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5)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 받으려면
다니엘 6:28
우리는 새해 첫 예배를 “형통케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출발하였습니다. 첫 주에는 여호수아의 형통을 통해 형통하고 형통케 해주시겠다는 “형통을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형통을 누리려면 첫째 형통을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둘째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셋째 그 약속대로 현장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주일은 바울의 형통을 통해 “예고된 고난 가운데서도 형통하는 길”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형통한 삶을 살려면 첫째 예측된 고난 앞에 무릎꿇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둘째, 고난이라는 장애물보다 사명에 집중하고 셋째, 내 뜻이나 네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 번째 주일은 히스기야의 형통을 통해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형통”을 위해서는 첫째 끝까지 모든 일에 시작부터 하나님께 물어보며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마지막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위해 최소치를 높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 주일은 요셉의 형통을 통해 “형통의 목적”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형통의 목적은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고 둘째,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며 셋째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네 나라에서 살았고, 나라가 세 번 바뀌고, 4명의 왕 밑에서 살았는데도 마지막까지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은 다니엘의 삶을 통해 우리가 이 땅에서 죽고 천국에 간 후에도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받으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를 보는 사람들,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다 마친 후에도 또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는 칭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려면 내가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직역하면 “그리고 이 다니엘은 다리오의 왕권 중에서 그리고 바사 족속 고레스의 왕권 중에서 형통했다”입니다. 다니엘은 바사 나라 다리오의 통치 가운데서도, 페르시아의 고레스의 통치 가운데서도 형통하였습니다. 정권은 바뀌고 나라는 바뀌어도 형통한 사람은 이 다이엘입니다. 다니엘은 다니엘인데 이 다니엘입니다. 어떤 다니엘이었는지 1장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유다왕 여호야김 3년 때입니다. 아버지가 요시야 왕입니다. 아버지는 애굽과 전쟁에서 패하여 죽었습니다. 형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애굽 왕 바로느고는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는 애굽의 꼭두각시가 되어 애굽에 충성하기 위해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잔인한 정치를 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처들어 와서 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10대 젊은 나이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이 다니엘에 바벨론 포로가 되었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라도 망하고, 집도 망하고, 사업도 망하고, 직장도 망하고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같고 홀홀 단신으로 10대 때 포로로 잡혀왔는데 이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2장 46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이게 말이 됩니까? 당시 최고의 패권국 왕입니다. 그가 다니엘게 엎드려 절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2장 48-4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신비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는 총리가 된 것입니다. 모든 지혜자의 어른이 된 것입니다.
느브갓네살이 죽고 벨사살 왕도 죽고 메대 나라가 바벨론을 쳐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다리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바벨론 나라의 총리였던 다니엘은 당연히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6장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될 사람은 앞으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지 않고 안될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는데 다니엘은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는데도 여전히 총리로 승승장구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역사적으로 볼 때는 80대 노년의 때입니다. 10대 때나 20대 때나 80대 때나 형통하는 이 다니엘이 된 것입니다. 이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았겠습니까?
저는 그 첫 번째 비결은 10장에서 먼저 발견합니다. 10장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삶 다니엘아” 19절을 보십시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라고 말씀합니다. 9장 23절에도 동일하게 다니엘을 향하여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이 소속된 나라가 이스라엘에서 바벨론으로 메데로 페르시아로 네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왕이 느브갓네살에서 벨사살로, 다리오로, 고래스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 어느 정권에서도 형통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다니엘의 믿음, 다니엘의 성실성, 다니엘의 지혜, 다니엘의 정직성, 다니엘의 겸손, 다니엘의 경륜, 다니엘의 능력 등으로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적대시하면 그 모든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즈음 대통령 선거를 앞에 높고 진영논리로 생각하니까 상대의 장점이 장점으로 보입니까? 무슨 말을 해도 내편은 다 로멘스로 보이고 상대편은 다 불륜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오늘 성경은 평생 형통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노년에 지혜를 잃지 않고 건강해지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이때가 페르시아 고레스 왕 때입니다. 다니엘 인생 말년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때 다니엘을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근심거리가 있었습니다. 힘이 없어졌습니다. 건강하지 못하여 몸에 힘이 없어져 마치 호흡이 끊어지는 사람처럼 되었을 때였습니다. 바벨론 나라가 망하고 신흥 바사 왕 고레스가 등장하여 새로운 식민지가 된 때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고레스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얼마나 기뻐할 일입니까?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은 불과 5만에 뿐이었습니다(에스라2:64-67). 고국에 돌아간 유대인들이 1차 성전 재건을 시도했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이 반대하여 그것마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에스라4:4,5). 