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12) 상한 감정의 치유
에베소서4:31-32
오늘은 치유 12번째 설교로 “상한 감정 치유”입니다. 몸이 병들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감정도 병들면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감정도 상처를 받습니다. 타인의 말과 태도, 행동에 따라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오래되면 상한 감정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상한 감정은 마치 문과 같아서 상한 문을 통과해서 사람을 대하고, 창과 같아서 상한 감정의 창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감정식당(이서원 저)>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그마한 회사를 다니는 30대 후반 평범한 직장인인데 어린 시절 부모님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답니다. 약주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자주 늦으셨는데, 집에 오면 물건을 부수거나 악에 받친 어머니와 욕설을 주고받으며 몸싸움도 심하게 하곤 했답니다. 그런 날이면 동생과 불을 끄고 방문을 잠근 후 불안에 떨곤했답니다. 독립하여 직장생활을 하는 요즘도 아침에 눈을 뜨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한 마음이 든답니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결혼에 자신이 안 생기는 겁니다. 남들은 좋은 여자 만나 잘만 사는 것 같은데 그는 어떤 여자를 만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되는 게 아닐까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이런 감정을 상한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심각하게 감정의 상처를 당했는데 30대 후반 성인이 되었는데도 그 상처난 감정이 치유받지 못하고 살고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부모, 형제, 친척 등 제 1차 사회집단과 2차 사회 집단인 학우, 친구들, 사회 생활하면서 3차 사회집단과 관계를 가지고 삽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수많은 상처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그 중 상한 감정은 어릴 때 1차 집단에서 많이 받습니다. 이런 가정을 가정이 정상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역기능 가정이라고 하는데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를 성인 아이라고 합니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아직 아이 때 상처받은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부모의 모습을 통해 받은 상처가 자기 안에 계속 남아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 만들어진 감정의 창, 감정의 문으로 세상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금이 간 창문에 앉아 창밖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창밖의 경치는 계속 바뀌는데 깨진 창으로 바라보니까 어떤 경치도 깨진 경치로 보이는 것입니다. 과거의 좋지 않은 경험으로 발생한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시간에 멈춘 감정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마음이 굳어버리고, 냉담해지며, 감정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내면의 깊은 곳에는 분노가 쌓여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한 감정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1. 상한 감정을 만드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 모든 악의” 이런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과 감정을 버려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감정은 어떤 사건에 대하여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감정이 나올 수 있고 긍정적인 감정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생각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만드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아버지도 그랬으니 나도 그럴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그 감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감정을 가슴에 쌓아 놓으면 자신이 병이 듭니다. 밖으로 표출하면 상대가 피해를 봅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내 감정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버려 버려야 합니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 주기는 평균 5주라고 합니다. 즐거웠다가 우울해지고, 다시 즐거워지는 데 약 5주가 소요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흘러 보내면 되는 데 잘못된 생각이 감정을 붙들고 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악독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악독(피크리아)은 날카롭고 독기가 있는 마음씨를 가리킵니다(행3:23; 롬3:14). 까다롭고 온후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느 일에도 선한 것을 보지 못하는 즉 나쁜 것만 보려는 태도입니다. 어떤 결점이나 흠집만 꼬집어 내려는 태도입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일은 대부분 개인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데 이익 충돌에 의해 악독한 생각이 들면 감정을 만들어 내고 그 감정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창문과 같습니다. 어느 순간 병든 창을 가지게 되면 까다롭고, 나쁜 것만 보는 눈으로, 결점이나 흠집만 꼬집어내는 태도로 모든 것을 보니까 매사 감정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어떤 사건이 생기면 생각을 합니다. 그 생각에 따라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긍정적인 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건이라고 사건은 중립적입니다. 그 사건을 “좋다-나쁘다. 맞다-틀리다”라를 꼬리표를 붙여 주는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감정은 그 생각에 대한 믿음으로 발생합니다. <생각을 걸러내면 행복만 남는다>라는 책의 저자 노아 엘크리프는 지나간 일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고, 누군가에게 분노를 느끼고, 자기 인생을 부끄러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을 멈추고 싶다면, 그저 그런 감정을 만드는 생각을 ‘믿지 않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자신의 ‘근거 없는’ 생각을 믿지 않게 되면 그것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감정도 한순간에 사라진다고 말하며 무조건적인 행복하고 순수한 기쁨과 충만한 에너지를 되찾고 싶다면 1) 원치 않는 감정을 찾고 2) 그 배후에 숨은 생각을 찾고 3) 외부상황이 아니라 그 ‘생각’이 문제임을 알고 4) 그 생각이 부풀려진 것임을 깨닫고 5) 계속 이 고통을 겪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품으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일어난 사건은 변할 수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유익한 방향으로 믿고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으면 감정은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마술쇼에서 마술사가 조수의 몸을 상자 안에서 가르면 실제로 믿으며 두려워하거나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속임수의 기술을 알고 나면 다음에는 누군가의 몸이 마술 상자 안에서 절단되는 모습을 보더라도 그걸 사실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고 그 생각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처를 준 과거의 사건은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그 부정적인 감정의 안경으로 믿고 바라보는 태도를 버려 버려야 합니다.
