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함께 천국에 갑시다(10) 복된 늙음(디모데후서4:7-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9225 추천수:10 220.120.123.244
2021-11-07 15:57:36

함께 천국에 갑시다(10) 복된 늙음

디모데후서4:7-8

 

우리 성도님이 100살까지 살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들은 이제 100세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통계 전문가인 고려대 박유성 교수의 추계에 의하면 2000년 출생자인 경우 대략 세 중 한 명(33%), 1990년 출생자는 넷 중 한 명(25%), 1980년 출생자는 다섯명 중의 한 명(20%), 1970년 출생자는 일곱명 중의 한 명(14%)은 100세를 넘길 것이라고 합니다. 80세까지 생존 확률 여성 81%·남성 62%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60살 정년제가 법제화되어 있고 직장인이 체감하는 평균 퇴직 연령은 50살 언저리이고, 실제 평균 은퇴 나이가 63세쯤 된다고 합니다. 65세가 되면 국가에서 기초노령연금 등 60여가지 혜택이 공식적으로 주어지고 노인 대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날이 길어짐에 따라 노년 생활이 30-40년이 되어 집니다. 이 긴 노년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고 천국에 가야 하겠습니까?

지난 주에 “함께 천국 갑시다” 시리즈 설교 9번째로 복된 죽음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음 후에 가는 천국이 있으므로 가장 복된 죽음은 주님 안에서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10번째로 “복된 늙음”입니다. 영어로는 잘 사는 것, 복되게 사는 것을 “웰 빙(Well-being)”이라고 합니다. 복된 죽음, 잘 죽는 것을 영어로는 “웰 다잉(Well-dying)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복된 늙음, 잘 늙는 것을 “웰 에이징(Well-aging)”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잘 늙고 행복하게 아름답게 늙어 천국에 가겠습니까? 노년을 추하고 불행하게 보내지 않고 품위 있게, 행복하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기본은 육체적 건강입니다. 질병과 장애로부터 우리의 몸을 지켜야 합니다. 세계 보건기구가 권장하는 것처럼 첫째는 균형잡힌 영양, 둘째는 규칙적인 운동, 셋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스트레스 관리 넷째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노년 건강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몸만 건강하다고 복된 노년, 아름답고 품위 있는 노년을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에 보면 몸은 건강한데 얼마나 추하게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품위 있는 노년, 복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또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노인문제 전문가들에 의하면 대부분의 젊은이는 노인의 웃는 얼굴, 단정한 옷차림, 배움에 몰두하는 모습, 양보하는 모습,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잡고 걸아가는 모습, 남을 칭찬하고 건강관리를 잘하는 모습, 새로운 것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모습을 볼 때 '멋진 어르신'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반면 노인들이 공중도덕을 무시할 때, 냄새 날 때, 목소리가 클 때, 양보했는데 인사 한마디 없을 때, 남녀 차별할 때, 고집불통일 때, 자기 말만 할 때 눈살을 찌푸린다고 합니다. 몸도 늙었는데 마음도 늙어 사랑도 여유도, 용서도, 아량도, 부드러움도 없는 것입니다.

잘 늙기 위해서는 먼저 '노년의 롤 모델(role model)'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웰 에이징(well-aging)을 위해 닮고 싶은 노년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꼭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건강관리는 누구처럼, 경제생활은 누구처럼, 신앙생활은 누구처럼, 부부생활은 누구처럼, 외모는 누구처럼, 배움과 봉사활동은 누구처럼 등, 자신만의 모델을 만들어 하나씩 닮아가려는 노력이 그 첫걸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님은 노년을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있습니까? “저분처럼 품위 있게 늙고 싶다. 저분처럼 아름답게 늙고 싶다. 저분처럼 복되게 늙고 싶다. 저분처럼 고상하게 늙고 싶다. 저분처럼 잘 늙고 싶다. 저분처럼 웰 에이징하고 싶다.”라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이 될 수도 있고, 모세가 될 수도 있고, 갈렙이 될 수도 있고, 느헤미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바울의 모델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늙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고 천국에 함께 갈 것인가를 교훈받고자 합니다. 디모데 전서는 바울이 노년에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예견하고 아들처럼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보낸 유언적 편지입니다. 어떤 늙음이 복된 늙음, 품위 있는 늙음, 아름다운 늙음이겠습니까?

