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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4) 성탄의 기쁨(마2:1-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2891 추천수:9 220.120.123.244
2021-12-19 14:17:18

성탄(4) 성탄의 기쁨

마태복음 2:1-12

 

오늘 주보 열린 이야기에 오 집사님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어느 날 오집사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이 분당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입니다. 남편 이 집사님은 IT사업을 하시며 낚시도 좋아하고 아주 건강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심방 가니까 심히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크게 한 번 아프지도 않은 착한 남편이 의식을 잃고 병원 침대에 누운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듯한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의사는 내일을 넘길 수 없으니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답니다. 살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해 드린 후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기도하시라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살 수 있다고 권면하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동안 병원비만 2억 4천이 들어가고 경제적 어려움, 아들의 실직과 딸의 의사고시 낙방, 본인의 사업의 어려움 등 슬픈 일을 많이 당하였지만 늘 기도하며, 아침마다 보내는 열린 편지를 읽으며 그 슬픈 고난을 다 이기고 이제는 아들도 팀장이 되고, 딸은 의사가 되었으며 남편은 혼자 운전을 할 정도로 회복되어 다시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기도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타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신 주님,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라고 약속해 주신 주님이 어린아이로 이 땅에 탄생하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의 대표적인 노래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찬양하여라” 아마 어릴 때 교회를 다니면서 새벽 송을 돌아 다녀본 성도님들은 다 이 찬양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부른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도시에서 개척했지만, 초기에는 성탄절 새벽에 우리 성도님들 아파트를 돌며 새벽 송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혹시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찬양하지 못하고 “슬퍼하고 구주 오셨네, 괴롭다 구주 오셨네, 외롭다 구주 오셨네, 두렵다 구주 오셨네, 부담스럽다 구주 오셨네, 억울하다 구주 오셨네”라고 외치는 분이 있습니까? 성탄절을 맞이하여 성탄의 기쁨이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탄절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누릴 수 없는 기쁨을 주신 날입니다.

 

1. 성탄절을 기다리면 기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0절을 큰 목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동방박사들입니다. 권력자 헤롯 대왕도, 종교인 대제사장도, 지식인 서기관도 아니었습니다. 이방인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우 크게'는 충만이 넘치는 상태입니다. 큰(메가덴)은 크고 놀랍고 장엄하다는 뜻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렇게 기뻐했습니까? 별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 별이 무슨 별이기에 그 별을 보고 기뻐했습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입니다. 그런데 그 별이 앞서 인도하다가 문득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 아기는 누구입니까? 이 땅에 아이로 태어나신 예수님입니다.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을까요?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유대인의 왕이 아닙니다. 유대인도 왕으로 대접하지 않은 메시아로 약속한 만왕의 왕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믿으며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하는 성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 기쁨이 샘물 솟아나듯 솟아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인생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기뻐하는 기쁨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감각적 기쁨입니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여 얻는 기쁨입니다. 마약을 먹고, 술을 먹고, 도박을 하며, 성적 행위를 하며 누리는 기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재미를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심한 천국보다 즐거운 지옥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꿀 냄새를 맡고 몰려든 파리떼처럼 넋을 잃고 쾌락에 파묻히다가 날개까지 젖어 버려 다시는 날지 못한다 해도 그 속에 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욕망 중의 하나는 쾌락입니다. 쾌락은 마약 성분이 있어 계속 유지하려면 쾌락을 주는 것들을 끝없이 찾아다녀야 하고 더 강력한 것을 요구합니다. 쾌락의 순간은 가장 아름다운 도취요, 혼신을 맡기는 행위가 될 수 있어 그 안에는 시간도 세월도 잊을 수 있습니다. 쾌락에 취하면 권태를 덜게 하는 체험과 쾌락의 묘약을 사기 위해 돈을 얼마든지 지불합니다. 그러나 부나비가 불빛에 취해 불꽃 주변을 돌지만 결국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불에 타 죽고 말듯이 쾌락은 가장 완전하게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돈으로 쉽게 재미를 사고 쾌락으로 지루함이 추방될 것같지만 쾌락은 임시적인 아편의 역할을 할 뿐 습관이 되면 파멸의 독약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쾌락은 갈수록 약해지고 쾌락 욕구는 갈수록 강해져 다시 권태와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강도 높은 파괴적인 방식으로 쾌락을 추구하지만 쾌락은 신기루와 같아 늘 강박관념과 공허감을 주어 쾌락의 노예가 되면 결국 자기 생명을 갈가 먹힙니다.

