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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인생으로 살기(5) 믿음으로 사는 인생 (마가복음9:23-2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62 추천수:0 220.120.123.244
2021-01-31 03:41:09

존귀한 인생으로 살기(5) 믿음으로 사는 인생

마가복음9:23-24 

벌써 1월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2021년 새해 들어 “존귀한 인생으로 살자”는 주제로 어떻게 하면 존귀한 삶을 살 것인가를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입니다. 존귀란 미천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존귀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지위나 신분이 높고 귀함입니다. 미천이라는 말을 사전을 찾아보면 신분이나 지위가 낮고 보잘 것 없고 하찮고 천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때에는 남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던 '노비'나, 소, 돼지를 잡는 '백정'을 미천한 신분이라 하여 하찮게 여겼습니다. 미천한 가문, 미천한 사람, 미천한 신분, 미천한 신세, 미천한 지위 등과 같은 말로 쓰입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을 존귀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시편 16편 3절에서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가 존귀한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간 같이 예배드리는 우리는 성도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신분이나 지위가 존귀한 자가 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비록 가난하여도, 장애가 있어도, 병들었어도, 실패했어도, 학식이 부족해도, 권력과 명예가 없다고 할지라도 성도가 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로 존귀한 자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43장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사람들을 주어 네 생명을 대신하리라(사43:4)”.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찬양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하나님은 성도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성도가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성도가 되고 성도는 존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인생이 존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고 말씀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13장 10절에서는 아주 심하게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었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에서는 전적으로 부패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천하고 미천한 자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았다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2장에 보면 3가지 특징으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따릅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는 사탄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따릅니다. 둘째는 이 세상 풍조를 따릅니다. 셋째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인간은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며 살게 되어 있는데 재미만 추구하며 삽니다. 욕심에 끌려 이기주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삽니다.

이렇게 미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어 믿음을 주시고 구원을 받아 성도가 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래서 믿음으로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귀한 인생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존귀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11:6)"고 말씀합니다. 심지어는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은 죄(롬14:23)"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존귀한 삶을 살기 위해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1.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임을 믿음으로 존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존귀와 미천함 삶의 기준은 예수님을 믿는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미천한 삶에서 존귀한 삶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기 나온 아버지의 세상적 신분과 지위가 어떤 사람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자였습니다. 결혼할 때 그래서 존귀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결혼했을 것입니다. 아들을 낳아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심한 간질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갑자가 쓰러저 심히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구르고 거품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귀신들렸습니다. 경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불 속에도 들어가고 물속에도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로서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당시 이런 질병은 저주받은 질병으로 취급하고 이런 사람을 상종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미천한 자로 취급하였습니다. 자식 병도 병이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식이 죽기 전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세상 사람들에게 천대받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겠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 이지만 그는 수명의 한계, 능력의 한계, 인식의 한계 앞에서 주님을 찾았습니다. 인간은 교만하여 이런 한계가 오지 않으면 주님께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 미천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와서 간구합니다. 어떻게 간구합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우리 아들이 질병에, 우리 딸이 장애에, 우리 가정이 가난에, 우리 인생에 장애가... 등등과 같이 한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보십시오.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라고 말합니다. 완전히 주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문은 듣고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불행하게 최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반신 반의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했지만 고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아내가 기도하는데는 여전히 아토피에 시달리고, 여전히 고혈압과 당뇨병에서 노임받지 못하고, 여전히 장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암에서 고통을 받고 있고, 여전히 고질적인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께 기도 부탁을 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안수 기도를 받았는데 응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니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보니 소문으로 들었던 그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도 반신 반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고칠 수 있겠어.” 예수님의 전능성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예수님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얼마든지 아들의 간질병을 고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광풍을 잔잔케 해 주었습니다. 12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질병도 고쳐 주었습니다. 12살 먹은 죽은 야이로의 딸도 살리셨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이 사람도 예수님께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나 사람은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가 무슨 기적을 베푼다고 해도 실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해야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기적을 베풀어 주었겠습니까?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이시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고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믿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 하신 대표적인 사역이 세 가지입니다.