노함과 분냄의 감정을 버려야 합니다. 노함(뒤모스)는 일시적인 분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눅4:28; 계16:19). 순간적, 무계획적 분노입니다. 분냄(오르게)은 일시적인 분노가 마음에 자리잡아 오랫동안 품고 있음을 가리키는 감정입니다(마3:7; 롬2:5) 분냄이란 지속적인 마음의 상태를 말하며 두고 두고 한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의도적으로 버려 버려야 합니다.
떠드는 것을 버려 버려야 합니다. 떠드는 것(크라우게)은 '부르짖다.', '소리 지르다.'에서 유래된 말로 마음에 있는 분노를 밖으로 터뜨리는 결정적인 고함을 말합니다. 흥분한 사람들이 소리를 돋워 서로 싸우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노함, 분냄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비방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감정이 상하면 어떤 일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해롭도록 고의적으로 나쁘게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중상 모략하여 해를 더해 주고 악하게 말하는 것을 버려 버리라고 말합니다. 감정은 욕구- 감정- 행동이라는 가계도를 가집니다. 욕구를 방해하는 상황을 만나면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좋지 않은 결과도 나오고 좋은 결과도 나옵니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으면 짜증이 납니다. 짜증이 나면 밥상을 발로 차면서 신경질을 냅니다. 배가 고파서 먹고 싶은 것이 욕구입니다. 배가 고픈 것은 아무 잘못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도 가치 중립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어 짜증을 내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감정입니다. 이 감정은 어릴 때 상처을 치유받지 못하면 밥을 차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 된다고 분노를 폭발하기도 하지만 되는 방법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것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구입니다. 내가 싫은 것 가진 너를 미움의 대상으로 삼고 비방하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상처난 감정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상대를 상처난 감정을 가진 사람은 시기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감정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개발합니다. 잘난 사람을 보며 열등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노력을 합니다.
악의를 버려 버려야 합니다. 악의(카키아)은 '사악함', '악덕'을 말합니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의 그원입니다. 인간이 아담 이후 타락하여 태어날 때부터 죄악 가운데 출생합니다. 그래서 감정이라는 것이 나에게 이로우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나에게 해로우면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기준을 상대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인간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감정의 종류를 분류하는데 현대 심리학에서 인간의 기본 감정을 기쁨, 관심, 놀람, 슬픔, 혐오, 분노, 공포, 경시, 수치심 아홉가지로 구분합니다. 이 중에 기쁨과 관심은 긍정적 반응, 놀람은 중간 반응이며, 나머지 여섯 가지는 부정적 반응에 속합니다. 인간은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에 지배받을 확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민경환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나타내는 한국어 단어 중 72%가 불쾌한 감정과 관련된다고 합니다. 감정은 태생적으로 부정적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쉽게 나쁜 감정 상태에 빠집니다. 부정적 감정의 늪에 빠져 천천히 압박하고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듭니다. 진정한 자아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각종 정신 질환 및 생리 질환까지 수반합니다. 우울장애, 불안장애, 공포증처럼 병으로 진전되기도 합니다.