이런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행위를 할 때만 잠깐 있다 순간적으로 살아집니다. 감각적인 기쁨은 도덕성이 있을 때 순간이라도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이 끝난 후에도 후회와 슬픔이 없습니다. 부도덕한 감각적 기쁨은 잠깐의 기쁨은 있지만 지나고 나면 수치심과 근심, 허무감만 남기 때문에 감각적 기쁨을 주는 것에 중독이 되기 쉽고 결국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둘째는 성취를 통해 얻는 기쁨입니다. 부자 되고, 건강해지고, 성공하고, 승진하고, 합격하고, 당선되고, 명예를 얻고 등과 같이 성취함을 통해 얻는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없어지면 상실감과 슬픔도 그만큼 크게 다가옵니다. 이런 기쁨은 단점이 지나치면 윤리성이 없게 됩니다. 남은 잘못되어도 나만 잘되면 기쁜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무수한 사람을 죽이면서도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둑이 도둑질 잘했다고 기뻐하고 사기꾼이 사기 잘 쳤다고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소유의 기쁨 성취의 기쁨이라는 것은 원시적이고 육체적이고,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기쁨이고 잘못 나가면 동물적이고 파괴적인 가학적인 기쁨이 되어 버립니다.

셋째는 나누는 기쁨입니다. 자신의 것을 남에게 베풂으로 누리는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은 나눌 때뿐 아니라 그 후에도 조금 오래가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며 누리는 기쁨은 이런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 기쁨입니다. 죽음에서 해방되는 기쁨, 죄를 용서받는 기쁨, 하나님의 아들이 된 기쁨, 복음으로 자유를 누리를 기쁨 등 인생의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는 기쁨입니다.

감각적으로 기뻐할 것이 없어도, 성취를 못해도, 나눌만한 것이 없어도 예수님 한 분으로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왕으로, 구세주로 믿는 기쁨입니다.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6:22)" 예수님 만나면 일시적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 제자들의 기쁨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20장 20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20)"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그들은 예수께 경배를 드린 후에 기쁨에 넘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눅 24:52)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6)"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 8:8)"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행 13:52)" 라고 했습니다.

 

안디옥에서 쫓겨 가면서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능욕을 받아도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 5:41)"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기뻐합니다. 바울을 죽을 지라도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7)"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고후 7 : 4). 왜 그렇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유의 기쁨 정도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베푸는 것으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존재의 기쁨이고 영적인 기쁨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기쁨입니다. 한 번 아들이 되면 영원한 아들이고 천국에 이르도록 그 어떤 것도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신앙인이 되어서도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죄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 맨 밑바닥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여기 왔느냐?"고 물으니까 안내하는 사람의 말이 "다른 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 믿는다고 하면서 기쁘게 살지 못하고 늘 우울하게 한숨만 쉬며 산 죄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합니다.

신앙인이란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신론적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게 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는 예수님과 함께 얼마든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죽음에서 구원받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죄 용서받고 참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 주님을 통하여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안감과 모멸감, 고립감과 좌절감, 그리고 상실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 기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비록 사업이 잘 안되고, 건강치 못하고 모든 것이 소원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만왕의 왕 예수님을 만난 기쁨,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기쁨 그 기쁨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구세주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승리해도 기뻐할 수 있고 실패해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병들어도 기뻐할 수 있고 건강해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가도 기뻐할 수 있고 핍박을 받아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육신적 기쁨이 아니라 영혼의 기쁨입니다. 외적인 기쁨이 아니라 내적인 기쁨이고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언제든지 기뻐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일시적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죽음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으로 기쁨을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괴로웠던 것, 슬프고 고달팠던 것 다 십자가에 묻어 버리고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쁨을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모두 다 나를 떠난다 하여도 우리 주님만은 나를 지켜 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진정 주님 한 분으로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자들은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합니까?(2, 11)

오늘 성경에 보면 동방박사들은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성자 예수님께 예배함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 기쁨을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함으로 표현하였습니다(2).

