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천국에 갑시다(8) 사나 죽으나
고린도후서5:9
지금까지 지구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한 번에 다시 살아난다면 얼마나 될까요? 과학자들은 약 1천 82억 명으로 추정한답니다. 지금 79억 명 정도가 되니까 역사 속에 살았던 인류의 7% 정도가 현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 많은 사람들을 세 가지로 분류를 했습니다. 첫째는 거미형 인간입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인간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개미형 인간입니다. 부지런하고 단결심도 강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개인주의가 강한 사람으로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꿀벌형 인간입니다. 조직적으로 강하고 부지런 하지만 꿀을 만들어 자기들도 먹지만 대부분 주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꼭 필요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유형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세상에는 꼭 있어야 할 사람, 그 사람이 조금 더 이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세기 신앙인 중 그런 신앙의 사람 세 명을 뽑으라면 사람들은 20세기 최고의 설교가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이며 문필가는 영국인 씨 에스 루이스, 20세기 최고의 복음 가수는 미국인 흑인 여 가수인 마할리아 잭슨을 뽑기도 합니다. 그 중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잠까 소개하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가난한 집에 태어났는데 어릴 때 꿈은 오직 “의사가 되겠다”는 것이었답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26세에 왕립의학협회로부터 의학 박사학위를 받고 촉망받는 영국 황실 의사가 되어 꿈을 이루었답니다. 그가 의학계에 계속 머물러 있었더라면 부와 명예가 그를 따랐을 것이고, 유명하고 성공한 의사가 되어 자신을 기쁘게 하는 안락한 삶을 충분히 살았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20세 중반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회심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바라시는 것이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영혼의 질병을 고치는 의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40세에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답니다. 당시 의사로서 연봉 최소 2500 파운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연봉 225 파운드에 허름한 노동자가 사는 집에 살며 그의 고향인 웨일즈의 조그마한 교회의 설교자로 12년 동안 섬겼습니다. 스펄전도 기억력이 뛰어나 성도 5천여명의 이름과 개인사를 다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로이드 존스도 기억력이 대단해 성경 전체를 다 꿰뚫어 알고 5년 전에 만난 사람들의 얼굴뿐 아니라 대화까지도 다 기억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후 런던 중심가 웨스터민스터 채플에서 30년 간 목회자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아는 것만이 우리들의 목표이어야 합니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목표 미달입니다.”라고 말하며, 신앙생활은 "종교 오락" “소비자들의 니즈을 채우는 종교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80세가 넘도록 목회 사역을 했던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나이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역시 늙어 병이 들어 임종이 임박한 상황에서 병상에 누워 있었답니다. 한 후배 목사님이 그를 찾아가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질문했답니다. “목사님, 한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사셨는데 평생 마음속에 담고 있던 가장 진지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서슴없이 목사님은 “나에게 한 가지 진지한 생각이 있었지. 그것은 내가 목사로서 일하다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텐데, 그때 하나님께서 나의 한 생을 돌아보시면서 어떻게 평가하실지가 가장 진지한 질문이었다네.”라고 말했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심판대 앞에서 나를 보고 “너, 한평생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구나”라고 칭찬하실 것인지, 아니면 “너, 목사가 되어 한평생 너 자신의 성공과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았구나”라고 책망을 하실 것인지 이것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이 이 땅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고 죽은 후에 내세 즉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임박할 때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미 살아서 천국을 체험한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5장 10절 말씀을 큰 소리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언젠가 결산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땅의 삶이 이 땅의 삶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서 결산을 받을 때가 있다는 엄중한 사실입니다.
마지막 결산을 받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평가를 받겠습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평가를 받겠습니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라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아니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30)"라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너 한 평생 내가 준 시간과 재능, 물질을 통해 너만 기쁘게 하는 생활 잘하다 왔구나”라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까? “너 한 평생 내가 준 시간과 재능, 물질을 통해 나를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하고 왔구나”하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까?
