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3) 아벨의 믿음
히브리서11:4
오랜 세월 목사님으로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신 후 저희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렸던 박 목사님께서 월요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시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지난 주일 2부 예배에 나오셔서 예배드리고 반갑게 인사하시고 가셨는데 월요일 천국에 가셨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제가 목사님에게서 배운 것 한 가지는 예배 생활입니다. 목회자도 현직에 있을 때는 새벽 예배부터 늘 예배를 드리지만 은퇴하면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시무할 때는 늘 예배를 집례하여야 하고 설교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의무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은퇴하면 이제 조금 쉬어야 하겠다고 예배에 소홀히 하며 겨우 주일 예배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목사님은 수요예배도 일년 내내 늘 한 시간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번은 저에게 “예배 시간에 뒤에 앉더라도 이해 해 달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약을 잡수시기 때문에 잠깐 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졸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으니까 맨 뒤에 앉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젊은 후배 목사들이 설교를 하더라도 경청하면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려고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예배에 은혜를 받고 예배의 축복을 많이 누렸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본인은 알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박목사님은 천국에 가셨지만 제게는 “나도 마지막까지 박목사님처럼 최선을 다해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라는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아벨의 대표적인 특징이 하나님께 예배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16명의 믿음의 선진들이 나오는데 첫 번째 믿음의 사람으로 아담이 아니라 아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첫 번째 예배를 드리다가 순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데 어떻게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를 모델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믿음은 하나님께 더 나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예배를 드렸다고 말씀합니까?
오늘 성경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여자가 드니느냐 남자가 드니느냐, 부자가 드리느냐 가난한 자가 드리느냐, 유식한 자가 드리느냐 무식한 자가 드리느냐, 사장이 드리느냐 직원이 드리느냐, 젊은이가 드리느냐 늙은이가 드리느냐, 권력자가 드리느냐 노예가 드리느냐, 기혼자가 드리느냐 미혼자가 드리느냐, 설교자로 드리느냐 청중으로 드리느냐, 찬양대로 드리느냐 성가대로 드리느냐, 많은 헌금으로 드리느냐 빈손으로 드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어떤 예배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예배를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창세기 4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들입니다. 아마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방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농사를 지어 곡식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게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는데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왜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았는지 오늘 말씀이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도 예배를 드리기는 드렸는데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평생 믿음으로 예배드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공적 예배는 다섯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말씀, 기도, 찬양, 헌금, 축도입니다. 누가 설교해도 믿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몇 명이 모여도 찬양해도 믿음으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조금 화음이 맞지 않더라도 신경질 내며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실 것을 믿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아멘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그대로 응답될 것을 믿음으로 아멘하는 것입니다. 헌금을 드려도 바친 헌금이 하나님의 것인 줄 믿고 믿음으로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응답될 것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우리가 드려야 할 제물 대신에 우리의 죄값으로 예수님의 몸을 드려 속죄했다는 사실을 믿고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로마서 14장 23절에서는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예배를 지루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 생활은 예배 생활입니다. 예배를 지루하게 생각하면 천국에 어떻게 영원히 살겠습니까?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면 소망이 넘쳐나고 기쁨과 힘이 솟아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믿음으로 예배드려 하나님으로부터 예배에 인정받은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니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습니까?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더 나은 제사로 말미암아 그는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은 아벨을 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아벨이 처음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아벨이 아브라함보다 먼저입니다. 아벨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가 얼마나 의롭게 살았느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벨에 대하여 ‘의인’이라고(마23:35) 말씀해 주셨습니다. ‘증거를 얻었다’라는 말은 아벨은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하는 증거를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조금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창 4:4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단순하게 아벨의 어린양만 받았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인의 곡식 예물만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 자체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아벨은 의로운 사람이 되어 그와 그의 예물을 받았고, 가인은 믿지 않아 불의한 자기이기 때문에 그와 그가 드린 예물을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배는 예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물을 드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똑같이 예배를 드렸지만 아벨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렸고 가인은 믿음의 없는 사람으로 자기 중심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창세기 4장 5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자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창4:5). 자기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입니다. 예물을 받고 안받고는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수도 있고 안 받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6절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라고 가인에게 물어 보십니다. 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동생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자신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자 가인은 어떻게 합니까? 들에 있을 때 아벨을 쳐 죽입니다. 이런 가인의 행위에 대하여 신약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요한1서 3:12)”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 자들은 자기 의를 주장하며 자기 중심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카이퍼(R. B. Kuyper)는 참된 예배는 "하나님과 더불어"(with God) "하나님의"(of God) "하나님에게"(unto God)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는 구원의 은총에 감격해하는 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영광과 찬양과 존귀와 높임과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내 뜻을 관철시키고 자기 의, 자기 부, 자기 권력, 자기 재능, 자기 외모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공연하는 것도 구경하는 것도, 자신의 종교적 심리적 만족을 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믿음으로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시편 29편 2절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5장 12-13절에서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는 목사님이 누구인가를 보고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설교자로, 찬양대원으로, 성가대원으로 기도자로, 헌금자로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예배 평가자로, 관객으로, 심판자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설교가 은혜로웠어" "오늘은 성가대가 틀렸어" "오늘은 기도가 너무 길었어" ""오늘은 모든 것이 조화롭게 진행 되었어" 등과 같은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의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 중의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배의 진정한 평가자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처럼 받으실 수도 있고 안받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찬양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 성도들의 기도와 성도들의 예배하는 모습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받아야 합니다. 예배하면서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하면 가인처럼 시험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 하나님께서 촉구하시는 회개의 음성으로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돌아가심과 부활을 설교합니다. 그 때 사도행전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 옵니다.
