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는 가정(5)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가정
마가복음 5:41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일어나는 가정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다섯 번째로 어떻게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다 모양도, 색도 다르고, 값도 메이커도 다르지만 동일한 것은 옷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옷을 만드는 천은 동일하게 가로 세로로 씨실(가로)과 날실(세로)이 서로 겹쳐지면서 짜여 있습니다. 어떤 옷감이든 날실이나 씨실만 있다면 견고하고 질좋은 옷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가정도 순경과 역경으로 짜여집니다. 원하는대로 잘 되어지는 순경을 만나면 기쁘지만, 자신의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는 역경을 만나면 슬프고 힘이 듭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크고 작은 순경과 역경으로 이어집니다. 꼭 순경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잘 되고 부자가 되고 권력과 학식을 가지게 되어도 순경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그것이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권력을 가져 그것으로 바람피우고 성폭력을 행사하면 그 순경은 결국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되는 것입니다. 역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역경이 다 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화가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합니다.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려면 역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어느 날 역경을 만난 가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가정의 가장의 이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야이로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회당장이라고 한마디 말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당시 회당장은 회당을 관리하는 관리입니다. 건물을 관리하며, 예배 순서의 작성 및 질서 유지, 심지어 재판과 같은 사무 등을 관할하던 장로 출신의 지도자였습니다(눅 4:13 ; 8:41 ; 행 18:8,17). 이 직책은 당시 회중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인물에게 주어졌다고 합니다. 이 직책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로 말하면 그는 적당한 부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회적인 신분도 보장된 사람입니다. 종교적인 덕망도 있어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뭐 부족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결혼하여 순경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역경을 만났습니다. 12살 된 딸이 병에 걸렸습니다. 12살 나이에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오늘날도 가정을 위태롭게 하는 역경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질병으로 입원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잘못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퇴출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녀에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역경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넘어지는 가정을 만들 수도 있고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가장인 야이로는 어떻게 대처하여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무런 예고 없이 가정에 다가오는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불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그 딸이 어떻게 질병과 죽음에서 일어났습니까?
“그 아이의 손을 잡고”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미 아이는 죽어있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회당장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이 이미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시체를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죽은 시체를 손을 대지 않습니다. 당시는 시체에 손을 대면 율법에 의해 부정한 자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아이의 손을 잡고 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어 어떤 역경이 있어도 손으로 우리의 역경을 잡아 주시면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상황도 예수님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딸을 자신의 목숨처럼 사랑했던 아버지의 믿음 때문입니다.
3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얻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손만 얻으면 살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 아마 자신이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이고, 당시 신분적으로도 자신이 높았을 것입니다. 조금만 있어도 교만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조금만 돈이 있고, 건강이 있고, 권력이 있고, 지식이 있으면 절대 상대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절박한 딸에 문제를 놓고 주님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기 교만을 꺾습니다. 간곡히 구합니다. 한 번 구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간청했다는 말입니다.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입니다. 과학과 합리적 사고로 생각하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손만 얹으면 고침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역경이 다가 오면 주님을 더 믿지 않고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역경을 딛고 가정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역경이 다가오면 올수록 역경이 크면 클수록 주님을 믿고 더 주님께 가까이 나가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악가 서준호 형제의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2003년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목뼈가 부러져서 전신마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기적이 일어나면 휠체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평생 침대에 누워있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정신을 맑은 데 목 아래는 전신이 완전히 마비되었답니다. 자가호흡도 안 돼서 산소 호흡기를 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있는 부모님은 완전히 식물인간처럼 된 아들을 위해 기도했답니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를 보고 밝게 웃으면서 “중환자실은 영적 신학대학원이니 다 마치고 나와서 하나님 일을 더 열심히 하자.”라고 격려했답니다. 그러나 상황은 변화되지 않았답니다.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산소 호흡기를 너무 오래 끼고 있어서 부작용이 생겨서 폐가 까맣게 썩어가기 시작했답니다. 의사 선생님은 목에 구멍을 뚫어 기관 삽입술로 인공호흡을 할 수 밖게 없다고 했답니다. 문제는 그 수술을 하게 되면 성악가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답니다. 그래도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그 수술에 동의하는 사인을 했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집에 와서 잠깐 잠에 들었는데 꿈을 꾸었답니다. 황무지에서 물이 샘솟듯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겠구나.”라고 기도 응답으로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와서 선생님에게 말했답니다. “우리 아들, 이 수술 하지 않겠습니다.” 그 후 폐를 진단해보니까 폐가 깨끗해지기 시작했답니다. 썩어가던 폐가 깨끗해져 산소 호흡기를 빼고 후유증도 없이 자가호흡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 후 일반 병실로 옮겨서 누워 믿음으로 선포의 기도를 했답니다. “나는 곧 일어날 것이다. 