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1) 형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여호수아1:8-9
2022년 새 해 첫 주일예배입니다. 올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나라에서 표면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코로나 19가 어떻게 되느냐?” 일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올해 어떤 일이 주요 이슈가 될까요? <2022 세계대전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843년 영국에서 창립하여 세계적으로 명성을 구축하고 있는 영국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매년 전 세계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을 통해 다음 해에 전개될 정치, 경제, 사회의 전체를 개관하여 핵심 이슈들을 전망하는 책입니다. 매년 90여 개국에서 25여 개 언어로 동시에 번역 출간하는데 구입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맨 앞에 10가지 주제와 트렌드를 눈여겨 보라고 요약해 놓았습니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것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런 것입니다.
첫째가 민주주의 대 독재 정치 즉 미국과 중국의 경쟁입니다. 민주주의와 독재 정치, 과연 둘 중 어느 체제가 더 나은 안정성, 성장, 혁신의 발판이 될까?를 경쟁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진핑은 집단적 국가 통제 기능을 상실한 민주주의보다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철저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은 무역에서 시작해 기술 규제, 백신 접종, 우주 정거장 건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경쟁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은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49년 세계 최강국을 목표로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하면서 미국과 더 치열하게 패권 경쟁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올해 관심사 중에 우크라이나를 놓고 대치하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 대만을 놓고 대치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세계적인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코로나19는 전염병에서 풍토병으로 될 것이라고 합니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반향과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2022년에도 전염병 확산은 계속될 확률이 커 보인다고 합니다. 새로운 항바이러스제와 효능이 개선된 항체치료제, 다양한 백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만큼 선진국에서는 더 이상 바이러스가 생명을 위협하는 대상은 아닐 테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치명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풍토병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2022년 말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치명적인 질병에서 벗어날 테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빈곤한 나라들을 더 절망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22년은 ‘위드 코로나’에 어떻게 얼마만큼 적응해 나가느냐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셋째는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합니다. 넷째 노동의 미래는 근무 형태가 재택과 출근이 뒤섞인 ‘하이브리드’ 체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섯째는 거대 빅테크 기업(GAFA)들을 향한 각국 정부의 규제 기관들의 독점 금지 소송과 조사에 대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계속 주시해야 할 문제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섯째는 암호화폐의 성장으로 2022년에는 금융의 미래를 놓고 암호화폐-블록체인 팀, 테크기업 팀, 중앙은행 팀 간의 격렬한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합니다. 일곱째 기후 위기를 말합니다. 여덟째, 여행문제로 코로나가 풍토병이 되어가는 과도기 속에서 출장 업무의 절반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지금, 여행업계가 다시 활력을 찾으려면 2024년에나 되어야겠지만, 새롭게 급부상한 바이러스 없는 관광지들이 앞으로 더 많은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홉째로 우주 개발 경쟁으로 2022년은 경쟁에 뛰어든 우주 개발 기업들이 쏘아 올린 우주선을 타고 더 많은 수의 민간인이 우주에 가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로 정쟁의 불씨로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카타르 월드컵은 스포츠가 어떻게 세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지, 또 대규모 스포츠 행사가 어떻게 정치 논쟁의 불씨가 돼버리곤 하는지 일깨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2022년에도 팬데믹은 여전히 세계 다방면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고, 바이러스가 초래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전 세계 정부가 과부하가 걸려 있는 동안, 많은 국가에서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대중들의 불안감은 고조되며,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경쟁적이고 극단적인 행보는 심상치 않고 무엇보다 이미 다가온 기후 위기가 올해 어떻게 나타날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3불로 표현한다면 “불안의 시대, 불확실의 시대, 불안전의 시대”입니다. “불안, 불만, 불신”의 시대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3불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형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 시대 때도 예측하기 심든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이때가 어느 때가 어느 때였겠습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이제까지 40년 동안 백성을 광야에서 이끌어 왔던 민족 지도자 모세가 죽은 때였습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에 이끌고 들어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였습니다. 적들은 잘 무장된 군인이 있고 견고한 성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오합지졸입니다. 말을 잘 듣지 않은 목이 곧은 백성들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이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웠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쉽게 지도자를 원망하고 돌을 던지며 죽이려던 자들입니다. 건너가야 할 요단강이 있고, 무너 뜨려야 할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있습니다. 무장하고 기다리는 가나안 7족이 있습니다. 지도자도, 거주지도, 주거 형태도, 먹을 것을 얻어야 할 직장도, 거레하는 시장도, 경쟁의 대상도 다 바뀌는 대변화의 시대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형통할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어떤 형통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7-8절 말씀을 오늘 이 시간 새해 첫 출발하는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내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다시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어디로 가든지는 네가 걸어가는 모든 곳에라는 뜻입니다. "형통(亨通)"이라는 말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되어 감"이란 뜻입니다. 여기서는 히브리어 "싸칼"의 번역한 말입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신중하다’ ‘이지적이다’ '전진하다' '유익하다', '번영하다' '성공하다', '이롭다' 등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단순하게 물질적 번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지혜로우며, 전진하고, 유익하고, 번성하고, 성공하여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이 형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형통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형통은 하나님의 뜻인 가나안 정복 사업을 완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통의 약속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여호수아에게 불안과 염려가 아니라 기대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걸어가는 모든 곳에 형통하고 형통하리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루도록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2022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 성도님들 이 약속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약속인 것을 믿고 