 

1. 우리는 죽은 후에 내세 천국이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늙어가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도 예외 없이 늙음의 과정을 거쳐갑니다. 그때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차원이 다른 노년을 보냅니다. 늙음에는 4대 고통이라는 불청객이 찾아 옵니다. 첫째는 질병입니다. 우리 나라 만 65세 이상 노인의 약 3/4은 그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한 두 가지 만성병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관절염,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동맥경화, 골다공증 등이 대부분이며 그밖에 암과 내부 기관의 쇠약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둘째는 고독감이라고 합니다. 늘 텔레비전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의 질병인 우울증, 인지장애, 무기력, 불안증이 찾아옵니다. 셋째는 경제적 빈곤입니다. 경제력이 상실되어 우리나라 노인 64.5%는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넷째는 역할상실입니다. 사회적 지위 상실입니다. 어디에 가도 환영해 주지 않고 할 일이 없습니다. 내적 상실로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 무력감과 자아 개념의 상실 등이 찾아 옵니다. 그래서 성격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식들도 “아버지가 왜 저래, 어머니가 변했어”라고 말할 정도로 성격의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경직성의 증가로 변화되고 쇠퇴한 자신의 삶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에 갖고 있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과 삶의 자세를 비합리적으로 고집하게 됩니다. 늙어갈수록 친근한 사물이나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에 애착심이 증가되어 유산을 남기려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의존성이 증가되어 신체적, 경제적 의존성이 강해집니다. 늙으면 건강과 돈이 최고라고 말하며 오직 건강과 돈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성, 보수성, 시기와 질투, 유연성과 융통성의 결여, 적응력의 저하, 불안, 무감각이 높아지고, 고집이 세어지고 억압하려는 경향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노화에 저항하고,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이른바 항노화, 노화 방지로 표현되는 안티에이징(Anti-aging)을 하는 것입니다. 노년을 저주로 받아들이며 인위적 방법으로 생명의 노정에 반항하면서 노화의 과정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노년의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노화를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년에 가장 삶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노년기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단계입니다. 죽음의 무게가 청년 때보다 몇 배 무겁게 느껴지고 피부에 다가옵니다. 죽음이 일상적인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시기입니다. 노인의 경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른 연령층보다 많으며 심리적인 불안들이 바로 죽음 불안과 공포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노년기에는 배우자의 사별, 퇴직, 신체기능 및 생산성의 저하, 죽음의 임박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중 죽음이라는 특별한 문제가 당면과제로 부각됩니다.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공포, 죽음 이후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인생의 마지막 기간인 노년을 행복하고 품위 있고 아름답게 살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노년을 저주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노년을 저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노쇠하지만 영적으로는 오히려 생명이 약동하고 날로 새로워지는 시기입니다. 사람의 연령은 4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자연연령, 건강연령, 정신연령, 영혼연령입니다. 영국의 노인 심리학자 브롬리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보낸다."라고 했듯이 자연 연령은 시간이 지나면 늙어갑니다. 그러나 천국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더욱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년의 시기를 결코 저주와 불행의 시기라고 말씀하시 않습니다. 노년도 하나님의 은총의 시기입니다.

