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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4) 우울증 치유(왕상19:1-1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7859 추천수:9 220.120.123.244
2021-06-27 13:51:10

치유(4) 우울증 치유

왕상19:1-14

 

오늘은 치유 4번째로 우울증 치유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울(憂鬱)은 한자어로 근심할 우와 막힐 울이 합쳐진 말입니다. 사전에서는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음이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우울감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이며 치료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무가치감과 자기비하, 집중력감퇴, 불안과 초조, 활동저하, 절망감, 죽음이나 자살과 관련된 생각 등의 감정적 문제와 함께 수면장애, 식욕과 체중의 변화, 무기력감과 피로감 등의 육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입니다. 질병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인 영향이나 삶의 부정적인 경험이 뇌의 신경전달체계에 영향을 미처 화학적 불균형을 초래해 나타나는 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요즈음 코로나로 우울증을 많이 앓고 있다고 합니다. 2020년 실제로 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은 사람이 100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신앙인 가운데도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우울증 진단을 할 때 일반적으로 9개의 질문 사용하는데 우리 성도님도 한번 간단하게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2주 동안 이런 현상이 전혀 없음은 (0)으로, 며칠 동안(1), 일주일 이상(2), 거의 매일(3)로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①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② 평소 하던 일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거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③ 잠들기가 어렵거나 자주 깼다. 혹은 너무 많이 잔다.

④ 평소보다 식욕이 줄었다. 혹은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

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챌 정도로 평소보다 말과 행동이 느려졌다. 혹은 너무 안절부절 못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⑥ 피곤하고 기운이 거의 없다.

⑦ 내 자신이 실패자로 여겨지거나 자신과 가족을 실망하게 했다고 느낀다.

⑧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⑨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자해할 생각을 한다.

1~4점이면 보통 상태, 5~9점이면 가벼운 우울증, 10~19점이면 중간 정도 우울증, 20점 이상이면 심한 우울증으로 진단합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간단히 “예 아니오”로 5개 이상이 연속 2주 기간 동안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해 보라고 한답니다. 간단하게 두 가지 질문으로도 진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 "지난 2주 동안 기분이 저조하면서 우울했는가, 혹은 절망적이었는가" 둘째 "일에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는가"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떻습니까?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 인구 중 약 3억 4천만 명이 우울증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2020년 한해 우리나라에서 실제 정신과 병원에서 우울증을 치료받은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성은 4명 중의 1명이, 남성은 10명 중의 1명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12세 이하의 아동 중에도 50명 중의 1명이 걸리고, 10대 청소년 중에서는 20명 중의 1명이 앓게 되는 병이랍니다. 미국의 경우 연간 1만 5천여 명 정도가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1년에 5억 3천만 달러(약 6천억)가 우울증 치료비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이며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소홀히 생각해서 방치하면 15%가량이 자살을 시도하는 ‘치명적인 독감’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TV의 뉴스를 통해서 잘나가던 인기 연예인의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일주일에 한 번 쯤은 TV에 얼굴이 나왔던 유명 정치인이 자살하는 것을 봅니다. 사업의 실패로 자살한 중소기업 사장, 성적이 떨어져서 비관 자살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대입 수능 고사를 잘 못 치렀다고 죽은 수험생들, 직장에서 퇴출되어 비관한 나머지 자살하는 가장들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우울증이라는 독감을 치유받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 다윗, 모세, 엘이야, 예레미야, 신앙의 사람 칼빈, 마틴 루터, 웨슬리, 찰스 스펄전,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등도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마틴 루터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지나치게 엄격한 종교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끊임없는 우울증과 싸워야 했고, 건강마저 좋지 않아 통풍, 불면증, 감기, 치질, 변비, 결석, 현기증, 그리고 이명증을 평생동안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기적,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울증으로 자살하지 않고 우울증을 치유받고 참으로 한 시대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도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합니다. 19 명의 자녀 중 15번째 아이로 태어나 젊은 시절 선교사가 되었으나 선교 사역의 실패로 자기비판과 함께 심각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차례의 실연 후 49세의 나이에 미망인과 결혼해서 30년을 살았지만, 그의 결혼생활은 비극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부인은 악처로 소문이 날 정도로 포악했고 질투심이 많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60년 동안 새벽 4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을 걸러본 적이 없었던 그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영국 국교로부터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답니다. 이런 요인이 그를 우울증에 시달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우울증에 지지 않고 치유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19세기 부흥 운동에 불을 지폈던 불멸의 설교가로 알려진 스펄전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교회가 부흥되어 교회를 증축하고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 중 사고로 7명이 사망하고 27명이 중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 사고로 일종의 공황장애에 빠지고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고 합니다. 또한 22살에 결혼했으나 결혼한 지 10여 년 후부터 아내가 병이 들어 자리에만 누워 있었고, 일평생 교회에 출석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 역시 일평생 통풍으로 고생을 했고, 병으로 요양을 하기 위해 자주 강단을 비우기도 했답니다. 이런 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펄전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위대한 부흥사로 한 시대 쓰임 받았습니다.