그때 다니엘은 슬퍼하며 3주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단10:2-3). 이 금식기도 중에 한 이상을 바라본 것입니다. 1절에 보니 큰 전쟁에 관한 징조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을 보고 근심하고 힘이 빠지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루만져 주십니다. 강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2.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려면 매사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 다니엘이 느브갓네살 때나 베사살 왕 때나 다리왕 때나 고레스 왕 때나 형통한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았겠습니까? 그 비결을 우리는 우리는 그의 생애를 기록한 성경에 기록된 단편적인 사건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10대 때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를 보십시오. 아마 15살 쯤 될 때였을 것입니다. 그를 뼈속까지 바벨론 사람을 만들기 위해 3가지를 시행합니다. 첫째는 정신 개조 교육입니다. 그의 정신을 개조하기 위해 바벨론 교육을 시킵니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쳤습니다(1:4). 둘째는 바벨론으로 동화화를 위한 개종 강요입니다. 당시 이름은 전인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종교적 인종적 정체성을 드내는 것입니다. 아예 대한 민국 사람을 일본 황국시민이라고 인식하다도록 창시 개명을 했듯이 다니엘의 이름도 바꾸어 버립니다. 당시 이름은 부모님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름을 통해 영적 정체성을 뚜렷이 들어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자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모욕이자 수치였습니다. 다니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벨드사살로 바꾸어 버립니다. “벨이 나의 보호자입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다니엘서를 보면 자신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계속 자신의 이름을 다니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단호하게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입니다. 셋째는 생활 양식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음식문화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장 5절에 보면 왕이 지정한 음식과 마시는 포도주를 날마다 줍니다. 고기와 포도주는 당시 대표적인 제사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음식문제가 아니라 신앙문제였습니다. 매끼마다 율법에 금하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말씀하신 부정한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1장 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렵히지 아니하리라”라고 단호하게 신앙 결단을 하고 실천합니다. 자신을 관리하고 있는 환관장에게 은혜와 궁휼을 구합니다. 환관장은 잘 못하면 목이 달아나게 생겼습니다. 너희들이 먹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가 위태롭다는 것입니다. 그 때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10일만 시험해 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용감하게 목숨을 걸고 우상 제물을 거부할 수 있었겠습니까?
개인이나 국가의 역사, 인류사는 지극히 놓으신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사실을 알고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역사도, 나라의 역사도, 세계의 역사도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1장 17, 2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을 형통케 해 주신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큰 신상 꿈을 꾸었습니다. 머리는 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 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쇠고, 발은 쇠와 진흙으로 된 신상 꿈입니다. 그런데 돌 하나가 나와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는 것입니다. 이 때 다니엘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다니엘서 2장 28절을 보십시오.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라고 말씀합니다.
느브갓네살도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니엘의 세친구가 단호하게 신앙을 지키다가 풀무불에 던져졌을 때 느브갓네살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다니엘서 3장 26절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그의 고백을 보십시오. 4장 2-3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계속해서 보십시오. 다니엘서에서 무려 13번 계속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다니엘 4장 17절을 보십시오.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다니엘 4:24, 다니엘 4:25, 다니엘 4:32, 다니엘 4:34절 계속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느브갓네살은 죽고 벨사살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정계에 은퇴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왕이 술을 먹고 잔치를 하다 벽에 나타난 글을 본 것입니다. “메네(수, 계산하다) 메네 데겔(무게, 저울에 달려지다) 우바르신(나누다)” 하나님께서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왕의 나라를 나누어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울에 달아 보아 가벼워 나누고 갈라 놓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누가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입니까? 누가 역사를 심판하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왕들이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명백하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 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까? 다니엘서 5장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장 죽을 수 있습니다. 당시 절대 군주에게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라고 말하는 것은 목숨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사람들이 잘못을 지적하면 싫어합니까? 자식도 듣기 싫어합니다. 분노합니다. 원수 시 삼습니다. 절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5장 29절을 찾아 크게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죽지 않고 형통하는 것입니다. 은퇴 후에 다시 총리로 기용이 됩니다.
다니엘서 7장 2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벨사살 왕의 꿈을 해석해 주시면서 나라는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다니엘 7:18)”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다니엘 7:22)”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다니엘 7:25)” 라고 말씀하십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역사나 다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고 청소년 시절이나 청년 시절이나 중년이나 노년 때나 절대 신앙을 가지고 형통한 삶을 산 것입니다.