신비하게도 살아서 천국을 직접 체험했고, 언젠가 그 천국에 갈 것을 확실하게 믿고 살았던 바울은 어떻게 살겠다고 말씀합니까? 오늘 본문 9절 다시 한번 크게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몸으로 있던지 떠나든지라는 말은 살든지 죽던지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것은 이 땅에 산다는 것이고 떠난다는 것은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산다는 말입니다.
“힘쓴다”는 말은 한번 해본다거나 노력해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갈망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전념하다” 등의 뜻을 가진 말로 간절히 전념한다는 말입니다. 힘쓴다는 말은 ‘필로티무메다’를 번역한 말로 ‘사랑하다’라는 뜻이 있는 형용사 ‘필로스’와 ‘존경’, ‘영예’란 뜻이 있는 명사 ‘티메’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본래 ‘명예를 추구하다’, ‘야망이 있다’(살전4:11;고후5:9;롬15 20)라는 뜻을 지닌 ‘필로티메오마이’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어떠한 자리에 있든지, 어느 때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야망이어야 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야망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난의 자리에, 때로는 죽음의 위기에, 때로는 자존심 상한 자리에, 때로는 오해받는 자리에, 때로는 죽음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고난을 견디는 것도 주님을 기쁘시게(고후4:8,9) 하기 때문이고,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미련 없이 담대할 수 있는 것도 목표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에서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바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가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을 보면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지금까지 내가 사람을 기쁨을 구하였다면 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 기쁘게 하는 삶 보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보다 사람이 알아주든 알아 주지 않든, 자신이 손해가 되든 이익이 되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때로는 기적을 일으켜 하나님처럼 칭송받는 자리에 올라가기도 했고, 때로는 감옥에 가기도 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인생의 목표는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데 있었습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볼록랜즈로 초점을 맞출 때 종이를 태우듯 단순한 사고가 인생을 힘있게 합니다. 세상 어떻게 변하든 주님을 기뻐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겠다는 단순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면 죽든지 살든지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때이지만 우리 성도님들을 보면 그렇게 사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주도 주일은 직장 문제로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데 주중에 교회에 나와 교회 화단에 있는 나무 전지를 하고 교회 휴식처 공간을 깨끗이 정리해 놓고 가시는 집사님들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몸이 아픈데도 부부가 저녁에 나와 예배당 청소를 하고 가시는 집사님도 보았습니다. 직장 사장으로 바쁜데도 매주 나와 화장실 청소를 하고 가시는 집사님도 계십니다. 코로나 19로 대면 예배는 드리지 못하지만 매월 헌금을 온라인으로 하시는 성도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배당 헌당을 위해 매월 건축헌금을 어려운 가운데 꾸준히 하시는 성도님, 최빈국 아이들을 위해 만만만 헌금, 장학헌금을 하시는 성도님들도 계십니다. 이 어려운 때 남 모르게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집사님들도 계십니다. 그런 것 모두가 누가 보지 않아도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도 대단하지는 않지만 있는 자리에서 한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언젠가 천국에 가는 것인즉 “000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늘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사업을 해도 주님을 기쁘게, 직장 생활을 해도 주님을 기쁘게, 복음을 전해도 주님을 기쁘시게, 말을 해도 주님을 기쁘시게, 결혼생활을 해도 주님을 기쁘게, 독신으로 살아도 주님을 기쁘게, 자녀 교육을 해도 주님을 기쁘시게, 여행을 가도 주님을 기쁘시게, 예배를 드려도 주님을 기쁘시게... 주님을 기쁘시게가 인생의 목표와 삶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전심전력하여 외골수처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대소요리 문답은 공히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란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이러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모델은 물론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심을 설명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뛰어난 말씀은 아마도 마태복음 3:17절일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세 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마3:17;막1:11;눅3:22)와 변화하실 때(마17 :5; 막9:7;눅 9:35), 그리고 당당히 입성하시고 나서 설교하신 뒤입니다(요12:28). 세례를 받으실 때도, 변화산에서도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열정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인생 목표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고 마쳐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의 목표를 단순하게 정하고 사는 것이 결코 이 땅 사는 동안 초라하고 비참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에센셜리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 그렉 맥커운은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간디 등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더 적게, 하지만 더 좋게’라는 사고방식을 자신의 일과 삶에서 실천한 ‘에센셜리스트’였답니다. 가장 본질적인 목표, 핵심적인 것에 집중하였다는 것입니다. 본질에 집중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모든 것을 다 하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잘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투자할 수 있는 너무나도 많은 일과 기회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일과 기회는 사소한 것일 뿐이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미타니 야스또라고 하는 일본 ‘가네보’ 회사를 전통적인 섬유산업에서 화장품, 약품 사업 등으로 일본 최고 기업으로 만든 CEO랍니다. <역전 인생> <섬김형 인간>라는 책을 쓰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 회사를 사임하고 부인과 `가정교회`를 하면서 일본 전 열도를 다니며 하나님을 높이고 있으신 분입니다. 