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는 가정(2) 부모,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
룻기1:15-18
오늘은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키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늘 어버이 주일 때의 설교는 효도에 대하여 하고, 아이들이 부모님께 꽃을 달아 드리고,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작은 선물을 합니다. 형식적인 것같지만 그래도 어버이 주일을 통해 다시 한번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고 다짐을 하게 합니다. 이 땅에 부모가 되지 않는 사람은 있지만,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는 같이 있을 때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굴레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부모님을 다 떠나고, 떠날 때 아픔이 남습니다. 그런데 이별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사라지고 잊어집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지나도, 늙어서도 잘 잊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떠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리움과 살아계실 때에 좀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대하여 4분쯤 되는 영상을 보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영상 상영)
이 영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마 연세가 많이 드신 분도 눈에 눈물이 고일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잘해 드려도 돌아가신 후에는 “살아계실 때 조금 더 잘해드릴 걸...”이라는 후회를 다 하게 됩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멎지 아니하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그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철들면 부모는 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 중에서 최고의 가치는 효(孝)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채택하여 효를 실천적인 행동규범으로 체계화시켰습니다. 전국의 효자, 효부, 효녀 등을 뽑아 표창했습니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고 불효한 죄의 양은 3천가지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라 하였습니다. 110명의 효행담을 집대성한 "효자도(孝子圖)"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와 부모가 인도하는 가족을 욕되게 하지 않고, 부모에게 좋은 음식과 의복, 따뜻한 방을 제공해 드려 편안히 모시는 것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게일 선교사는 조선의 효도 문화를 보며 "조선은 노인 천국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조선에서 노인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도 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효도를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통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서에 보면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라고 할 정도로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효도 교육이 자녀 교육의 근간이고 효도하는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세대는 어떻습니까? 결혼할 때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말하면 평생 홀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길 꺼린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늙으면 자식들이 서로 부모님을 자신의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여 서로 모시실 꺼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 계약서라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습니다. 효도를 조건으로 자식들에게 상속을 해 준다고 합니다. 어떤 신앙인은 같은 교회에 나오는 조건으로 상속을 해 주었다는 말도 들어 보았습니다.
사춘기 이후 아이들 가운데도 부모님의 말을 잔소리로 폄하하며, 매사 자신을 간섭하고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부모에게 숨기도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꿈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학생들에게 물었답니다. "여러분이 꿈을 펼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학생들이 대답을 못하자 선생님이 힌트를 주었답니다. "자, 잘 생각해보렴. 의지부족일까? 노력부족 아니면 빠른 포기때문일까?" 그때 한 학생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답니다. "아뇨. 엄마와 아빠요!"
오늘 예배를 같이 드리는 우리 아이들 중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습니까?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 없고 부모만큼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부모님의 아들 딸이든지 부모님을 디딤돌 삼아 가정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늙었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자식과 손자 손녀들을 위해 가문을 일으키는 후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거림돌로 삼은 가정은 쓰러지지만 부모님을 디딤돌로 삼는 가정은 일어납니다. 오늘 같이 예배드리는 우리 열린 교회 성도님들은 부모님을 디딤돌로 삼아 가정과 가문을 일으키는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나오는 룻이라는 여인은 시어머니를 디딤돌로 삼아 다 쓸어져 가는 가정을 일으킨 주인공이 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디딤돌 삼아 가정과 가문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될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부모님을 부모라는 한 가지 이유로 공경하면 일으키는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가정은 콩가루처럼 가정과 가문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하고 자신이 잘 되어 가정을 일으키고 가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예가 우리가 오늘 읽은 룻이라는 여인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아버지가 유대땅 베들레헴에 살다 흉년이 들어 자기 나라에 이민을 왔습니다. 아들 둘 있었는데 그 아들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 둘도 다 죽자 어느 날 시어머니가 며느리 둘을 불러 놓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이제 자신의 고향 땅이 베들레헴으로 갈 것이니까 며느리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가라고 합니다. 큰 며느리는 떠났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재혼의 방해 요소이고 평생 짐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룻이라는 며느리가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많은 불이익이 예상됩니다. 그녀는 모압 여인입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그모스 신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인종차별이 심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하고 지옥의 땔감처럼 취급했습니다. 시어머니은 자신의 일생에 99% 걸림돌이지 디딤돌은 될 수 없는 것같은 환경입니다.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가 고향에 가면 남겨줄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에게 공경하며 효도하기로 작정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라고 말씀합니다. 법적으로 맺어진 부모도 부모니이까 어떤 경우에도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공경할 것을 작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룻이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효도하게 된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오겠습니까?
