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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건강의 기초(3) 영적 안식(마태복음 11:28-3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073 추천수:7 220.120.123.244
2022-02-20 13:06:27

영적 건강의 기초(3) 영적 안식

마태복음 11:28-30

 

2월에 “영적 건강의 기초”라는 주제로 말씀을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건강과 비교해서 영적인 건강을 말씀드리고 있는데 첫 주에 우리가 신체적으로 건강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숨 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적 건강의 기초도 영적 숨쉬기인 영적 호흡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평생 기도하며 영적 건강을 유지했던 사무엘을 통하여 영적 호흡을 통해 평생 영적 건강한 삶을 살려면 첫째, 우리는 영적 건강을 위해 기도에 쉬지 말아야 하고, 둘째,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로 여기며, 셋째,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적대자를 위해서도 도고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주일은 평생 동안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았던 디모데를 통해 영적 건강의 기초인 “영적 음식”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육체적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음식인 것처럼 영적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말씀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건강에 중요한 요인인데 영적 건강을 위해서 첫째가 영적 영양분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고 듣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며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영적 건강의 기초 세 번째로 영적 안식입니다. 육체적 건강을 위해 첫 번째는 호흡입니다. 두 번째는 음식입니다. 세 번째는 수면입니다. 잠자는 것입니다. 잠자는 것은 육체적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잠은 뇌 건강과 마음 건강, 몸 건강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아밀로이드의 침착으로 말미암아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정신적으로도 번 아웃이 되어 집중력이 저하되어 사고나 실수를 자주할 수 있고, 우울증같은 질병을 앓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면역력 저하와 호르몬 불균형으로 각종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여러 자료를 인용하여 오늘 주보에 수면과 건강에 대하여 써놓았는데 건강을 위해서는 첫째 수면의 량을 적당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수면시간을 확보하고 일도 하고 노는 시간도 정하라는 것입니다. 수면부채라는 말이 있습니다. 빚쟁이 '잠'은 떼인 수면시간을 반드시 받아 간다는 것입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하면 낮에 졸아야 하고 밤낮 자지 못하면 병원에서 자야하고, 병원에서 자지 못하면 천국에 가서 자야한다는 것입니다. 잠은 안 잔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잠을 자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기를 부모님들이 바라는데 그러면 학교나 학원에가서 잔다는 것입니다. 수면 시간에 낮에 들어온 정보를 뇌가 수면시간에 정리하고, 낮에 정보를 처리하면서 발생한 뇌의 노폐물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호르몬이 원활하게 분비되어 낮 동안 긴장돼 있던 근육, 혈관 등을 이완시키고 손상된 세포나 조직을 회복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면 부족은 만병의 근원이 된다고 합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면연력이 저하되어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운 몸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고대안산병원 연구팀은 수면시간이 하루 5시간 미만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고혈압 발병률이 약 24% 높다고 밝혔습니다. 서울대병원 수면의학센터 정도언·이유진 교수팀에 의하면 불면증은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8배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강북삼성병원 연구진에 의하면 수면시간이 4시간 이하인 직장인의 우울, 불안, 자살 생각 유병률은 7시간대 수면 그룹보다 각각 3.7배, 4.6배, 2.5배 높았답니다. 매일 7시간 내지 8시간을 자는 사람이 질병 없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수면시 얕은 렘수면과 깊은 비렘수면 주기가 90-120분에서 3-5회 반복이 되는데 이 주기가 적절한 수면시간 안에 돌기 위해서는 7-8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권장 수면 시간 보다 1~2시간 이상 적거나 많으면 비만, 심뇌혈관질환, 골다공증, 치주염, 우울증. 고혈압, 치매, 당뇨병, 암 등 온갖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미국 국립수면연구재단에서는 전 세계 적정 수면 시간에 대한 연구를 종합해, 연령별 권장 수면 시간을 발표했습니다. 생후 3개월까지 14~17시간, 생후 4~11개월 12~15시간, 만 1~ 2세 11~14시간, 만 3~5세 10~13시간, 만 6~13세 9~11시간, 만 14~17세 8~10시간, 만 18~25세 7~9시간, 만 26세 이상은 7~8시간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수면의 질입니다. 아인슈타인 10시간 이상 잠을 잤고 에디슨은 4-5 시간을 잤다고 하는데 적정 수면도 개인차가 있다고 합니다. 같은 시간 잠을 자도 숙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수면 전문가들은 잠든 직후 90분 동안 수면의 질이 전체 수면의 질을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같은 시간을 자더라도 어떤 사람은 피곤함을, 어떤 사람은 개운함을 느끼는데 수면 직후부터 90분까지 이뤄지는 논렘수면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때 피로를 풀고 기억을 저장하는 깊은 잠을 잔다고 합니다. 사람의 몸은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면 압력’이 강해지는데 미국 스탠퍼드대 수면생체리듬(SCN)연구소의 니시노 세이지 교수는 “수면 골든 타임 때 숙면을 취하면 수면 압력이 크게 줄어 자고 싶은 욕구가 해소되고 피곤함이 줄어든다”고 설명합니다. 수면의 골든타임 동안 숙면을 취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낮잠을 자지 말라고 합니다. 세계수면학회는 낮잠을 잘 경우는 오후 3시 이전에 약 15-20분 가량만 자라고 합니다. 낮에 깊은 잠을 자면 오히려 더 피곤하다고 합니다. 짧은 낮잠은 피로를 줄이고 창의력, 인지 능력을 높일 수 있지만 긴 낮잠은 생체시계의 판단력을 흐트러뜨려 수면 주기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숙면을 취하게 만드는 멜라토닌이 가장 활발하게 분비되는 시간이 밤 11시부터 2시까지이기 때문에 질 좋은 잠을 자려면 11시 이전에 잠을 자라고 말합니다. 멜라토닌은 우리 몸에 시간(생체시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암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활성산소(유해산소)를 잡아먹는 항산화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몸속의 청소부역할을 하며, 또한, 스트레스와 노화현상과도 관계가 있고, 멜라토닌과 함께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어린이들의 키가 크게 할 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동맥경화를 막아주고 지방을 분해해 뱃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며 근육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항간에는 멜라토닌을 현대판 ‘불로초‘라고도 한답니다. 아침에 잠깐이라도 햇볕을 쬐면 멜라토닌 분비를 줄여 낮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고 이렇게 줄어든 멜라토닌은 15시간이 지난 뒤 분비되기 시작해 숙면을 유도한다고 합니다. 취침 시에는 불빛은 완전히 차단하고 취침 전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의 파란 빛(블루라이트)에 노출되지 말라고 합니다.

