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7) 낮은 자존감 치유
에베소서1:4-6
오늘은 치유 시리즈 설교 7번째로 “낮은 자존감 치유”입니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의 줄인 말로 자신을 존중하는 감정입니다. 나를 소중하게 여겨 자신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어떤 상황과 처지를 만나도 자기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자존심과 혼돈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존심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입니다.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나의 가치가 다른 사람 앞에서 손상을 입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불쾌하며 화가 난 마음입니다. 둘 다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심은 평가의 기준이 자신이 아니라 남입니다. 상대의 평가를 통해 자기만족을 꾀하는 마음입니다. 늘 남을 의식하는 것이 자존심입니다. 그러나 자존심은 남의 평가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굳게 지키는 마음입니다. 자존심은 있는 그대로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근거 없는 자존감은 자만감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사업을 시작했는데 코로나19로 사업이 어려워지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불평등한 정부 규제 때문에 우리 망했어, 챙피해 죽겠네,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등과 같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만나는 것이지, 내가 시기를 잘 못 선택했지, 나만 어렵나 이런 때는 다 어렵지, 나는 일어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존감"이라고 말을 합니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행복도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자기 존중은 정신건강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합니다. 자존감이 아주 낮으면 스스로 '나는 세상에 무가치한 존재야.' '나는 능력이 없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누구도 나를 환영하지 않아'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외모나 상태에 대하여 늘 불만족합니다. 자존감이 낮으면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무시하여 스스로를 자해하며, 심한 경우 자살합니다. 잠재력과 꿈을 마비시켜 버리고, 대인관계를 원만히 갖지 못합니다. 누가 웃으며 인사를 해도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누가 열심히 설명해 주면 내가 고졸이라 우습게 보고 그런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타인을 통해 인정욕구를 채워 보려하는 것이 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집착하거나 소유하고 조정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서운하게 하고 대접을 해 주지 않으면 "내가 누구지 몰라?"라고 타인에게 분노하고 적으로 삼고 위해를 가하려고 합니다. 남에게 조금만 기분 나쁜 소리를 들으면 참지 못합니다. 인정해 주지 않으면 하던 일도 하지 않고 어깃장을 놓습니다. <마음 탐구>의 저자 그래이 콜린스(Gary R. Collins)은 가족치료의 영역 가운데 80%가 "자존감의 치유"의 영역이라고 했습니다. 자존감의 문제는 인간의 모든 문제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과 생각과 말, 그리고 그의 태도와 행동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이 자존감이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행복하고 만족하게 살려면 자존감이 높아야 합니다. 남은 기준으로 하는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자존감인데 그것은 잘 못하면 자만감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하나님을 기준으로 할 때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존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낮은 자존감을 어떻게 치유받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근거하여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낮은 자존감을 치유받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유일한 창조물이라는 가치감을 가져야 합니다./ 존재하는 지금의 나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첫째 자신의 가치에 대하여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하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바로 밑에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자존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동물을 섬기고, 식물을 섬기고, 물질을 섬기는 자존감이 바닥난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그 후 모든 인간은 원죄 가운데 태어나 자존감이 바닥난 죄인 의식을 가진 원초적 심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내면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고 외적인 자신의 외모, 재산, 학력, 가족, 직장 등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불만족하며 그것으로 행복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모를 성형하고,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돈으로 포장하고, 학력으로 위장하고, 좋은 직장으로 자신의 신분을 바꾸면 자존감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 가치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으로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생각해 보십싣오. 외모를 고치면 자존감이 높아져 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까?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합니다. 눈을 고쳐보면 입이 마음에 들지 않고 아무리 고쳐보아도 자신보다 더 잘 생긴 사람이 있기 때문에 평생 외모에 대하여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10억을 벌면 만족해하고 행복해 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10억이 있으면 100억이 있는 사람이 보이입니다. 100억 있는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100억이 있으면 1천억이 있는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공부 잘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가보니까 날고 뛰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는데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외적인 것으로 자신의 레벨을 올리려고 한다면 끝없이 행복과 만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상대적이고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외적인 가치로 자신의 가치감을 만들면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내부에서 찾지 못하고 외부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남의 시선에 맞게 외부적인 레벨을 올려 보아도 더 높은 레벨은 존재하여 결국 만족과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허영과 사치로 포장하여 과시욕과 우월의식으로 살지만, 내부적으로는 결핍과 공허, 열등의식, 죄의식적 사고, 자학적 성격, 연극성 장애, 우울, 사회 불안증, 의처증 의부증같은 심리 질환,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자기 인식을 고쳐야 근본적으로 낮은 자존감에서 벗어나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평생 살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가치감을 높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이 우리의 가치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택했다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이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작품이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작품의 가치는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모나리자>라고 합니다. 미술전문가들은 무려 그 가치가 40조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실제 2180억원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피카소가 그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렸다면 100만원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진품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으로 찍어낸 그림은 10만원도 가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사진을 내려받아 출력해 보십시오. 10원도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화의 산물도, 유전자 정보는 나르는 그릇도, 물질의 덩어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천지를 만들기 전에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유일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첼렘)과 모양 (데무트)을 따라 지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두팔 두발 머리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하님의 속성은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이 있습니다. 비공유적 속성은 하나님만 있는 전지성, 전능성, 무소부재성 등과 같은 속성입니다. 하나님도 인간도 있는 속성입니다. 이성, 감정, 의지, 영성, 자유의지, 사랑, 의, 지식, 관계성, 통치권 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이런 속성을 가지고 인간은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는 동물은 없는 이런 속성을 가지고 지음받았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를 선택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하여 참 지식, 의, 거룩함이라고 가르치며(엡 4:23-24; 골 3:10),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라고 말합니(골 1:15)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롬 8:29; 고전 15:49; 골 3:9-10).