일어나서 내 다리는 움직이게 될 것이고 나는 활동하게 되어서 꿈에도 소원인 중앙 콩쿠르에 나가서 우승할 것이다. 1등 할 것이다.” 부모님과 교회 성도님들은 열심히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깼는데 왼쪽 발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바로 그때가 부모님이 특별 새벽 기도회에 나가서 기도하고 계실 때였답니다. 왼쪽 발가락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감사했답니다 그때로부터 몸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며 날마다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병원에서도 깜짝 놀랍답니다. 잘해야 휠체어를 타고 아니면 평생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그가 100일 만에 걸어서 퇴원하는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그리고 그가 선포하며 기도했는데 13년 만에 중앙 콩쿠르에서 1등을 하였고, 카네기 홀에도 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어떤 역경에 처해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이 손을 잡아 주시면 어떤 역경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불가능한 현실을 보며, 이제까지 경험을 보며, 합리적 생각을 하며 안될 것이라는 불신으로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이 우리 가정을 일으켜 세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바로 앞에 12년 동안 혈루증 앓아온 여인이 인생의 역경에서 무엇으로 고침을 받았습니까? 34절을 큰소리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말씀이 이 시간 저와 우리 성도님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불신은 조장하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역경을 만났을 때 믿음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부정적인 말, 소극적인 말, 비관적인 말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글이나 사상입니다. 우주는 우연히 만들어졌고 인간은 진화되었다고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글이나 말을 계속 들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됩니다. <만들어진 신>, <이기적인 유전자> 같은 책을 써서 무신론 종교의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도 어릴 때 교회에 다녔지만, 어느날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읽고 믿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과학적으로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론자들의 말을 듣고 진화되었다고 믿고 있고 무신론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이 없다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지 않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이 앉아 있는 의자가 우연히 생겼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입니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 여기에 가져 놓았다고 믿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입니까요? 정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고 신비한 이 우주나 인간이 우연히 생겼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입니까? 아니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습니까? 어떤 전제나 명제, 정의, 정리, 공리도 자신이 믿지 않으면 누가 무슨 말로 증명해 주고 설득해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명제의 명제, 계속 올라가면 공리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항상 참으로 받아들이는 명제를 공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 영향을 못 줍니다. 결국 믿지 않는 것은 믿지 않기로 자신이 선택하는 것인데 그 근거는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말이나 글, 사상을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와서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구하던 회당장을 보십시오. 믿고 가는 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5절을 보십시오. 회당장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게 하는 말이 들려 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보았자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더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병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과 삶의 현실 사이의 간격 때문에 신앙적 회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된다”고 말씀하였는데, “믿고 기도하면 다 이루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실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6절을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 들으시고” 회당장에서 무엇을 말씀합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그들의 말을 믿지 말고 예수님의 말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말고 내 말을 듣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문법적으로 현재형을 쓰면서 흔들리지 말고 네가 처음 내게 가졌던 믿음을 지금도 그대로 굳게 간직하라는 말입니다. 지속적인 믿음으로 회의를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 성도님과 저에게 들려주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역경 가운데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실제적으로 개입하여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어 줄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백부장 하인이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그때 백부장이 와서 고쳐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 가서 고쳐 주겠다고 하니까 “말씀만 하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8장 10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하시면서 13절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믿음을 말씀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말씀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인데 거듭하는 것을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풍랑 위로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오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말씀을 믿고 물 위로 걸어갑니다. 그러다 풍랑을 바라보고 물에 빠져 버립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말씀을 붙들고 가면 믿음의 기적이 일어나는데 풍랑을 보니까 금방 의심이 생기고 흔들립니다. 인간은 참으로 연약합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얼마나 가짜 뉴스를 믿고 살고 있습니까? 확증 편향을 가지고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 듣고 봅니다. 인지적 구두쇠로 합리적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동기화된 논증을 하며 내 편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거짓된 것을 자주 보기 때문에 믿어 버립니다.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해해 버립니다. 이렇게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사는 것이 인간의 연약성입니다. 한 개인이 아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기 보이는 손가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10%도 모를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검증해 보고 믿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부정적인 10명의 사람의 말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있는 2명의 사람의 말은 믿지 않습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적의 현장에 동참시키지 않습니다. 다 보내어 버립니다.
상황과 관계 없이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이 역경을 딛고 일어나게 하는 믿음입니다.
