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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1) 믿음이란 무엇입니까?(히11: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1119 추천수:14 220.120.123.244
2022-03-06 09:20:30

믿음(1)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히11:1-2

 

오늘부터 제가 믿음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믿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오늘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수없이 들어 본 말씀이고 대부분 다 외우는 유명한 성경 구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사랑장'이라 불리고, 고린도후서 15장이 '부활장'으로 불리듯,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불립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1장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면서 서두에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피스티스)’은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 혹은 하나님에 대하여 갖는 ‘신뢰’, 또는 ‘진실성’이나 사업상의 ‘신용’, ‘보증’, ‘증명’ 등을 의미합니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삶을 유지하고 인간 관계와 사회를 존속하게 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차려준 아침받은 먹는 것은 아내가 그 밥에 독약을 타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고 버스를 마음놓고 타고 가는 것도 버스 기사를 믿기 때문에 안심하고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은행에 돈을 예금해 놓는 것도 은행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엘피조메논)이 무엇을가리키겠습니까?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라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소망이라는 단어의 동사나 명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히3:6;6:11,18;7:19, 10:19~23). 바라는 것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는 소망과 관계가 있습니다. 11장에 믿음의 선조들이 나오는데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믿음을 지켰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노아의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라고 말씀합니다. 노아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그것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합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 믿음의 사람을 이야기 하면서 33절에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은 바라는 사람이 있고, 바라는 대상이 있으며, 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라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고 바람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바라는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 즉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믿음은 “하면된다”는 자신의 신념이나 “무엇이든지 바라고 구하고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적극적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행위에 대한 ‘신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근거로 한 신념을 말하기보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신념입니다. 특히 히브리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신념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 십자가의 죽음, 부활, 재림, 천국 등과 같은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이런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바라는 것들을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할 때 ‘실상(휘포스타시스)’은 ‘밑에 놓다’, 기초를 두다’ 등을 뜻하는 동사 ‘휘피스테미’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는 아래에 서 있는 것’ 즉 ‘토대’, ‘기초’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문자적 의미 외에도 ‘본질’, ‘실체’, ‘확신’, ‘확고성’, ‘보증’ 등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5회 나오는데 고린도후서 9:4절에서는 ‘믿던 것’ 고린도후서 11:17 에서는 ‘기탄없이’, 히브리서 1:3 에서는 ‘본체’, 3:14에서는 ‘확실한 것’으로 번역되었고, 오늘 본문에서는 ‘실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확신으로 번역하면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을 완전히 확신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보증으로 이해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권리 증서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있는 하늘의 것들을 우리의 것으로 확실하게 보증해 주는 것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믿음이란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바라는 것들을 실질적인 확실한 것으로 붙잡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토대, 기초’로 해석한다면 믿음은 소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물을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는 토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없으면 소망도 물거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믿음이란 “믿음이란 소망을 지탱해 주는 토대로서 소망하는 바가 허상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을 보증해 주는 실체”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소유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의미에서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소망하는 것 혹은 기대하는 것과 관련지울 때 믿음은 현재 사실에 대한 확신을 기반으로 하여 미래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8절부터 22절까지 약속(바라는 것)을 바라본 믿음의 위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갈대아우르를 떠나라고 했을 때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나 그 땅을 받은 것입니다. 아들이 없을 때 약속을 믿고 아들 이삭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믿음은 아직 얻지 못한 어떤 것들에 대해 이미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삼요소는 믿음의 대상, 동의 신뢰인데 믿음은 믿음의 대상인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신 말씀을 확신을 가지고 견고히 서 있을 수 있도록 하는 확고한 발판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의해 계시되고 선포된 것에 대한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존재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함에 의해 반드시 성취될 것을 확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과 확신은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믿음의 사람들은 기다리며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천국을 아직 우리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천국에 가 있는 사람들처럼 사는 것입니다. 부활을 아직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이 땅에서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천국에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부활을 아직 체험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죽음 후에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약속한 미래를 현재 누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똑같이 살지 않습니다. 심판을 대비하여 죄를 미워하고 거룩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현재 경험할 수 없는 것도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보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이 전부하고 생각하는 유물론자들(materialists)입니다. 세상에는 아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이 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집니다. 이성주의자들 (rationalists)입니다. 세상에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옳은지 그른 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느낌이 좋으면 그만입니다. 포스트모던시대라고 불리는 우리의 시대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감각주의자들 (sensualists)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가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소자 하나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는 것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6절을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왜 우리가 이렇게 바라고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믿음으로 살아갑니까?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셋째,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바라는 것들을 소유 할 수 있게 해주는 권리 증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는 것들의 최고의 대가는 무엇이겠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6-39절까지를 보십시오. 믿음의 권리 증서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것은 구원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절이 신약에 세 번 나옵니다. 로마서 1 장 17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히브리서 10장 38절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믿음의 인물들의 전시장'인 11장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안락, 정서적 안녕, 경제적 부, 정치적 권력, 일상의 즐김보다 가장 가치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9절의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듣는 다고 다 믿음의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 9절에 보면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2절은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진리를 믿습니까? 믿으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합니다. 미래를 당겨보는 눈이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 고 하였습니다. 29절에 보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갑니다. 30절에는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도는 행진을 합니다. 무모하고 어리석고 바랄 수 없는 상황같지만 믿음으로 바라고 가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일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볼수 없는 것을 보게합니다. ‘보이지 않는(우 블레포메논)’은 인간 눈에는 가리워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것들의’로 번역된 ‘프라그마톤’은 ‘행위’, ‘사물’, ‘사업’, ‘논쟁’, ‘소송’ 등의 의미로 쓰인 단어입니다. 행5:4절에는 ‘일’로 눅1:1에서는 ‘사실’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일들, 보이지 않는 사실들입니다.

