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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천국에 갑시다(7) 만약 오늘 밤 떠난다면(누가복음12:16-2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4007 추천수:9 220.120.123.244
2021-10-17 12:36:51

함께 천국에 갑시다(7) 만약 오늘 밤 떠난다면

누가복음12:16-21

 

<그 다음엔 또 어떻게>라는 책을 보면 16세기에 성자라고 불리는 필립 디 네리(Philip de Neri)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는 네리가 당시의 최고의 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의 교정을 걷고 있는 동안에 어떤 청년을 만났답니다. 그 청년은 유명한 그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답니다. 네리는 그 청년에게 묻기를 "대학 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 했더니 청년의 대답인즉 "박사의 학위를 얻겠다"고 했답니다. 네리는 계속 질문하길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하겠는가?"했더니 청년은 답변하기를 "아주 힘든 문제를 몇 개 맡아 웅변과 지식으로 멋지게 변호해서 뭇 사람들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다고"했답니다. 네리는 다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청년은 "그 후에는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돈을 많이 벌고 드디어 부자가 될 것이라"고 대답을 하였답니다. 네리는 계속해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청년은 "명성과 재물을 소유한 중에 평안하게 살 것이라"했답니다. 네리는 다시 물었답니다. “그 다음에 또 어떻게 되지?” 그러자 청년이 대답하기를 "그 다음에는 내가 아마 늙어 죽게 되겠지요"라고 했답니다. 네리는 한 번 더 물어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이지?" 이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는지 몰라하는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로 가 버렸답니다.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함께 천국에 갑시다” 시리즈 말씀 일곱 번째입니다.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옆 사람을 보고, 집에서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들도 옆에 있는 가족들을 보고 “함께 천국에 갑시다.” 한번 웃으면서 권해 보시길 바랍니다. “함께 천국에 갑시다” 오늘은 “만약 오늘 밤 떠난다면”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천국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만약 오늘 밤에 죽는다면 천국에 가 있겠습니까? 지옥에 가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보면 그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죽어 화장터에 태워지면 그것으로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1. 그런 사람은 어떻게 삽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의 특징은 3가지만 들라면 무엇을 들겠습니까?

첫째는 오직 나 중심의 삶을 삽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나(에고)”라는 말입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여섯 번 나옵니다. 17절에 “내가” 18절에 “내가”, “내 곳간”, “내 모든 곡식”, 19절에 “내가” “내 영혼” 나옵니다. 우리 번역에서는 번역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12번이 나옵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 재산, 내 건물, 내 창고, 내 사업, 내 계획, 내 인생 등 시종일관 '나' 밖에 없습니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철저히 자기확신, 자기 통제, 자기 본위, 자기 기준으로 자신이 신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부자가 된 것도 자기 잘나서 된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라는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그 우상을 빛내는데 총력을 다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도 이웃도 없습니다. 비를 내리고 따뜻한 날씨를 주신 하나님은 그의 생각 속에는 아편에 불과합니다. 혼자 부자가 된 것이 아닌데 그의 곡식을 심고 거두는 타인에 대하여는 눈곱만큼도 생각이 없습니다.

 

둘째는 오직 물질 중심의 삶입니다.

오직 재산을 증식하는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지 쌓아 두리라” 계획을 세웁니다. 무슨 계획입니까? 풍성하게 거둔 물질을 그동안 수고한 농부들에게 보너스를 줄 수도 있고 하나님께 감사하여 예배당에 헌금할 수도 있는데 이 땅에 영원히 살 것으로 생각하고 오직 쌓아 두는데만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돈 버는 것을 최대의 인생 목표로 사는 삶입니다. 쌓아 놓은 물질이 자신의 생명을 하루로 연장하지 못하고 보장해 주는 것을 모른 것입니다.

