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천국에 갑시다(4) 지옥의 실재
누가복음16:19-31
오늘은 함께 천국에 갑시다. 시리즈 설교, 네 번째 말씀으로 “지옥의 실재”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천국에 꼭 가야 할 이유는 죽어 천국에 가지 못하면 지옥에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음 앞에 죄를 회개한 강도에게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데, 사탄은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오늘 밤 네가 나와 함께 지옥에 있으리라“라고 말합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바로 지옥 아니면 천국에 갑니다. 한 번 죽은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죽으면 반드시 지옥이냐 천국이냐를 판가름하는 심판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부자와 나사로가 죽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1. 지옥은 실재할까요?
1) 지옥은 공간적 실재 장소입니다.
부자가 죽어 어디에 갔습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라고 말씀합니다. 음부라는 말은 헬라어 “하데스”라는 말을 번역한 말인데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그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라고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은 '죽음의 세계'로 번역했고, 가톨릭성경은 저승으로 번역했으며, 우리말 성경, 현대인의 성경, 표준 새번역, 쉬운 성경은 다 '지옥'으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서 음부를 찾아보면 저승을 말하는데 저승은 '죽은 혼령이 가서 사는 세상으로 구천 또는 유명'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음부와 저승'은 불교 용어입니다. 죽어 바로 지옥에 갔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은 없다. 한 번 사는 것, 실컷 즐기자”라고 라며 살아갑니다. 여기 나오는 부자를 보십시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오늘날도 지옥의 실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옥은 죽은 후에 바로 가는 실재의 세계입니다.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고통받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추상적인 세계나 동화적인 세계가 아니라 공간적인 장소 실제 고통받는 곳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장 25절에 보면 가룟 유다에 대하여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유다가 가야할 곳 “제 곳” 바로 지옥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주 어디에 있는 장소인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딘가 정확한 위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옥을 하나님의 삶과 빛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밖의', '바깥의', '바깥 어두운 곳'이라는 단어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지옥에 대한 가장 특징적인 이름은 “게헨나”입니다. 이 게헨나는 연기, 악취, 벌레, 흉측하고 더러운 모든 것과 관련지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듯이 지옥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를 또는 영원하지 않기를 바라는 지옥의 존재와 영원성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의 영인 사단은 지옥이 없다고 가장 위험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지옥은 없다는 거짓말을 계속해서 인간에게 심어주어 대부분 사람들이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믿게 만들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2) 지옥도 하나님이 만든 곳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는데 지옥도 예외는 아닙니다. 계시록 4장 11절에는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로마서 11:36)” [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지옥의 영원히 지속되는 불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것으로 하나님이 존재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마귀와 마귀를 따르는 귀신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계시록 20장 10절에는 사탄을 “불과 유황의 못에 던져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유다서 1장 6절에서는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어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마들은 이미 자신의 궁극적인 운명을 알고 있고,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구주의 권능 앞에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막 1:24 눅 8: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악명 높게 사악한 사람들을 위한 곳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계 21:8)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살후1:8)이 가는 곳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지옥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허블 망원경으로 우주를 다 뒤져 봐도 지옥은 없다는 것입니다. 달나라에 가 보았는데 지옥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성과 과학적 관찰, 실험의 증명 방법으로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입증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합니까? 아닙니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단지 아직 과학적 능력으로 모를 뿐입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와 개구리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하루살이가 메뚜기와 개구리에게 내일 만나자고 하면 “하루살이가가 내일을 알기나 해, 내일이 있어”라고 비웃습니다. 메뚜기가 내년 봄에 만나자고 하면 개구리가 “메뚜기도 한 철인데 내년 봄이 있어”라고 비웃습니다.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섯 살 아이들에게 1+3=4라는 것을 가르쳐 주면 알지만 삼각함수, 탄젠트, 코싸인, 미적분을 말하면 알지 못합니다. 때가 되어야 이해가 됩니다.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믿음으로 새생명을 받아야 영적 세계를 보는 영안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 먼저 성경에 희미하게나마 예언을 해 주십니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사66:22-24)”