잠언 16: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요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하였고, 잠언 20:29절에서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노년은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증언하며 살아야 할 사명의 시기로 결코 흰머리의 노년은 슬퍼하고 기피할 것이 아닙니다. 노인을 영광스러운 존재로 백발의 면류관은 이 땅의 왕에게서 받을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에게서 받으며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였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노인의 시기는 젊은이들에게 짐이 되거나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자학하는 고통이나 소외의 시기가 아니며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을 받은 시기이며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생의 참다운 기쁨을 누리는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노년은 하나님의 은총을 증언해야 하는 기회의 시기, 사명의 시기입니다(시92:14-15) 노인은 임종에 즈음하여 후손들에게 유언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며 과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감사하고 후손들이 바른 신앙을 지킬 것을 당부했으며 자녀들에게 마지막으로 축복하는 시기입니다(신33장, 창27장). 성경에서 말하는 노인은 이 땅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지키고 믿음의 본을 보이며 후손들에게 믿음으로 축복을 해주는 귀중한 사명과 특권이 주어져 있으므로 노년의 부모가 그 자녀들을 위해 배후에서 쉬지 않고 기도해 주며 임종에 이르러 그 자손들을 축복해 주는 것은 노년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복입니다.

노년은 지혜가 원숙해 지는 시기입니다. 신명기 32:7절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라고 했습니다(예레미야 6:16 잠언 23:10) 노년은 초라한 시기가 아니라 영적 성숙의 시기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노쇠하지만 신앙의 깊은 경지, 즉 체험적인 신앙과 변함없는 인내로 영적 성숙함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때문에 초대 교회에서는 장로와 감독의 직분을 노인들에게 맡겨 모든 사람들의 사표가 되게 하였습니다. 고린도 후서 4:16절의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했습니다. 노년기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시기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시기, 존경과 공경의 시기, 지혜의 상징 그리고 영적 성숙의 시기입니다. “백발은 빛나는 면류관, 착하게 살아야 그것을 얻는다”(잠16:31)는 말씀처럼 노화를 죽음을 향한 과정으로 보는 것보다 천국의 상급을 향한 영원을 향한 출발로 보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노년을 환영하고 노년만이 주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늙음도 영원한 천국에 가는 한 과정이고, 삶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창조물로 지음받은 목적대로 끝까지 주신 사명 붙들고 완주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노년에 고백한 말씀입니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의 고백입니다.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노년에 손자 손녀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 전용 실버타운에서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는 것도 아닙니다. 질병 하나 없이 세계 여행을 다니며 노년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도 아닙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년기 마지막까지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품위 있는 노년,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 이후에도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 어떤 것이 주어질 것으로 소망하고 있습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 평가해 주실 날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불의한 네로 황제에 의해 불의하게 체포되었고 로마의 법정은 그를 불의하게 단죄 하였지만, 진정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바울에게 상급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의하게 바울을 단죄했지만 세상은 불공평하게 바울을 대접했지만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의 면류관으로 바울에게 상주실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믿은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7)"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 죽음 이후에 천국이 있고 천국에 가면 상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노년의 삶에 병이 찾아와도, 경제적으로 가난해도, 사별하고 홀로 살아도, 명예와 권력이 없어도, 자식 없이 독신으로 살았어도, 장애를 가지고 살아도, 공공근로를 하며 살아도,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을 받고 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살면 죽음을 초월한 복된 노년기를 보낼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인생의 종착역까지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며 늙어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바울이 마지막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세 가지 단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아들처럼 사랑했던 디모데에게 유언적인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6절의 관제라는 것은 번제나 속죄제, 낙헌제 등과 같은 제물을 드릴 때 마지막 절차로 포도주를 붓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 다 하나님께 부어드려졌고 이제 떠날 시각에 이르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싸우고" "마치고" "지켰다"라는 것입니다. 문법적으로는 완료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때 일관성 있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워왔다. 내가 노정을 마쳐 왔다. 내가 믿음을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노년에도 노욕에 사로잡혀 악한 싸움을 한다면 불행하고 추할 뿐입니다.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노년의 행복한 라이프 스타일 <노년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쓴 김열규씨는 정신이 원숙해지고 지식이 완숙해지는 노년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황금기이며 노익장을 과시할 수 있는 황홀한 시기라고 말합니다. 노년이란 생의 마무리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고, 불안과 우울이 아닌 희망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평생을 90년이라 한다면, 3분의 1인 노년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양을 쌓으며 정신과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과 5권을 말합니다.