권력과 명예를 갖은 위대한 국가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윈스턴 처칠도 오늘날까지 이름을 날리는 포우, 도스토옙스키, 밀턴, 유진 오닐 등도 우울증의 고통을 앓았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주변 사람들은 이 변호사가 혹시, 자살을 한다든지 충동적인 사건을 일으킬지 모르니 칼이나 가위, 예리한 물건을 근처에서 치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알았답니다. 처칠은 주기적으로 우울증에 빠지곤 하는데 그는 그것을 "내 등 뒤에 올라 앉은 검정 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종교가 있든 없든, 나이가 들었든, 젊었든, 영리하든 우둔하든 우울증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괴롭힙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엘리야도 우울증 진단으로 볼 때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지금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4)

(1) 불안과 두려움으로 스스로 광야에 들어갑니다. 환경적인 상황과 자극에 대하여 회피하기 위해 사회적 철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피해 혼자가 됩니다. 지금 말하며 직장 생활 잘하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문제로 그만둔 것입니다.

(2)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합니다. 절망감과 죽음이나 자살을 동경하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잊으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심각한 우울증입니다. 내일 눈 안 안 열렸으면 좋겠다 정도가 아니라 가만히 놓아두면 구체적으로 실현할 정도로 한강으로 차를 몰고 가 난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저 가만히 놓아두면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3) 나는 열조 보다 낫지 못하다고 합니다(4) 심한 열등감을 보여줍니다. 학문적 용어로 자기 정체성에 대하여 심하게 인지 왜곡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시장도, 대통령도, 아버지도, 아내도, 부모도 아닌 것입니다.

(4)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잡니다(5) 우울의 전형적인 증상인 신체적 탈진을 나타냅니다. 모든 의욕이 살아진 것입니다. 의미도 목적도, 가치도, 재미도 상실한 것입니다.

(5) 오직 나만 남았다고 말합니다(10,14). 억울함과 분노에 쌓여 있습니다. 무력감과 외로움으로 우울해 있습니다.

 

2. 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까?

갈멜산에서 홀로 용감하게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던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대항하여 승리한 엘리야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을 때 기도하여 비를 내리게 한 사람입니다. 죽은 자를 살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의 선지자가 왜 우울증에 빠졌습니까?

1) 상실입니다(1-2).

상실감입니다. 자신감의 상실, 하나님 임재감의 상실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내적 확신의 상실입니다. 능력의 상실감입니다. 금방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무런 능력도 없이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도망가는 것입니다. 국경의 끝까지 도망갑니다. 그만한 능력을 보았으면 이세벨이 항복해야 할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를 찾아 죽이겠다고 덤벼듭니다.

정신분석학에서 우울증이 오는 이유는 대상 상실에서 온다고 합니다. 어린이의 생에 의미 있는 사람(어머니 아버지)를 잃을 때 우울감의 씨앗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 버릴 때, 결혼하여 의지했던 남편과 아내가 떠나 버렸을 때 반갑지 않은 손님 우울증이 찾아옵니다. 의존하는 대상을 상실할 때 온다는 것입니다. 돈을 의존하다가 돈을 상실하고, 인기를 의지하였다 인기를 상실하고, 명예를 의존하다가 명예 상실하고, 권력을 의존하다가 하루아침에 권력을 잃고 감옥에 가면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남편 의존하다 직장 의존하다 상실하면 우울증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적인 원인으로는 사회적 역할, 신분의 상실을 말합니다.

 

2) 부정적 사고입니다. 자기 부정입니다.

