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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한 인생으로 살기(4) 사랑하며 사는 인생(마태복음22:34-4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783 추천수:1 220.120.123.244
2021-01-24 13:09:50

존귀한 인생으로 살기(4) 사랑하며 사는 인생

마태복음22:34-40

 

2021년 새해 들어 “존귀한 삶을 살자”는 주제로 계속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존귀라는 말이 사전적 의미는 지위와 신분이 높고 귀함을 말합니다. 신앙적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여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이나 물질과 달리 만든 존재로 존귀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창조하고 식물, 동물 순으로 창조하였습니다. 마지막에 인간을 만들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인간은 동물이나 동물과 달리 하나님 세가지 특권을 주어 존귀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첫째는 영생의 특권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교제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셋째는 만물을 다시리며 살 수 있는 지복입니다. 그런데 범죄함으로 이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제권이 상실되었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창조물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바로 밑에서 존귀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첫주에 사무엘상 2장 30절을 통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라고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가 존귀한 인생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즈음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면 인간이 존귀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것처럼 선전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는 “신은 인간적인 소원의 산물이다”라고 말했고, 칼 마르크스는 “신은 압제 상태의 대체물이다”라고 말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 “신은 억눌린 욕망의 투사이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요즈음 무신론 전도사인 리차드 도킨스,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대냇 같은 신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신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공격하며,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인간은 물질에 의해 진화된 것에 불과하며 모든 것은 물질에 불과하다며 과학제국주의자들이 되어 무신론이라는 유사종교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이 품위 있는 삶이라고 그들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학주의 교리로 유사 무신론 종교를 만들어 오만한 과학주의 종교 교주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폭력성을 비난하면서도 모든 것을 물질에 불과하다는 무신론자들의 폭력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신론자의 교주가 되어 종교를 없애야 인류는 존귀하고 품위 있게 산다고 전투적으로 종교에 대항합니다. 하나님은 없으니 마음대로 즐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존귀한 삶이고 품위 있는 삶입니까? 과학과 이성에 근거한 오만한 물질주의 무신론이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고 비굴하게, 비천하며, 품위 없게 만들고 있습니까? 대표적인 물질주의 종교인 공산주의자들이 인간을 존귀하고 품위 있게 살게 만들고 있습니까? 917년 레닌이 러시아를 장악한 이후 오늘날까지 약 1세기 동안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살륙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집대성한 <공산주의 흑서(프랑스 역사학자 11명이 공동 집필)>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멸시하며 모든 것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공산주의 자들이 죽인 사람은 약 1억명 가량 된다고 합니다. 중국 6500만, 소련 2000만, 북한 200만, 캄보디아 200만, 아프리카 170만, 아프가니스탄 150만, 베트남 100만, 동구 100만, 남미 15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잔혹하게 인간을 학살한 그들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공산주의는 인류를 구원하는 절대 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반대 세력은 절대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선을 위해서는 절대 악을 제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의 논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멸시하면 인간이 품위있고, 존귀하게 살 수 있습니까? 북한의 현실을 보십시오. 아닙니다. 돈이 최고라고 물질이 최고라고, 쾌락이 최고라고 살아가는 물질주의 자들의 현실을 보십시오. 인간을 짐승처럼 취급하며 삽니다. 인간을 도구나 물건 취급합니다. 인간을 노리개로 취급합니다. 인간을 이용물로 취급합니다. 인간은 부속품으로 취급당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로 대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면 자신이 경멸을 당한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인간이 존귀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려면 먼저 하나님은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가 존귀하게 되고, 하나님을 존중하는 교회가 품위 있는 교회가 되며, 하나님을 존중하는 기업이 위해한 기업이 되고, 하나님을 존중하는 나라가 존귀한 나라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존중하고 사람이 되어 존귀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존귀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제사장의 기도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7)”라는 근거로 우리가 존귀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께 복을 빌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라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존귀한 인생으로 살려면 보호의 복을 위해, 은혜의 복을 위해, 평강의 복을 기도해야 합니다. 불면증, 몸의 통증, 만성 우울증, 아토피성 피부염, 암, 성인병, 혈관, 신경, 소화기 질병 때문에, 장애 때문에, 가난 때문에, 결핍 때문에, 한계 때문에 비굴하고,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면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고 존귀하고 품위 있는 삶으로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강영우박사처럼 비록 장애를 입었으나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자신도 박사가 되어 백악관 차관보가 되고 품위있고 존귀하게 살고, 아들들도 얼마나 품위 있고 존귀한 자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이 분명하게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8)” 존귀한 삶, 품위 있는 삶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존귀한 인생, 존귀한 가정, 존귀한 교회, 존귀한 세상으로 회복되는 축복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존귀한 삶을 살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한 시대 존귀하게 살았던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말씀(빌2:29-30)을 통해 존귀한 인생으로 살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존귀한 자로 대접을 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 우리는 어디에서나 언제나 존귀한 삶,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하게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올해 예수님을 위해 공부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업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녀 교육을 시키고, 그리스도를 위해 직장 생활, 그리스도를 위해 교회 생활, 그리스도를 위해 경제생활, 그리스도를 위해 취미생활을 해 보십시오. 존귀하고 품위 있는 삶의 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입니다. 우리가 존귀한 인생으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면 품위 있고 존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우리 인간을 동물이나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존귀한 자, 품위 있는 자로 만드신 하나님은 천대까지 존귀함을 누리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인간이 존귀한 존재로 살게 하기 위해 10 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귀한 삶,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그 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해 주십니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중요한 말씀이니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성경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신명기 5장 10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누구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입니다. 아무에게나 존귀하게 사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입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서도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동일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어떻게 존귀한 자, 품위 있는 자로 살게 만들어 주시는지 신명기 7장 12-15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어떻게 존귀하게 살게 만들어 주시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존귀하게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어 자손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존귀하게 살 수 있도록 소산이 풍성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존귀하게 살 수 있도록 만민보다 뛰어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존귀하게 살 수 있도록 건강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존귀하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계명 중의 최고의 계명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때 예수님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의 계명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8-10)”

 

존귀하게 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천대까지 누리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계명의 최고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귀하게 평생 살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존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존귀하게 살려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사랑해야 합니까?