평범한 말단 사원으로 그 회사에 들어가서 나중에 회장이 되었고, 회장이 된 다음에는 그 회사를 일본의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결혼하고 나서 아내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하루는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여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세요. 그리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한 생을 사세요. 출세요? 그건 안 해도 돼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세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다 회사에서 목이 잘리면 과감히 그만 두세요. 그러면 나하고 둘이 전도하러 다니면 돼요.” 그는 "출세 안 해도 된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살자."라는 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그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것은 갈라디아서 1장 10절 말씀인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라는 말씀이었답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았답니다. 그래서 불이익도 여러 번 당했답니다. 좌천을 당하기도 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어떤때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위기를 만날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살자 하나님께서 그를 그 회사의 최고 자리에 올리시고 영광을 받으셨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2.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평생 “주님을 기쁘시게”라는 단순한 목적을 가지고 살았던 바울은 믿음으로 행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에 대하여 골로새서 1장 10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 합당이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주께 합당이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께 합당한 일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단순하게 한 가지로 말한다면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하는 모든 행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의 기도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5:8)” 정직한 기도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아무나 기도한다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기도 어떤 기도도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까지 하나님께 구하느냐고 뭐 내가 하지 라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 기뻐하십니다. 기도는 대화와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과 대화하는 것, 사랑하는 연인과 대화하는 것 얼마나 기쁩니까?
하나님은 하나님과 화목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화목 역시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화목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회개하는 것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감사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롬 12:1). 하나님은 향기로운 제물을 기뻐하십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라고 했습니다. 향기로운 제물로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 없는 가인의 제물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지 않으십니다.
돈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이 우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권력을 얻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천지를 지배하사는 분이십니다. 지식을 얻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있겠지만 믿음이 없이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 모델을 구약의 인물 에녹의 삶을 통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11장 5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한평생 믿음으로 살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다 천국에 간 대표적인 사람이 성경에는 소개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엘리야 처럼 대단한 기적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모세처럼 민족 지도자로서 민족을 해방시킨 지도자도 아닙니다. 아브라함 처럼 자식을 바칠 만한 믿음을 보여준 것 같지도 않습니다. 바울 처럼 위대한 선교사가 된 것도 아닙니다. 다윗처럼 민족의 추앙을 받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산 사람입니다. 대단한 기록이 없습니다. 평범한 우리와 같이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업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시 사람들을 보십시오. 창4:16절 이하는 보십시오. 대단한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의 아들 에녹은 에녹성을 쌓았고(창4:16), 야발은(20절) 큰 장막을 치고 많은 육축을 기르는 목축가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21절) 수금을 치고 퉁소를 부는 예술가의 조상이 되었고, 두발가인은(22절) 동과 철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이렇다할 만한 재주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300년 동안 그저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산 것입니다. 창세기 5장 22절을 보십시오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로마서 8: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자녀를 기르고 믿음으로 일하고 믿음으로 예배드리고 믿음으로 봉사하고 믿음으로 직장 생활하고 믿음으로 공부하고 믿음으로 대학을 선택하고 믿음으로 자식 기르고 믿음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입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6)”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아버지에게 잘해 준다 해도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아저씨라고 하면 아버지가 그 아들을 보고 기뻐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의 영적인 아버지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셋의 가계에서 태어났습니다. 