그래서 왜 우리를 택하였습니까?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입니다. 더럽고 추해 마땅히 책망받고 죽을 수 밖에 없는 가치 없는 존재를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택하신 것입니다. 죄악가운데 탐욕, 모순, 부조리 가운데 사는 사람, 이중인격자인 사람, 공허하고 만족함 없는 사람, 시기하고 분노, 질투하기 좋아하고 쉽게 노하고 쉽게 배신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사람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들기 위하여 택하였습니다.
택하신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깊으신 뜻"입니다.
우리의 학력, 외모, 가정 배경, 직장, 재물, 능력, 재능, 성품, 경력 등을 보고 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무조건적으로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있는 그대로 가장 고귀한 존재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그러므로 하나님은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시편 16:3)”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피값으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못 생겼다고, 가난하다고, 못 배웠다고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세상에서 유일하며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낮은 자존감으로 평생 불만족하고 불행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받기 위해 천지를 만드시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많이 불렀던 복음 찬송이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있어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
2. 낮은 자존감을 치유받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낮은 자족감을 가진 사람의 특징 두 번째는 매사 자신감이 없습니다. “나는 공부도 못하고, 돈도 못벌고, 능력도 없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안 좋아서, 흙수저로 태어나, 나이가 들어서, 가방끈이 짧아, 못생겨서, 못 배워서 등 갖가지 이유를 들면서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소평가는 비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킬 때 사탄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그렇게 비교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어진 것으로 살아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늘 비교하게 해 놓았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되고, 나는 무능력하고, 나는 아무리 해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까봐 따먹지 말라고 했다고 하나님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에 대한 사고의 왜곡이 생겨 있습니다. 사고 왜곡은 이분법적인 사고(흑백논리), 부정적 사건을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의 본보기처럼 생각하는 과잉 일반화, 한 가지 잘못된 일에만 집착하는 판단력의 색안경, 긍정적 측면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긍정측면의 부정, 지레짐작하는 성급한 결론, 과잉확대(큰 재앙으로의 간주) 혹은 과잉축소, 감정적 판단 등과 같은 부정적 사고가 자신의 인식 구족의 기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고의 왜곡으로 인한 부정적인 사고는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특징입니다. 자신은 3류 대학을 나왔으니 3류 인생이 되고, 자신은 흙수저로 태어났으니 흙수저 인생이 되며, 자신은 장애자로 태어났으니 장애 인생이 될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자아상은 어릴 때 부모를 통해 생깁니다. 특히 가장 친밀한 어머니를 통해 생깁니다. 어머니를 반사 자기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에 의해 마음의 핵심이 생기는데 수유를 하면서 그만 물어라고 짜증을 냅니다. 그러면 아이는 무시당하고 거부당하는 자아상을 가지게 됩니다. 조금 자라면 어머니가 다른 아이와 다른 형제와 비교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결핍된 자아, 보잘 것 없고 부족한 자아상이 무의식 속에 자리잡게 되어 버립니다. 무의식 속에 “나는 무능해”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해도 안돼” 등과 같은 자기 능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겨 버린 것입니다. 심리상담가인 토니 험프리스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라는 책에서 우리 자존감의 몸통은 8살 이전에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자존감이 행복과 불행의 열쇠가 되는데 어릴 때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은 중요한 타인들의 영향, 기질과 성격적인 영향, 사회 환경적 영향에 의해 만들어 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에서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대하고 키우느냐에 따라 거의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 성공 경험을 많이 하게 하여야 합니다. 성공 경험을 많이 하면 자존감 지수가 높아집니다. 남과 비교하며 너무나 높은 기준을 놓고 못했다고 책망만하지 말고 낮은 기준을 잡고 한 단계 한 단계 성공하면 그것을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면 공부도 운동도 예술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공경험을 방해하는 가장 큰 부모의 양육태도 2가지는 첫째가 비교의식입니다. 90점을 맞아도 이웃집 아이가 100점을 맞았다고 만족하지 못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는 할 수 없는 아이라고 자존감이 낮아져 버립니다. 두 번째가 과도한 간섭입니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부모들이 다 해주는 것입니다. 기다리지 못합니다. 요즈음은 대학원 시험보고 취업 면접하는데 까지 부모들이 따라간다고 합니다. 이런 자녀들이 자존감이 높겠습니까? 의존증만 높아집니다. 홀로 서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도 누가 조금만 자존심 상한 말을 하면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냅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5-10% 정도가 되는데 당연히 학교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생활을 하고 성공적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좌절도 쉽게 이겨내고 사랑으로 충만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는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신념을 자기 효능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게 여기고 과업을 지나치게 낮게 보는 자만심과는 다른 말입니다. 지금의 자신의 능력이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 자신감의 근거가 자신의 학력이나 재력, 외모, 가정 배경이 아닙니다. 이런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것에 근거를 둔 사람들은 그것이 살아지면 자존감도 완전히 추락해 버립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아들이 되게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속해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얼마나 능력이 있겠습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되면 당한 자존감을 갔습니다. 