1금이 잔소리와 군소리를 삼가라입니다. 투덜대기, 투정부리기, 삐쭉거리기, 구시렁대기, 중얼대기, 넋두리하기 등등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금이 노하지 말라입니다. 노년의 '노(老)'가 노기(怒氣)의 '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년에 노기를 터뜨리면 정말 꼴사나워진다는 것입니다. 3금은 기죽는 소리는 하지 말라입니다. 가난하다고 병들었다고 없다고 스스로 기죽은 꼴은 노년으로서는 차마 할 짓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4금은 노탐을 부리지 말라입니다. 참 묘하게도 노년이 되면 투덜대고 구시렁대면서 기가 꺾이는 한편, 허욕이나 탐욕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노탐은 탐스러운 구석이 한 곳도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 보람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나 부작용만 있고 인품까지 억망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음식이나 옷가지 등에 대한 노탐도 문제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식탐이 제일 말썽이라고 합니다. 5금은 어제를 돌아보지 말라입니다. "그때 난 이렇고 저렇고 했는데……." "내가 한창일 때는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내가 소싯적에는……."이런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버린 시간 때문에 현재의 시간을 꼴사납게 만들진 말라는 것입니다.

5권은 유유자적(큰 강물이 흐르듯 차분하라), 달관(두루두루 관대하라), 소식(소탈한 식사가 천하의 맛이다) 생각(머리와 가슴으로 세상의 이치를 헤아려라), 운동(자주 많이 움직여라)라고 말합니다.

노년이 되면 아이들 결혼하여 부부만 남습니다. 그러면 인생 주기로 보면 자녀에 대한 사명은 거의 끝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눈을 돌려야 합니다. 노년에까지 차고 넘치도록 쌓아 놓고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자식들에게 얼마나 더 남겨 줄까를 놓고 싸우면 행복한 노후가 될 수 없습니다. 품위 있는 늙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세상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이만큼 살았으면 자신이 떠난 후에도 세상을 조금은 아름답고 품위 있게 만드는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노년의 노(老)는 어떤 말이 붙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말이 될 수도 있고 추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노망, 노쇠, 노약 등은 반갑잖은 말이지만 노숙, 노련, 노장 등은 아름다운 말입니다. 선택은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바울은 늙어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여기서 "싸움(아고나)"는 고대 헬라 사회에서 운동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경기를 벌일 때 상황 자체를 지칭하는 것입니다(고전9:24,25) 상징적으로 사용될 때는 삶의 여정을 말합니다(히12:1).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는 삶에 있어서 정신적 갈등이나 투쟁을 말합니다(살전2:2). 바울은 복음을 반대하는 세력과 가난과 질병과 자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저 침묵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이해 근본적인 싸움, 영적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황제가 신으로 추앙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이 짓밟힌 세상에 복음으로 새로워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까지도 싸웠습니다.

우리가 평생 싸워야 선한 싸움은 무엇이겠습니까? 엡6:12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때로는 광명의 천사로 때로는 우는 사자로 나타나는 사탄이 우리의 싸움의 대상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노년이 이 싸움에서 실패했습니다. 솔로몬도 이 싸움에서 노년에 실패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이 노년에 이 싸움에서 실패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들을 보면 대부분 끝이 좋지 않습니다. 노아도 이 싸움에서 노년에 실패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에서 노년에 실패하고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합니다. 우리 나라의 대통령들을 보십시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적 영웅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이나 미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양아들 이기붕 부통령의 아들 이강석씨는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호가호위하다가 4.19 혁명 이후 자기 아버지 이기붕을 살해하고 자살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부인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자신도 총으로 권력을 잡았다 총에 의해 끝마무리를 당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로 끝을 마감했습니다. 지금 두 전직 대통령은 노년에 감옥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끝이 좋아야 합니다. 정치도, 사업도, 연애도, 공부도, 대인관계도, 신앙생활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물건도 끝이 좋아야 명품이 됩니다. 끝마무리 1%의 수고가 들어가지만 100%의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좋은 영화는 마지막 장면이 좋습니다. 좋은 소설은 결말이 아름답습니다. 좋은 물건은 끝마무리가 깔끔하고, 좋은 회사는 끝까지 책임지며, 좋은 경기는 끝이 좋습니다. 좋은 사랑은 끝까지 아름답고, 끝이 좋아야 명품, 명인, 명가가 됩니다. 결혼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부부도 끝이 좋아야 아름답습니다. 끝이 아름답게 남아야 인생도 아름답게 남습니다. 노년이 복되고 노년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노년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얼마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80부터 120살까지 끝마무리를 잘 했습니까? 노년이 추했다면 모세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복음을 더욱 확장되었고 바울이 전한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노예제도가 없어지고 여성과 장애인들이 사람대우를 받고, 권력을 횡포가 살아졌습니다.