 

셋째, 오직 쾌락 중심의 삶입니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놓았으니까 그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것입니다. 즐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명나가 벌어들이고 재산을 계속 증식하며,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재물이 그 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애써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참 행복이 있습니까? 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가난한 사람보다 더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는 사람에게는 행복도 없는 것입니다. 풍년은 들었고 거기에 쌓아 둘 곳 없을 정도록 대박이 났지만 걱정 충만이지 행복 충만은 없는 것입니다. 평안도 행복도 없어 은행에 수 조원을 쌓아 놓고도 간호사를 불러 프로포폴을 맞아야 즐거움이 오고 잠이 오는 것입니다. 요즈음 날마다 언론에 나오는 화천대유 사건처럼 그렇게 많은 것을 하루아침에 얻었는데도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속고 속이면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일확천금의 꿈에 최면이 걸린 세상에는 참 행복이 없습니다. 탐욕이 춤추는 세상은 약육강식과 상대적 박탈감과 권모술수와 죄와 허무만 남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사람들은 이런 삶을 살아가려고 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왜 아이들을 열심히 공부시킵니까? 이런 삶을 살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직책을 가지고 잘먹고 잘 사는 자식 만들기 위해 전쟁을 치르듯 자식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씀합니다. “아, 바보 같은 사람아, 아, 멍청한 사람아, 아, 미련한 사람아, 아, 생각없는 사람아, 아, 무분별한 사람아 어느 날 네가 죽게 되면, 그처럼 든든하게 여기던 너의 통장, 너의 재산, 너의 주식, 너의 보석, 너의 빌딩, 너의 부동산, 너의 고급 차, 그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부러울 정도로 잘 사는 삶인데 왜 하나님은 어리석다고 합니까?

 

2. 왜 하나님은 어리석다고 합니까?

오늘 성경에서 이 사람의 어리석은 이유 세 가지만 찾으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영혼이 비참해 집니다.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창고를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고 자신으로 채우려고 하면 인생은 어리석은 인생으로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 실은 통치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마치 자신이 통제하는 것처럼 교만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는 아무런 교제를 나누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이 “나와 재물, 즐김” 이 세가지 뿐이고 하나님은 그 마음에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프론”인데 부정어 ‘야’와 생각하다 판단하다는 말인 ‘프로네오’가 합하여 된 말입니다. 즉 생각이 없이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 생각없이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시편14:1에는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영혼을 하나님이 주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하나님이 주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미래를 모르고 죽은 후의 삶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다시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리지 못하고 빼앗깁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영원히 자기 것이 될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길게 넓게 보는 사람입니다. 바둑 고수들은 수 읽기를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수읽기를 잘 못하니까 탐욕에 눈이 멀어 눈 앞에 것만 보고 삽니다. 세상의 재물만 모으려고 노력하고 죽음 이후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인생의 길이를 하루 사는 것으로 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조금 길게 인생의 길이를 이 땅으로만 보는 사람도 역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인생은 이 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 땅의 삶은 잘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이 땅에만 쌓아 놓았지 영원한 하늘 나라의 상급을 위해서는 쌓아 놓지 못했습니다.

 

셋째는 영생하는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생명은 자연적인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에는 생명에 해당하는 3단어가 있습니다. ‘바이오스’는 우리가 육체와 함께 살아있는 동안 존재하는 생명입니다. ‘조에’는 육체에 메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프쉬케’는 한 사람에게 국한된 제한된 생명을 말할 때 사용됩니다. 여기서 나오는 생명은 조에입니다. 영원한 영적인 생명입니다. 단순히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거해 기쁨, 행복, 평안 등과 같은 것과 어울어진 영원한 질적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가 소유했던 생명은 조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면서 교제하는 생명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인간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육체 즉 바이오스만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에덴에서 잃어버린 조에를 되찾아(요1:4)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여 영생하는데 그것이 소유의 넉넉한 데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의 마음에 성령이 없어 영적 생명이 없습니다. 탐심은 천국 생명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참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인데 그 생명은 돈이나 재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의 무한성은 삶의 의미를 삶의 행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갈증만 더해 줍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인기나 명예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을 합니다. 이 땅에서 참 가치 있고 풍요로운 삶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탐심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물질이 자신을 통제하고 장악해 버립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영적 생명의 풍요로움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리 중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한 형에게 법에 따라 1/3은 자신에게 주라고 예수님께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예수님은 물건 나누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면서 사람의 영생하는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탐심은 ‘플레오넥시아’는 말로 ‘더 많은’의 뜻을 가진 ‘플레온’과 ‘소유하다’,‘가지다’ 의 뜻을 가진 ‘에코’의 합성어로서,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말합니다. 단지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 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모든 종류의 죄악된 성향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탐심을 가리켜 우상 숭배라고 말씀합니다(골3:5). 탐심은 이기심을 살찌워 비만증에 걸리게 하고, 이웃과 관계의 문을 닫아 버리며, 하나님을 추방해 버리는 것입니다. 탐심을 채우는 소유의 넉넉함으로 인간의 진정한 삶이 영위되거나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야 죽음 후에도 사는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3. 그러면 오늘 밤 죽어도 천국에 갈 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한 부자 비유를 말씀하시고 바로 22절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2절 이하에서 세 가지만 찾아 보겠습니다.