엘리야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내 열조보다 못하다(4)”고 지나치게 부정적이며 자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지 이론에서는 부정적인 인지 양식 때문에 우울증이 생긴다고 합니다. 기질 자체가 우울질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쓸모 없는 존재다. 나는 아무 것도 못한다. 나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 나는 실패자야. 나는 인생 쓰레기야. 내 인생은 이번 생애에서 망했어” 등과 같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하여 희망감이 없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인지구조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3) 지속적인 부정적 감정입니다.

엘리야는 분노와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저버린 것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헐어 버리고, 선지자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살아 있고 자신은 도망다니며, 의로운 사람은 자신만 남았는데 자신마저도 죽이려고 한다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는데 언제 이스라엘 백성이 밀고하여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세벨이 언제 죽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배된 사람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광야를 거쳐 시내산으로 도망을 갑니다(3-4) 행동주의에서는 우울증은 불충분한 개인적 만족이나 평가에서 온다고 봅니다. 아치볼드 하드는 우울증 순환 현상을 “상실-실망감-불쾌감-자기 저주-죄책감-자신에게 분노-수치-자존감 상실-회복”이라는 순환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감정은 스프링처럼 탄력성이 있어야 하는데 불만, 불안과 걱정, 염려, 두려움 등과 같은 감정이 지속되면 나중에는 스프링이 작동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로토닌 도파민같은 신경전달 물질이 바닥이 나 버리는 것입니다.

 

4) 신경 체제의 이상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인격에 걸맞지 않은 이상 행동이 나타납니다. 엘리야는 심지어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역을 하였는데 이세벨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이세벨로 하여금 자기를 죽이도록 침묵하신 것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한다(10)”고 불평하며 자기 생명을 가져가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4). 계속 반복합니다. 14절 보십시오. 자신은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자기만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한 상황에 집착을 하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우울증의 생물학적 원인으로는 신경 체제의 이상을 말합니다. 신경 전달물질이 이상이 생기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분과 상관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나 명예나 지식과 상관없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3. 우울증을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습니까?

우울증의 늪에 빠져 있는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치료하십니까? 현대 의학에서는 항우울제, 신경 안정제 등을 통한 약물치료가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치료 방법입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지팡이를 주는 것처럼 바로 좋아지지 않고 2-4주 지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6-8개월 복용하면 상당히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울증은 약물 치료를 해도 잘 관리하지 않으면 5년 내 절반 정도는 재발한다고 합니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들은 가벼운 우울증 환자의 경우는 심리치료나 인지 상담 치료를 통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게 합니다. 심하여 일상적 엄무 수행이 곤란한 상태가 되면 일상으로부터 격리하여 입원치료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떻게 치유해 주셨습니까?

 

1)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육체적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 치유해 주십니다(5-6)