룻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나오미 가정에 시집을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불신 가정에 산 여인이었지만 믿는 가정에 시집와서 하나님 말씀이 부모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지를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부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구약성경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공경한다'라는 말은 히브리 동사인 '카베드'입니다. '존경하다', '영광되게 하다', '깔보지 않는다', '무겁다', '존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리킬 때도 똑같이 사용됩니다(잠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부모공경이 하나님 공경과 동일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되 마치 하나님을 경외하듯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조건에 맞춰 공경해도 되고 공경 안해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은 거역하면 형벌과 징계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 "부모를 경홀이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신27:16)" "신21:18-21 성밖에서 돌로 쳐 죽임" "등불이 꺼짐(잠20:20), 객사(잠30:17)" 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술취하고 실수했을 때 함은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비난했다가 그의 아들 가나안이 형제들의 종이되는 벌을 받았습니다. 다윗 왕의 아들 중에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왕이 되기 위해서 역모를 꾸미다 상수리나무에 그 잘 난 머리털이 걸려서 공중에 매달려 요압의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창조질서의 근원입니다. 신앙인이 마땅히 가르쳐야할 것입니다(딤전5:4). 인간 중심의 효도가 아니라 하나님 경외하는 말씀 중심의 삶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의 조건과 상관없이 부모를 공경하면 무너지는 가정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면 일으키는 가정을 만들을 수 있습니다.
룻이라는 여인이 왜 시어머니를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고 디딤돌로 생각하고 시어머니를 공경했겠습니까? 이미 남편은 죽었고 아이도 없습니다. 시어머니는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닙니다. 분명 시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의 걸림돌인 것은 사실입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따라오지 말고 네 나라에서 재혼하고 잘 살라고 하는데도 자기 인생의 짐 덩어리인 시어머니를 따라나섭니까?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6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반절에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어머니를 모시고 이국땅에 간 것입니다. 가서 무엇을 합니까? 힘없는 시어머니를 밭에 나가 이삭을 주어 먹여 살립니다. 자신이 피 한 방을 섞이지 않은 시어머니의 보호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한가지로 홀로되고 힘없는 가난한 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한 것입니다. 우리가 힘없고 병든 늙으신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하게 어머니 아버지로만 보면 봉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치매 어머니는 주님 주신 선물"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김달근목사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장모님은 30여년 동안 신경안정제를 복용해 2년전부터 치매가 급속도로 빨리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첫째 딸아이의 교육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치매에 걸린 장모를 자진해서 모셔왔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어머니 앞에서 사모님은 자신의 어머니이지만 감당키 어려운 짜증과 분노와 싸워야 했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것이 선물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장모님의 치매로 내 속에 어떤 문제가 숨어있는지를 보여주셨어요. 또 하나님은 그 문제를 내게 보여주셨을 뿐아니라 그 문제를 건드리려고 작정하고 계셨죠"라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치매 작전'은 위장된 분노와 미움을 감춘 채 그럴 듯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거듭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장모를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와 미움을 삭이지 못한 채 손찌검을 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답니다. 김 목사님은 그때 통회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정신을 수습한 후 장모의 손을 잡고 용서를 구했답니다. 그때 "괜찮아. 그때뿐이야"라고 장모님이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해맑은 웃음을 짓는 장모 앞에서 엉엉 울었답니다. 그 후 장모님이 측은하게 보였고 보기 싫던 장모의 얼굴이 예쁘게 보였답니다.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답니다. "어머니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기어이 파헤치고 캐내야만 하는 보화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김목사님은 <치매 어머니와 행복만들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효도의 기본은 공경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상황과 상관없이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 공경은 어릴 때는 순종이 중심이 됩니다. 결혼하여 성장하서는 봉양이 중심이 됩니다. 봉양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효도에 핑계는 없습니다. 디모데 전서 5장 8절에서 “만일 누군가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나쁜 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인류의 구속사를 이루시는 예수님도 육신의 부모에게도 순종으로 효를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린 시절부터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을 도와드림으로써 효를 실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보이셨습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있게 될 고통과 허전함을 생각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모셔 주도록 부탁하셨습니다(요19:26,27). '고르반' 즉 '하나님께 바친 물건'이라고 하면서 가련한 부모들을 도와드리고 모셔야 할 의무를 외면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마15:4-6)"라고 꾸짖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면 얼마든지 어떤 조건에서도 일으키는 가정을 만들을 수 있습니다.