셋째는 수면의 리듬, 규칙적인 수면입니다. 일어나는 시간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늦게 자던 일찍 자던 일어나는 시간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수면시간이 불규칙한 사람을 관찰하는 연구 결과, 그러한 생활 패턴은 5년에 걸쳐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두 배로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매일 7~8시간 규칙적인 수면이 건강 수명을 늘린답니다. 미국 국립심장폐혈액 연구소 심혈관과학부 책임자인 데이비드 고프 박사는 “바쁘다는 이유로 주말에 잠을 몰아 자는 것은 건강과 거리가 멀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편 127:2)”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잠은 하나님이 주신 보약입니다. 건강을 위한 수면은 수면의 양과 수면의 질, 수면의 규칙성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건강을 위해 영혼의 안식, 참 쉼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육체적 건강에서 잠이 쉼과 안식을 주는 것처럼 영적 건강에서 모든 근심과 걱정, 스트레스,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 영적 건강을 얻으려면 영적 안식을 주시는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주님의 안식을 향한 초대).

육체적 안식을 누리기 위해 잠을 자는 이유는 잠이 세가지 기능 첫째, 정리작업(새기억 형성), 둘째 뇌청소(노폐물 제거), 셋째, 신진대사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용을 통해 육체적 건강을 주기 때문에 잠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 영적 안식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인데 예수님께 나아가면 영적 사고를 재정리하고, 죄와 사망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영적 신진 대사를 이루어야 영적 건강을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가 참 안식, 참된 쉼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쉬게 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쉬게 하리라’로 번역된 ‘아나파우소’는 ‘쉬게 하다’, ‘영적인 휴식을 주다’, ‘안식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나파우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히브리서 3-4장에 나오는 안식과 동의어입니다. ‘예수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계시록 14장 13절에 나오는 최후의 휴식, 종말론적인 쉼을 말씀합니다.