새해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진학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취업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승진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이직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퇴직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창업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기업의 성장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결혼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잉태를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치료를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입대를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건강 회복을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노년기를 앞에 놓고 있는 성도님들 모두 형통하고 형통하게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올 한 해 형통의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형통하기를 원한다면 형통을 좋아하고 형통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저는 올 한해 형통하고 형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것을 믿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형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형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형통의 땅 가나안을 모세를 통해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데스바냐에서 정탐꾼을 보내었을 때 그 약속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광야 2세대를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야 할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을 보며 오늘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형통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극히”라는 말을 사용하여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말에서는 번역하지 않았지만 “지키기 위하여, 행하기 위하여”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왜 강하고 담대하여야 하는가 그 이유는 율법을 다 지키기 위하여,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즉 강하고 담대해야 할 목적인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도 중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부터 우측이나 좌측으로 돌아서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치우치다는 것을 돌아서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절대로 떠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을 율법의 말씀을 믿는 것을 전재로 하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지 않으니까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니까 율법을 떠나 다른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지 않으면 율법을 지키기기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 쉽게 율법으로부터 돌아서서 세상으로 빠져 버리기가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어울려 살며 그들은 부유한 삶을 살기 위해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깁니다. 그 신이 형통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 하나님의 약속의 절대성을 믿고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코로나19라는 작은 상황만 와도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납니다. <이기적인 유전자, 만들어진 신> 이런 책 한 권만 읽어도 금방 믿음이 무너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도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서 무신론자가 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신이 없다고 믿어서 무신론자가 된 것을 알지 못합니다. 빅뱅론로 진화론도 증거와 증명을 통해 이루어진 과학이기 보다는 기원론에 대한 하나의 믿음입니다. 파스칼은 “무신론은 일종의 질환”이라고 했습니다. 근대의학의 창시자 파스퇴르, 로켓의 아버지 폰 브라운,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 케플러, 코페르니쿠스, 뉴턴, 천문학에서 현대우주론의 기초를 쌓은 윌리엄 허쉘, 무선통신을 발명한 미국의 물리학자 모스, 전기의 법칙을 발견한 패러데이, 전기 기학을 수립한 19세기 천재적인 물리학자 맥스웰, 절대온도와 열역학 제2법칙을 발견한 캘빈, 플레밍의 법칙을 발견한 존 플레밍, 새턴로케트를 개발하여 아폴로 우주계획을 지휘했던 브라운, 화학자로 보일을 법칙을 발견한 보일, 원자설을 주장한 돌턴, 방부제 수술법을 개발한 리스터 등이 모두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눅 18:8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9에서는 말세의 징조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이 없어지는 세상이 됩니다. 말세의 때에 사람들의 사랑의 대상이 완전히 바뀌어 버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기 때문에 자기 육체의 기쁨과 만족에 모든 것을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합니다. 돈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랑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거나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어 무정하고 오래된 감정을 풀지도 않습니다.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사납고 선한 것을 좋하하지도 않고 배반하며 쾌락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좋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 믿음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파선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형통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형통에 대한 약속을 어떤 유혹과 핍박이 있어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구약 옛 약속, 신약 새 약속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형통의 약속을 믿고 살았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살았던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들은 쉽게 약속을 어깁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신 형통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여호수아 21:43-45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43절) “여호와께서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안식”(44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45절)을 다 이루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데스 바냐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올 한해 우리 하나님께서 형통해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눈뜨기를 원하는 시각 장애인에게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 믿느냐”라고 질문하고 “너희 믿음대로 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은 눈을 떴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형통의 약속을 아멘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대로 될 줄 믿습니다”라고 내게 주신 말씀, 내 삶에 이루어질 말씀으로 받고 “아멘”하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에게 주신 형통의 약속도 우리가 믿고 나아가면 형통하고 형통하는 복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영생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그대로 믿으면 멸망치 않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마지막 날에 부활합니다.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을 때 기적적으로 이삭을 하나님은 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라는 말씀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약속해 주시면 그 약속 믿고 모든 짐을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라고 말씀하시면 그 약속 믿고 쓸데 없는 염려의 늪에서 신음하지 말고 다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은퇴 후 고향을 방문했답니다. 한 소년이 물었답니다. "어릴 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러자 트르먼은 "나는 너희만 할 때 아주 볼품이 없었단다. 운동도 못하고 안경을 벗으면 책도 보지 못했단다" "그러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요" "나는 매일같이 성경을 읽었단다. 그리고 내 뒤에서 밀어주시는 하나님의 힘을 믿었지. '나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는 말씀을 굳게 믿었단다. 그리고 일단 믿기 시작하면 밀고 나갔단다."