세계 최고이 지성들이 배우는 감정의 심리학, 감정 과잉 시대에 마음을 다스려 줄 심리학 강의라는 부제로 낸 <하버드 감정 수업(쉬센장 저)>이라는 책에서는 나쁜 감정 에너지를 배출하라고 말합니다. 슬프고 괴로우면 한번 크게 목 놓아 울어서 내면의 고통을 밖으로 분출하라고 말합니다. 화가 나면 화나게 한 사람 혹을 일로부터 멀어져 다른 일을 찾아 그 일을 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배출하라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나쁜 감정을 없애고 싶다면 우선 그 존재부터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그런 후에 이런 나쁜 감정이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라고 합니다. 상처난 부정적인 감정을 쌓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이 심장질환자 1,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에 따르면 피조사자 중 상당수가 매우 심한 정도의 초조와 우울감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감정 과다 탓에 그들의 심장은 일반인보다 더 쇠약해졌고 이에 따른 감정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결국 감정 과다가 불러오는 또 다른 부정적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감정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답니다. 이른바 감정화란 어떤 일 혹은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 결과인 과도한 희로애락에 근거해 행동하는 걸 의미합니다. 감정이 충동적입니다. 감정이 몰아치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입에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뱉어 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심각한 위법행위까지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과도하게 감정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계획과 목적이 있는 의식적 행동 즉 이성적 행위를 하는 것인데 과도하게 감정적이 되면 감정이 이성을 누르고 독립적 사고 능력을 상실하고 감정에 따라 행동해 버린다고 합니다. 상한 감정으로 인하여 지난 주 신문에 나온 것처럼 데이트 폭력을 통해 상대를 죽여 버리는 것처럼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 되어 버립니다. 의지와 의식의 힘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충동적으로 폭발해 버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심각한 파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상처난 감정을 치유하려면 복음적 생각으로 채우고 복음적 행동을 해야 합니다.
3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라고 말씀합니다. 상처난 감정은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고 그 상처난 감정은 파괴적인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행동을 만들어내는 감정을 고치려면 먼저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고쳐야 합니까? 복음적인 생각입니다. 복음적인 생각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생각이고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생각으로 고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도 친절하게 여기며 불쌍히 여겼습니다. 사람을 싸움의 대상으로, 적으로, 이용물로 생각하니까 사로 상처를 주보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6장 12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사람을 친철을 베풀어야 할 대상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하려면 깨끗한 물을 계속 부어 넣어야 합니다. 생각도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난 감정을 치유한다고 그 상황과 그 때 상황을 계속 생각하고 그 과거에 붙잡혀 있으면 상처난 감정을 덫이 나고 치유될 수 없습니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생각으로 채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친절과 긍휼을 말씀합니다.
서로 친절해야 합니다. 친절(크레스토스)은 '빌려주다'에서 유래한 말로 단순하게 친절하라는 말이 아니고 “되라”라는 말씀을 함으로 "그것은 개발하라 그것을 위하여 시간을 들이고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일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유익한 사람이 되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라는 것입니다. 악독하게 되는 것의 반대입니다. 악독한 사람은 까다로운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결코 유익을 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친절한 사람은 흠 있는 것을 발견해 내려고 야단하지 않고 언제나 칭찬할 것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 주고 그들의 난제를 풀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담당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라고 말씀하셨는데 신앙인은 예수님을 대하듯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감각없는 자였고 마음이 굳어졌던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를 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흠을 보고 비방하고 떠들어 댔습니다. 쉽게 분노하고 그 분노를 폭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연민의 감정이 생겼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한 가족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섬기는 영적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적이 아닙니다. 내 편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아니하는 굳어 버린 상태에 있지 않게 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입장에서 세상을 보지 않습니다. 많은 병자들과 굶주린 자들이 예수님께 나올 때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고쳐주고 먹여 주셨습니다.(마 14:14) 긍휼이란 남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마음입니다. 긍휼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시해도 될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 버림받아야 할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감정이 상하면 모든 것이 하기 싫고 모든 관계가 틀어집니다. 친절한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다 없어져 버립니다. 감정에 상처를 준 남편에게 밥도 챙겨 주기 싫은 것입니다. 감정에 상처를 준 아내와 옆에 자기도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감정의 상처를 치유받으려면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의도적으로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싸우는 부모님도 생각해 보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불쌍히 여기면 상처난 감정도 살아집니다. 감정은 주어진 것이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하버드 감정 수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 온 헨리가 친구와 함께 가게에 간식거리를 사러 갔답니다. 계산을 마친 오 헨리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점원은 뚱한 표정으로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아답니다. 가게를 나서자 마자 친구가 점원을 험담했답니다.