다니엘을 통해 알려 주십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1-3)”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명쾌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영적 세계는 계시해 주시는 분이 없으면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1,2,3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4차원의 세계를 넘어가는 차원이 다른 세계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해 주어야 알 수 있습니다. 영계의 세계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영계의 세계도 부정합니다. 영안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적 과학자들인 사람은 우연히 진화되었고, 우주는 우연히 존재했다고 믿는 것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믿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은 그들의 신앙입니다. 컴퓨터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거나 1000억 개 이상되는 신경세포 조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뇌가 저절로 생겼다고 하면 소가 웃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산소와 질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창조와 같은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 과학적 사고로 그렇게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사고 그렇게 믿지 않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지옥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과학주의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지옥이 있다고 해도 단순히 관념의 세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옥을 현세적 심리적 상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고통, 경제적인 고통, 심리적인 고통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실재하는 지옥을 말하면 비지성인처럼 생각하고 지옥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석대상의 문학으로 보고 자기 편리한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지옥은 어떤 공간적 장소가 아니라 실존적 경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의 텍스트로 취급하며 이성주의적 접근과 비신화적 해석, 역사비평학적 난도질을 하며 지성인처럼 취급하고 성경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어리석을 자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연한 영계로 천당과 지옥은 가봐야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쓸데없이 죽어 가는 곳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옥은 은유적 표현에 불과하고 교훈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지옥은 천국이 실재하는 것처럼 실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구약에서는 '스올'이라는 히브리말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데스'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으로 모두 합쳐 총 54회(시 16:10, 사 14:9, 겔 31:16, 눅 16:23 등) 나옵니다. 우리말 개역개정 성경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31번의 스올은 지옥이 아니라 모두 '스올'로 표기했고, 신약 성경에서는 13번만 '지옥'으로 표기하고 나머지는 '음부'로 표기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는 지옥을 묘사하는 표현으로써 영원한 불, 영원한 멸망, 바깥 어두운 곳, 불 못, 바닥 없는 구덩이 등과 같은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공간적 장소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사체험을 통해, 환상이나 입신을 통해 지옥을 보았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세계를 확실하게 계시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지옥과 천국은 너무나 중요하고, 말해도 잘 알 수 없고, 오해하기 쉽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중점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는 너무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예언자나 선지자에게 맡기지 않고 예수님께서 친히 오셔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천국과 지옥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뻬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3~49)”라고 확실하게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형벌의 장소입니다. 그 형벌은 공정하고 끔찍하며 영원히 지속되는 형벌입니다.
1)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지옥이 대표적인 특징을 불구덩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불 못입니다. 꺼지지 않는 불 못입니다. 유황이 타는 불 못이요, 죄인들을 밤낮으로 태우는 고통의 연기가 솟아나는 곳입니다.(마태복음 13:42. 25:41. 마가복음 9:43,48. 요한계시록 14:11, 20:10~15)
토마스 부룩스는 “만일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고통과 슬픔, 비참함과 불행을 한꺼번에 당한다 해도/ 그것은 지옥의 가장 가벼운 고통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울며 이를 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마 8:12). 그곳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막9:48).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고, 그 고난의 연기는” 영원토록 타오르며,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쉼이 없을 것이다(계 14:10~11)라고 했습니다. 밤낮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베드로전서 3:19. 베드로후서 2:4. 마가복음 9:48. 누가복음 8:31. 요한계시록 20:10) 지옥은 죄인들의 영혼이 갇혀있는 감옥입니다. 형벌의 장소입니다. 깊고 어두운 구덩이입니다. 끝없이 깊은 구렁, 무저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죽을 수도 없는 영벌의 장소입니다.