2. 형통의 복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은 40년 동안 훈련을 시켰습니다. 모세를 통해 왜 훈련을 시켰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었습니다. 신명기 8장에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절을 보십시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16절을 보십시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제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선조들처럼 시험에 실패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약속의 복인 가나안의 형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장하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무장하라고 말씀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는 원문에 가깝게 직역하면 “이 율법책은 네 입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입니다. 주어가 율법입니다. 율법책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가까이 할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절대로 떠나져서는 안 되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억하는 차원을 넘어 모든 대화의 화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사고와 우리의 삶의 전 영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여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야로는 시간적으로 항상을 말합니다. 부모님을 통해 주일학교에 다니는 때나 중고등부 학생 때나 청년이 되어 대학에 들어갈 때나 취업하여 직장에 다닐 때나 여유 있는 중년의 때나 모든 것을 상실해 가는 노년의 때나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묵상(하가)라는 말은 중얼거리다는 말입니다. 항상 중얼거리라는 말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들리게 함으로 그 말씀이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지배하라는 말씀입니다.
수많은 반기독교적 사상이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데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형통하려면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오늘도 올해 외울 말씀을 주보에 넣어 주었는데 올해는 성경 각권 주요 구절을 요절로 선택하였습니다. 한 주 간에 한 구절이라고 외우시길 바랍니다. 성경 통독을 위해 문제지를 내어 놓았습니다. 문제지를 풀면서 일년에 한 번이라고 성경 통독을 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샘가 큐티집을 무료로 드리고 전자 파일로 묵상할 수 있도록 드리고 있는데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매달 가정 예배 순서지를 만들어 주고 있는데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지 못할지라도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정하여 가정 예배를 온 가족이 함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매일 매일 실패하기 쉽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문학책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정보 수단이 아니라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타락한 어거스틴이 성경을 읽다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방탕하게 살던 부시가 성경을 보고 새사람이 되어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깡패 대장이었던 김익두가 성경을 읽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존 번연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만나 천로 역정을 지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를 읽고 진정한 구원을 받아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마태복음 28:19,20절에 감동되어 선교사가 되었고 아프리카에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윌리암 캐리는 사54:2 말씀을 보고 세계를 향한 선교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심각한 영적 병 중의 하나는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설교하면 또 설교해"라고 말합니다. 지루해 못견디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도 말씀듣기를 싫어합니다. 따분한 말씀 전하지 말고 즐겁고 흥미롭고 부담없는 공연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짓고, 아무리 음향시절과 조명을 갖추고 수만명이 예배를 드린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지 않는다면 그곳은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터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해갈 때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호4:6절 말씀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했습니다. 여기서의 지식은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말합니다.".....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했습니다(호4:6).
형통의 복을 누리려면 말씀으로 무장을 하여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라고 말씀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형통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말씀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말씀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냥 무장하여 그 상황이 다가 오면 예수님처럼 그 말씀으로 대처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장해제를 하고 있다가 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금방 넘어져 형통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일년에 신간도서가 2만 5천 종 이상 나오고 있고 일본은 4만 5천 종 이상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책으로 불안과 불만, 불확실, 불신으로부터 승리하고 형통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입니다. 성경에 있는 3만 1,173개의 구절 가운데 한 말씀이라고 그 말씀으로 무장하면 우리의 인생의 미래는 두려움과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말씀으로 무장하고 정복했습니다.