그런데 똑같은 예배 똑같은 설교입니다. 행5:33에는 어떤 반응이 나타납니까?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행 5:33)" 스데반도 거의 같은 설교를 합니다. 그 때 스데반의 설교들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행7:54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4)"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보느냐 인간을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사람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법궤가 들어올 때 찬양합니다. 그 때 다윗의 아내 미갈은 다윗이 찬양하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는 수치스러운 다윗, 체통머리 없는 다윗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다 결국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기적을 배푸시는 하나님, 교훈해 주시는 하나님을 예배 시간을 통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헌금할 때, 성가대의 찬송을 들을 때에, 설교를 들을 때에, 같이 찬양할 때에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치료, 강하게, 회복, 온전하게 하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에 대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나님의 인격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닮을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을 알게 됩니다.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 사랑, 신실, 자비, 용서 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예배는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의 빛에 완전히 쌓여 지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중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회개의 역사가 있습니다. 생명의 구원을 받습니다. 인격이 변화됩니다. 질병이 났습니다. 기적과 변화가 일어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위로를 받습니다. 지혜를 받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지혜와 부귀영화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릴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삼하 24장 25절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셔서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사기 6장 24절에는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았을 때 3백명으로서 모래알 같은 미디안 군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대상 21장 22절에서는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니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쳤습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위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시고 우리에게 예배를 통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3. 우리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 후대의 사람들에게 예배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벨이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결국 가인에게 살해되어 죽었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죽음일 수 있고, 애처로운 죽음일 수 있습니다.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예배드린다는 한 가지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재산을 잃기도 하며, 칼에 순교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믿음의 예배를 드리다가 최초로 순교당한 아벨을 말씀하면서 아벨은 비록 믿음으로 죽었지만 그냥 그것으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그가 아직도 말하고 있는 중이다’라는 말입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오늘도 계속해서 저와 우리 성도님에게 믿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에 대하여 본받을 만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후손들에게 믿음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버지처럼 할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할머니 처럼 믿음생활하며 살자는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기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된 믿음의 영웅 16명은 죽었지만 믿음 생활의 교훈을 예수님 재림 때까지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 아벨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의 모델을 모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믿음의 예배인 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 예배이겠습니까?
예배의 방법이 중요합니다. 아무렇게나 드리면 않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가인은 잘 못된 예배를 드려 하나님이 받지 않았습니다. 가인 뿐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답과 아비후는 잘못된 제사(레위기 10:1-2) 드리고 오히려 죽었습니다. 경거망동한 제사를 드렸습니다.(레위기 10:9). 사울 왕은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체사장처럼 행세하며 월권을 행하는 예배를 드리다가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삼상13장). 바리새인들은 우월주의와 외식주의에 빠져 예배드리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아벨의 예배는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지금도 이렇게 예배를 드리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어떤 예배의 모범을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아벨은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받아주셨고 그의 예물을 받아주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우리의 바라던 것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린도후서8:5)"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만, 생각만, 몸만, 헌금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인격을 전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도, 우리의 무능력, 우리의 우울, 우리의 갈등도, 우리의 연약함도, 삶의 상처도 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가져 오는 것을 싫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가진 죄인들이 오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8)"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1)" 예배 시간에 나와 삶에 지친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으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2) 우리 삶의 우선 순위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창세기 4장 4절에서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가인의 경우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렸다고 했을뿐(창4:3)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곡식 제물은 받지 않고 짐승 제물만 받은 것은 아닙니다. 곡식 제물도 하나님은 받았습니다. 피 흘리는 제사만 받고 피흘림이 없는 제물은 받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첫 소산물의 차이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땅의 소산물의 첫 열매를 드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첫 번째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잠언 3장 9절에는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표현으로 최고로 좋은 것을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2절에서는 태에서 처음 난 것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기름은 구약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의미하고 여호와께 제사살 때 기름부분은 반드시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의 기름을 먹으면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레7:25).