역경 가운데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하나님이 말씀한 약속을 실제적으로 이루어서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어 줄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렸습니까? 죽은 시체를 향하여 “달리다굼”하신 것입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어 표기로 "탈리타 쿰"입니다. "탈리타"는 소녀야라는 말이고 "쿰"은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가정에도 그대로 응답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 소녀는 죽을 사람이 아닙니다. 80대 노인이 아닙니다. 한참 자라야 할 아이이고 이 세상에 할 일이 많은 젊은이입니다. 12살 소녀와 죽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일어서야 합니다. 병을 이기고 일어서야 합니다.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인생입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가정도 일어서고, 교회도 일어서고, 직장도 일어서고, 기업도 일어서고, 사업터도 일어서고, 자녀도 일어서고, 나라도 일어서야 합니다. 지금 잠잘 때가 아닙니다. 관속에 누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 붙들고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과거 로뎀나무 아래 지쳐서 쓰러져 회의적 신앙에 사로잡힌 엘리야에게 천사를 시켜서 떡과 물을 주시며 "일어나 먹으라" 고 하셨습니다.(왕상19:5절) 주님의 일을 하다가 영적 기갈과 곤비함으로 힘을 잃은 사람들이 생수의 떡을 먹고 일어서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말씀을 전하다 지쳐 있는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일어나 빛을 발하라" 고 말씀하십니다.(이사야 60:1절)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 하였습니다.(요한복음 5:8) 해도 해도 안 된다고 절망하지 말고 일어나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붙들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미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습니다.(사도행전 3:6절)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같이 기도하려고 했으나 제자들은 모두 잠이 들고 홀로 피와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고 마지막 군병들이 잡으려고 올 때 제자들을 깨우시며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46절) 역경 앞에 망설이지 말고 말씀 붙들고 일어나 담대하게 주님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 붙들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 한 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우리는 역경을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믿음으로 역경을 딛고 가정을 일으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다가온 역경을 어떻게 해석해 주시고 있습니까? 이미 아이가 죽었다고 울며 심히 통곡하는 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죽음을 잠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역경인 죽음이란 끝을 끝이 아니라 잠이라는 과정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역경을 끝이라고 보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정으로 보면 어떤 역경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역경을 끝으로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40절을 보십시오. 비웃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울며 통곡합니다.
그러나 역경을 과정을 보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합니까? ‘달리다굼’하여 소녀를 그 잠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죽음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과정을 끝이라고 단정하지 마시기바랍니다. 그러면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역경은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역경은 예수님께 나오게 합니다. 역경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듭니다.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역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 때 때때로 역경을 사용하십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40년 동안의 역경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인신매매가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자신을 죽이려는 장인에게 쫓겨다닙니다. 친구에게 아들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기까지는 20여년 동안 수많은 역경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역경을 만났을 때 그것을 끝으로 보고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링컨의 생애에서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시골에서 잡화점을 경영하다 파산하여 그 빚은 갚는 데 15년이나 걸렸습니다. 링컨의 생애에서 그것은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하원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낙선했습니다.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두 번이나 낙선했습니다. 그것이 끝이라고 포기했다면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믿음으로 역경을 극복하여 지금도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하고 있습니까? 디즈니랜드를 만든 환상가 디즈니도 수많은 역경을 겪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줄기차게 실패와 파산을 겪었고, 40이 넘어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신경쇠약에 걸려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고난이나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일어나고 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1995년에는 디즈니랜드와 ABC 방송국 그리고 디즈니 스튜디오를 소유한 거대한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 맞고 자란 들풀이 온실에서 자란 꽃보다 생명력이 강합니다. 생명에게 불편함이 없는 좋은 환경이란 독과 같은 것입니다. 식물은 가물고 바람이 불어야 그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려 더 큰 비바람과 가뭄에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프랭클린 루스벨트,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화상을 입고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지만, 사랑의 전도자가 된 이지선 양, 시각장애인이지만 한국인으로 미 행정부 고위 인사가 된 강영우 박사 등은 역경을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역경 가운데서도 회의를 넘어서는 믿음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서른여덟 살이던 1922년에 많은 빚을 지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였습니다. 죠지 워싱턴은 그가 치른 전쟁 중에서 2/3는 패배했습니다. 발명가 에디슨은 너무나 공부를 못해서 선생이 그의 어머니를 불러 자퇴할 것을 종용했다고 하며, 영국의 영웅 처칠 수상은 초등학교 졸업까지 지진아들의 특수반에 속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거기에서 포기했다면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지금의 모습을 끝으로 보지 말고 과정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소녀가 일어나 걸으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놀란 정도가 아닙니다. 황홀경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놀랐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울며 통곡하며 훤화하던 자들입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비웃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녀가 살아나니까 그들은 황홀경에 빠집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가정이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야이로의 가정처럼 우리가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믿음을 통하여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주인공들이 되어 세상 사람들에 간증 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면, 병을 이기고 일어나면,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일어나면, 부도를 정복하고 일어나면,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극한 역경 가운데서 우리의 신실한 믿음을 통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야 그렇게 힘없던 아이가 그렇게 사회적으로 출세하다니? 초등학교 시절 골치만 하더니 야 그 애가 어떻게 박사학위를 받았어? 야 그 집안 꼴이 아니더니 어떻게 그렇게 잘되었지? 야 그 공장 망한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나가지? 야 그 아이 장애인으로 시집도 못 가고 장가도 못 갈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런 좋은 가정 이루었지? 야 그 교회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런 교회 이루었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앉은뱅이와 같은 인생, 중풍 병자와도 같은 인생, 소경과도 같은 인생이 변화되면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신다고 느끼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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