시편 1편은 형통의 비결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일명 큰 바위 얼굴로도 알려진 유명한 미국 블랙힐의 러시모어 산 화감암 벽에는 미국인으로부터 존경받는 네 명의 대통령 흉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워싱턴, 제퍼슨,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의 대통령입니다. 이들은 다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으로 무장하여 형통해진 사람들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성경이 아니면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은 성경을 반석으로 삼아 서있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다”라고 말하며 전쟁터에서도 애독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어떤 방면에서 일하는 사람이든 그가 자신의 생을 참되게 가꾸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성경을 묵상하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3. 형통의 복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번역해 놓지 않았지만 ‘레마안’이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그 말을 ‘-하기 위하여’라는 말입니다. 항상 말씀을 중얼거리는 일은 그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 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묵상이나 암송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행함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요단강이 나타나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법궤를 매고 말씀대로 걸어가면 됩니다. 여리고 성이 다가 오면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대로 믿고 언약궤를 메고 돌면 됩니다. 백성은 미쳤다고 해도, 조롱해도 그저 매일 언약궤를 따라 한 바뀌씩 돌라는 것입니다. 6일간 6바퀴 돌고 마지막 날 일곱바퀴를 도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각 나팔을 불고 백성이 함께 고함을 지르는 것입니다. 철옹성 같은 여리고가 이렇게 무너지겠습니까? 얼마나 어리석다고 조롱하고 비웃겠습니까? 그러나 무식한 것같고 비이성적인 것같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같을 지리라도 언약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마7:24,2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오늘 이 시대도 말씀대로 살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형통하고 싶은데 말씀대로 못사는 것입니다. 말씀대로만 살면 형통은 자동적으로 보장이 되는데 말씀대로 살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유혹과 핍박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강합니다. 사탄은 세상 풍속과 마음의 욕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올해 결혼을 앞에 둔 우리 형제 자매에게 결혼의 형통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와 캠핑 가서 자고 오고 이 여자와 여행 가서 자고 옵니다. 그러면 결혼에 형통이 있겠습니까? 결혼했는데 이 남자와 연애하고 저 남자와 연애하면 가정이 형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취업을 앞에 놓고 있는 청년들에게 취업의 형통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학생들에게 진학의 형통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오락실에 가서 게임이나 하고 날마다 스마트폰을 보며 영화에 심취하고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형통의 약속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경제적 형통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쇼핑 중독이 되어 매달 카드빚이 100만원 200만원 늘어 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경제적 형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올해 건강의 형통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인스턴스 음식을 먹고 운동은 숨쉬기 운동만 한다면 건강 형통의 약속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요즈음 대통령 선거철이 되었는데 후보의 자식이 후보의 아내가 도덕적 삶을 살지 못하니까 결정적 순간에 챙피를 당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실제 삶을 삶을 살면 불통이 아니라 형통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불확실 앞에서도 단순하게 약속 믿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대로 살면 앞 길은 형통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삶의 현장에서 살면 어떤 결과가 주어진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8)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하면’으로 번역 된 ‘키 아즈’에서 ‘키’는 ‘왜냐하면’이란 뜻의 접속사이며, ‘아즈’는 ‘그때’라는 뜻의 부사어입니다. 따라서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때에’입니다. 여기서 ‘그때’는 앞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를 가리킵니다. 평탄과 형통은 바로 인간이 쌓아 놓은 부나 길러온 힘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과 동행하면서 실행할 때 그 결과로 주어지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신29:9)”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5:33)”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형통한 삶을 살았던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어떤 유언을 합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3)”
말씀대로 살면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George Muller)는 16살 되던 해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술과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뮐러가 20살 되던 해 성경 속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놀랍게도 그의 삶에는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전 재산 13만 5천 달러의 돈을 모두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쌍한 고아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한평생을 고아를 위해서 헌신하였고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불안의 시대, 불확실의 시대, 불안전의 시대”, “불안, 불만, 불신”의 시대에 형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형통의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시길 바랍니다.
형통을 누리기 위해 매순간 말씀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매일 매일 형통의 길로 인도받으며 올 한해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형통한 삶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열기 닫기
| 쪽지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