첫째, 오직 먹고 입는 것으로 쾌락을 추구하지 말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부자는 자신의 탐욕을 채움으로 즐거움을 누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입니까? 네 단어입니다.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입니다. 이 구호는 어느 정도 이룬 사람들의 한결같은 구호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탐심을 충분히 채울만큼 많이 쌓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밤 영혼 거두어 가면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그런 것으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수가 “고래 사냥”이라는 노래 불렀듯이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입니다. 아무리 즐겨 봐도 하나님 없는 마음은 만족과 행복이 없습니다. 돈으로 즐기기 위해 수많은 애인을 두고 살아도 공허하고 죄책감을 들 뿐입니다.

예수님을 이 비유를 통해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합니까? 오늘 밤 죽어도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으라고 말씀합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왜 그렇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까마귀는 심지도 않고 거두고, 곡식 저장할 골방도, 창고도 없지만 하나님이 길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 우리를 하나님이 방치하겠냐는 것입니다. 28-2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 들여 주시는 이 말씀을 믿습니까? 우리 예수님을 탐욕을 채워주기 위해 재판관이나 물건을 나누어 주는 자가 아니고 천국 백성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것을 보았는데도,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시고 천국에 대한 말씀을 들었는데도 예수님을 유산을 나누는 재판관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행복은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15). 물질이 행복과 즐거움을 준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쌓아 놓아도 오늘 밤 생명 거두어 가면 아무 쓸모없는 창고 짓는데 너무 걱정 근심하며 지옥처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 삶의 의미, 삶의 행복이 꼭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먹여주고 입혀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무리 가난해도 천국처럼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이 땅을 살다 천국에 가야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의 존경하는 인물들 중에서 8년동안 일곱번이나 1위를 차지한 삐에르 신부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빈민구호 공동체인 엠마우스 공동체를 창설하여 섬기면서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 청년 신사가 자살 직전에 신부님을 찾아왔답니다. 가정적인 문제, 경제의 파탄, 사회적인 지위…… 모든 상황으로 나는 지금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신부님은 그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깊은 동정과 함께 이렇게 말했답니다. "충분히 자살할 이유가 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면 살수가 없겠습니다. 자살해야 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고 "그리고,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시고 그리고 죽으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답니다. "뭐 어차피 죽을 건데 죽기 전에 신부님이 필요하다면 제가 얼마간 신부님을 돕도록 하지요."라고 수락했답니다. 그리고 집 없는 사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집을 짓는 그 신부님이 하고 있는 일을 옆에서 같이 돕게 되었답니다. 얼마 후에 그 사람은 "신부님께서 내게 돈을 주었든지,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었던지, 이렇게 베풀었더라면 나는 다시 자살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내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요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과 같이 내가 일을 하면서 섬기면서 이제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충분히 찾았고, 이제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탐욕을 채우려고 쌓는데 집중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주님께서 주신 일을 하며,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이 주신 것으로 행복하고 만족하게 살면 죽는 그 순간까지 천국처럼 살고 죽은 후에 영원한 천국에 함께 가서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오직 물질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은 바로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삶입니다.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물질적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구하고, 물질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복을 구하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실천하라는 말도 될 수 있습니다. 재물의 소유주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인 것을 인정하고, 재물의 사용주도 하나님인 것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맘몬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맘몬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를 결단하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눅16:13)라고 말씀합니다. 아람어 맘몬은 재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매이게 하는 일체를 일컫는 총칭어입니다. 사탄은 맘몬이 전부라고 이 땅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요즈음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부동산 열풍을 보십시오. 