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는 가정(4)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창39:2-3
오늘은 일어나는 가정 네 번째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일어나는 가정에 대하여 본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은 어떤 인생 가뭄에서도 일어나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은 7년의 대 가뭄 속에서 가족을 살리고 가정의 지키고 민족을 일어나게 하는 주인공으로 한 시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오늘 말씀을 듣고 어떤 혹독한 가정환경에서 살고 있던지 가정을 일으키는 주인공으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오는 요셉은 참으로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하나인데 어머니가 4명이나 됩니다. 아버지가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첩을 거느렸습니다. 아들만 12명, 딸 하나가 태어났습니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어머니들이어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디나가 세겜에서 성폭행을 당했고 아들들이 살인 자가 되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첩을 겁탈하였습니다. 형제들이 공모해서 친동생을 팔아 버렸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문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3대째에 와서 참으로 약하고 악한 가정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선조로 둔 가문이지만 세상의 풍습을 이길 힘도 없고, 가족 식구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절제할 줄도 모르고, 죄에 끌어가는 너무나 세상적인 가문으로 무너지고 쓰러지는 가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앙의 명문 가정이 아니라 너무나 초라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받을 가정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혹독하게 실패한 가정을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 가정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이라는 한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요셉을 통해 쓰러져 가는 가정을 세워주었습니까? 2절을 크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입니다.
1.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창39:2,3,21,23 행7:9)
비록 콩가루처럼 무너지는 가정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나는 가정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셉은 보호받아야 할 부모님의 품을 자신의 선택과는 아무 상관없이 떠났습니다. 고향을 잃었습니다. 집을 잃었습니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넷이어서 가정 불화 때문에, 형제들의 시기로 외국으로 인신 매매되어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쓰러져 가는 인생입니다. 너무 순식간에 가속도로 밀려가기 때문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같은 인생입니다.
세상에 항상 행복한 가족이 있겠습니까? 가족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가족 때문에 불행하기도 합니다. 가족 때문에 웃지만 가족 때문에 울기도 합니다. 가족이 가장 힘이 되기도 하지만 가족이 가장 힘들게 합니다. 가족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듬뿍 받는 사랑이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가족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꿈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형들이 자신들에게 절할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절하기는커녕 형들이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요셉은 부모를 원망하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다고 불행한 가정환경을 탓하며 게임 중독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형제를 원망하며 복수의 칼을 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거리의 불량배가 되어 객사한 것도 아닙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상처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며 인생을 무기력하게 살다 고독사한 것이 아닙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가뭄으로 경제적 위기를 당할 때 아버지와 형제들 가정까지 다 돌보아 자신의 가정과 형제들의 가정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명백하게 그 이유를 하나님이 함께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이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2,3,21,23). 노예로 팔렸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움 당하면 도망갑니다. 형제들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같으니까 노예로 팔아 버립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실직하여 병들면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같은 사람도 병들고 고난받으니까 아내가 하나님 저주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주고 자신에게 유익을 줄 때는 함께 있기를 좋아하지만 병들고 어려움 당하면 자식들도 함께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던지 그곳에 함께해 주십니다. 어떤 가정의 문제가 있습니까? 부담스러운 부모가 짐이 되었습니까? 타락한 자식이 원수가 되었습니까? 형제가 재산 상속으로 적이 되었습니까?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슬퍼하며 우울증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도 내 편이 없고, 아무도 우리와 함께해 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만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우리 마음과 형편 몰라준다고 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해 주십니다. 인류의 문제, 가정의 문제, 나라의 문제, 기업의 문제, 우리 인생의 문제의 열쇠는 경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권력자가 함께해 주는 것보다, 부자가 함께해 주는 것보다, 자식이 함께해 주는 것도, 부모가 함께해 주는 것보다 가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인생에서 실패하여 도망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지렁이같은 야곱, 욕심꾸러기 야곱이지만 그 야곱에게 함께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에게 함께해 주신 하나님은 고립무원에 빠진 요셉에게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결혼에 실패했다고, 진학에 실패했다고, 취업에 실패했다고, 치열한 경쟁에 실패했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모세를 떠나보내고 한 시대를 이끌어가야 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많은 백성을 이끌어 가려고 생각하니 능력도 없습니다. 지도력도 없습니다. 실력도 없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9)“
아버지가 일찍 떠났다고, 어머니가 일찍 떠났다고, 자식이 일찍 떠났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전을 건축하려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성전을 짖지 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계획이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했습니다. 한동안 기도하였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 7:9)"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외면하거나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도 하나님은 함께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함께하신 하나님,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에게 함께하신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예배드리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지금 우리 가정이 어떤 상황일지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 가정을 어떻게 일으켜 세워 주십니까?