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시간의 우선순위, 재능의 우선순위, 물질의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주일 예배도 일주일의 첫날 예배입니다. 사단을 이것을 없애버리려고 역사 속에서 무수히 우는 사자로 핍박하였고 광명의 천사로 유혹을 하였습니다. 헌금으로 다 쓰고 남은 것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쓰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단은 이것 역시 파괴시켜 버리기 위해 무교회 주의를 주장하게 하고 갖가지 학설로 파괴시켜 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가나안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다섯가지 기둥은 예배, 교육, 봉사, 전도(선교), 구제입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두가 중요하지만 예배입니다. 예배는 삶의 핵심입니다. 예배는 믿는 자의 특권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이 명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이것을 무너뜨려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나라가 망했습니다. 예배가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갈등과 불안 두려움이 닥쳐옵니다. 미신을 절대시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가 우리 삶에 우선 순위가 되지 못하면 뿌리 없는 나무나 같습니다. 조금 가면 말라버립니다. 영적으로 궁핍하게 됩니다. 불평이 생깁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것, 일하는 것 교육하는 것 사업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예배 다음입니다. 토저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고 말씀합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출마 선거 유세를 하고 있을 때,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웬만하면은 표를 얻기 위해서 큰 교회에 나가야 하겠지만 그는 그 바쁜 일정에도 고향으로 돌아가 조지아주에 있는 작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23년 동안을 개근하여 아이들을 가르쳐 왔는데 20명을 앞에 놓고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 앞에 경건히 예배했답니다. 그 바쁜 시간에도……. 그렇게 예배를 드렸더니 기자들이 70명이 몰려왔답니다. 그 때 기자들들에게 "이렇게 찾아 주시니 고맙기는 합니다만, 다음 주일부터 다 당신들이 나가는 교회에 나가십시오."라고 부탁했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예배함이 없이는 내 삶은 의미 없는 것입니다. 예배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우선순위로 살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예배를 시간 낭비, 물질 낭비, 재능 낭비, 인생 낭비라고 세상은 유혹하고 있지만 결코 예배가 낭비나 손해가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예배가 죄인 취급받고 있습니다. 예배를 우선순위로 두고 살면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십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결코 낭비나 손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 55:2-3)"
함께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부부가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더 오래 살며 이혼율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에서 발표한 '종교와 건강의 통합'을 주제로 한 연구결과를 인용해 예배 출석이 수명연장과 우울증 감소, 자살률 하락 등에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고 보도했습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 타일러 밴더윌레(Tyler VanderWeele) 교수팀은 16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예배를 참석하는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에 비해 이혼율이 30~50% 더 낮으며 사망위험도 현저히 적은 것을 확인했답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시간 낭비, 물질 낭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배드리지 않는 것이 손해입니다.
아이들은 예배드리는 것이 귀찮고, 예배드리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부모 중에도 자녀의 공부에는 관심이 있지만 자녀의 예배 생활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드리는 것이 유익입니다.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학과 제니퍼 그랜빌 교수의 연구 결과 교회에 다니는 10대들의 성적이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미국학교 7학년부터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매주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은 중퇴 비율이 낮았다고 합니다. 종교 예배에 참석하는 10대들은 전혀 참석하지 않은 10대보다 높았다고 합니다.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세상 쾌락에 빠져 사는 사람들 보다 더 평안히 살고 있습니다.
정신위생계에 있어서 세계적인 학자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는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고 하는 논문에서 정신적 요소가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네 가지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발표했답니다. 첫째가 일, 둘째가 놀이, 셋째가 사랑, 넷째가 예배라고 합니다. 그는 이 네 요소 중에 예배가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말했답니다. 예배는 정신안정의 절대 필요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수면제 먹고 신정 안정제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배라는 말입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보다 예배드리는 자들이 더 건강하게 산다고 합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는 등 규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사망위험이 약 20%가량 낮다고 합니다. 미국 뉴욕 예시바대학 연구팀은 9만 2,395명의 50∼79세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가족이나 친구 등의 사회적 지지가 강하고, 담배를 덜 피우고, 술을 마시지 않는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고 있어 사망위험이 낮을 수 있지만 이런 요인 말고도 신앙생활 자체가 사망 위험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The Times'의 보도에 의하면 최소 한 매주 한 차례라도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7년이나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조지 W. 컴스톡 박사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에 비해, 전혀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치명적인 심장병에 걸릴 위험률이 거의 두 배나 높은 반면,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신앙인이 주요 질병의 낮은 발병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경제적 손실이 아닙니다. 18세기 말 경 프랑스 혁명 후 무신론자들에 의해 프랑스에서는 10일 휴일제가 실시된 적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 기간 동안 산업재해가 급증하고 생산량도 40%나 감소되어 프랑스는 다시 7일 휴일제로 환원하였답니다. 소련에서 공산혁명을 일으킨 무신론자 레닌은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하루 분의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8일 휴일제를 채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생산성은 그 전보다 30% 감소했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믿음으로 지금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벨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열기 닫기
| 쪽지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