통수권자의 생각과 행동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비록 비서실장이지만 통수권자의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가장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사울 왕이고 가장 자존감이 높으신 분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울 왕은 인물도 잘생겼고, 효심도 있었으며 능력도 있었습니다. 자존심은 대단했습니다. 다윗이 여인들에게 인정받자 다윗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자존감이 바닥이 나서 결국 전쟁에 지고 자존심 때문에 자살하고 맙니다. 자존심으로 살다 자존심으로 망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자존감이 높았습니다. 적국에 가서 미친짓하고 침을 흘리는 것을 비겁한 행동으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자존감이 강한 다윗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하면 한 나라의 장군인데 그렇게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약속을 믿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존심을 다 내려 놓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강하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못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돈도 없고 자식도 없고,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이 그를 외면하고, 나이도 늙고 감옥에 갇혀 있는데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빌립보서 4장 12-1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얼마나 자신감이 충만합니까? 얼마나 자존감이 넘칩니까? 사도 바울은 대단한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환난과 죽음의 세력과 대항해서 싸워서 이겼습니다. 자존심에 사로잡혔다면 바구니 타고 성밖으로 탈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3-37). 이 자신감이 우리의 자신감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기는 악기 자체의 가치도 있지만 악기를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인 누구라는 “자기 중심성”으로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 누구라는 “하나님 중심성”으로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를 둔 자신감이 건강한 자존감을 만드는 자신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우리가 능력없다고 두려워하며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우리를 도와주면 능력이 생깁니다. 무식한 베드로를 사용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약점이 강점으로 되는 것입니다. 무능력으로 고난받은 기간이 결국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고난의 기간은 훈련의 기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훈련을 25년 동안이나 받았습니다. 야곱은 30여 년을 광야에서, 바울은 3년 반 동안이나 아라비아 사막에서 외로운 광야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다윗은 17여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새 성품 새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약점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오른 손 장애인 에훗도 하나님이 능력 주어 사용했습니다. 드보라는 당시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드보라에게 사명을 주시고 함께하여 자신감을 주어 한 시대 사용하였습니다. 삼갈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습니다. 겁쟁이 기드온도 사용했습니다.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하였지만 그것으로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나 성군으로 일어섰습니다. 사람들은 실패했다고, 자신이 능력이 없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기능이 없다고, 실력이 없다고,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둔하다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래 너 가문 별 볼일 없어, 그래 너 능력 없어 그것 내가 너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너를 쓰는 것은 그렇게 때문에 쓰는 거야 능력 있는 내가 있지 않느냐? 능력 있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통하여 나의 일을 할 거야" 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근거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가야 합니다. 대머리입니까? 키가 작습니까? 돈이 없습니까? 실패했습니까? 실력이 없습니까? 사람들이 삼류라고 말합니까? 못생겼습니까? 차가 작습니까? 늙었습니까? 학벌이 내 놓을 것 없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3. 낮은 자존감을 치유받으려면 자신이 평생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소속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존감이 낮는 사람의 세 번째 특징은 소속감이 낮은 것입니다. 자존감은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가를 통해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 질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존감은 자신이 얼마나 유용한가에 따라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자존감은 소속감에 따라 높아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너는 다리 밑에서 주서 온 아들이야”라는 말을 듣고 살면 자존감이 낮아 집니다. 자신의 전부인 가정에 대한 소속감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어릴 때 부모에게 거부되고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완전주의적 양육방식을 통해 방치하고 거절하고 학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나는 환영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무의식 깊은 곳에 기억이 됩니다. 그러면 거부된 자아상이 아이의 견고한 틀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부모에게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자존감이 낮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있는데 어머니가 이웃집 친구 어머니와 대화하면서 "우리 아들 우리 집을 일으킬 기둥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아들의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일등 국가에 소속된 사람들은 비교적 자존감이 높습니다.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왕따를 당하고 버림을 받으면 자존감은 땅에 떨어집니다. 아무데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존감을 낮아집니다. “김집사님은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화장실에서 들으면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화장실에거 누구가 “김집사님은 우리 교회에 왜 나오는가 모르겠어”라는 말을 들으면 자존감을 곤두박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곳에 찾아가 소속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안 받아주면 자신을 받아주는 마담을 남자들이 찾아갑니다.
