을 보면 성소의 취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습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때가 제 육시쯤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눅23:44) ”라고 했습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사59:2)”라고 예언해 주었는데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원한 대낮에 어둠이 세 시간 동안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출19:9,16). 사랑하는 아들 주님의 죽음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를 상징하는듯 어둠이 임한 것입니다.

백부장은 성경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런 예언된 일이 실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죄목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참람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만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나는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다(요14:6)". "나는 아버지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요14:6)". "내가 부활이며 생명이다(요11:25)".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1)" "나는 양의 문이다(요10:9)".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51)"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주장할 수 있는 이런 주장을 하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신성 목독자, 미치광이, 사기꾼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만이 하실 수 있을 일을 하심으로 진정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예수는 폭풍을 잠잠케 하였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갔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습니다. 5000명을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배불리 먹였습니다. 홀로된 여인의 외아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어 주었습니다. 예수는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장님을 보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선생이라고 했는데 선생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하게 영적 감화력을 가진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탁월한 유대 지도자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요5:36)”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고 했는데 예수님 스스로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했고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이심을 입증했습니다. 황제만이 섬김의 대상으로 삼은 백부장도 객관적 사실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면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은 수가 없습니다.

 

<신의 언어>의 저자 프랜시스 S. 콜린스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한 때 무신론자였답니다. 젊은 날에 과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무신론 쪽으로 기울어졌답니다. 지각 있는 과학자라면 지적 자살 행위를 감행하지 않고서야 어찌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답니다. 그런데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로 근무하면서, 환자들이 신앙의 힘으로 궁극적인 평화를 누리고 위로를 얻는 광경을 무수히 목격했답니다. 그러던 차에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완전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의 세계를 알면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을 수없다는 것입니다.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존 레녹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옥스포드대학,캠브리지대학 등에서 3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고 4-5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분입니다. 리처드 도킨스,크리스토퍼 히친스,샘 해리스를 중심으로 한 과학주의의 잘못을 비판합니다. 천문학,우주론,진화생물학,분자생물학,유전체학,수학,정보학,통계학 분야를 총망라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더 탐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더 알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반과학적 지성의 오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은 결코 우연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결코 하나님을 외면하지도 매장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는데 앞 장 섰던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후에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라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고난 주간을 맞이하고 예수님을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시는 성도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예수의 도덕성이 예수의 주장과 일치한 것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의 말은 그 행위를 통해 진실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합니다.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아하, 네가 그랬다며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겠다고 했다며. 그래, 한번 해봐라!"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도 조롱하며 모욕합니다. 로마 군인들도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으며 조롱합니다. 관원들이 비웃습니다.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신 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합니다. 백부장은 가까이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빈정거리고 조롱하는 말을 다 들었을 것입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27:40)"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막15:32)"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23:39)"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 말했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했지. 네가 인간을 구원할 그리스도라고 말했냐?" 이렇게 조롱하며 대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도둑질 한 것도 아닙니다. 뇌물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성폭행 한 것도 아닙니다. 사기 친 것도 아닙니다. 좋은 일만 하셨습니다. 좋은 말만 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힘있는 사람이 조금만 조롱받아도 참지 못합니다. 조금만 오해 받아도 견디지 못합니다. 조금만 듣기 싫은 소리 들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평범한 사람도 모욕당하고 희롱당하면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지지해주고 자기가 원하는 소리만 듣기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이신 예수님이 참고 견디며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말 그대로 예수의 인격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눅가복음을 보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7)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신성 모독죄로 사형을 당한 예수님을 보면서 무죄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을 수 없는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도 분노하거나 억울해 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으며 끝까지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낸 것을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잔인한 군인들 앞에서도, 완고한 강도 앞에서도, 조롱하는 제사장 앞에서도, 지나가는 자들의 무관심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님을 보신 것입니다.

 

죽음 앞에 서 있는 그를 보면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습니다. 진정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누구도 다 이런 극한 상황에 다가가면 성질 드러나고 이기심이 들어나고 인간의 연약함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까지 순결했습니다. 정말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그래도 실천했습니다. 백부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인격에 감복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 바울 그리고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도 모두 예수님의 무죄함을 이야기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은 죄가 없으시며, 거짓을 말한 적도 없으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베드로전서 2:22). 예수의 친구가 아니었던 빌라도도,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을 갖는 것 이상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신앙인으로 참 맛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피터 싱어, 스피븐 호킹과 같은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주의에 사로잡혀 과학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고 맹종하며 예수님을 인격으로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망상의 산물이 아닙니다. 과학은 사물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답할 수 있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과학이 하나님을 매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진리로 갈 수 있는 유용한 도구지만 유일한 길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이 실존했고, 예수님이 실제 십자가를 지셨고 그 십자가 달리시는 예수님을 백부장처럼 인격적으로 만나면 삶이 변합니다.

 

<누가 예수를 종교라 하는가>를 쓴 조쉬 맥다월은 예수가 단순히 종교 지도자들 중 한 명이며 지킬 수 없는 규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 대학생이었습니다. 조쉬 맥도웰은 어린 시절에 부모나 가족들로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답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로서 어머니에게는 늘 폭력을 멈추지 않았답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소리쳤답니다다. 집에서 일하는 흑인 청년에게 치욕적인 성추행을 7년 동안 지속적으로 당했답니다. 상처투성이의 성장기를 보낸 조쉬는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애당초 관심도 없었고 때로 하나님은 없다고 다짐하면서 회의주의자가 되었답니다. 조쉬는 예수가 자신의 삶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쉬는 학생회관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미소가 밝고 활기찬 젊은 여학생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흥미를 느낀 조쉬는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가 바로 말한 답은 이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잖아요!" 예수 그리스도? 조쉬는 발끈해서 쏘아붙였습니다. "그런 이상한 말 좀 하지 마세요. 종교는 지겨워요. 교회도 지겨워요. 성경도 아주 질렸어요. 종교에 대한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 여학생은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종교라고는 안 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지요." 조쉬는 크게 놀랐습니다. 예수를 종교적인 인물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고 있습니까?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인 파스칼은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형태의 빈 자리가 있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벧전2:24) 원수를 소멸시키기 위해서(엡2:16)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엡2:17) 원수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골1:20) 우리를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히10:22)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내 사랑하는 아들(막1:11)" 변화산에서도(막 9:7)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해 주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도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거짓말쟁이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 아닌지 알면서도 거짓말 했겠습니까? 백부장은 결코 거짓말 장이가 아니다는 사실을 십자가 현장을 목격하고 알았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정신병자이겠습니까? 백부장은 죽음의 현장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꾸며낸 이야기 신화나 전설이겠습니까? 예수님을 열광하던 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이겠습니까? 십자가 현장에 있던 백부장은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주 이십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확실하게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주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도덕성이 예수님의 주장과 일치했습니다. 예수의 인격은 죽음의 순간에서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힘을 초월한 능력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백부장과 같이 이 사람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신앙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님에 대하여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마16:15~16)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의심 많았던 도마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라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같이 큰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성도님들의 평생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4.10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