너희는 누구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입니다. 첫째는 수고의 짐을 진 자들입니다. ‘수고하고’는 육체적으로 곤하고 지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감정적으로 용기를 잃고 낙담한 상태를 말합니다. 문법적으로 진행형으로 한번 낙담하거나 지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지치고 낙담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수고하다는 말은 능동태로 되어 있어 스스로 일을 만들어 고생하는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자신들도 지키지 못할 율법을 만들어 억지로 지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억지로 수고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참된 쉼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헛수고 억지 수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쓸데 없는 짐을 지고 괴로워하는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무거운 짐진 자들(페포르티스메노이)입니다. 수동태로 타의로 환경 때문에 짐을 졌다는 말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지워진 무거운 율법의 짐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지운 무거운 죄짐입니다. 당시로 말하면 로마의 압박 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들입니다. 종교적으로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사탄이 주는 무거운 죄짐을 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자에게는 사탄이 주는 3대 무기인 죄와 율법, 사망으로부터 완전한 휴식, 참 안식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범죄함으로 에덴의 참 안식을 잃어버리고 이 삼대 세력의 포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타락 이전에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참된 안식을 누렸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살롬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안식을 상실하였습니다. 진정한 쉼이 없고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진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창세기 3장 16-17절을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와도 수고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하고 아담도 수고의 짐을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로마서 8장 20-22절을 보면 모든 피조물로 안식을 잃어 버리고 허무함에 굴복하고 썩어짐의 종노릇하면서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타락함으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자녀로 통치권을 상실하고 마귀의 종, 죄의 종, 사망의 종으로 전락하여 무거운 짐과 수고를 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참 안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적 안식, 내면적 안식, 실체적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수고와 무거운 짐은 죄로부터 온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 안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면 참 안식이 없습니다. 기차는 레일을 떠나서 참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참 안식을 주시는 주님께 나아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 주님을 믿고 주님 안에 있을 때 참 안식을 누리고 육신의 장막을 벗어 버릴 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영적 안식은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참 안식, 근원적 안식, 영원한 안식, 참된 쉼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수고의 짐을 지고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오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 참된 안식을 줄 터이니 오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백화점도, 병원도, 변호사도, 기업도, 게임도, 정당도, 사탄도 우리를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초청은 돈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돈없은 자도 오라고 합니다.

죽음의 짐, 양심의 짐, 실패의 짐, 가정의 짐, 율법의 짐, 미신의 짐, 사업의 짐, 책임감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미움의 짐, 시기의 짐, 고독의 짐, 과거의 짐, 죄의 짐, 죽음의 짐, 자녀의 짐, 아내의 짐, 남편의 짐, 시어머니의 짐, 시아버지의 짐 때문에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 누구도 제한 없이 다 오라고 하십니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며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한 노동자들도, 형식적인 종교, 그릇된 종교에 지친 사람들도, 이단에 빠진 자들고, 쾌락과 향락 추구에 신물 난 사람들도,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병약한 사람들도, 근심과 걱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죄의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들도 다 오라는 것입니다. 멸시를 받는 자, 경멸당하는 자, 짐승만큼의 대우도 받지 못하는 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자도 오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병든 자도, 마음에 병든 자도, 고통속에 사는 것이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걸어가는 자도, 자기의 불성실로 인하여 고민하는 자도, 장애 자녀를 두고 힘겨워하는 자들도, 학대받고 천대받는 자도, 선을 주었으나 악으로 보상받는 자도, 모략과 이기심과 시기심의 제물이 된 자도, 비겁하고 비열한 자들로부터 버림받은 자도,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자도,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마음이 허전한 자도, 없는 것 없이 차려놓고 살지만 웬지 모르게 텅빈 곳이 많은 자들도 다 오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오기만 하면 진정한 안식, 참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지고 있는 짐이 무엇입니까? 원치 않는 짐이 무엇입니까? 죽음의 짐입니까? 죄책감 짐입니까? 사업의 짐입니까? 책임감의 짐입니까? 질병의 짐입니까? 가난의 짐입니까? 미움과 시기의 짐입니까? 고독의 짐입니까? 과거의 짐입니까? 죄의 짐입니까? 자녀의 짐입니까? 아내의 짐입니까? 남편의 짐입니까? 시어머니의 짐입니까? 시아버지의 짐입니까? 며느리의 짐입니까? 시어머니의 짐입니까? 어떤 짐이 있다면 그 짐으로 주님을 멀리하지 마시고 그 짐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짐을 지고 있는 우리를 주님은 초청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는 자에게 우리 주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에게 우리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짐을 나를 불행하게 하고 나를 괴롭히고 나를 망하게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짐일지라도 그 짐을 지고 가면 다 받아 주십니다. 짐은 예수님께 나오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피겨 스케이팅으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스콧 해밀턴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이 책을 썼습니다. "스콧 해밀턴의 행복을 위한 8가지 기본기"라는 책입니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생후 6개월 만에 친부모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양부모에게 입양되었지만 두 살 때부터 괴질에 걸려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1997년 고환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2004년 뇌종양과 뇌하수체암에 걸렸습니다. 2010년 또 뇌종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미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1984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1981년부터 1984년까지 4회 연속 전미 선수권 대회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세 번이나 암을 이겨내고 현재 암 환자를 돕는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8가지 행복의 비결 중에 "전능한 코치를 믿으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그는 전능한 코치라고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성공의 비결은 내가 얼음판 위에서 항상 혼자가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나의 신앙심은 혼자라면 절대 이룰 수 없었던 경지까지 나를 항상 끌어주었다." 스케이터에게 코치란 신과 같다고 말합니다. 선수가 코치에게 신뢰감을 갖고 있지 못하면, 그 스포츠에서 그리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의 설계자로 삶에 관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삶의 굴곡, 성공과 실패, 사랑의 발견과 이별, 내가 경험했고 이겨냈던 삶을 건 질병과의 투쟁 등은 자신을 성장시키고 학습시키고 그 분의 계획에 따라 살도록 하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기회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당신 삶의 방정식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수많은 무거운 짐진자들이 그 짐 때문에 주님을 만나 참 안식과 행복을 누리며 인생을 살았습니다. 중풍병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 그 육체의 질병에서 해방되어 참 안식을 얻었습니다. 다섯 남자와 살았던 여인이 수치감과 죄의식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는데 예수님 만나 참 자유를 얻고 진정한 안식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38년 동안이나 베데스다 연못에서 경쟁의 낙오자가 되어 무거운 질병을 지고 사는 인생이 예수님 만나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2. 영적 건강을 얻으려면 영적 안식을 주시는 주님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안식을 위한 주님의 제안).

