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천국에 갑시다(12) 감사하며 살다 감사로 천국가는 삶
누가복음22:17-20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함께 천국에 갑시다” 12번째로 “감사하며 살다 감사로 천국 가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팀이 1937년부터 72년 동안 '잘사는 삶의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72년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잘 사는 삶의 공식이 바로 '감사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하버드대학에서 행복학을 가르치는 탈 벤 샤하르는 '하버드대 52주 행복 연습'에서 첫 번째로 가르쳐 주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 갖기"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사하는 법을 배웠을 때, 기회, 사람들과의 관계, 심지어 부까지도 내게로 다가왔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습니다. 탈무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대로를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행복하게 사는데 꼭 필요한 말 하나가 있다면 감사라는 것입니다. 빌헤름 웰러가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했듯이 행복은 소유에 정비례하기 보다는 감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이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만큼 인생은 행복해 지고 감사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지수가 높다는 것입니다.
매일 감사를 표현하고 감사일기를 쓰고 감사하고 살면 수많은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뇔르 C.넬슨은 <소망을 이루어 주는 감사의 힘>에서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며,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도모하도록 한다. 진심으로, 의식적으로, 미리 무조건 실천하는 감사는 아무리 견디기 힘든 상황도 가치 있게 여기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따라서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마치 기적처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주 계속해서 “열린편지”로 감사에 대하 말씀을 성도님들에게 보냈는데 감사는 말 중에서 가장 귀한 보석입니다. 감사하면 대인 관계가 좋아지고 결혼 만족도도 높아지며, 감사하면 건강해 진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적인 성공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고 감사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하고 감사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높이고, 변화나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을 높여준다고 합니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킴으로써 건강을 증진시키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하고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킴으로써,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이 넘치도록 만든답니다. 감사는 직업 환경을 향상시키며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이끌며 감사는 사랑을 비롯해 자신이 원하는 인간관계를 끌어올린다고 합니다.
조지타운 대학의 생물 물리학 교수인 캐더스 퍼트(Candace Pert) 박사는 이것을 ‘감정의 분자’라고 명명했습니다. 퍼트 박사는 우리의 뇌는 몸의 다른 부위와 분자 차원에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답니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나 부위, 신경계, 호르몬계, 소화기계, 면역계 등의 조직망은 펩티드(아미노산 화합물)와 특수 메신저인 펩티드 수용체를 통해서 서로 교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는 매초마다 막대한 양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데 감사가 바로 기적의 출발점이고 감사는 축복의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감사는 기적의 문을 열어주고 사랑의 문을 열어주며 형통의 문, 행복의 문을 열어줍니다. 감사는 아름다운 관계를 맺게 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형성시켜 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고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줍니다.
우리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생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통하여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감사라는 말이 155번 이상 언급이 되어 있고 ‘감사하라’고 명령하는 말씀이 33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성경은 진정한 감사는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도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0-31)"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50:23)"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주시십니다(눅17:11-19).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범사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다 감사함으로 천국에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며 살다 감사하며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수많은 감사 책에서 나오는 많은 지혜가 있겠지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감사 모델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감사하며 살다 감사로 천국에 갈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감사로 충만한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감사로 생애가 시작되었고, 감사하는 삶을 사셨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그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성경에는 제가 오늘 주보에 써 놓은 것처럼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불평에 대해 12번 기록해 놓았고 예수님의 감사에 대하여 4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3,4,12 같은 숫자는 단순히 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형용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완전수를 말합니다. 12번의 광야의 불평과 4번의 예수님의 감사기도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감사하며 살다 감사하며 천국에 가야할지를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며 살다 영원한 하늘나라에 감사하며 가야 할까요?