마태복음 9장 35절 한 구절로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간의 사역은 '가르침'(teaching)과 '복음 전파'(preaching)와 '병 고침'(healing)는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나를 믿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라,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믿게 만들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진화되어 된 존재가 아닙니다. 원숭이가 인간이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존귀한 자로 창조된 것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고 짐승처럼 살면 미천한 자가 되는 것이고 이것을 믿고 인간처럼 살면 존귀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해 놓고 방치한 것이 아닙니다. 섭리하십니다. 그 섭리의 방법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보존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성질과 특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새는 새의 성질과 특성, 원숭이는 원숭이의 성질과 특성, 사람은 사람의 성질과 특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유 인력 법칙, 중력 법칙, 질량 분변의 법칙 등을 통해 보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협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된 뜻을 이루기 위해 피조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통치하십니다.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는 그 대상에 따라 일반 동치와 특별 통치가 있습니다. 일반 통치는 우주에 대한 통치고 특별통치는 사람에 대한 통치입니다. 통치 방법에는 통상적인 통치와 비상적인 통치가 있습니다. 기적은 바로 제 1원인이신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직접 통치하는 것입니다. 통상 통치를 초월하여, 때로는 역행하여 통치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을 물도 먹지 않는데 죽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는데 아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태양이 머물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 가운데서도 살아납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이런 것들은 제1원인 자인 하나님이 제 2원인자에 의해 통치하는 방법을 초월하여 역사 속에서 직접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통치자이심을 인간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데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만들기 위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동의하고 신뢰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적 자체를 거부하고 전혀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기적이 믿음의 발화점이 되지 않습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요3:19-20)

그러나 기적을 체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게 됩니다. 왕의 신하는 자기 아들이 열병으로 죽어갈 때 예수님께 와서 고쳐 달라고 합니다. 그때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갑니다.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그 기적을 보고 말씀 한 마디로 자식을 살리신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온 집안이 다 믿었습니다. 개인적인 기적 체험을 통해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것도 중요합니다(요2:11) 그러나 예수님을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기적을 통해 믿는 것도 중요하고, 육체적 치유를 통해 믿은 것도,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믿는 것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누구나 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씀했으니까 부지런히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믿는 자를 능력있게 하시는 분으로 믿고 존귀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지금 네가 믿고 있지 않아서 그렇지 네가 믿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네가 믿는 자가 되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하니까 예수님께 대하여서도 반신반의하는 회의적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확신하고 “우리 아이 살려주세요. 고쳐주세요”라고 소리지르며 예수님께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if you can do anything)이라고 가정하여 요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온 이 사람이 얼마나 낙심이 되고 회의에 빠졌겠습니까? 이때 나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는데,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했는데 그런 아들이 태어나 그때부터 얼마나 미천한 인생을 살아겠습니까?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왔는데 못 고친 것입니다.

요즈음 코로나19로 말미암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교회 갔다 코로나 19가 걸리면 계속 반복적 보도를 하니까 사람들이 교회가 코로나 확산이 주범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교회총연합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48%나 코로나 확산이 교회를 통해 전파됐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8% 정도라고 합니다. 21세기교회연구소와 한국교회탐구센터가 2-30대 기독 청년 7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절반이 넘는 56%가 코로나 이전보다 예배참석 횟수가 줄었고 22.8%는 아예 예배를 참석하지 않았답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린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68%였는데 이들 중 21.2%는 다른 일을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30.7%는 핸드폰을 보거나 가족과 이야기를 한다고 답했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향후 신앙생활을 지속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신앙유지와 교회출석을 확신한 응답자는 53.3%로 절반 수준에 그쳤고 39.9%는 교회를 안 나갈 것 같다고 대답했답니다. 한계 앞에 회의주의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한계 상황의 사건이 발생하면 이렇게 회의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불치의 병이 치유받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가고 싶은 직장에 취업하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출산하고 출세하면 믿음도 커지는 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실패하고, 병들고, 어려워지면 믿었던 만큼 실망도 커지고 반복되면 회의적 신앙으로 전락되다가 나중에서는 신앙에서 떠나 버립니다.

 

이번주 주보 열린편지에 오래전에 가이드 포스트에 나왔던 캐나다 밴쿠버 시장 샘 이야기를 소개해 놓았습니다. 19살 때 친구와 함께 스키를 타러 갔답니다. 스키를 타고 친구의 다리 사이를 비집으며 언덕을 내려오는 묘기를 부리기 위해 전력 질주하였답니다. 그러다 그만 친구와 부딪치고 목뼈가 부러져 걷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주님 도와 주세요. 이것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이것이 무엇이든지 말입니다."라고 기도하였지만 휠체어를 타게 되었고 자살을 결심하였답니다. 애인을 거절하고, 미래를 거절하며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버렸답니다. 이렇게 기도해도 기대와 달리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회의에 빠져 버립니다. 신앙 좋아던 모세도, 엘리야도 한 때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차라지 자신들을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샘은 생명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에서 믿음의 길을 선택했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장애인이지만 다시 일어나 경영학을 공부했고, 장애인 모임 조직을 조직했으며 휠체어 타는 장애인으로 시장에 당선이 되었답니다.