“정말 불친절한 사람이군,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저래서야 쓰나”
“저 사람은 항상 저렇다네” 오 엔리가 별일 아니다는 듯이 말하자 친구는 깜짝 놀라 무엇답니다. “그럼 자네는 그걸 알면서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는 말인가?” “그 사람 기분에 나까지 위둘릴 필요는 없지”
행위와 감정은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지만 그렇다고 타인이 내 감정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지배당하면 늘 화를 내거나 불평, 불만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상처난 감정을 점검하고 제어하고 조절하면 되는 것입니다. 타인이 자신을 행복하고 기쁘게 만들어 주지 않으면 자신이 타인을 행복하고 기쁘게 만들어 주면 된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는 전 세계 수많은 위인의 삶을 연구한 결과 이들이 모두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탁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 책은 감정 조절 방법을 격언으로 자기 암시하기, 주의 돌리기, 자기 감정 인식하기, 입장 바꿔 생각하기, 새로운 자극 찾기 등을 말합니다. 크게 화가 나면 가짜 미소를 지어 보라는 것입니다. 어질러진 방이나 사무실을 정리하면 부정적 감정이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으면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고 합니다. 노래를 부르면 호흡이 조절되고 몸 전체가 리듬에 맞춰 움직이어 마음이 진정되고 안정된다고 합니다. 애완동물과 보내면 혈압이 낮아 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합니다. 복음적인 행동을 하면 상처난 감정도 치유가 됩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감정이 바뀐다고 말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생활양식(lifestyle)’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생활양식이란 유년기에 형성된 개인의 생활 태도, 생활 방식, 삶에 대한 사고와 행동의 경향, 인생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한 태도 등을 말합니다. 이런 생활양식은 성장 배경 또는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은 무의식적 선택으로 시작하지만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선택이 쌓이고 쌓이면서 어떤 사람은 긍정적 생활양식을, 또 어떤 사람은 부정적 생활양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 비해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이라면 어린 시절에 좋아하는 장난감을 갖기 위해 화내고 고집을 부렸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부모로부터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그 방법을 선택했고 그것이 쌓여서 그의 생활양식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화를 잘 내는 감성 양식은 부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부정적 생활양식이 감정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 양식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연애하는 자매가 사랑하는 남자가 결혼 이야기를 하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우울해 공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사랑하는 남자의 결점만 들추는 날들이 이어졌다고 생각해 보면 이 자매는 상처난 감정으로 생활 양식이 늘 그랬다는 것입니다. 자매가 6살 때 아버지는 다른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가족을 버리고 떠나 이 사건으로 상처난 감점을 가지고 자매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라는 신념과 ‘남자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관점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남자에 대한 부정적 신념과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녀는 앞으로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들러는 생활양식도 의지만 있다면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생활양식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감정이 올라온다면 스스로에게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믿음과 관점(생활양식)을 가지고 있기에 이 상황에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일까?”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내 말에 따라야 한다’ 혹은 ‘내 말이 무조건 옳다’라는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위장된 분노의 치유〉라는 책을 쓴 최현주 목사님은 자신이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답니다. 최 목사님의 아내는 남편의 폭행을 경험하며 남편이 아주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살아온 이야기를 아내가 들었답니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의 가정에서 자랐답니다. 그래서 아픈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남편이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음을 알게 된 후,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남편을 이해하니 남편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되었답니다. 남편은 자신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아니요, 남편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 후, 아내의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했답니다. 남편을 가해자라고 생각하며 남편을 미워하기만 했는데, 남편을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남편에게 닫힌 마음이 열렸답니다.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 의지와 힘으로 잘 안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친절하게 대해 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적 상처를 받았지만 끝까지 사랑하였습니다. 가슴에 깊은 못은 밖은 원수같은 남편일지라도 보기 싫은 아내일지라고 주님이 부어주신 사랑으로 대하면 응어리진 감정의 상처는 녹지 않을 감정이 없습니다.
3. 상한 감정은 서로 용서할 때 치유가 마무리 됩니다.
32절 중반절 서로부터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악의와는 반대되는 말입니다. 용서는 그들이 행한 나쁜 일을 충분히 깨닫고 그것을 용서해 주며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전에는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하나의 사람으로 보았으나 이제는 사탄의 속임수에 의한 죄의 희생자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함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었으니 너희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70번씩 7번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11:25)"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십자가에서 용서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자들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용서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는 마지막 과정이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떤 감정의 상처도 깨끗이 아물지 않습니다. 용서의 문을 통과하지 않은 상한 감정의 치유는 증상 치료는 될 수 있지만 원인 치유까지 될 수 없습니다. 단독적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용서하는 용서의 관문을 통과해야 감정의 상처를 치유받고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내어놓기까지 용서해 주셨습니다.