에녹이 아담의 7대 손입니다. 인류 초기 역사입니다. 생생한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장을 보십시오. 문자적인 연대로 계산한다면 아담과 한 시대에 산 사람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930년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아담의 7대 손인 에녹은 아담이 622살 될 때에 출생을 했고, 에녹은 365세에 하늘로 승천하여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308년 동안을 아담과 함께 살았고 아담이 죽은 지 57년 후에 승천한 것으로 되어 있고 창세 후 987년이 되는 때입니다. 1세기가 되기 전에 심판을 받을 만큼 죄악이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입니다. 창세기 4장 23절을 보십시오. 힘센 자가 여인을 차지합니다. 악한 자가 득세합니다. 하나님을 비웃습니다. 잔인합니다. 교만합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얼마나 타락해 있습니까? 이런 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인격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신이 아닙니다. 칸트가 말한 요청 신도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 정신위생에 도움을 받기 위해 믿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평범하지만 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있습니까?
이화여자 대학교수였던 이연우 교수님은 고등학교 다닐 때 세례를 받았지만 아무리 성경말씀을 읽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간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답니다. 그래서 수술을 했는데 1년 후에 다시 재발을 했답니다. 이번에는 눈과 겨드랑이, 목, 폐, 임파선까지 암세포가 퍼졌답니다. 제 4기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져 더 이상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현대 의학도, 대학교수의 직분도, 그가 배웠던 지식도, 그의 부모, 그의 남편,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 없는 그저 하루하루 죽어가는 신세가 되어버린 그는 절망에 빠졌답니다. 병원 침대에서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이기기 위해 성경을 읽었지만 도무지 성경말씀이 믿기지가 않았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발 성경을 믿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 속이 뜨거워지더니 성경 말씀에 있는 내용들이 마음속에 쏙쏙 들어오면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는 것도,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것도, 예수님께서 다니시며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믿음으로 ‘아멘’하게 되었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과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니 그의 인생관이 달라졌답니다. 죽으나 사나 천국에 간다는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는 죽은 사람도 살리신 하나님께서 이까짓 암도 못 고쳐주시겠는가 생각하고 하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성경이 젖도록 회개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암이 깨끗하게 치료되었답니다. 제 4기 암으로 고통받던 그는 깨끗이 치료되어 퇴원을 하고 대학교 교수로 복직하여 “성경을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라고 간증하게 되었답니다. 코로나 19로 사업의 두려움, 노후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건강의 두려움, 직장의 두려움으로 낙심하는 성도님들 계십니까?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십니다. 침묵하는 것과 같이 보이니까 니체처럼 돌아가신 하나님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일으켜 주시고 엘리야를 통하여 살아계신 모습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신앙인의 마음 속에 삶 속에서 살아 계심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2) 우리는 심판하시고 상급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1)에녹은 심판하는 하나님과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①에녹은 심판하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다는 근거는 유다서 1장 14-15절을 보면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는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니라 하였느니라"
노아 홍수 전입니다. 인본주의가 팽배합니다. 하나님은 없고 인간끼리 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인간끼리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향락주의가 판을 칩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것입니다. 물질주의가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좋은 세상에 무슨 심판이 오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심판을 선언합니다. 언제가는 멸망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에녹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창세기 5장 25절에서 에녹의 아들 무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고 28절에 보면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무두셀라의 손자입니다. 계산해 보면 노아가 태어날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세가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7장 11절에 보면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때 므두셀라의 나이가 몇 살이 됩니까? 바로 969세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므두셀라가 죽을 때 홍수는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은 이루어졌습니다. 개인 종말도 역사의 종말도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땅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이나 건강, 지식, 명예, 물질 영원히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하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다 놓고 갈 날이 있고 모든 것이 끝나 버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 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 상 받을 것을 믿었습니다.