1. 우리는 십자가를 불평하기보다는 십자가를 지는 것을 감사하며 살다 감사로 함께 천국에 가야 합니다(막14:23; 마26:27; 눅22:17,19).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33세의 나이로 얼마 있으면 십자가를 지고 끔찍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처형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 때 무엇을 하십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잔을 받으사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시면서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떡을 가지고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시면서 감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져야 하는 십자가는 몸을 찢어 나누어주고, 피를 쏟아 죄를 사해주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감사하였습니다. 앞으로 한 15시간 후면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당해야 할 십자가의 죽음을 다 아시고도 그 참혹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감사한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감사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땅에서 감사하며 살다 감사하며 천국 갈 것인가의 첫 번째 교훈을 받습니다. 주님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불평의 도구가 아니라 감사의 재료를 받아들이며 죽음의 순간까지도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십자가를 지기를 싫어하고 십자가가 다가오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는 춤을 추며 감사했지만, 자신들이 져야 할 십자가가 다가오면 끊임없이 불평과 원망합니다. 자신들에게 유익과 편리, 기쁨이 있을 때는 감사를 하지만 조그만 불이익이 오고 불편과 불쾌함이 오면 금방 불평과 원망을 하며 지도자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40년 광야 생활하면서 불평과 원망만 계속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가 추격하니까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마라에서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니까, 신 광야에서 양식이 없다고, 르비딤에서 먹을 물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으니까 불평하며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광야 생활이 힘들고 고달프니까 선동자들이 하나님 들으시기에 역겨운 말로 불평과 원망을 하게 합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난 후 가데스 바네아에서 믿음 없는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불평과 원망을 하며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라는 네 사람이 당을 지어 조직적으로 불평하며 모세를 대적합니다. 가데스에서 다시 식수 때문에, 왕의 대로라고 하는 시원한 길을 에돔왕이 비켜주지 않자 마음이 상하여, 광야에는 식물도 물도 없고 박한 음식을 싫어한다며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우리 앞에 십자가가 없는 날이 없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내 이익과 내 편리, 내 기쁨만을 제공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강조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10:38)”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 평생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우리 성도님들 가정과 식구들과 사업, 직장생활을 놓고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눈물이 울컥 나올 정도로 그 성도님이 지신 십자가가 너무 무겁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장애가 있다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어떤 분은 그 자녀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을 절대 그 십자가를 알 수 없습니다. 가족의 질병이나 자신의 질병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거워 하시는 성도님들도 계십니다. 자녀 양육의 십자가, 가족 구원을 위해 지는 십자가, 가정 경제를 어떻게든 일으키려 힘쓰는 십자가, 복음을 위해, 세계 선교를 위해, 교회를 위해, 교회 부흥을 위해 지는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지금 가정에서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지금 직장에서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지금 교회에서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불평의 도구가 아니라 감사의 재료로 짊어지고 당당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당당하게 짊어지고 마지막까지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아시면서 그 죽음을 받아들이며 순종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유카리스테오)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앞으로 당해야할 십자가 고통과 죽음을 다 아시고 계시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거행하는 숙연한 자리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감사하고 또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기념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며 감사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다 이루시고 인류 구속사역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이 땅을 떠날 때까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끝까지 짊어지고 나아가 마침내 예수님처럼 다 완수하고 천국에 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평생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다 감사로 함께 천국에 가야 합니다(마14:17; 막6:41; 눅9:16; 요6:11,23).
예수님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 감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장 적은 것을 가지고 감사했습니다. 지금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환경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했습니다. 벳세다 들녘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여들었습니다. 장정만 5천 명이니까 아마 어린아이들 여인들까지 합하면 족히 1만 명은 넘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푹 빠져 해지는 줄 모르고 사람들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식사 시간은 되었고 빈들인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마을로 보내어 무엇을 사 먹도록 하라고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리가 좋은 빌립이 계산을 하더니 족히 이백 데나리온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회계를 맡은 유다는 난감했을 것입니다.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그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때 안드레가 한 소년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그 소년은 자신이 먹을 도시락 오병이어(五餠二魚)를 예수님께 드렸지만, 안드레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는데, 그것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하며 달리 방도가 없다는 듯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안드레에게 이 수많은 군중을 이 작은 것으로 먹이라고 하느냐고 불평하며 야단을 치지 않았습니다. 혹시 더 어디에 더 음식이 있느냐고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눅9:16)”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풍성하고 많은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있는 것으로 감사하였습니다(마14:19).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먹을 것이 없다고 끊임없이 없는 것을 보며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그들에게 물도 주시고 만나도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사실 그들이 농사지어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것이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수고는 단지 광야에 가서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일을 염려하여 더 만나를 거두어들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더 맛있는 것을 요구하며 불평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있는 것을 보고,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실 것을 확신하면서 있는 것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 모든 사람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만 12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늘 있는 것보고 감사합니까? 