3.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려면 마지막까지 하나님과 친밀함 유지하여야 합니다.
이 다니엘이 느브갓네살 때나 벨사살 왕 때나 다리왕 때나 고레스 왕 때나 형통한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았겠습니까? 그 비결을 6장 10절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6장 10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의 통치를 믿는 절대 신앙을 가지고 창문을 열어 놓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감사했습니다.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뛰어나고 잘 난 사람, 능력있는 사람이 형통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을 닮은 믿음의 사람이 형통하는 것입니다. 청문회를 보십시오. 대통령 선거를 보십시오. 더러운 것이 드러나니까 얼마나 수치스럽습니까?
메데 나라 왕 다리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왕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영토가 광대하니까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총리 셋을 뽑았는데 그 중 다니엘이 뽑혔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6장 3절을 보십시오. 으뜸 총리로 왕이 다니엘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시기를 하겠습니까? 이방 나라 사람이고 이미 멸망한 나라에서 총리를 한 사람입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총리가 된 것입니다. 나라가 바뀌었으니 마땅히 처형할 자를 계속 총리가 되게 하고 자신들을 다스리게 하니 눈의 가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모의하는데 너무 도덕적으로 흠을 잡을 수 없으니까 제거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4). 너무나 성실하고 정직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거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를 보냅니다. 한겨레 신문 기자를 보냅니다. 정보원들을 보냅니다. 진치고 염탐해 보니 매일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그것을 상대를 제거할 스모킹 건(연기나는 총)으로 삼는 것입니다. 정적을 제거할 결정적 한 방의 증거로 삼은 것입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자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이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습니다. 문다고 하면 되고, 30일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정적들의 모략을 다 알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권력보다 친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돈보다 친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명예보다,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긴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다니엘에 평생 형통한 자라고 일컬음을 받았던 비결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은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왕이 온 백성에게 조서를 내립니다. 대단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6장 26-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 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다니엘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을 만방에 선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잘 될 때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장애가 있다고, 실패했다고, 못생겼다고, 가난하다고, 권력을 잃었다고, 늙었다고, 병들었다고 떠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다니엘 7장 2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다니엘서 7장 13절을 보십시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입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보십시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이십니다. 믿습니까? 친구는 떠나도, 돈과 명예와 젊음과 직장과 건강과 권력을 떠나도 우리 하나님은 옛적부터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인생에 형통을 줄 것으로 알고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형통을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과 친밀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한평생 범사에 형통한 삶을 살았던 요셉은 어떤 유혹 앞에서도 승리하고 형통하게 산 것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범죄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과감하게 유혹하는 여인을 물리친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니까 유혹하는 여자라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독사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징그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역겹게 보이는 것입니다. 홀로 여행을 가 여성이 유혹하면 그 여성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징그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생활이 형통합니다. 메일을 열어 보았는데 모르는 여성이 오빠하면 징그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터넷 서핑을 하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친해지면 죄는 멀어집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니까 친죄 성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면 유혹은 보약이 아니라 독약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하면 독을 마시면서도 그것이 보약인 줄 알고 마십니다. 그러면 독을 쌓아도 죽지 않으니까 자신이 독사로 변해버립니다. 모세가 그 어려운 광야 생활 가운데 형통한 것은 하나님과 친하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을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25편 14절에는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얼마나 다니엘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살았습니까?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꿈을 해석할 자를 찾습니다. 꿈을 해석하지 못하면 죽습니다(2:5). 그때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2:17,18). 다니엘 뿐 아니라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이 죽지 않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꿈과 꿈을 해석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히브리인들은 일반적으로 아침과 저녁으로 두 번씩 기도합니다(대상23:30). 그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살았습니다. 9장 1-19절까지는 다니엘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 나라의 왕 다리오가 왕이 되었을 때입니다. 새시대 새역사가 펼쳐질 때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렘25:11-13; 29:10)”라고 하신 예언의 말씀을 본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망하고 이국만리에 포로로 잡혀와서 생활했는데, 그 기간이 벌써 70년이 다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면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노년에까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때 다니엘은 무엇을 합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언약을 지키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어 용서하시고 인자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언약을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역사의 미래를 보여주시고 메시아 나라의 최후 승리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12장 13절에 마지막 말씀해 주십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끝날에 영생과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통한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끝날까지 형통한 것입니다. 형통하게 살다 마지막 천국에 가서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다 이런 약속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사람은 00은 형통한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려면 매사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려면 마지막까지 하나님과 친밀함 유지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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