심판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급이 있습니다. 당시 세상 사람들에 비해 에녹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간 제 일호로 천국 잔치에 참여하고 있을 것입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가라지로 살다가 지옥불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영벌에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전도자에게는 기쁨의 면류관(살전 12:19), 선한 싸움을 싸운 자에겐 의의 면류관(딤후 4:8),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한 자에겐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고난받고 순교한 자에겐 생명의 면류관(계 2:10),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를 부정한 자에겐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 9:25)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2) 우리는 심판하시고 상급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인이 비신앙인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땅만 생각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 보다 더 좋은 세상이 있고 영원히 죽지 않는 질병도 고통도 없는 증오도 슬픔도 없는 세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갓 미물에 불과한 애벌레들도 어느 날 나비가 되어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나뭇잎을 먹고 살던 것입니다. 나비가 되면 이제 삶의 질이 바뀌어 집니다. 꿀을 먹고 삽니다. 땅을 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우리 인생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이 땅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가는 것입니다. 모세도 이런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억울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영국의 크리스챤 문필가인 C.S 루이스는 “역사를 읽어보면 현세를 위해 가장 많이 일한 이들은 내세를 가장 많이 생각한 이들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자 나인홀더 니버 박사는 말하기를 현대인들이 심각하게 부도덕에 빠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순식간에 밀물의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십자가 지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주를 위하여 굶주리고 주를 위하여 고생하고 주를 위하여 죽음까지 당한다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기뻐하시고 큰 상급을 주겠습니까? 호화롭게 살기위해, 호강하게 유명한 사람되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라는 목표보다는 주님을 기쁘시게라는 목표로 인생의 목표를 바꾸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살면 인생 낭패이고 손해가 되는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3) 에녹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살았더니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는 죽지 않고 승천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이 둘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왕하2:11)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자였습니다. 이 동행하였다고 하는 자도 둘이 나옵니다. 에녹(창5:24)과 노아(창6:9)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결국 승천한 사람은 에녹 밖에 없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입니까?
(1)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300년 동안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수명에 비하면 짧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오래 살고 짧게 살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 말로 얼마나 축복된 인생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인생 여정 동안 함께 하시니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얼마나 축복된 인생이겠습니까? 자녀도, 남편도, 아내도, 물질도, 명예도, 권력도, 지식도 때가 되면 다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2)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국에 갔습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것입니다. 이것 얼마나 큰 능력입니까? 그는 믿음으로 살다가 살아있을 때 별 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낳고 살아갑니다. 생의 마지막에 큰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어느 날 예수님께 귀신들려 벙어리 된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이 고치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요구합니다. 할 수 있으면 고쳐달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믿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재능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성격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의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믿음이 있으면 능력을 행할 만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나는 여러 인물들을 보십시오. 7절 믿음으로 노아...,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11절 믿음으로 사라... 20절 믿음으로 이삭, 22절 믿음으로 요셉, 믿음으로 모세, 믿음으로 기생 라합, 33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됩니다.
손자 손녀를 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들 중에서도 스마트폰을 손자 손녀 사진을 첫 화면에 띠우고 다니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동영상을 넣고 다니며 보여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노년에 손자 손녀를 보면 무조건 기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럴 것입니다. 코흘리게 같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재롱을 피우는 것을 보면 참 기쁘실 것입니다.
스바냐 3:17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며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8:10을 보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9)”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을 보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재능과 물질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목적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함께 천국에 갑시다”라는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로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이 땅 사는 동안 좌우명이 되시길 바랍니다. 큰 소리로 다짐하며 같이 읽겠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성도님들의 삶의 좌우명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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