 

수명의 한계,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 앞에서 인간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회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박국의 회의처럼 "왜 정치. 종교. 사회 지도자들의 타락을 그냥 보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요나의 회의처럼 "왜 원수의 나라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회개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회의처럼 "왜 믿는 사람이 고통당하고 불신자에게 조롱당하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조리만 보고 회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예수님은 부활했는지, 천국과 지옥은 있는지, 하나님은 계시는지 회의를 합니다.

특히 지식인들은 더 부정적이고 회의적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 갤브레이스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지식인들은 모든 사물을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보는 일반적 경향이 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살다 보니까 되는 것보다 않 되는 것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면 자신도 모르게 회의적이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무엇을 하자 하면 가장 반대하는 사람은 신앙생활 오래한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좀 안다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다고 선언하고 무신론자가 되어 버립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귀하게 사는데는 하나님이 필요 없고, 인간이 초인이 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 스스로 신이 되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이 구원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을 나약하게 하고 노예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내고 종교에 억압된 인간을 건강한 삶으로 회복하게 하는 독보적인 책이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인류에게 이제까지 주어진 그 어떤 선물보다도 큰 선물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니체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목회자였고 자신도 신학을 공부했지만, 신앙적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초인이라는 또다른 종교를 만들고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완전히 정신 상실자가 되어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요즈음은 리처드 도킨스가 신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모르는 것, 신으로 메우려 말고 과학을 따르라”고 주장합니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내어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인간은 단지 이기적인 유전자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번에 <신, 만들어진 위험>이라는 책을 내어 무신론 전도사고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사람들을 언제든 살인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정신 바이러스의 일종” 이라고 주장하며 "신은 없고 비이성적인 믿음만 남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의 기적이나 부활은 꾸며낸 이야기고 초기 신자들이 사실인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예수에 관한 이야기와 소문을 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성경을 비판하며 진화론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진화론이라고 말하며 이 진화론으로 증거와 이성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인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무기물이 유기물이 되고, 그 단세포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증거가 있고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학설이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믿고 있는 근거 없는 과학종교에 불과합니다. 종과 종사이의 중간 종의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원인 없는 결과가 주어졌다는 것이 이성적 생각이고 합리적 생각입니까? 모든 존재하는 것은 원인이 있습니다. 이 말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입니까? 원인 없이 물질은 존재한다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입니까? 성경의 최초의 원인자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성경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끝내고 있습니다. 그도 어릴 때는 교회에 다닌 사람입니다. 부모도 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결국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도 한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30세 때 다시 신자로 신앙생활을 해 늦게 결혼하였는데 아내가 암에 걸렸습니다. 열심히기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치료되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심한 고통 가운데 회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 늪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십자가에 더 가까이 가서 부활의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는 시인으로, 영문학자로, 변증가로, 소설가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며 믿음으로 평생을 존귀하게 살았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합니다.” 모든 사람이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똑같은 미풍이 불어 오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의하는 아버지에게 믿는 자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한계 앞에서 회의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존귀한 삶으로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의 이성을 절대시하며 회의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며 믿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다 예수님의 말씀에 더 무게를 두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어난 사건을 끝으로 보지 말고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못 고친 것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 하지 말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사건과 결과 사이에 반응이 있는데 그 반응이 중요합니다. 24절을 크게 같이 읽겠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내 마음대로 안될 때, 회의에 사로잡힐 때 이런 고백을 하시길 바랍니다. 100% 믿는 것입니다.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결국 아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했습니다. 자연법칙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필연적으로 적용되지만 경험의 법칙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법칙에는 자연법칙과 인문학적 경험법칙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영적법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자꾸 자연법칙으로 오해하여 왜 나에게는 성경에 나온 사건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실망하며 회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인문학적 성공의 법칙도 보세요. 그것이 누구에게나 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믿고 실행하는 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영적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으면 누구나 다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네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나 홍해를 가르고 누구나 요단강을 건너고 누구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100% 믿고 실행하는 자에게 은혜로 주시는 기적입니다. 한계 앞에서 한계를 극복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100%의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믿음에는 세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받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는 믿음입니다. 둘째는 능력을 행하는 믿음입니다. 이 아버지처럼 예수님께서 치료시켜 주면 어떤 불가능한 질병도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셋째는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역사 속에 태어나셨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만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귀신도 믿고 떠는 믿음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역사적으로 아는 믿음입니다. 이론적인 믿음입니다. 한계를 극복하려면 구원 얻는 믿음, 능력을 행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절대 회복력(캐런 레이비치, 앤드류 샤테 지음)"의 저자는 15년가 연구해 보니까 회복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유전도, 아동기의 경험도, 기회 부족도, 경제적 문제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차적인 장애물은 인지 양식(Cognitive style)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고 양식(Thinking style)입니다. 불가능하다고 단정해 버리는 사고양식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고방식을 바꾸어라. 인생이 영원히 바뀐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못하지만 예수님이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의 저자 젠 브리커는 두 다리 없이 태어났습니다. 심장도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산부인과 간호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의사는 아기가 곧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친부모는 미국 일리노이주 세일럼(Salem)의 작은 병실에 누운 아기를 보고 충격에 빠져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으로 존귀한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강인한 두 팔로 공중에 매달려 공연을 펼치는 공중곡예사가 됐고 파워텀블링(power tumbling) 주(州)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BBC 등 TV 뉴스쇼에 출연하는 유명인이 됐고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선사하는 강연가가 되었습니다. 젠은 자신을 '불구자'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었기 때문에 오히려 날마다 자신의 몸에 대해 감사했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만약 내가 다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렇게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기회를 갖지 못했겠지. 내가 못 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한계와 싸워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3. 예수님은 믿는 사람의 믿음의 기도로 타인을 존귀하게 만드는 분으로 믿고 존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아버지의 믿음으로 아들이 절망적인 미천한 삶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의 미천한 삶이 존귀한 삶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12해 동안 혈루증으로 비참하게 살았던 한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을 때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그리고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라고 했습니다. 맹인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믿음을 가지고 고쳐달라고 했을 때 “가라 네 믿음이 너를구원하였다(막10:52)”라고 고쳐주었습니다. 자신의 믿음으로 지긋지긋한 질병과 삶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믿음을 통해 아들의 문제가, 딸의 문제가, 이웃의 문제가 풀려 미천한 삶에서 존귀한 삶으로 비상할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로 살아야 할 사람이 그의 친구들의 믿음을 통해 고침받았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은 그 아버지의 믿음으로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병든 백부장의 종도 백부장의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에세 “가라 네가 믿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그의 믿음을 보고 고쳐주었습니다. 미친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와서 간구하는 가나안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그 딸을 사단의 결박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오늘날 믿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믿음으로 그것이 가능합니까?