‘증거(엘렝코스)’는 ‘증거’, ‘확신’, ‘징계’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겉으로 밝히 드러내주는 것, 또는 확실하게 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실체에 대해 확신을 가지도록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면 그 약속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 실례가 3절부터 7절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던 믿음의 사람 아벨, 에녹, 노아가 나옵니다.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120년 후에 임할 홍수에 대한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듣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합니다. 홍수는 전혀 임하지 않을 것같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직 보지 못한 홍수를 예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결국 홍수가 믿음의 증거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 사실들에 대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믿는 실체는 반드시 현실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주관적인 확신이 객관적 실체로 드러나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나 보지 못하는 것들을 사실적인 형태나 증거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내용은 허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우리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에는 내가 무엇을 믿는지 나는 믿는다는 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고백함으로 우리가 예배하지 않는 자와 어떻게 다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라는,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I Think. Therefore I Am)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크레도 에르고 숨"(Credo ergo sum) 즉, "나는 믿는다. 고로 존재한다"(I Believe. Therefore I Am)라고 믿으며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알고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깨닫고 마지막과 그 후가 어떻게 되는 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관이, 세계관이, 경제관이 정치관, 가치관이 질병관이 다라지는 것입니다. 믿으면 만들어진 신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살다보면 전에는 도대체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깨달아집니다.

혈루증 앓은 여인 믿음은 허구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옷자락이라고 만지면 혈루증이 마르는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유대인 종을 사랑하는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이 허구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종이 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예수님께 말씀만 하면 났겠다는 믿음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병이 치유되는 증거로 보여진 것입니다. 귀신들린 딸을 고치려고 주님께 나온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는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중풍병 앓은 친구를 들거에 대리고 와 예수님께 나온 친구들의 믿음이 고침받는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꼭 보아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생활을 꼭 증거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믿고 식당에 가서 밥먹고, 출퇴근할 때 버스타고 해외 여행할 때 비행기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예수님을 믿는 것만, 말씀을 믿는 것만 증거를 요구합니다.

증거를 눈으로 보아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증거가 보입니다. 증거가 먼저라고 하면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 그리고 과학적으로 이미 검증이 끝난 사실들에 대해서는 상식적이라면 누구라도 믿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계의 일들이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등은 믿음이라는 장치를 통해 증거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믿음으로써 그것들에 대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면 영안이 열립니다. 사람에게는 육신으로 태어나 조금있으면 육안이 열립니다. 어른 거리는 것들이 정확하게 보이게 되고 엄마 아빠 얼굴을 알아 봅니다. 그리고 뇌가 발달하며 성장하면 심안이 열립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 의식을 갖고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으면 영안이 열립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하는 영적인 눈을 줍니다. 믿음이 없으면 영적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고전2:14). 망원경과 현미경과 같은 것입니다. 너무 작아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하고 너무 커 보이지 않던 것, 너무 멀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합니다. 예수님을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하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을 고백하니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면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3. 믿음은 선진들이 증거를 얻게 한 것입니다(2).

선진들(호이 프레스뷔테로이)는 직역하면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았던 모든 조상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4절 이하에 나오는 믿음으로 살았던 조상들입니다. 믿음으로 증거를 얻는 조상들입니다.

‘이로써’로 번역된 ‘엔 타우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뜻입니다. ‘증거를 얻었느니라’로 번역된 ‘에마르튀레데산’은 문법적으로 과거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선진들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아벨과 에녹같은 믿음의 선진들은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의로운 자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인정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 말로는 1절의 증거라는 말과 똑같지만 원문은 다릅니다. 이 증거는 법적인 증거를 말합니다. 이 증거(말튜레오)는 2,4,5,39절에 쓰였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11장에 나온 모든 사람이 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증거를 받은 사람을 12장 1절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제사를 받아 주셨습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더니 홍수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떠났더니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증거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그 백성을 인도하여 마침내 백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증거를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리하여 성이 무너지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받은 증거는 분명합니다.

또한 이 말은 법률적 용어로 ‘증언하다’, ‘어떤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되다, 어떤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어떤 사실을 확증하다’, ‘그것이 어떤 사실의 진상이라는 것을 증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어가 사람인 경우에 모두 수통태로만 쓰였습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이 주어일 때는 능통태로, 사람이 주어일 때는 수동태로 쓰였습니다. 이런 것을 신적 수통태라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주어일 때 수동태로만 쓰였다는 것은 거명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증인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증거해 준다는 말입니다. 4절 이하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그 신앙에 대해 하나님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을 하나님께서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법정에서 하나님이 증거해 주는데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인정하는 것은 유일한 기준 믿음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하여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예를 23절부터 38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등을 소개합니다. 33-34절만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믿습니까? 우리 성도님들도 이렇게 믿음으로 인정받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사람은 다 이 땅에서 떠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무엇으로 평가받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이나 권력, 부의 정도, 사회적 지위로 그들의 가치를 매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떤 믿음의 열매를 맺는가에 따라 우리의 가치를 평가해 줍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9)”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정할 때 무엇을 보고 인정했겠습니까? 아브라함 거짓말 한 사람입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인 사람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야곱의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욕심많은 사람입니다. 수없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야곱의 믿음을 보고 야곱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무엇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이 약속을 믿고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보고 믿고 살아야 합니다.

3. 믿음은 선진들이 증거를 얻게 한 것입니다(2).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행하면서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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