아치볼드 하드(Archibold D. Hart)는 우울증을 ① 일차적 우울증 ② 내분비 장애와 관련된 우울증(체내의 뇌하수체, 아드레날린, 그리고 특별히 갑상선 같은 중요한 기관의 장애) ③ 경내인성 우울증들(내적 원인 즉 생체적 원인에 의한 것이지만 증상은 경미한 상태) ④신체질환에 의한 이차적 증상으로서의 우울증 ⑤갱년기 우울증(대개 중년기부터 노년기에 시작) ⑥신경적 우울증(성격적 특성) ⑦반응성 우울증(일반 사람들이 겪게 되는 대부분이 우울증, 일상생활의 일종의 대응, 상실감) 등으로 구분합니다. 대부분의 앓고 있는 우울증은 반응성 우울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응성 우울증을 갖게 되는 대표적인 원인이 대상 상실에서 온다고 합니다. 생에 의미 있는 사람, 의존하는 대상을 상실할 때 온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마저도 자신을 떠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천사를 엘리야에게 보냅니다. ‘어루만지며’는 히브리어 ‘나가’로, ‘효과를 느끼도록 두드리다’ ‘톡톡 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배 아픈 자녀의 배를 어루만지며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하셨던 바로 그 어루만짐입니다. 하나님은 찾아와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친 그의 육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음식을 주었습니다.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의 물 마시게 하여 기력을 회복시킵니다. 현대 의학도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오랫동안 식자를 거부하여 전신 상태가 좋지 않고 탈수 등이 있을 때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 줍니다. 심신이 탈진된 상태이기 때문에 충분하 휴식과 수면을 취하게 합니다. 잘먹고 잘 자고 잘 운동하고 잘 쉬게 하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몸도 감정도, 정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계속 감당하려고 할 때 그 스트레스가 쌓여 몸의 신경계를 흥분시켜 혈압을 올리고 호흡을 가쁘게 만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과분비되고, 세로토닌과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줄어 우울증이 온다고 합니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포함한 광범위한 감정을 느끼는데 기여하는 신경전달물이라고 합니다. 뇌전체 신경 세포 150억개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이지만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휘두르는 지휘봉처럼 뇌 전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도파민은 쾌락의 정열적 움직임, 긍정적 마음, 성욕과 식욕 등을 관장한다고 합니다. 노르아드레날린은 불안 부정적 마음, 스트레스 반응 등을 관장한다고 합니다. 세로토닌은 위의 두 가지 신경을 억제하고 너무 흥분하지도 않고 불안한 감정도 갖지 못하게 평온함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항우울제는 바로 이것을 조절하는 약입니다. 항우울증 약을 먹는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 뿐아니라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먹이시고 휴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로뎀 나무 밑에서 충분히 자게 했습니다. 그래서 피곤한 심신을 회복시켰습니다. 일단 망가진 수면 패턴을 바로잡기 위해 잘 때 자고 일어날 때 일어나도록 깨우십니다. 그리고 떨어진 식욕의 문제를 고쳐주기 위해 광야에서 구할 수 없는 별미인 ‘숯불에 구운 떡’과 ‘시원한 생수 한 병’을 주십니다. 7절 8절을 보십시오. 음식물을 규칙적으로 먹이셨습니다. 우울증이 심하면 오히려 누워서 잠만 자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어나서 먹는 것조차 귀찮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우울이 심해서 자기처럼 가치 없는 사람은 음식물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식음을 전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 놔두게 되면 더욱 우울증이 심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엘리야가 힘들어해도 꼭 일어나게 하고 떡과 물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걱정이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우울증이 걸리면 운동을 싫어합니다. 손발을 놀리기 싫어합니다. 운둔 생활을 하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에게 호렙산까지 40주야를 여행을 시킵니다. 충분히 자면서 충분이 먹으면서 분위기를 전화시켜주는 것입니다. 운동을 우울증 치료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40일을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받게 한 것입니다. 햇빛을 통해 세로토닌 분비를 늘린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 다 버린다고 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 31:6)" 늘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체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너무 걱정하며 우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엘이야 죽이지 않고 광야에서도 먹이십니다. 도망의 현장에서도 죽이지 않고 살리셨습니다.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새는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새를 기르신다. 너희는 새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키를 한 치라도 더 늘릴 수 있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어떤 대상 상실이 왔을지라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잘 운동하며 일상의 생활을 하면 됩니다.

 

2) 하나님은 상처난 감정을 어루만져 치유해 주십니다.