육체적 건강을 위해 잠을 잘 자야 하는데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잠을 자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대한 수면학회에서는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5가지 수면 지침을 말합니다. 첫째 최소한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라고 합니다. 둘째, 매일 아침 같은 기간에 일어나라고 합니다. 셋째, 음악이나 방송, 유튜브 등을 틀어 놓고 잠들지 말라고 합니다. 넷째, 잠자리에 누워서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섯째, 적절한 습도(50-60%)와 온도(16-18도)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숙면을 취하는데는 빛보다 온도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잠자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잠자는 환경 중에 누구와 함께 자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코골이는 하는 사람, 무면 호흡증이 있는 사람과 함께 자거나 몸을 사방으로 뒤척이면서 자는 사람과 함께 자면 어떤 방법을 써도 잠을 잘 잘 수가 없습니다. 잠을 잘 자는 사람과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자야 숙면을 취해 신체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 이불을 다 흩으러 버리는 사람과 함께 잠을 자면 자신도 설잠을 잘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 안식을 누리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영적 안식을 위한 주님의 제안은 무엇입까?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안식을 위한 주님의 제안은 “내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잠으로 비유하면 영적 안식의 전문가, 인간에게 영적 안식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덮은 이불을 함께 덮자는 것입니다. 이 멍에는 무엇이겠습니까? 농촌에서 사신 분은 잘 알겠지만 헬라어 ‘쥐고스’는 가축이 짐수레를 효과적으로 끌 수 있도록 목에 씌우는 멍에입니다. 두 마리의 짐승이 함께 밭을 갈 거나 무거운 짐수레를 끌 수 있도록 만든 틀입니다. 이 멍에는 짐을 가볍게 끌기 위하여 짐승의 등이 상하지 않기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들에게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던져 버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내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짐을 잘 목적지까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주님의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의 멍에는 어떤 멍에입니까?