이 선한 싸움을 무엇으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디모데 전저 1:18절을 보면 그 싸움을 이기는 비법이 나와 있습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마지막 3년이 우리에게 노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년의 시작에 40일 동안 금식기도할 때 선한 싸움에서 사탄을 말씀을 물리쳐 승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겟세마네 기도에서도, 십자가에서도 말씀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십자가의 7마디 말씀도 이미 구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말씀을 응하는 삶을 사시며 인류 구원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노년이라고 사탄이 우리를 보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노년에 말씀 붙들고 끝까지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복된 노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우리는 숨 멈추는 순간까지 사명을 끝까지 붙들고 늙어가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톤 드로몬 테텔레카)에서 달려 갈 길은 헬라 운동 경기장의 트렉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비유적으로 사람의 생애나 인생 여정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행13:25; 20:24). 마치다(테텔레카)라는 말은 "마치다. 완정한다. 결론짓다"라는 뜻입니다. 즉 복음 증거 사명을 노년 마지막까지 완주했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이 사역을 막기 위하여 때로는 광풍과 바다 광야 등의 환경을 통하여 때로는 동족 유대인과 권력자 이방인을 통하여 때로는 자신의 질병과 연약함을 통하여 포기시키려고 했습니다(고후11:24-27).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때 어느 한 순간만 포기해버렸다면 그는 노년에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노년에 사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름답고, 복되고, 품위 있는 노년입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Kal Hilthey)는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고 했습니다.