한계 앞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 아버지를 회의에 빠지게 한 제자들은 예수님께 조용히 나와 물어 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결국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누가 해 주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단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기도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귀신들리고 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만나자 제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9명의 제자이 서기관들과 변론하는 것입니다. 한계 앞에서 변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을 보면 이미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라고 말씀합니다.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이미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막 3:15). 6장 13절을 보시면 이미 사용해 본 사람들입니다. "많은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기도를 통하여 이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논쟁만 하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이겠습니까?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 말씀을 종합하면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우리는 한계 앞에 굴복하고 비굴하게 살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오래 전 가이드 포스트에 나와던 드웨인의 이야기입니다. 아내 나탈리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다 교통사고를 당했답니다(2003.4.10.) 순식간에 골반이 부러지고 비장이 파열되으며,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이 섬기고 있는 목사님과 온 교회 교인들은 기도하였답니다. 드웨인은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21:22)”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절망적이었답니다. 의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확률은 100만분의 1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답니다. 3년이 지난 부활절 아침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눈을 깜빡거리더라는 것입니다. 한줄기 눈물이 흐르더라는 것입니다. 3년 만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내는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1월 27일 “골이 깊으면 메아리도 큽니다”라는 제목으로 열린편지를 보내었는데 <가이드 포스트(2020.12)>에 나온 KBS 21기 공채 탤런트 김예랑 배우의 이야기입니다. 결혼하여 아이 셋을 낳았는데 둘째가 33개월 되던 해 뇌전증이 발병했답니다. 작은 아이가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답니다. 원인조차 찾을 수 없었고 부분 발작이었지만 80회나 일어난 발작과 독한 약들이 아이 몸에 엄청난 무리를 주었답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었답니다.