용서는 고통스런 상처를 지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과거에 개의치 않고 앞으로 발을 내딛는 것으로 평안고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용서는 약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한과 쓴 뿌리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하는 선택입니다. 부당한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하여 부정적 판단, 감정, 행동을 극복하고 상대에 대하여 긍정적 사고, 감정, 행동을 갖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받아야 할 마땅한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며 상대를 감싸주고 다시 일으키고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괴롭히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앙갚음을 포기하는 것이며 상대방의 완벽한 행위와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는 계속 남아있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자신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상한 감정은 전염이 됩니다. 감정 바이러스는 사방으로 전염이 됩니다. 감정은 그 사람의 자세, 말, 표정을 통해 다양한 경로로 전달됩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상한 감정대로 살면 그것은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쉽게 전달되어 버려 공동체가 불행해집니다.
하버드의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교수와 캘리포니아 대학 제임스 파울러 교수는 감정의 생성과 전이 과정을 규명하고자 '행복 확산 실험'을 했답니다. 실험 결과, 한 사람이 행복을 느끼면 그 가족이나 친구가 행복을 느낄 확률이 각각 14%, 9%씩 상승하고, 룸메이트와 이웃이 행복을 느낄 확률은 각각 8%, 3.4%씩 상승했답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확산되는 행복은 최대 1년까지 지속 가능하며, 세 집단의 구성원에게 전달 가능했답니다. 이를 토대로 추산하면 어느 집단의 한 명이 행복을 느끼면 이 감정이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행복하게 할 확률은 5.6%에 달했답니다. 돈 5,000달러가 행복감을 2% 상승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생각하면 타인의 좋은 감정이 돈 5,000달러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답니다.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 감정에 비해 전염성이 훨씬 컸다고 합니다.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고 늘 한숨만 쉬는 사람과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 원래 쾌활하고 명랑한 사람도 금세 우울해진다고 합니다. 용서하면 나도 행복하고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행복해 집니다.
<인생의 응어리를 풀라>의 저자 크리스티 김은 용서하지 않은 자가 당하는 영적 피해를 12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둘째, 용서하지 않으면 사탄이 틈을 탑니다. 셋째, 용서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넷째, 용서하지 않으면 그런 이성과 결혼하게 됩니다. 다섯째,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과 멀어집니다. 여섯째,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을 닮아갈 수 없습니다. 일곱째, 용서하지 않으면 관계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여덟째, 용서하지 않으면 몸이 쇠약해집니다. 아홉째, 용서하지 않으면 외롭게 삽니다. 열째,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에 묶입니다. 열한째,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열두째,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보여주신 선물입니다. 모든 상한 감정을 치유받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결코 잊지 못할 치유받지 못하는 상한 감정을 만든 기억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은 억울하게 27년 동안 외딴섬의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여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자 했습니다.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백인경찰이나 군인이 자발적으로 고소자들 앞에서 범행을 털어놓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그 범죄로 인해 재판을 받거나 처벌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청문회 자리에서 반드 브렉이라는 경찰관이 자기의 죄를 털어놓았습니다. 자신과 동료들이 18세 소년을 총으로 쏘고 시체를 불태운 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그 시신을 바베큐처럼 불에 그슬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8년 후 반드 브렉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소년의 아버지를 체포했는데, 불쌍한 그 아내는 경찰관들이 남편을 장작더미에 묶어놓고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을 붙이는 광경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들과 남편을 차례로 잃은 노부인에게 법정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판사는 물었습니다. "반드 브렉 씨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부탁한 후 한 가지 요구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반드 브렉 씨는 제 가족을 모두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직도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많습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한 달에 두 번 우리 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나는 반드 브렉 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나는 내가 정말 용서했다는 것을 반드 브렉 씨가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쓰디쓴 지옥과 달콤한 천국을 왔다 갔다 합니다. 사람마다 다 말 못할 사연들이 있고 크고 작은 상한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상한 감정을 치유받지 못하면 그 상처난 감정의 창으로 세상을 보고 삽니다. 상처난 감정을 쌓아 놓지 말고 끄집어내어 주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그 상처난 감정에 주님의 보혈이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상한 감정을 치유받으려면 상한 감정을 만드는 잘못된 생각을 과감하게 버려 버리기시 바랍니다. 그리고 상처난 감정을 치유하려면 복음적 생각으로 채우고 복음적 행동을 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용서함으로 상한 감정을 깨끗하게 치유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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