그들은 예수님을 진정 메시아로 경배하였습니다.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까? 메시야를 만나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크리스마스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인생의 왕으로 모시는 기쁨을 가진 자들은 주님을 경배함으로 그 기쁨을 표현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지위에 비하면 마구간 초라한 곳에 나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린아이를 왕으로 믿고 기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아기 예수님께 겸손하게 경배함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누추한 곳에 있는 아기에게 왕으로 경배하는 것은 영적인 눈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조금 배웠다고 조금 가졌다고 예수님을 무시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께 경배할 수 없습니다. 헤롯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슬퍼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력, 지위, 왕권을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왕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경배하지 않습니다. 평생 살면서 자신이 경배를 받으려고 합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성경에 능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식만 있을 뿐이지 예수님께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지식적 교만입니다. 인지의 한계, 능력의 한계, 생명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니체도 성경을 잘 알았습니다. 칼막스도 사르트르도 볼테르도 성경을 잘 안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사르트르는 '신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산다고 그들이 인생을 기쁘게 살았습니까? 회의와 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인생의 답을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니체는 말년에 미쳤다고 합니다. 그가 광기 어린, 그 미침 속에서 낙서장에 남긴 메모는 "신이여, 당신은 살아있다. 나는 죽었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싸르트르는 그렇게 자유를 부르짖었지만 1980년 3월 불란서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폐수종을 죽을 때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가를 곁에 서있는 자기 아내에게 묻지 못하고 죽어갔다고 합니다. 볼테르는 "100년 후에는 지구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미신가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욕을 퍼붓는 나를 가만 두겠습니까"라고 말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몸을 떨며 의사에게 6개월만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애원했답니다. "오, 이제 나는 지옥불에 들어가는구나" 절규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기뻐하고 가난 앞에서도 기뻐하고, 순교를 하면서도 기뻐한 산 사람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있든지 성탄의 기쁨을 예배로 표현하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만드셨습니다.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것도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해방시킨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살게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예배를 자유롭게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기뻐하고 산다는 사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 찾으시고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의 인생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뻐하는 기쁨은 필수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왕되시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왕되신 예수님께 예배로 그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를 괴롭히고, 불행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시간 낭비, 물질 낭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배드리지 않는 것이 손해입니다. 아이들 대학 시험을 앞에 놓고 시간 아끼기 위해 예배까지 드리지 말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드리는 것이 유익입니다. 세계 기독교 인구가 21억이나 됩니다. 실제로 조사해 보니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오히려 성적이 높다고 합니다.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학과 제니퍼 그랜빌 교수의 연구 결과 교회에 다니는 10대들의 성적이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미국학교 7학년부터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매주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은 중퇴 비율이 낮았다고 합니다. 종교 예배에 참석하는 10대들은 전혀 참석하지 않은 10대보다 높았다고 합니다.

정신위생계에 있어서 세계적인 학자인 데이비드 핑크 박사는 "안정을 위한 4박자 균형"이라고 하는 논문에서 정신적 요소가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네가지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첫째가 일, 둘째가 놀이, 셋째가 사랑, 넷째가 예배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네 요소 중에 예배가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말합니다. 예배를 정신안정의 절대 필요 불가결한 요소로라는 말입니다. 수면제 먹고 신정 안정제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배라는 말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다니는 등 규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사망위험이 약 20%가량 낮다고 합니다. 미국 뉴욕 예시바대학 연구팀은 9만 2,395명의 50∼79세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가족이나 친구 등의 사회적 지지가 강하고 담배를 덜 피우고 술을 마시지 않는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고 있어 사망위험이 낮을 수 있지만 이런 요인 말고도 신앙생활 자체가 사망위험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The Times'의 보도에 의하면 최소한 매주 한 차례라도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7년이나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조지 W. 컴스톡 박사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에 비해, 전혀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치명적인 심장병에 걸릴 위험률이 거의 두 배나 높은 반면,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신앙인이 주요 질병의 낮은 발병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배드린다고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기쁨을 표현하는 축제입니다. 평생 예배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께 드림으로 오래도록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기쁨을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11).