늘 없는 것을 보고 불평과 원망을 합니까? 먹는 문제 죽을 때까지 우리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 보면 매일 먹는 밥상 앞에 맛있는 것 없다고 불평 원망하는 아이들 있습니다. 식탁의 불평 원망은 결국 건강을 상실하게 하고 인생의 불평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식탁에서부터 감사가 넘쳐 나야 합니다. 매일 식사를 할 때 작은 음식 하나에도 감사하여야 합니다. 식사할 때 감사기도는 암세포를 줄인다고 합니다. 미국 존 자웨트 박사는 감사기도 호용론을 발표하였습니다. "감사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질병을 예방하는 신비한 백신이 몸 안에서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감사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3가지 장수 물질이 형성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존 박사는 식사할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갖춘 기도를 하게 되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물질인 기도 백신이 생성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항독소(抗毒素)'는 항체 역할을 수행하여 질병의 진행을 막고, 살균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안티셉틴은 위장 내에서 음식물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고, 소화 흡수를 돕는 등 3가지 장수 물질이 생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없는 것을 보면 불평하기 시작하면 평생 불평과 원망만 하며 살다 불평과 원망을 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있는 것을 보며 감사하며 살면 어떤 경우에서도 감사하며 살다 마지막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매일 있는 것을 보며 부모에게 자식에게 이웃에게 감사를 표현하시길 바랍니다. 매일 있은 것을 보며 감사일기를 써 보시길 바랍니다. 삶을 행복해 질 것입니다. 있는 것을 보며 감사하다 보면 감사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감사의 빈도가 많아집니다. 감사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하나님께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에게도 감사하고 애완견이 있어 감사하고, 공기가 있어 감사하고, 지구가 있어 감사하고 점점 더 범위가 넓어집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는 것은 공감 능력이 있다는 것인데 사회적 지능이 공감은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감정의 전염입니다. 둘째는 동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셋째는 관점의 전환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역지사지를 하는 것입니다. 공감의 반경이 점점 넓어지는 것입니다. 감사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에 송아지가 없고 밭에 소산이 없어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하리라”(합 3:17-1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윌리암 캐리는 32세에 인도 선교사로 부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답니다. 그는 공장에 취직하여 인도어 정복에 온힘을 기울였답니다. 성경번역과 더불어 말씀을 전파하고 또 여러 학교를 세웠답니다. 그러나 벵갈에서 7년간 땀 흘렸지만 단 한명의 인도인 개종자가 없었답니다. 그렇지만 낙심하지 않고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므로 그 후 18년간 600명이 세례를 받고 수천 명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대형화재로 인해 수년간 작업하여 완역한 성경 원고와 두 권의 문법책, 다국어 사전들이 소실되었답니다. 캐리는 인도에서 인도어를 공부하여 영인사전을 편찬하였고, 8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인도 성경을 번역하였답니다. 성경을 출판하기 위해 인쇄기를 도입하고 기술자들을 불러 모든 작업 준비를 마쳤답니다. 그런데 캐리가 지방 순회전도를 나간 사이 화재가 발생하여 인쇄기와 성경 번역 원고가 몽땅 불타버렸답니다. 큰 좌절과 절망이 물밀 듯 밀려왔지만, 캐리는 주저 않지 않았답니다. 그는 잿더미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번역이 부족한 것을 아시고 완전하게 다시 번역할 기회를 주신 것으로 알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제게 믿음과 인내와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다시 번역 작업을 시작하여 드디어 1801년 벵갈어 성경을 시작으로 평생 24종의 인도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출판했답니다. 평생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다 감사로 함께 천국에 가는 성도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우리는 평생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며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감사하며 살다 함께 감사하며 천국에 가야 합니다(마11:26; 눅10:21).
예수님이 고라신과 벳세다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장 애쓰며 전도한 마을 사람들이 의외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전도 여행에서 실패의 쓴 맛을 보신 것입니다. 결과는 수모와 멸시뿐이었습니다. 제자들 보기에도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이제까지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 배척을 받은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엑소몰로게오)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6)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아이들이 주님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감사의 이유였습니다. 큰 비중을 두고 애쓴 일이 뜻대로 안 되어 가슴 아팠지만 부스러기 은혜로 아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일이 감사의 조건이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다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모든 결과도 아버지의 뜻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실패를 보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유익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이 밝히 드러날 때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사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면 감사하고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평생 내 뜻 이루려고 살면 불평할 것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살면 매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끝없이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을 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 훈련 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우리를 낮추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과 순종의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광야학교를 통해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믿음과 순종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세 번째 이유는 낮추시고 훈련하여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6)"라고 말씀합니다.
부모들이 이빨 빼는 고통을 감수하고 아이들의 이빨을 빼주는 이유는 아름다운 이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의사가 병든 사람들을 그 쓰라린 고통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수술하는 이유는 건강하게 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훈련을 기록한 욥기에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7)"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신1:29-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 생활같은 인생 길에서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고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실패도 감사하며 살다가 감사로 천국에 다 함께 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4. 우리는 지금 되어진 일을 보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보며 감사하며 살하다가 감사하며 함께 천국에 가야 합니다(요11:41).