2) 영원히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한 번 지옥에 들어가면 그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지옥의 형벌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천국의 기쁨이 영원한 것처럼 지옥의 형벌도 영원합니다. 성경에서는 “영원한 멸망”(살후1:3), “영원한 불, 영원한 형벌”(마25:41,46), “영원한 불의 형벌”(유1:7),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혹암”(유1:13) 등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박하게 이곳에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성령은 그런 표현들을 사용해서 우리의 모든 감각을 끔찍함으로 떨게 하고자 의도하신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옥 가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잔혹한 형벌을 내리는 지옥을 만들 수 있는냐? 자비의 하나님이 단지 사는 동안만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악인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리는 지옥을 만들 수 있느냐? 공평하신 정의의 하나님께서 단지 길어야 100여 년 정도인 이 세상에서 죄를 지었을 뿐인데 영원한 처벌로 응징하는 지옥을 만들 수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내릴 수 있느냐며 하나님을 박애주의자의 노예로 만들어 버려 지옥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영혼 멸절론, 영혼 소멸론을 믿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죄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사망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하여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 불멸성을 입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과 제 칠일 예수 재림교의 중요교리입니다. 급기야는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조차도 영혼멸절론의 옹호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학자는 영국의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John Stott)라고 합니다. 영벌을 감정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한 고문가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도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가 어떻게 자식이 불못에서 고통당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있겠으며, 어떤 사람이 배우자의 울부짖음을 즐겨 들을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비추어 볼 때 영원한 형벌을 받는 지옥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혼 멸절론자인 클락 피녹(Clark Pinnock)은 “내가 전통 지옥 교리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이유는, 그 지옥 교리가 제시하고 있는 도덕성과 신학이 처음부터 매우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식을 가진 인간이 지옥에 가서 끝없이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앙을 무너뜨려 버렸다. 사람들이 기존 지옥 교리에 대해 반감을 갖는 주된 이유도 나와 같은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은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고 전혀 도덕적이지 않는 전통 지옥 교리를 들으면 얼굴이 창백해지곤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20절의 ‘불 못’은 영원한 형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철저하고 절대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멸절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만유 구원론을 주장합니다. 칼 바르트나 몰트만 같은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세계와 사탄과 악한 영들까지 종국적으로 다 구원을 얻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불신자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땅에서 미처 씻지 못한 죄를 불로 태워 그분의 의에 들어올 수 있는 ‘깨끗함’하는 곳이라는 것이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심판하실 때에 지옥에 있는 악인들과 악한 영들까지 다 정하게 하여 의롭다 판단하심으로 궁극적으로 온 우주적인 불의의 말살을 이루시고 그의 의를 이루실 것이며, 그때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고 경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3) 행한대로 공정히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너가 행한대로 공정하게 댓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돌이키고 교화되는 장소가 아닙니다. 기회도 희망도 없는 곳입니다. 죄가 클수록 처벌도 큰 곳입니다. 국가에서 처벌할 때 절도죄와 살인죄를 똑같이 처벌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말씀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 "나(예수님)를 네(빌라도)게 넘겨준 자(유다)에게는 더 큰 죄가 있느니라 하시니라(요 19: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유다의 죄는 더 큰 죄라고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다 똑같은 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는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1:24)"고 말씀하였는데 형벌에도 차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20장 11-15절에 마지막 심판이 나옵니다. 성경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이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에 근거하여 심판”하십니다. 지옥의 형벌도 차등형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11:21~24)라고 하셨습니다.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막12:38-40)라고 하셨습니다. 공의의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유 구원론자들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라고 말씀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임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정의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 24절에서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그것이 사랑이겠습니까?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정욕의 갈증을 채우는 욕망만 있는 곳에는 사랑의 정의와 공의는 없는 것입니다. 살인자를 전부 사랑한다고 석방한다면 그것이 정의로운 세상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결코 어둠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옥으로 강제로 끌어 넣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어둠의 자식들은 빛 앞에 있을 수가 없으니까 지옥으로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악 중의 악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천국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지옥의 형벌을 영원토록 주는 폭군으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B18-20)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보여주었지만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믿지 않고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계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불공평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모두에게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고(시53:3;전7:20;롬3:10,13)이고 마땅히 모두 다 멸망할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엡 2:8,9)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선물을 모두 다 받을 수 있도록 또한 태초부터 지금까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탄의 종노릇하며 살다 사탄과 함께 지옥의 형벌을 영원히 받는 것입니다. 영혼멸절론, 만유구원론을 말하며 지옥과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든 사람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데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아버지가 되십니다.”(요1:12; 마6:9; 요일3:1) 예수님은 지옥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불신자가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불이 꺼지지 않는(마9:48)영원한(eternal) 고통이 실재(real) 하는 실제적(actual)인 장소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 지옥의 실재는 믿는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마지막 날 함께 예외 없이 지옥에 가지 말고 천국에 가야 합니다.