<멋지게 나이 드는 기술(존 레인 저)>“열정보다 오래 사는 비결은 없다. 노년은 자아실현을 위한 완벽한 기회다”라고 말합니다. 예이츠 “노인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죽음이라는 드레스를 입은 이 무용지물에 가까운 존재는 영혼이 손뼉을 쳐주고 큰 소리로 노래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넝마를 걸친 막대기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의사이자 선교사, 아프리카 탐험가로 평생을 바친 리빙스턴은 밀림을 탐험할 때 맹수의 습격을 받아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를 따르던 조수가, "선생님 돌아가실 뻔 했죠?"라고 말했을 때 리빙스턴이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아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그것이 끝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우리도 노년을 이렇게 보내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우리가 죽을 때까지 붙들어야 할 사명은 크세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복음 전함의 사명입니다. 대위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부른 이유이고, 제자들을 부른 이유입니다. 사람낚는 어부로 불렀고, 부활하신 후에도, 승천하시기 전에도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이 사명 노년에 이루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손자에게, 친척에게, 이웃에게, 아파트 주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사명이 아직 있다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그것 다 이루고 천국 가야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인류 구원 사역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둘째는 일에 대한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문화명령을 주셨습니다. 땅에 있는 것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교회 직분으로, 회사 직책으로, 가정에서 가족 구성으로 사회에서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일 들이 다 주어집니다. 각자에게 주어지 일에 대한 사명을 노년에 다 이루어야 합니다. 그 일이 있다면 아직 천국 갈 때가 아닙니다. 열달란트을 받았던, 다섯달란트를 받았던, 한 달란트를 받았던 다 주어진 일에 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노년에 노년에 맞는 일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이루는 노년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사랑의 사명입니다. 대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람하라고 했는데 마지막까지 사랑할 대상이 있다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그런데 노년이 되면 사랑할 대상이 없어집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자신만 아는 것처럼 노년이 되면 자기 밖에 모르게 되어집니다. 내게 사랑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은 이제 천국에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직 사랑해야할 대상이 있다면 이 땅에 더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노년에도 전도의 사명, 일에 대한 사명, 사랑의 사명을 가지고 살면 노년을 복되고 우아하고 품위 있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제가 금요일 열린편지에 쓴 것처럼 가을 단풍은 초라하지 않습니다. 늙어 다끝났다고 살면 안됩니다. 시성이라 칭함받는 밀턴은 만년의 20년 동안 두 눈의 실명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그 숭고한 시문을 수많이 엮어냈습니다. 악성이라 칭함받는 베토벤은 만년의 15년 동안 전혀 듣지 못한 청각장애우였지만 죽을 때까지 작곡의 길에 정진하였습니다. 밀턴이나 베토벤의 열정이 노년에 <실락원>과 <제9 교향곡>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괴테가 <파우스트>을 완성한 것도 여든이 넘어서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일흔 살 때 완성했습니다. 그는 89세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조각하는 칼을 들고 그의 작품에 손을 댔습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 등도 고희(古稀)의 나이를 넘어 불후(不朽)의 명곡을 작곡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가곡 작곡가 쥬제페 베르디는 그의 불후의 명작 <아베마리아>를 85세에 작곡했고, 그랜드마 모제스는 77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99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기묘하고 호감을 주는 좋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이 노년까지 사명을 이루고 사는 데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까? 외적인 적보다 내적 적이 더 힘겨운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합니다. 설교 못한다고 비난합니다. 돈 좋아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럴 때 포기했다면 그는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사명을 이루는 데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큰 방해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노년에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의 모습을 보십시오. 1장 15절을 보십시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부겔로와 허모게네입니다. 2장 17절을 보십시오. 후메내오와 빌레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악성 종양과 같은 말을 합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합니다. 4장 10절을 보십시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버렸습니다. 4장 14절을 보십시오. 구리세공업자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포기해 버린다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4장 14절을 보십시오. 주님게 다 맡겨 버립니다. 4장 16절을 보십시오. 다 버렸지만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는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장 19절을 보십시오.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만한 브르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오네시보로가 있었습니다. 4장 11절을 보십시오. 누가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순교한 후 모든 것을 맡길만한 영적 아들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힘없는 자신의 말을 순종하는 두기고가 있었습니다(4:12). 무엇보다 누가 있었습니까? 4장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이 계셨습니다. 그 주님이 노년에도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그 주님이 노년에도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말씀을 온전히 전파하게 하고, 그 주님이 노년에도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이방인에게 듣게 하시고, 그 주님이 노년에도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사자의 입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4장 18절을 보십시오.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시고 천국에 이르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 이루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안디옥 구브로 밤빌리아. 버가,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노년이 복된 노년이 되려면 늙었다고 사명을 중감에 포기하지 말고 다 이루어야 합니다. 수많은 신앙의 인물들이 노년에 늙었다는 이유로 중간에 사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윗도 모세, 갈렙도 늙었다고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도 마지막 숨 멈추는 순간까지 사명을 이루시다 마지막 날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며 천국에 가시길 바랍니다.

 

4. 우리는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며 늙어야 합니다.