3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쉬운 멍에”입니다. 여기서 쉽다라는 말은 '친절하다. 유익하다, 편하다, 부드럽다' 등의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쉽다(크레스토스)'는 말은 몸에 잘 맞는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그냥 어미 소를 따라 가면 되니까 쉽습니다. 성장하면서 성장의 속도에 맞게 멍에를 매고 밭을 갈게 합니다. 멍에가 꼭 맞으면 멍에가 쉽습니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인데 어려운 멍에는 유대인들이 구원의 필수 요건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까지 강요하는 무거운 율법적 행위들을 가리킵니다(행15:10). 그러나 주님의 멍에는 유대주의 자들이 구원의 방도로 지키고 가르쳐온 613가지 교훈과 규칙과는 달리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의 복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멍에로 매고 갈 짐은 어떻다고 말씀합니까?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합니다. 무거운 율법이 아닙니다. 복음입니다. 멍에가 꼭 맞으면 짐이 가볍습니다. 그러나 멍에가 안 맞으면 짐을 무겁게 합니다. 우리는 내가 메고 있는 멍에가 너무 부담스럽고 벗어 버리고 싶습니다. 안식과 쉼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 준 멍에, 바울에게 준 멍에, 에스더에게 준 멍에, 노아에게 준 멍에, 베드로에게 준 멍에 벗어 버리면 참 안식과 쉼을 얻을 것같을 것입니다. 자녀의 짐, 부모의 짐, 직장의 짐, 사업의 짐, 사명의 짐, 희생의 짐, 질병의 짐, 교회의 짐, 가정의 짐 벗어 버리면 참 안식과 쉼을 누릴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병이라는 짐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짐을 벗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데 자신의 십자가가 너무 무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가다 잘랐습니다. 그래도 무거운 것입니다. 또 잘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큰 강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십자가를 놓으니까 다리가 되어 그들은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십자가는 너무 짧아 다리가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발만 동동 구르고 그 강을 건너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 다 꼭 맞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안식을 누리는데 방해가 되지 못합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면 얼마든지 짐을 지고 가면서도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같이 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십니까? 시어머니가? 직장 생활이, 남편이, 아내가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십니까? 그 짐이 나에게 꼭 맞는 것을 받아 들이기시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이 함께 져 주시는 짐이고 그 멍에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한 방향으로 보조를 맞추며 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면 죽음과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양심의 속박과 율법의 속박, 두려움과 근심의 늪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안식하지 못하게 하는 무거운 짐들이 하루 아침에 없어집니까? 하루 밤 자고 일어난다고 무거운 부채가 없어지고, 10년 동안 앓고 있던 고질 병이 달아나고, 시어머니를 모시는 부담이 다 살아지고 참 쉼을 얻을 수 있습니까? 여전히 부채는 있고, 돌보아야 할 장애아이는 있고, 치매 부모님은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도 무거운 짐은 여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순식간에 무거운 짐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은 여전히 남아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눈만 뜨면 무거운 짐이 보입니다. 사업에 위기를 당하여 초초하게 다가오는 압박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직장의 위기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무게 그 중압감. 그 고통의 상황은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짐을 벗어버리라 하지 않으시고 내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멍에를 두 마리의 짐승이 함께 밭을 갈 거나 무거운 짐수레를 끌 수 있도록 만든 틀로 이해하면 더욱 쉽게 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두 마리 소에게 이 멍에를 메게 합니다. 어린 송아지에게 밭고랑을 바르게 걷고 또 주인의 명령에 순복하여 행동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어미 소의 멍에 아래 함께 두어서 밭을 갈게 하기도 합니다. 실상 멍에를 끄는 것은 어미 소이나 멍에 안에 어미 소와 송아지가 함께 있으므로 송아지도 멍에를 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송아지는 어미소를 그냥 따라가기 만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모든 짐을 맡기고 주님의 멍에 아래 들어오면 주님께서 우리 짐을 져주심으로 우리는 주님의 멍에 아래서 인생의 짐을 짊어지되 쉽고 가볍게 휴식과 즐거움이 넘친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메주신 멍에에 우리는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메는 것은 이제 나의 멍에가 아니라 주님의 멍에입니다. 이제까지는 나의 힘으로 할려하니 힘이 들고 쉼이 없고 안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참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봉사도, 가정일도, 회사일도, 학업도, 전도도, 가르침도, 자녀교육도, 효도도, 질병 치료도, 사업도 이제는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할 때 참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새 한 마리가 하나님께 물었답니다. "왜 저에게 무거운 날개를 두 개씩이나 양 어깨에 달아놓으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네가 날 수 있는 것은 그 무거운 날개 때문이란다." 우리는 하늘을 날기 원하지만 무거운 날개는 싫어합니다. 무거운 짐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무겁지만, 그 날개가 있어야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짐을 지는 자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날을 수 있는 날개가 된다"고하였습니다. 자식들이 무거운 짐이 상급이 됩니다. 시어머니의 짊을 사명으로 받아들고 지고 가면 축복의 그릇이 됩니다. 시어머니 짐 때문에 인생의 가치를 알게 되고, 겸손해지고 오히려 행복해 합니다. 직장 생활이, 남편이, 아내가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꼭 맞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한 분이 아프리카에 선교를 갔답니다. 원주민들과 함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원주민이 큰 돌을 선교사 가슴에 안겨주었답니다. 선교사는 이해할 수 없었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강물을 건너려면 힘이드는데 돌까지 가슴에 앉고 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답니다. 원주민들은 큰 돌을 머리에 이거나 가슴에 안고 강을 건넜답니다. 그 선교사는 그 이유를 강 중간쯤 왔을 때 알았답니다. 강 중간쯤에 급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만약 무거운 돌이 없었다면 급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주님이 주신 멍에는 우리를 죽이고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해 주신 멍에가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성결하게 하고,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고,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기 위한 가장 적합한 멍에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예수 믿고 주님께서 주신 멍에 괴로워하며 피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멍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여 주신 것이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내 멍에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갈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고 가면 그곳에 참 쉼과 안식이 있습니다.