이 보물은 당시에는 제일 귀한 것이요 가장 값진 것입니다. 이 예물은 의미가 있습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예물로써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심을 보여줍니다. 유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므로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레2:1,2) 몰약은 썩지 않게 하는 약품으로써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 것입니다.(요19:39,40)

그 예물은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가 만왕의 왕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왕에게 선물을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우리도 대통령에게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라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쁘겠습니까? 선물을 준다고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돈독한 관계가 있을 때 선물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통하여 예수님께 드리는 삶이야 말로 특권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받는 것, 성취함도 기쁨이 있지만 왕되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은 드림으로 우리의 기쁨을 표현해야 합니다. 건강이 주어지면 건강으로 지식이 주어지면 지식으로 명예가 주어지면 명예로 권력이 주어지면 권력으로 재물이 주어지면 재물로 그리스도께 드리는 삶을 살면 그 기쁨은 오래갑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섬기려 오셨고 생명까지 대속물을 주어 우리를 구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많아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에 작은 것이라고 주님께 드림으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은 것을 드리면 얼마나 기쁨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남편에게 밥을 해주면서 아깝다, 손해라고 생각하며 날마다 밥을 하면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 드리는 기쁨이야 말로 죽을 때까지 누릴 수 있는 기쁨이고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때까지 작지만 드릴 수 있는 것은 늘 남아 있습니다. 재물도 떨어지고 재능도 떨어지고 시간도 다 떨어져도 마지막까지 기도할 수 있는 의식과 입술은 남아 있습니다. 기도로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생이 다할 때까지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만난 기쁨을 계속적으로 간직할 수 있는 비법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헌신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 시간드리는 것, 주님께 재능 드리는 것, 주님께 물질 드리는 것, 아깝고 인생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억지로 인색하게 생각하면 기쁨이 없습니다. 인색해지면 계산하게 되고, 아깝다고 생각하게 되고, 손해라고 생각되고, 억울하고 빼앗긴다고 생각되어 기쁨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재능을 느리는 것은 구원받은 기쁨의 표현입니다.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미국이 200년 만에 세계 최강국이 된 비결은 자선과 나눔에 있다고 말합니다. <존경받는 부자들>이라는 책에 의하면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70% 이상 자선활동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매년 2,000억 달러 이상이 자선기금으로 모인다고 합니다. 기부금만 내는 것이 아니라 연 인구의 1/3인 7,000만 명이 자원봉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20세기 초 록펠러와 카네기가 재단을 만들며 시작된 자선재단 활동은 2000년 5만 6,582개로 불어났고, 총자산은 4,861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것이 미국의 저력이라고 합니다. 21세기 가장 명예로운 직업은 레인메이커(rain maker)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비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평생 기쁘게 살도록 하려면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계수하는 직원 40명을 고용했다는 존 록펠러는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께서 20센트의 용돈을 주며 2센트는 하나님 몫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반드시 따로 떼어라고 가르쳐 주었고 록펠러는 교회에 나가는 것과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나쁜 일도 했지만, 결국 살아계신 하나님을 질병 가운데 체험하고 체험적 신앙으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12개의 대학을 세웠고 4000여개의 교회를 지원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기아 근절, 인구문제의 해결, 대학의 발전, 미국 국내의 기회균등 및 문화적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은 유럽에서 중국, 일본에 이르는 많은 도시에 의학 대학 건립을 위한 자금을 기부했고, 많은 의약품을 개발해 말라리아, 발진티푸스, 결핵, 황열병을 비롯한 많은 질병의 퇴치에 공헌했습니다.