그래서 영유아기 때 부모와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자존감은 떨어집니다. 똑똑한 엄마보다 따뜻한 엄마, 사랑스런 엄마가 중요합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소속감을 가지게 되면 자존감은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분비 호르몬인 옥시토신(oxytocin)이 분비되어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원하며, 용납하며, 돌보아주며, 즐기며,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면 자존감은 쑥쑥 올라가게 됩니다. 아이를 인정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칭찬해 주면 자존감은 높아집니다. 임신할 때부터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고 어머니가 생각하며 아이를 양육한다면 아이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그런데 이런 소속감은 유동적이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이런 유동적이고 상대적인 소속감에 따른 자존감은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으면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은퇴하면 그 소속감은 남의 것이 됩니다. 어떤 가족에 속하고, 어떤 기관에 속하고, 어떤 기업에 속하고,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 속하여 갖는 자존감이란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존감을 높이려면 소속감의 근거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자 안에서입니다. 그는 하나님이고 사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우리의 소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는 각종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를 계속 강조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늘에 있는 신령한 복도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신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속량해 주신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때가 찬 경륜을 이루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통일 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천국 가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영광이 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우리의 소속은 택함부터 천국에 이르도록 다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소속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1-39)”
가난이 실패가, 외모가, 진학이 결혼이, 이혼이, 집안 배경이, 실연이, 가정 폭력이, 실직이, 사별이, 질병이, 고난이, 코로나가, 무식함이, 따돌림이, 사고가, 더위가, 그 어떤 장애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라고 약속해 주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속이면 쉽게 떠나 버립니다. 마음에 안들면 쉽게 차버립니다. 이익이 없으면 쉽게 얼굴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간 야곱도 버리지 않고 사랑하여 끝까지 함께 하여 바로 앞에 자존감을 높여주고 12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살인하고 도망가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간 모세를 찾아가 자존감을 회복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부하의 아내를 겁탈하고 부하를 죽이고 자존감도 자존심도 다 내려 놓은 다윗을 찾아가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자존감을 다시 회복시켜 이스라엘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성군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인하고 배신하고 자존감이 낮아진 베드로도 사랑하여 다시 자존감을 높여주여 초대교회 지도자로 삼아 사람낚는 어부로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발광하는 자존심으로 살아갔던 바울을 받아들여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 최고의 사람으로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로 사용하였습니다. 간음하다 잡혀 자존감이 바닦난 여인을 용서해 주심으로 자존감을 높여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었습니다. 자존감이 없는 세리 사기꾼 마태, 남과 비교하며 자존심을 앞세웠던 기회주의자, 포악한 성격의 요한에게 자존감을 불어 넣어주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자존심도 자존감도 바닦이 난 일곱 귀신들렸던 여인 마리아, 다섯 남편을 둔 수가성 여인도 찾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존감을 높여주고 평생 행복하게 살게 해주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비겁하게 밤에 찾아와 진리를 가르쳐달라던 부자 관원 니고데모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받아 주어 그리스도 안에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게 해 주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금방까지 함께 욕하던 우편강도의 청을 거절치 않으며 포용해 그리스도 안에 소속감을 갖고 마지막 짧은 남은 시간이지만 자존감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술주정뱅이, 깡패였던 죤번연도, 선교사의 머리통을 깨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깡패 김익두도, 17명이나 죽인 살인마 김대두도, 100여명을 죽인 마녀같은 김현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 주엇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부자이든 가난하건, 건강하던 병자이든, 간음자이건, 살인자이건, 무식하던 유식하던, 사기꾼이든 깡패이든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나오면 우리를 버리지도 않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하나님의 소유가 된 우리를 향해 우리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31:6)"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 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 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미친 것 전혀 없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남이 기준이 되는 자존심이 아닙니다. 자신이 기준이 되는 자존감을 넘어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시간과 공간과 상황을 초월하는 진정한 자존감은 행복한 인생과 만족한 삶을 사는데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을 치유받으려면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유일한 창조물이라는 가치감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믿음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어떤 상황 어떤 경우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평생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소속감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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