 

3. 영적 건강을 얻으려면 영적 안식을 주시는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안식을 향한 주님의 명령).

육체적 건강을 누리려면 건강한 수면에 대하여 배워야 합니다. 수명의 양, 수면의 질, 수면의 리듬(규칙성) 등의 정보를 배워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육체적으로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영적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안식을 누리는 방법을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29절에 주님은 말슴합니다. 29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안식을 향한 주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내게 배우라”입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잠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참 행복해지는 방법, 부자되는 방법, 출세하는 방법, 건강해지는 방법 등을 배우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자녀 한명 키우는데 무려 2억 6천 만 원이나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참된 안식과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참 안식과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주님께서는 주님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는 참 안식을 누리는 방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여기서 ‘배우다’라는 말은 ‘제자가 되다’라는 말과 같은 어근을 가진 말로 "내 제자가 되어 내 가르침을 받으라."라는 말입니다. 주님께 나와 주님의 멍에를 멘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멍에를 메는 소를 길들이듯 주님으로부터 안식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29).

29절을 보십시오. 온유라는 것은 단순히 성격 자체의 유순함이나 부드러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는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만 고정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신뢰, 의탁하는 가운데 생기는 온화함과 관대함 그리고 친절함입니다. 그리고 겸손은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인 헌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주어 그들을 섬기는 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둘째, 친히 멍에를 메신 분이십니다(29).

억지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셋째,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28,29).

이런 예수님에게 참 안식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무거운 짐도 주님께 배우면 그 속에서도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존심 상하고 모독당할 때 주님의 십자가를 보고 배우면 그 속에서도 증오와 미움과 복수가 아니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질병과 죽음의 무거운 짐 앞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할 때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배우면 그 극한 상황에서도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유명한 오스왈드 센더스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의 생애에 가장 어려운 경험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암으로 사경을 헤맬 때였답니다. 그는 곁에서 아내를 불쌍히 여기고 돌보는데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해서 돌보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여보, 당신이 내 곁에 있는 것이 나에게 오히려 고통을 줍니다. 소원이 하나 있는데 당신이 내 곁을 떠나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방해가 됩니다." 목사님은 너무 너무 당황했답니다. 자기는 최선을 다해 간호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하니까 너무 당황해서 아내한테 무슨 뜻이냐고 하니까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나는 조용히 이 고통을 통해서 예수님을 좀 배우고 싶은데 당신이 나에게 너무 친절과 사랑을 베풀기에 예수님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집니다." 그때 목사님은 조용히 그 아내를 향해서 조용히 기도하고 곁을 떠나 주었답니다. 그 아내는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배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과 동행한다고 말하면서도 조금만 자존심 상한 일이 생기면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씩씩 거리며 괴로워하고 밤잠을 설치고 한달 두달 아니 평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아니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치사하고 간사한 인간들에게 배신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모욕당하면서 십자가에서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부분에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 배신당하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참된 안식을 얻으려면 예수님에게 한 수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저주당하고 인신매매 당하면서도 안식을 누리시는 예수님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든 천로역정에 나오는 기독도처럼 누구나 크고 작은 짐을 짊어지고 삽니다.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살면서도 영적으로 참 안식을 누리는 건강한 삶은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8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같이 읽어 보겠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000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참 안식을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쉬운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시면 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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