"믿음을 지켰으니(텐 피스틴 테테레카)"라는 말은 경기에 임한 자가 경기 규칙을 준수하듯, 군인이 상관에게 충성하듯, 청지기가 자신의 주인에게 순종하듯 주의 일을 하면서 믿음으로 일평생 사역을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어떤 경우도 일관성 있게 믿음으로 사역을 했다는 말입니다. "지켰다"라는 표현은 본래 보물을 관리할 때 사용되었던 단어라고 합니다. 믿음을 보물처럼 지켰다는 것입니다. 노년까지 믿음을 보물처럼 귀중하게 생각하며 잃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 바울의 삶의 원리는 믿음이엇고 노년이 되었다고 그 믿음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자족하고, 믿음으로 풍요를 누리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노년이 되면 세상은 자꾸 믿음이 아닌 다른 길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디모데 후서 4장 3절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바른 교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를 못 견디어 한다는 것입니다. 귀를 가리워 버리는 것입니다. 진리가 현실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3장 2절 이하를 보십시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노년이 되면 자기가 최고이고 자기 자랑에 빠져 버리기 쉽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년이 되면 더욱 돈을 사랑합니다. 자랑하고 교만합니다. 비방하기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이게 진리를 전하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진리에 대하여 받아들이기 못하고 자신이 기준이 되어 참된 진리를 배척합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감각이 무디어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하는데 부추겨 주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만 좋아합니다. 진리와 비슷한 헌탄한 이야기를 따릅니다. 사람에게는 지루함을 못 견디는 속성이 있습니다. <앙드레 모루아>의 '나이 드는 기술'이란 책이 있습니다. 예술 중에 가장 어려운 예술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앙드레 모루아는 사람이 능숙하게 나이 들어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나이를 먹지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활동에 의하여 노화를 면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아직 할 일이 있는 동안은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쉽게 늙지 않습니다. 둘째는 늙는 것을 받아 드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노년은 모든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는 시기, 모든 짐을 내려놓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웬수처럼이 아니라 친구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투르게 나이 먹는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그 중에 가장 꼴 볼견은 자기에게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악착같이 붙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늙어지면 아무리 붙들려고 해고 다 떨어져 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신앙인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노년에도 믿음으로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65세에 사업 실패, 105달러의 사회보장연금으로 생활 연명하였으나 74세에 600여개의 체인점 사장으로 재기 성공하였고, 90세에 전 세계 80여 개국에 체인점 설립한 '켄터키 할아버지' 로도 유명한 KFC의 창업자 커넬 할랜드 샌더스 이야기입니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답니다.

커넬이 12살 때, 그의 어머니마저 재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40살에는 아들이 죽는 슬픔을 겪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주유소를 지나가던 한 손님의 내 뱉은 "이 마을에는 먹을 것이 없어!" 라는 한 마디의 불평을 듣고 주유소에서 안 쓰는 창고에서 닭튀김 요리를 시작한 것입니다.

사업은 망했고 정신병까지 앓고 정신병 때문에 결국 사랑하던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65세였답니다.

절망과 낙심과 상처 속에 괴로와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오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따라가 보니 조그마한 교회 예배당이었답니다.

그 예배당 앞에 어떤 한 미친 여자가 앉아서 너무나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를 부는 것입니다.

커넬 샌더스는 그 여자 옆에 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주님, 이곳에도 주님이 계시는 군요. 미친 여자가 있는 바로 이곳에도, 주님은 계시는 군요. 제가 평생 예수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그는 정신병이 나았고 길거리에서 KFC라는 간판을 붙여 놓고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게 불티나게 팔렸답니다.

돈이 아니라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 생각하며 음식을 만든 것입니다. 그는 가난하고 불쌍하고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비로 수익금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였답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자기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신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어 삶의 진정한 행복과 영원의 축복을 소유하게 되기를 권고하는데 남은 인생을 살았답니다. 그는 다니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늘 이사야서 50장 15절의 말씀을 이야기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이사야 50장 15절)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우리는 평생 믿음을 붙들고 노년을 아름답고 복되고 우아하게 보내야 합니다. 그 비결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우수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3대 문제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인생아 너는 어디서 왔느냐?" "인생아 너는 무엇을 하느냐?" "인생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분명히 알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노년을 거처 다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년은 축복이고 노년을 복되게 보내려면

첫째, 죽은 후에 내세 천국이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늙는 늙음이어야 합니다.

둘째, 인생의 종착역까지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늙음이어야 합니다.

셋째, 사명을 끝까지 붙들고 늙어가는 늙음이어야 합니다.

넷째,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는 늙음이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11.7.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