현대 의학에서 의학적 치유방식은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상담리료를 시킵니다. 사용하는 것이 대화이며 환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울증 치료에는 심리적 안전지대가 꼭 필요한데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 혹은 신뢰하는 목회자 등이 심리적 안전지대가 되어 우울증 환자의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다 말하게 함으로 우울증을 만들었던 상처난 감정을 스스로 치유받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엘리야에게 심리적 안전지대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울증에 시달려 죽기를 원하는 엘리야를 어떻게 치유하십니까? 9절을 보십시오. 엘리야와 대화를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질책하고 호통하기 위해 따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주 부드러운 모습으로 만나 주시며 대화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말합니다. 우울증을 만들었던 분노의 감정, 억울한 감정, 불안의 감정을 다 표출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도 않으셨고, 지진 가운데 계시지도 않았으며, 불 가운데 계시지도 않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세미한 소리로 임하여 주시며, 13절에 다시 물어 봅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절을 보십시오. 다시 엘리야가 자신의 병든 감정을 말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안에 쌓아 놓으면 독이 되어 우울증의 재료가 됩니다. 자신이 감정을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표출해야 합니다. 감정은 호르몬에 밀접하게 작용을 합니다. 분노가 생기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불안한 일이 생기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염려와 근심이 생기면 소화가 잘 안 됩니다. 다 부정적인 감정이 신경전달 물질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그래서 상담 치료를 받을 때 상담사들은 그들의 눈물, 억울함, 분노, 아픔 등을 다 들어 둡니다. 상담사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담자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는데, 병든 감정, 응어리진 감정을 쏟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병든 행동은 병든 감정이 병든 마음을 만들고 그 병든 마음이 병든 행동을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도 병든 감정을 치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 번이나 엘리야가 마음을 터 놓고 하나님께 이야기하도록 자극합니다(4,10,14). 우리 하나님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정죄하며 훈계하지 않습니다. 죄 때문이라고, 신앙의 결핍 때문이라고, 하나님이 버렸기 때문이라고, 사탄이 들었다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용장 엘리야도 어찌할 수 없는 우울증에 걸린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의 우울한 감정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상처난 감정에 못을 박지 않았습니다. 지켜보아 주었습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야 됩니다. 스스로 내놓으므로 해독이 됩니다. 신체의 화학물질이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며칠 동안 기다립니까? 40일입니다(8). 개인마다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억울함, 우리의 분노, 우리의 걱정, 우리의 눈물, 우리의 슬픔이, 우리의 근심, 우리의 상실, 우리의 아픔을 다 하나님께 아뢰면 우리 하나님은 다 받아 주십니다. 다윗도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장인을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아들이 반역하였습니다. 자식들이 겁탈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에 쌓였고 우울했겠습니까? 그때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다 내어놓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3:5)”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시 31:9)” 시편을 보십시오. 자신의 상실감, 탄식, 고독, 슬픔, 두려움, 죄의식 등을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께 쏟아 놓습니다. 시편17편 1절에서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 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욥을 보십시오. 재물을 잃고 자식을 잃고 건강을 잃었는데 친구들은 위로는 하지 않고 정죄합니다. 그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 때 그의 극도의 슬픔의 감정을 하나님께 내어놓습니다(욥 3:20). 불면증을 호소하고(욥 7:4), 괴로운 감정을 털어놓고(욥 14:1), 허무함(욥 9:21), 절망감을(욥3:26)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내어놓습니다. 엘리야처럼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어놓습니다(욥3:21). 예레미야도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때 숨기려고 하지 말고 위장하거나 포장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와 솔직하게 감정을 다 털어놓고 기도하며 찬양을 하다 보면 우울증은 우리 각자의 40 주야가 지나면 치유가 됩니다.

 

3) 하나님은 엘리야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 주심으로 우울증을 치유해 주십니다.

우울증 환자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인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우울증 칸에 타 버린 것입니다. 밖에 어떤 경치가 보여도 우울증이라는 창으로 보니까 다 우울한 것입니다. 남편이 돌아가시면 내가 이렇게 했으면 안 죽었을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변화시킬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수용하지 못하고 반추하며 자신의 잘못으로 잘못된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수용하고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하면 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오면 잘 못 대처하여 7% 정도는 우울증에 걸린다고 합니다. 그 상황을 술이나 유튜브나 게임이나 도박 등으로 회피하고 회피하다 보면 비활동성이 나타나 누워 자고 텔레비전이나 보며 우울한 생각을 되새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치유시키려면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사고 구조를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엘리야도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잘못된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엘리야는 마치 자기 혼자만 열심히 특심하고 자기 혼자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0,14). 그러면서 왜 하나님 나만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까?라고 말하며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실컷 교회 일을 하였는데 다른 사람은 방관자인 것 같습니다. 가정일은 나 혼자만 감당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는 나 홀로만 기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과를 보니 성과가 없습니다. 교회는 계획한 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업도, 가정도, 자녀교육도 혼자만 실컷 고생하였지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허탈감에 사로잡힙니다. 상실감에 사로잡힙니다. 이것이 심화되면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웃음이 없어집니다. 일하는 맛이 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의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너만 홀로 남은 것이 아니라 하사엘이 있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사엘의 칼을 비하는 자를 예후가,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만 열심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 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엘리야와 함께하시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엘리야는 자기 것으로 자기가 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것 네게 주어 너로 하여금 내 일을 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기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왜요 자기만 앞에 얼굴마담으로 나와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7000명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에는 자아 편향적 특성이 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오히려 긍정적인 것은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고 반대로 부정적인 것은 100%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생각을 고쳐주십니다. 잃어버렸다고 다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괴롭힌다고 다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없다고 모든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못한다고 모든 것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분을 전체로 확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합과 이세벨과의 싸움은 엘리야 만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엘리야를 부른 것입니다. 엘리야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만 가지고 일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 어려운 영적 암흑기에 7000명을 남겨 놓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힘만으로 무엇을 할수 있겠습니까? 우리게에 신뢰할 수 있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가장 나를 도와줄 부모님이 있습니다. 어느 상담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데 젊은 날에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심각한 아픔과 슬픔에 처했답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너무나 슬퍼했는데 화장터에 갔는데 눈을 들어 보니 멀리 친구가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친구에게 왜 그렇게 있었냐고 물었답니다. 친구는 아무말도 할 수 없어 3일 동안 장례식장을 떠나지 않고 설거지를 하며 친구 곁을 지켜 주었답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 사랑, 신뢰, 기도, 찬양이 살아 움직이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함께 함으로 우울증을 얼마든지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결단하고 일어서기가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다른 이웃들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함으로 정상적인 삶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 주는 신뢰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고 찬양해 주는 믿음의 동지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어 우울증은 반드시 떠나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명을 주심으로 우울증을 치유해 주십니다.(15-17)