첫째는 모든 환란에서 건져 주심으로 우리 가정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행7:9-10)-가정의 미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무엇을 해 주는지 사도행전 7장 9-10에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행7:9-10)"
형들에게 의해 요셉이 웅덩이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건져 주셨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노예는 당시 주인의 물건에 불과합니다.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다가 죽임을 당합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 애매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감옥에서 처형되었습니까? 인생의 웅덩이에 갇히면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를 통해 성취하기 위해 그 웅덩이에서 건져 주십니다. 억울하게 인생의 감옥에 갇히면 감옥에서 건져주십니다. 진흙탕에서 꽃을 피게 만들어 주십니다. 한 가지의 환란이 아닙니다. 모든 환란에서 건져내었다고 말씀합니다. 웅덩이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환란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억울하게 인생을 끝마쳐야 할 수밖에 없는 환란입니다. 감옥에서 억울하게 그대로 인생을 끝낼 수밖에 없는 환란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환란에서 건져 주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가정생활하면서 부모로 인해, 자식으로 인해, 실직으로 인해, 질병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장애로 인해, 실수와 죄악으로 인해, 부부로 인해 마치 요셉이 노예로 팔린 것처럼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던 가정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모든 환란에서 건짐받고 일어서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갖가지 어려운 인생의 과정을 겪으며 죽음이 다가올 때 바울은 홀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지켜줄 자식도 없습니다. 끝까지 곁에서 도와줄 아내도 없습니다. 노후 생활을 보장해 줄만한 연금도, 주식도,건물도 없습니다. 그때 바울은 어떤 믿음을 가졌습니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7-18)”
이 말씀을 믿습니까? 가정 생활하면서 어떤 환난이 닥쳐온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여 지켜 주시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하는 일마다 형통(온갖 일이 뜻같이 잘 되어감)하게 하여 가정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맡겨준 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요셉을 어떻게 일으켜 주었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비록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가 하는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3절을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주인도 그가 하나님이 함께 하여 형통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범사는 모든 일입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고난과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범사에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가든 형통합니다.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갔는데도 역시 형통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형통하면 잘되는 것으로 노예의 신분에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와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13년 동안 노예로 살고 감옥에 갇히게 되어 억울함을 당합니다. 고생과 고난의 연속입니다.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되고, 귀부인의 성적 욕망을 풀어 주지 않았다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옥에서 꿈 해석을 통해 술맡은 관원장이 풀려나 자신을 도와 줄줄 알았는데 여전히 감옥에서 생고생하고 있는데도 성경은 형통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의 형통이란 내 마음대로 잘되고, 점점 나아지고, 출세하고, 부자되고, 건강한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형통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형통의 의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완전히 망해야 할 것같은 데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인생의 주기가 있습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기까지 인생은 무한 팽창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노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이 들어 질병에 걸리고 갖가지 고난이 다가오면 다 형통하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성공이란 다 상대적인 것입니다. 요셉의 형통 앞에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형통은 일평생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형통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잘 이해는 안되지만, 그리고 구태여 그 길로 가기 싫지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인생이 이끌림을 받은 것이 형통입니다. 바울의 인생길이 고난의 길이고,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가며 질병에 걸리고, 배신을 당하며, 죽음의 위기를 당했지만 그것을 불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의 모든 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형통한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형통은 하나님의 기대와 인도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성취하는 것이 형통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비록 요셉이 노예가 되고, 죄인으로 감옥에 갇혔어도 그 과정을 통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공동체가 복을 받게 해 주었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직장을 옮겼는데도, 부도가 나서 이사를 갔는데도, 이민을 갔는데도, 모두가 외면하고 떠났는데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모든 일에 형통케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에게 자신의 이름과 가족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일과 장소와 신분에 관계없이 형통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종이 되어도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직장에서 과장 승진, 부장 승진, 이사 승진을 못했는데도 형통케 해주셨다는 말입니다. 주인도 하나님이 함께 하여 형통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은혜를 베풀어 가정 총무을 삼고 그 모든 소유를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때문에 그 집이 어떻게 됩니까? 5절 보세요. 그 집과 그 소유물에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죄수의 몸으로 들어갔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형통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됩니다. 나라 일을 맡습니다. 다른 나라는 가뭄으로 죽어갈 때 그가 맡은 나라는 형통하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면 집이, 감옥에 들어가면 감옥이, 나라에서 일을 맡으면 나라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열린교회 성도님의 가정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여서 이런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의 가정 식구들이 가는 곳곳에 형통함을 나타내시길 바랍니다. 하는 일 마다 형통하길 바랍니다. 요셉은 적어도 4가지의 직업을 가졌습니다. 4번 직장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목동으로, 가정 총무로, 감옥의 맡은 자로, 나라의 총리로 그런데 가는 곳곳 마다에서 하는 일 마다에서 형통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삭을 보십시오.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까 어떻게 됩니까? 창26:12 이하를 보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 26:12)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 26:13)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4)"