베다니(슬픔의 집, 고난의 집이라는 뜻)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광야같이 슬픔과 절망의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받은 나사로가 죽자 비난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이미 죽었다고 슬퍼하며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을 찾으신 후 돌을 옮겨 놓게 하시는 후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1:41-42)” 죽음이라는 비극적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초상 집에서 금기어인 감사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 것을 감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려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기도가 응답될 확신을 감사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사랑하는 자가 죽었다고 불평과 원망을 하는 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낸 죽음을 극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게 하는 것을 보며 감사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죽음에서 살리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죽음과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그들이 믿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이 절망이 아니라 죽음 후에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만드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기도를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명령하셨을 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인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잠자는 것이고 천국에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끊임없이 현재 되어진 일을 보고 불평과 원망을 하였습니다. 마라의 쓴물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 앞에 오아시스를 준비해 놓고 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내려 오지 않으니까 그것만 보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살아난다는 사실일 믿고 바라만 보면 살아나는데 그것을 믿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인간의 인지의 한계, 능력의 한계, 생명의 한계로 말미암아 내 힘으로는 안 되는 현재만 바라보면 불평과 원망을 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은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면 얼마든지 감사하며 살 수 있고 마지막 죽음 앞에서도 감사하며 천국에 소망을 두고 이 땅을 감사하며 떠날 수 있습니다.
저는 로마서 8장 28절에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우리의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심지어는 죽음까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믿습니까?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미래에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릴 때부터 귀신들려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해지는 젊은이를 고치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놓여 있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현재의 불가능을 보면서 원망과 불평하지 말고 결과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소망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여 기도하면 됩니다. 마지막 죽음의 한계 앞에서도 천국에서 눈뜰 것을 감사하며 기도하면 됩니다. 이루어진 것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질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현장에서도 지금 일어난 죽음이라는 슬픔과 절망의 자리에서 불평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되어질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에는 1차원적 감사, 2차원적 감사, 3차원적 감사가 있습니다. 1차원적 감사는 조건부 감사입니다. 만약에 감사입니다(if). 만약 잘되면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거나 더 많이 갖게 되면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항상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을 불평하는 어린아이 수준의 감사입니다.
2차원적 감사는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Because)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상대방과 비교하되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이 받은 것을 감사하는 단계로 대부분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3차원적인 감사는 불행을 당해도, 힘들어도, 어려워도, 절망가운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감사하는 수준으로,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범사에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스펄젼의 감사 이야기입니다. 스펄젼은 40세 이후부터 통풍에 몹시 시달렸답니다. 약이 발달되지 않은 때라 그 무서운 고통을 견뎌야 했답니다. 한번은 그가 통증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데 믿음 좋은 그의 교회 성도 한 사람이 찾아 왔답니다. 그리고 스펄젼에게 이렇게 물었답니다. “목사님 통풍으로 몹시 아픈 이 순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예, 감사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이 병이 나은 후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 성도는 조용하지만 무게 있는 말로 이렇게 조언했답니다. “목사님 지금 몸이 아플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그 아픈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 그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 말에 스펄젼은 참으로 감명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신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답니다. “주님, 이 미련한 것을 사랑해 주셔서 성도로부터 권면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성도들을 향해서 설교하는 것만 알았지, 저 스스로에게 설교를 하지 못한 죄를 깨닫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부족한 것을 그대로 쓸모 있게 여기시고 저를 사랑하는 성도가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급하셨으면, 성도를 통하여 저를 깨닫게 해주시나이까? 제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일진대 통풍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통풍을 통해서 일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손을 주목하도록 해 주십시오. 이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스펄젼의 고통은 기도 이후에도 계속되었답니다. 그러나 감사의 기도를 한 뒤로부터는 통풍보다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다스려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고 살았답니다. 그 후 스펄젼은 작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하며 살게 되었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펄젼의 감사기도 내용입니다. “촛불을 두고 감사하면 전깃불을 주시고, 전깃불을 두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두고 감사하는 자는 태양 빛을 주시고, 태양 빛을 두고 감사하는 자는 촛불도, 전깃불도, 달빛도, 태양빛도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
우리 성도님들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처럼 지금 되어진 일을 보며 불평과 원망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앞으로 이루실 하나님이 일을 보며 감사하며 살다 마지막 감사하며 천국에 함께 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감사의 모델이십니다. 예수님은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 앞에서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있는 것을 보며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실패 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슬픔의 자리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감사했습니다.
12번에 걸쳐 “함께 천국갑시다”라는 긴 시리즈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 지고 있는 십자가를 불평하기보다는 십자가를 지는 것을 감사하며 살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감사로 천국에 가시길 바랍니다(막14:23; 마26:27; 눅22:17,19).
우리 성도님들은 평생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감사로 천국에 가시길 바랍니다(마14:17; 막6:41; 눅9:16; 요6:11,23).
우리 성도님들은 평생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며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감사하며 살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감사하며 천국에 가시기를 바랍니다(마11:26; 눅10:21).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 되어진 일을 보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보며 감사하며 살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천국 가시길 바랍니다.(요11:41).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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