오늘 지옥간 부자를 보십시오. 이 부자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을 아는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자격만으로도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천국 가는 것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아니냐가 기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무엇이라고 울부짖고 있습니까? 24절 아브라함을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얘'라고 합니다. 얘는 "테크논"으로 "아들아"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지옥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진정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겠습니까? 세례 요한의 말씀의 들어보십시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7-9)"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줍니까? 요1:9절 이하를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자기 의로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나사로는 어떻습니까? 나사로의 어떤 공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나라로의 이름이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라는 그 뜻으로 나사로가 어떻게 천국 간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순전히 은혜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천국가고 부자기 때문에 지옥 간 것 아닙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인데 예수 믿고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오늘날 말하면 국회의원인데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부자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내가 가지고 있는 부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명예가,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가 예수님을 진정 구세주라고 고백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은 "오이코스"는 교회를 말씀합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 이니라(딤전3:15)"라고 말씀합니다. 심판은 교회부터 시작됩니다. 예레미야도 어떻게 예언하고 있습니까?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렘 25:29)"
에스겔은 어떻게 예언합니까?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겔 9:6)"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노아 홍수 때 왜 망합니까? 첫째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창 6:2-3)"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망합니까? 첫째 이유가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 의인 열 명 없어 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설명한 마지막 날 버림받은 다섯 처녀가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을 형식적으로만 믿고 있지 진짜 믿지 않고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을 진짜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확실히 믿고 믿음 생활 잘해야 합니다. 열린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마지막 인생을 마감할 때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천국 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이 땅의 삶을 지옥의 형벌을 쌓아 놓는 기회가 아니라 천국의 상급을 쌓아 놓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죽어서 불꽃 가운데 지옥의 고통을 받고 있는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불쌍히 여겨 나사로에게 물 한 방울이라도 주게 하여 자신의 고통을 덜어달라고 할 때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5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혼자 호화호식 하며 불쌍한 이웃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이나 아브라함에게 요청하지만 다 거절당하였습니다. 지옥은 관용의 미덕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관용의 미덕을 앞세워 지옥의 영원성을 애써 부정하면서 타종교와 연합을 위해 종교 다원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옥은 관용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 자신이 했던 대가를 받는 곳입니다. 이 땅에 있을 동안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은 호화로운 집에서 날마다 잔치를 하면서 자신의 집 앞에 버려진 노숙자는 외면합니다. 20절 보십시오. 대문 앞에 있게 합니다. 쫓아내지 않는 것은 그래도 양심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스러기라도 먹게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새 옷을 입혀 줄 수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거지 나사로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이 무관심은 상대를 소극적으로 멸시하는 일입니다. 약4:17의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니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거지 나사로를 자기 과시용으로 이용했습니다. 쫓아 내지 않고 대문에 놓아두고 부스러기를 주는 위선적 구제로 자신의 선행을 선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을 향하여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14절 보십시오. 돈만 좋아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진리를 비웃는 사람입니다. 냉소주의 자입니다. 진지한 삶을 비웃은 사람입니다. 내세를 비웃는 사람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옳다는 것입니다.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칭찬듣기를 좋아합니다. 명예를 좋아합니다. 사람에게는 시간과 재능과 물질이 주어집니다. 이 땅 사는 동안 그것을 가지고 지옥의 형벌을 쌓아 놓는 기회로 삼지 말고 천국의 상급을 쌓아 놓는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지식이 많이 주어지면 교만해져 하나님도 없다고 부정하며 지옥을 형벌을 쌓아 놓지 말고 그 많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여야 합니다. 돈도,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는 지옥에 가서도 착각하고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 권력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를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 줄 아는 것입니다. 물 한 방울을 찍어 자신의 타는 목마름을 축여 달라고 합니다. 살았을 때 자비를 베풀지 않은 사람이 죽어 나사로를 통한 자비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끝났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불꽃 가운데 괴로워 할 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지옥도 천국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옥과 천국의 실제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땅에 쌓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땅의 삶은 이 땅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으로 연결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러나 영영한 불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너무 욕심내며 지옥처럼 살다 지옥가서 지옥의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없어도 천국처럼 살다 천국가서 영원한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세계 600만개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 20억이 넘습니다. 목회자들이 5백 15만 1천 명이나 된답니다. 데이빗 배럿에 의하면 그리스도인 52%는 풍족하게 살고 있고 33%는 비교적 부유하며, 13%만 절대적으로 빈곤하다고 말합니다.