키토제닉 식단(원래 난치성 아동 뇌전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고안한 식단)을 시작하는 날,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떡볶이인데, 키토제닉 식단 시작 전에 3일을 굶어야 했답니다. 너무 마음이 어려웠지만 원망하지 말자고 다짐하고는 아이와 함께 예배실로 가서 기도했답니다. 다 순종하고, 감사로 이겨 낼 테니 제발 키토제닉 치료 전에 30분만 경기를 멈춰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병을 고쳐 달라는 것도 아니고. 떡볶이만 한 번 먹일 수 있게 해주세요.”하면서 십자가 앞에서 열심히 기도했답니다. 그 순간, 아이가 경기를 하여 태어나 처음으로 십자가를 노려봤답니다. 아이에게 “하나님께 기도해도 소용없어. 가자. 하나님은 죽었나 봐”라는 엄청난 말을 하고 십자가를 뒤로하고 예배실을 나왔답니다. 그 짧은 순간에 그가 아는 모든 욕을 쏟아 내면서 다시는 믿지 않겠다고 원망하며 저주했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는데, 자신도 모르게 휠체어에 잠든 아이를 밀며 다시 예배실로 가 한없이 울었답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욕을 해도 자신에겐 주님밖에 없었답니다. 그렇게 펑펑 울면서 앉아 있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말씀하셨답니다. “지혜야!(본명) 너는 왜 네 딸만 위해서 기도하니?”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답니다. 그곳에는 훨씬 아픈 아이들이 많이 있었답니다. 하나님도 이웃도 남편조차 사랑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몇 날 며칠을 울며 회개했답니다. 그때부터 병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손을 얹고 기도하고, 진짜 친구가 되었답니다. 아이의 병 때문에 간 병원에서 기도도, 예배도, 사랑도, 믿음도 회복되었답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70일을 보내고 난 아침에 아이가 갑자기 눈을 보며 “하나님이 고쳐 주셨쪄” 하고 말했답니다. 신기하게 그날부터 경기를 하지 않았고 담당 의사는 못 믿으며 2주간 퇴원을 안 시켜 주었답니다. 퇴원하는 날 불교 신자였지만 복음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던 한 엄마는 병원 입구까지 배웅해 주고 아이를 위해 선물까지 준비해 주었답니다. 그 아들은 차도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고 합니다. 그때 맘속에 지울 수 없는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답니다. “하나님, 왜, 제 아이만 고쳐 주셨어요?”

그 물음의 답을 15개월이 흐른 뒤, 아이의 경기가 다시 재발했을 때, 주님께서 알려 주셨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 다시 아이가 경기를 하였답니다. 담당 교수는 1년 반 만에 MRI로 원인 부위를 찾았고 80%의 수술 성공률이 있다고 했답니다.

뇌수술을 하기 전날, 퇴원하는 날 선물을 준 그 불교 신자 동생에게 연락이 왔답니다. 자기 아들은 아직도 그대로 훨씬 더 많이 아픈데, 아이의 수술 잘될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기도를 또 들어주실 거라고 위로해 주었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엄청 울었답니다. 그리고 그때 바로 자신 안에 2018년에 생겨났던 물음, ‘왜 아이만 고쳐 주셨어요?’라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님께서 입술을 통해 고백하게 하셨답니다. 전 펑펑 울며 그 동생에게 말했답니다. 언니가 정말 미안하다고, 기도를 잘못 알려 줬다고, 우리 아이 고쳐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기도가 있다고, 예수님 믿어서 꼭 천국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했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이지만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하자고, 아이가 뇌수술이 잘되면 좋겠지만, 만약에 잘 안되더라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고,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서 아파도 나중에 죽어서는 절대로 아프지 않는 곳으로, 주님 계신 천국으로 다 같이 가자고 말했답니다. 그때 그 동생이 처음으로 알았다며 자기도 기도하겠다고 말했고, 아이의 경기가 멎었던 그때는 주님을 못 믿겠다던 그 동생이 오히려 아이가 재발해서 다시 입원하고 뇌수술을 앞두게 되자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지금은 염주도 빼고 이름도 하은이(하나님의 은혜)로 바꾸고 함께 카카오톡 온라인 기도 모임인 ‘화이팅게일’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함께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술 후 못 걸을 거라고 했던 아이는 일주일 만에 걷고 뛰는 영상을 보고 많은 분들이 기적이라고 한답니다. 그 또한 기적이고 은혜지만, 진짜 기적은 하은이의 기도이고, 더불어 아픈 아이들의 엄마들, 나밖에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인 사람이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게 된 것이 그게 진짜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퇴원한 후 병원에서 만난 엄마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인 ‘화이팅게일’이 생겼고, 아픈 아이들의 이야기를 유튜브 ‘애밴져스’에 연재하며 뇌전증으로 아픈 아이들을 위한 응원과 기도를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4-16)”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존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임을 믿음으로 존귀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믿는 자를 능력있게 하시는 분으로 믿고 존귀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은 믿는 사람의 믿음의 기도로 타인을 존귀하게 만드는 분으로 믿고 존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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