맘몬만이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맘몬만이 안락한 노후를 보장하고, 만몬만이 사람답게 살게 만들어 주고, 만몬만이 신분을 보장해 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나 다 맘몬에 의해 지배하고 사람을 맘몬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세상은 이 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밤 죽어도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면 잠시 살다가는 현세 중심의 삶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내세 천국을 중심으로 생각이 변합니다. 이미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었고 재림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있는 자가 진짜 많은 과실을 맺는 부자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요한 자가 진짜 부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배부른 사람,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평안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그 하나님의 가치로 가득차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시편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진짜 부자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한번은 미국 순회 집회를 하는 도중에서 어떤 부자를 만났답니다. 그 부자는 테레사 수녀에게 뭐 좀 도와드릴 것이 있습니까? 뭐가 필요하십니까? 당신이 뭐가 제일 필요하십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때 테레사 수녀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저요?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주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그분이면 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족합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 참으로 이 땅에서 부요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인 것을 믿습니까? 그리스도가 참으로 자유를 주는 것을 믿습니까? 그리스도가 진정 소망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능력인 것을 믿습니까? 그리스도만이 구원인 것을 믿습니까? 그리스도가 피난처인 것을 믿습니까? 물질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천국처럼 이 땅에서 살다 마지막 날 눈을 감을 때 모두 함께 천국에서 눈을 뜨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오직 나 중심, 나 사랑에서 이웃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평생 탐욕을 위해 사적 가치만 추구하던 자는 결국 그가 쌓아 놓은 모든 것이 죽으면 남의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착각은 오늘 밤 생명 거두어 가 버리면 비극으로 끝나 버립니다. 자기 재산의 주인이 궁극적으로 자신이 아니라 자신은 잠깐 관리하는 관리자라는 사실을 모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대상29:11)"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죽음 앞에 아무 쓸모 없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삶을 살지 말고 죽음 후에도 효력이 있는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쌓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평생 자기중심의 사적 가치를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한 공적 가치를 위해 살라는 말입니다.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우리가 늘 주기도문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만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익적 삶을 초월하여 공익적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선거철이 되어 대통령 선거에 나온 사람들을 봅니다. 평생 자기 출세, 자기 권력, 자기 명예, 자기 부를 위해 사익만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국민을 위해 공익을 위해 살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국가 권력을 맡겨 놓으면 그들만의 정치 엘리트 집단이 되어 결국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자기와 자기 패거리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거나 오용하여 더 큰 사익을 추구하기가 쉽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일년에 단돈 10만원도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된다고 나서는 것은 국민을 웃기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동안 얼마나 소외계층을 위해 기부했는가 그 영수증을 공개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밤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했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공익적 이익을 추구합니다. 이웃이 이용물이거나 경쟁자이거나 원수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나 공익을 위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재물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금을 합니다. 우리가 연약한 교회이지만 지금까지 15개의 해외 교회를 건축하고 3개의 학교를 건축하였는데 그 때마다 많은 헌금을 하여 그 어려운 나라 사람들을 위해 재물을 쌓아 놓았습니다. 이번에 학교 건축도 한 분이 5천만원, 두 분이 2천 만원씩을 헌금하고 나머지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헌금하여 완공을 하였습니다. 그것 다 하나님 나라에 쌓아 놓은 재물입니다. 좀도 동록도 해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나만 위해, 내 이익되는 것만 위해, 자식들 편하고 잘 되는 교회만 쫓아 다니지 말고 내가 필요로 하는 교회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큰 교회, 큰 십자가만 자랑하지 말고 십자가에 내가 달리는 교회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나의 재능이 필요로 하는, 내 물질이 필요로 하는 교회, 내 시간이 필요로 하는 교회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자식 잘 되는 교회 원한다고 큰 교회 더 큰 교회 쫓아 다닌다고 자식 잘 되는 것 아닙니다. 요즈음 부동산이 얼마나 많이 올랐습니까? 자식들 다 결혼시켰으면 무엇보다 오늘 죽으면 갈 천국에 보화를 쌓아 놓아야 합니다. 