우울증 환자들은 대부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우울증 악순환은 “우울한 기분-활동 저하-회피-반추-의욕 상실, 흥미 소실”과 같은 사이클로 반복된다고 합니다. 우울증에 걸리면 일할 의욕도, 공부할 의욕도, 가정을 꾸려야 할 의욕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런 것입니다.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여달라는 것입니다.

소위 일하다가 번 아웃(burn out)되면 우울증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자기의 목표가 분명치 안는 데 있다고 합니다. 왜 살고, 무엇 때문에 열심히 일한다는 최종 목표가 한참 달려가다 보면 분명치 않아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내가 내 자식들을 위해 이렇게 매달려야 하는지 목표가 분명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이민 간 교포들이 이민 초기에는 자식을 가르치고, 가게를 사고 집을 사는 등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서 정신없이 뛰지만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허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명감은 우리가 살만한 이유를 주는 것이고, 우리를 마지막까지 생동력 있게 살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하나님은 엘이야를 찾아가 아직도 살아야 할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아직도 이루어야 할 사명감을 주십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울증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사엘에게 기름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부어 이스라엘 왕이되게 하라고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세벨을 무너뜨린 예후에게 기름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그를 통하여 우상 숭배자들과 아합의 무리를 벌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기름부어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명감에 불타는 한, 우리는 결코 신앙의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상을 잘 아시기 때문에 늘 사람을 사용할 때 사명감을 주어 사용하십니다.

모세도 우울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늙은 어느 직장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나이인데 사명감을 주시고 오른팔로 붙들고 쓰셨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실 때 능력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 우 상장사의 아들입니다. 우상 만들다 죽을 사람입니다. 부르실 때 나이가 75세입니다. 지금 같으면 정년퇴직하고 아무것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나이입니다. 아들딸도 귀찮다고 밥 적게 먹으라고 하는 나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들어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도 우울했을 것입니다. 노년이 되고 많은 사람이 감옥에 있으니까 다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있기에 우울을 극복하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며 사명 붙들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습니다. 다 떠나도 주님만은 함께 계셔서 바울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죽음이 다가왔을 때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다 잃었다고 우울증에 빠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사명을 붙들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마른 막대기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위대한 기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병들었을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했을지라도, 은퇴하고 직장이 없을지라도, 재물을 상실했을지라도 기도의 사명은 아직도 있습니다. 민족과 교회와 가정과 선교지를 위해 어떤 경우도 호흡만 있다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 되었다고 죽을 일만 남았다고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잃을 것 다 잃었다고 가진 것 아무것도 없다고 우울증에 시달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아무것도 없다고 우울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하십니다. 단지 우리는 쓰임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쓰임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고 특권입니까? 하나님이 들어 쓰시길 원하십니다. 교회와 가정과 이 민족을 위해 들어 쓰시길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우울증에 걸릴지라도 얼마든지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절망적인 우울증이라도 하나님께 나오면 치유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치유 받고 주신 사명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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