3. 우리는 가족 구성원으로 내게 주신 사명을 다하면 일으키는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조건과 환경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며느리가 둘입니다. 시어머니는 하나입니다. 그런데 반응과 선택은 달랐습니다. 한 며느리는 걸림돌로 받아들여 시어머니를 떠났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이익도 편리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도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도 정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룻은 이익도 편리도 즐거움도 없지만, 시어머니를 자신이 평생 모셔야 할 분으로 받아들입니다. 시어머니 모시는 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무나 사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같이 해야 할 분으로 받아들입니다. 15절 읽어 보십시오. 시어머니 나오미가 동서와 비교하여 말합니다. 너의 동서는 갔는데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합니다. 세상 풍속이 다 그렇니 너도 세상 모든 사람처럼 그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 때 룻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동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동서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조건이나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없습니다. 오직 오직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며 은혜로 이제 모압의 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앞날에 어려움이 오든 기쁜 일이 오든 상관이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며느리로서 자신에게 신앙을 선물로 주신 시어머니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어머니와 마지막까지 인생을 같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장례 자신이 치러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 구성원으로 사명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낯선 나라에 가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시어머니가 이삭을 주어 오라고 합니다. 들에 나가 이삭을 줍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인데도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도 다 합니다. 그러다 베들레헴에 와서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아들과 같은 손자를 선물하여 기쁨을 선사합니다. 결국 나오미 가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룻기서 4장 14-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을 가문에 들어왔고 이방 여인으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족보에 드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나오미 가문을 다윗 왕을 탄생하는 가문, 메시아를 세상에 잉태하는 가문으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여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은 에스더서와 룻기 밖에 없습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무너진 가정과 가문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가족 구성원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살면 얼마든지 쓰러져 가는 가문을 일으키는 가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성공한 사람은 힘차게 일어나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는다. 그리고 그런 환경을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환경이란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진로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건이나 상황을 말합니다. 부모라는 환경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부자 부모 가난한 부모, 잘난 부모 못난 부모, 건강한 부모 병든 부모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고 그 누구에게도 좋은 환경이나 나쁜 환경에 대한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족 구성원으로 부모 환경을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만들면 부모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문으로 일으켜 세우는 전환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청소부 어머니, 마약중독자 형이 있는 빈민가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부모는 디딤돌이 아니라 거침돌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어머니였지만 청소부 일을 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다가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답니다. 그 소년은 청소부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도 축구하고 싶어요. 축구팀에 보내주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축구 팀에 들어갔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경기에 한 번도 뛰지 못하고 조명이 꺼지고 모두 돌아간 뒤에는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아야 했답니다. 그런데다 선천적인 심장병 때문에 선수를 할 수 없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답니다. 그 소년은 ‘심장이 터져도 좋다’고 죽을 각오로 뛰었답니다. 그는 결국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답니다. 감독으로 전화를 받은 순간 그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해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되요"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었답니다. 구멍 난 축구화에 외톨이, 심장병을 가진 소년이었던 그 소년은 축구 선수 ‘호날두‘로 성장했습니다. 부모의 불행한 환경은 얼마든지 내가 어떤 태도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의 환경을 금수저 흙수저로 낙인찍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의 환경일지라도 얼마든지 디딤돌로 만들어 가정과 가문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가장 효도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을 잘 이루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대부분은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는 부모의 혹독한 역경과 시련을 디딤돌로 만들어 탄생하는 것입니다.
골프선수 신지애는 2009년 만 19살이라는 나이에 세계 1위에까지 오른 세계적인 골프선수가 된 신지애 선수를 보십시오. 가난한 가정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이 다쳐다고 합니다.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는데 믿음으로 어머니의 사망 보상금으로 다시 골프를 시작했답니다. 전에 같으면 실수했을 때 ‘다음에 잘하자’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건 이후에는 ‘이번에 실패하면 평생을 후회할 수도 있다’라는 절박한 마음에서 골프를 쳤다고 합니다.
부모가 돈이 많고, 많이 배웠고, 금수저을 물려 주어야만 좋은 가문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공자는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위었고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데카르트도 한 살 때, 파스칼은 세 살 때 각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사생아였고 스탕달, 보들레르, 카뮈, 에드가 엘런 포우, 단테, 톨스토이, 볼테르, 바이런, 도스토옙스키 등도 어릴 적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유명한 세계사적인 인물 중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에 겪은 가혹한 가정환경, 역경의 고통, 무시와 업신여김의 아픔이 있었지만, 그들은 부모 환경이 걸림돌이 되어 쓰러진 것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아 가정과 가문을 일으켰습니다.
흑인 최초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대의 총장으로 취임한 시몬스 박사는 소작농 아버지와 하녀였던 어머니의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그는 가난과 차별을 딛고 하버드대에서 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아 총장이 되어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포드 전 대통령의 어머니는 남편의 과음과 폭언을 참다못해 태어난 지 16일 된 포드를 안고 가출했지만, 포드는 부모를 걸림돌로 여기고 평생 산 것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아 대통령이 되어 일어나는 가문을 만들었습니다.
오마바 대통령의 어머니는 2살 때 별거하고 이혼했으며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기 전에 아버지를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래서 십대 시절 알코올, 마리화나, 코카인을 복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부모 환경이 거침돌이 되어 인생을 끝낸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불행한 환경을 디딤돌로 삼아 대통령이 되어 일어나는 가문을 만들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였고, 중학생 때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결국 시력을 잃어 그 충격으로 어머니도 누이도 잃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고 미국에 유학을 하여 박사 학위를 받고 백악관 차관보가 되었습니다. 한 아들도 아버지를 이어 백악관에 들어갔고 한 아들은 아버지의 장애 때문에 의사가 되어 일으난 가문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흑인이며, 여자이며, 사생아였습니다. 어린 시절은 성폭력과 임신, 마약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부모의 환경에 넘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를 디딤돌로 삼아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 가문을 일으켰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 사기꾼이 아버지와 질투심으로 싸우는 어머니 4명을 걸림돌로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요셉은 부모를 디딤돌 삼아 사명 의식을 가지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만들어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리는 부모님을 부모라는 한 가지 이유로 공경하며 일으키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며 일으키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가족 구성원으로 내게 주신 사명을 다하여 일으키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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