"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한 앤드류 카네기는 공립도서관을 미국에 2,500개, 영국과 캐나다에 500개를 건립, 무상 기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술관, 박물관, 음악홀 등을 지어 각 시에 기증한 사례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드림으로 누릴 기쁨은 있습니다. 기쁨을 오래도록 누리려면 하나님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리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우리는 말씀에 따라 삶으로 기쁨을 실제적으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쁨을 말씀의 지시에 따라 삶으로 유지했습니다(12)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니까 그대도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헤롯이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도 경배하도록 꼭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가면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호화로운 잔치에 참여할 수도 있고, 상급도 받고 좋은 교통수단으로 귀국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 되신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인간 왕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왕을 따르는 것입니다. 말씀이 가라는 대로 가고 멈추라는 대로 멈추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 보장되는 삶입니다. 비록 눈앞에 이익이 없고, 편리가 없고 인간적인 기쁨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씀 붙들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모순투성이고 부조리와 불안과 불만이 가득 찬 세상에서 말씀 붙들고 신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기쁠만한 것이 있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니까 기뻐할 것이 오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신앙인의 3대 삶의 지침을 말합니다. 그것을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6)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이것은 신앙인의 삶의 3대 원리입니다. 그 중 무엇이 가장 앞서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그냥 항상 기뻐하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소요리 문답에서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기뻐하지 못하고 슬퍼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의도적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면 우리 몸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엔도르핀과 평안을 주는 세로토닌과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과 친밀감과 신뢰감을 주는 옥시토신이 적절히 분비되어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웃음에 따라 신체가 변화된다고 합니다. 뇌에서 엔도르핀 분비가 촉진되고 모르핀 분비가 증가되어 기억력이 향상되고 긴장이 완화된다고 합니다. 심장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억제되어 혈압, 혈당이 정상치가 유지되며 혈액순환이 개선된다고 합니다. 폐에는 신경조직 이완을 통해 폐 속 깊은 곳까지 신선한 산소가 공급된다고 합니다. 위와 간, 대장 등 소화 기관에는 바이러스 저항력을 증가시켜 각종 소화기 암을 예방해 준다고 합니다. 엔도르핀 증가로 요통이나 디스크의 통증 완화 시켜주고 억제한다고 합니다. 웃으면 혈액에는 면역기능 증가, 암세포 공격,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수치를 감소시켜 건강하게 한다고 합니다. 웃는 사람이 실제로 웃지 않는 사람보다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눈이 기뻐하면 얼굴도 기뻐하게 되고, 마음이 기뻐하면 인생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내가 웃으면 거울도 웃은 것입니다. 로사다 비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긍정적 단어 대 부정적 단어의 비율이 2.9대 1보다 높은 사람이 잘 산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부르는 4가지 행동은 비판, 경멸, 방어, 벽쌓기라고 말하는 존 고트먼은 부부들의 주말 대화를 분석한 결과, 긍정과 부정이 2.9대 1의 비율에 이르면 이혼할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다정하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5대 1 정도의 비율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기쁨과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슬픈 말을 하고 슬픈 감정을 가지고 살면 슬픈 인생, 불행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기뻐하라고 했으니 그냥 아부조건 없이 의지적으로 기뻐하며 살면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입이 웃으면 인생이 웃습니다. <내 영혼의 샴페인>이라는 책을 쓴 마이크 메이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두운 성격의 소유자였답니다. 우울한 성격 때문에 20대 후반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고 말았답니다. 하루하루 기쁨이 없는 암담한 삶을 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제 앞으로 90일 동안 주님 안에서 기뻐하겠다.'라고 결단을 하였답니다. 90일 동안 무조건 주 안에서 기뻐하며 감사하기로 결심했답니다. 무조건 기뻐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점검하기 위하여 90일 동안 그에게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90일 동안 억지로 기뻐하기로 실험해 보니까 실제로 기쁨이 밀려오더라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좀처럼 떠나지 않고 자기 내면 안에서 지속적으로 작동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가 앓고 있던 우울증이 치료되었답니다. 입이 웃으면 얼굴이 웃고, 얼굴이 웃으면 마음이 웃습니다. 마음이 웃으면 인생이 웃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기쁨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조건이 있어 기뻐하는 것보다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기뻐하다보면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의 왕, 우리 구세주로 모시고 살면 이 땅에서 참 기쁨을 누리다가 기쁨만 있는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경쟁의 대상도, 우리의 평가의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경배하고 살면 우리는 평생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얻는데 목적을 삼지 않고 예수님께 드리는 기쁨을 누리면 생명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의지적으로 기뻐하고 살면 어려운 세상에서 기쁨을 잃지 않고 평생 기뻐하며 살다 영원한 천국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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