지옥 믿는 나라일수록 부정부패 줄어들어 경제발전이 촉진진된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은 국민들이 ‘지옥’의 존재를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은 국민 대부분이 지옥의 존재를 믿는 경우 부패 지수가 낮고 생활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답니다. 전세계 35개국 이코노미스트들과 함께 나라별로 지옥의 존재를 믿는 비율과 개인소득을 비교했답니다. 그 결과는 지옥을 믿는 것이 사람들에게 더 강한 죄책감을 느끼게 해 부패와 비행을 예방하는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지옥을 믿는다는 응답자가 71%로 가장 높았고, 개인소득 역시 평균 높았으며 미국과 비슷한 소득을 올린 아일랜드도 전체 인구 중 51%가 지옥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했답니다. 반면에 지옥을 믿는 비율이 10%를 밑도는 불가리아, 벨로루시, 라트비아 등은 개인소득이 연 8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답니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같이 행복하지 못합니까? 탐욕 때문입니다. 탐욕만 내려놓아도 함께 비상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의 학식, 나에게 주어진 건강, 나에게 주어진 부, 나에게 주어진 명예, 나에게 주어진 입술 등을 나만 위해 사용하지 말고 나사로를 위해 사용하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다 천국의 상급이 됩니다. 나눔으로 가난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25)"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는 것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선자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소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마10:41-42).
우리 모두 탐욕이 노예가 되어 지옥처럼 살다 지옥의 형벌을 쌓아 놓는 삶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으로 천국처럼 살다 천국의 상급을 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마지막 날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지옥의 형벌이 실제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자 이 부자는 무엇을 요구합니까? 아직 죽지 않은 다섯 형제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나사로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29, 31절을 보십시오. 죽은 사람이 살아 나가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득당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되지만 너의 임무는 아무리 안타까워도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동안 선지자와 모세가 되어야 합니다.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나 홀로만 구원받지 말고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대의 파수꾼으로 세웠습니다. 우리도 직무 유기를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책망을 들을 것입니다.
에스겔서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7)" 그런데 만약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겔 33:6)"라고 했습니다.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 9:16)"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분토처럼 여기면서 복음 전하는데 일평생을 바쳤습니다. 자기 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합니까?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3)"
모세를 보십시오. 자기 생명을 거두어 갈지라도 내 백성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이런 마음이 지옥의 실제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마음입니다. 우리 부모 형제, 우리 아들 딸, 우리 지인들이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우리가 입술을 벌려 복음 전했다면 지옥에 가지 않을 준비된 영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 한 마디로라도, 우리가 베푸는 선행 한 가지로라도, 우리가 기도하는 1분의 기도로도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행 13:48)"게 됩니다.
늦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죽은 후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알렉산더 박사는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믿지 않았지만 자신이 체험한 후 열심히 천국을 전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박사는 세계적인 뇌의학 전문가이자이며 신경외과 전문의입니다. 하버드대 메디컬스쿨에서 15년간 교수와 의사로 근무했는데 갑작스럽고 희귀한 뇌손상으로 인해 7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답니다. 뇌사로 거의 죽은 상태로 회생 확률은 0%로 의사들은 생물학적인 사망 판정을 내리려 했답니다. 그러나 7일째 되는 날 그는 다시 눈을 떴고 현대 의학이 판정한 죽음의 문턱에서 생환했답니다. 혼수상태였던 7일간 그는 천국을 경험했고 그 임사체험의 경험을 담은 'Proof of Heaven(천국의 증명)'이란 책을 썼습니다. 우리나라 번역으로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으로 나왔습니다. 한 기자가 그를 방문하여 물었답니다. "정말로 천국이 있습니까? 천국은 실제 하냐고요?" 그러나 바로 확신에 찬 단호한 목소리로 "네. 확실히(absolutely) 천국은 있습니다. 천국은 실제로 있습니다(Heaven is real)."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또다시 질문했답니다. "당신 앞에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석좌교수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도킨스 교수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가." 그 질문을 받고 웃으며 대답했답니다. '이봐요 도킨스, 자기 확신을 갖고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자유지만 이것 한번 생각해 볼래요. 신은 없으며 인간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끝난다고 했는데 당신이 이 땅을 떠났을 때 정작 천국이 있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는 “내가 도킨스에게 해 줄 이야기는 이것 하나입니다. 나는 분명히 천국을 보았습니다. 정말로 천국이 있더라고요."라고 말했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지옥도 정말로 있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다 함께 지옥이 아니라 형제와 아들과 딸, 손자 다 함께 천국 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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