산 날 보다 살 날이 얼마 만지 않았는데도 영원히 이 땅에 살 것처럼 재산 증식에 목숨거는 사람은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런 때 부동산 2체, 3채, 4채 있는 성도님들이 있으면 내 아들, 내 손자만 생각하며 그것 자꾸 세상에만 쌓아 놓지 말고 팔아서 하나님 나라에 쌓아 놓으면 교회 헌당하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칭송받으며 더욱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경기는 파도와 같아 머지않아 떨어질 날이 옵니다. 이웃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치 있게 사용될 수 있을 때 천국에 쌓아 놓아으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헌금하는 것, 남을 위해 섬기는 것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 암세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와 나의 삶의 흔적 때문에 조금은 세상이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떠난 후에 오물 냄새만 남겨 놓으면 안됩니다. 내가 떠나 자기에 향기가 나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리스도의 편지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만 위해 살다가 가는 인생은 귀한 인생도 가치 있는 인생도 아닙니다. 초라한 인생이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습니다. 50 넘으면 인격의 성장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나이 들면서 인격도 초라해지고 탐욕이 덩어리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몸에 찾아 오는 늙음이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노인이 되어 인격이 밥먹여 주냐고 말하며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정신이 어린아이같이 되어 멍청해지고, 까다롭고, 쉽게 남에게 불쾌감을 주고, 파괴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이 들면 들수록 인격 수명을 늘려 마음은 더 풍요로워지고 예수님을 닮아 고상해져야 합니다. 인생이란 인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행복해 지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함께 하면 인격 수명을 늘어나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살 것을 믿기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현세의 부와 현세의 인기와 현세의 명예와 현세의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이 땅에서 천국처럼 살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쌓은 삶이 어떤 삶입니까? 이 땅의 부요가 아니라 천국의 부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3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오직 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웃과 나눔에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를 위해 쌓아 놓을 줄은 알았지만 주어진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웃을 돌아보며 섬기는 자가 하나님께 진정 부요한 자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쌓아 놓기 위해 걱정 근심하지 말고 구제하여 하늘에 쌓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부유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을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행복론>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기본적으로 네 가지를 가져야만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명랑한 정서입니다. 만사를 밝게 긍정적으로 보는 정서가 있어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이 있으도 매사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둘째는 건강한 몸입니다. 몸이 병들면 억만금이 있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셋째는 정서적 평온입니다. 만족하는 정신적 자세입니다. 네 번째는 약간의 외부적 자산입니다. 이 재산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의식주의 필요한 당연히 필요한 재산, 둘째 남에게 베푸는 여유 있는 재산, 셋째, 불필요한 재산입니다. 이 불필요한 재산에 대한 탐욕 때문에 사람은 근심하고 건강도 잃으며 가정도, 명예로 잃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온 부자는 그 불필요한 재산을 더 쌓기 위해 탐욕을 부리는 사람입니다. 주어진 재산이 오히려 행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의 씨앗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염려 걱정 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재산은 축복이지만 인격이 감당할 수 없으면 저주가 됩니다.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형제끼리 원수가 되고, 돈 때문에 이혼하고, 돈 때문에 패륜아가 되고, 돈 때문에 개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다 손을 펴고 가는 것입니다. 수의에 주머니가 있는 것 아닙니다.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며 천국처럼 살다가 어느날 그 날이 오면 함께 다 천국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지난주 아는 목사님과 통화하는데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같이간 가족을 밖으로 내 보내더니 자신에게 짧으면 3개월 길면 7개월 남았다고 생을 정리하라고 하시더랍니다. 우리에게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어느 순간 죽음이 다가옵니다. 월드미터(Worldometer, https://www.worldometers.info/kr/)라는 실시간 세계 통계 싸이트가 있습니다. 어제 제가 접속해 보니까 현재 세계인구는 79억으로 나와있습니다. 올해 어제까지 태어난 사람이 1억 천만쯤 되고, 죽은 사람이 4천 6백만 쯤 됩니다(연간으로는 한 5천 9백만 쯤 된다고 합니다). 제가 계산기로 계산해 보니까 하루에 평균 16만명 정도가 죽었습니다. 한시간에 6701명, 1분에 111명, 1초에 약 2명 정도가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한 시간에 세계 어디선가 6700여명이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꼭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시간표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오늘 밤에 죽는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는날 까지 어떻게 이 땅에서 살겠습니까?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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