직장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직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정년이 되어 새로운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자리에 갈 수도 있습니다.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다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여 그 어느 곳에서든지 형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형통하는 역사를 자신만 체험한 것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가 형통한 것을 보았습니다(3). 형통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었습니다(5). 나 한사람이 잘되면 가정이 친척이 나라가 교회가 잘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열린교회 가정이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형통하는 한 사람이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요셉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정이 살아납니다. 나라가 살아납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나중에 어떻게 합니까? 조카들까지 다 책임을 집니다. 성경에 보면 나사로 한 사람 때문에 믿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다윗 한 사람 때문에 골리앗 앞에 떨고 있던 백성들이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 때문에 노예로 사는 억압받는 민족이 출애굽하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온 인류가 구원을 받습니다. 바울 때문에 유럽이 복음화됩니다. 나 한 사람 참으로 중요합니다. 쓰러지는 자가 되지 말고 형통하여 일어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꾸민 악한 계획까지 선으로 바꾸어 가정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창50:20).-방해하는 사람들(대인 관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결국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노예로 팔았던 형제들과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주었습니까?
창세기 50장 20절을 같이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형들이 요셉이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복수할 것으로 생각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때 요셉은 말합니다. 형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형들의 악한 행동을 오히려 선으로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가족 간에 일어난 지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신약 성경적 용어로 해석하며 십자가의 사랑과 대속의 관점으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이렇게 악한 계획까지도 선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형들의 악한 계획도, 보디발의 아내의 악한 계획도 결국,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고아가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황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강영우 박사님은 시각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 백악관 차관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악을 결코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가정적 불행한 환경에 처했어도 얼마든지 선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습니다.
노예로 팔려 가지 않았다면 보디발 가정의 가정 총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주인의 아내의 유혹이 없었다면 감옥에 갈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왕의 최측근 관리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바로 풀려났다면 왕실 공무원에 등용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하여 요셉으로 하여금 최고 권력층과 만날 기회를 주신 것이고 결국 30세에 공무원이 되어 애굽 총리로 일하게 만든 것입니다.
당할 때는 잘 이해 안 되고 수용도 안 되지만, 가족들, 방해하는 자들, 시기하는 자들, 유혹하는 자들,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는 자들까지 사용하여 하나님은 요셉에게 주신 꿈을 이루게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의 가정도 어떤 가족 구성원의 장애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가정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선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인생은 길게 보아야 합니다. 바르게 가려면 멀리 보고 걸어야 합니다. 살다 보면 가족이 가장 힘든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되는 꼴을 못보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넘어뜨리고 실패하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요셉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소나무가 대저택을 짓는 대목수를 만나면 고급주택의 목재가 되지만, 동네목수를 만나면 고작 오두막이나 축사를 짓는데 쓰입니다. 아무리 투박한 바위덩어리일지라도 위대한 조각가를 만나면 명품이 나옵니다. 같은 칼일지라도 누가 쓰냐에 따라 살인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생명을 살리는 수술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한갓 목동에 불과하고 노예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가는 곳곳마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여 결국 국무총리가 되어 가족을 살리고, 가정과 가문을 일으키고, 민족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홍해를 가르는 기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법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요단강을 가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우상 장사의 아들이지만 그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철옹성 같은 여리고 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칼 한번 쓰지 않고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읽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요셉이라는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성도님과 성도님의 가정에 임하는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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