 

1. 존귀하게 살려면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존귀하고 품위 있게 살려면 먼저 누구를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39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미워하고 천대하면 결코 품위 있고 존귀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자기 사랑은 이기심과 탐욕에 근거한 병적 자기 사랑이 아닙니다. 병적 자기에는 딤후3:1-2에 나오는 말세의 특징 중 첫 번째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몰두, 자기 집착은 결국 자기 숭배가 됩니다. 병적인 자기애는 자기학대, 자기증오, 자기 경멸, 자기 비관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심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병적 자기 사랑에 빠지면 속이 좁아 유연성이 결여됩니다. 고정화된 관계밖에 형성하지 못하고 친밀한 대인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늘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허풍이나 과장을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매사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찾아내어 꼬집어 남을 비판함으로써 회피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평가 절하해 버립니다. 외톨이가 되고 의심을 잘하고 냉소적인 사람이 됩니다. 사랑에 굶주립니다. 이렇게 병적 자기애에 빠지면 인생은 불행해지고, 존귀한 삶도, 품위 있는 삶도 살지 못합니다.

건강한 자기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 근거한 자기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시게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건강한 자기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발견하는 건강한 자기 사랑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아직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사랑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었을 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이 사랑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고, 힘없고, 무능해 진다해도 우리 하나님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사46:3-4) 우리를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신다는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이렇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도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너무 너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도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작은 눈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 저주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실력 없는 나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작은 회사 다니는 나 조롱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좋지 않은 머리 원망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납작한 코 증오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작은 키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장애가 있는 나 원망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우리는 이미 "보배를 품은 질그릇(고후 4:7)",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 "하나님의 자녀(롬 8:16)"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내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듯 사랑해야 품위 있고 존귀한 자로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x2)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누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여 품위있고 존귀한 자로 사는 축복을 평생 동안 누리시길 바랍니다.

 

2. 존귀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분이 누구입니까? 3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계명 중에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이나 이웃 사랑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무시하면 자신이 존귀한 삶을 살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우리가 존귀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사람 중의 하나가 다윗입니다. 저는 존귀한 삶에 대한 연속 설교를 준비하면서 죽을 때 존귀하게 살았다고 직접 성경에 기록한 한 인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유일하게 다윗입니다. 다윗이 죽었을 때 다윗의 마지막에 대하여 성경은 역대상 29장 28절에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아 늙도록 존귀하다 죽었다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그의 삶에 대한 흔적을 기록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기록이 이렇게 남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윗도 허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존귀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겠습니까? 저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지만 그 중 하나가 다윗은 평생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비천한 환경에 빠져 힘들고 어렵습니까? 삶의 힘을 잃었습니까? 고독합니까? 비굴해졌습니까?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있습니까? 지쳐 있습니까? 다윗처럼 "제가 하나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해 보십시오. 존귀한 자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설거지 하면서도 사업하면서도, 예배드리면서도, 직장 생활하면서도 자녀를 교육시키면서도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다윗의 삶의 동기는 여호와를 사랑하는데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지은 시편을 보면 얼마나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였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른 것 주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것 자체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사랑과 자신의 삶이 분리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을 때도,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녔을 때도, 왕이 되었을 때도, 자식에게 반역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처신하거나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조롱받는 모습을 보고도 침묵합니다. 그러나 다윗을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였기 때문에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상대는 장군이고 키가 장대처럼 크지만 조그마한 돌을 가지고 나가 싸워 이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이 죽일 기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므이가 욕하며 저주합니다. 다윗을 따르는 아비새라는 신하가 시므이를 요절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가만 두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으면 저가 내게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고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부당한 방법으로 복수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렇게 행한 근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강력한 힘이 나옵니다. 존귀하게 살 수 있습니다. 품위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한 평생 고귀하게 살다 순교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고 도망간 베드로에게 첫 번째 회복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 세 번이나 이것을 물어 보는 것입니다. 사랑의 동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을 맡깁니다. 모든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평생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로 하면 품위 있고, 존귀한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초라한 일도, 아무리 볼품없고 가치없으며 하찮은 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로 하면 가치있고 품위있고 존귀한 자로 살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아버지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평생 존귀한 삶,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 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 하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한 삶, 품위 있는 삶으로 일어나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존귀하게 살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서기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39절을 보십시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일 4:20)"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의 종착역은 이웃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는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나 이웃을 사랑하는 것, 가난하고 힘없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 이런 것들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마 25:40). 미워하는 자, 원수까지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존귀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삽니다. 우리 이웃이 원수로, 제거해야 할 경쟁자로 평생 사는 사람은 존귀한 삶,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웃은 하나님 사랑을 증명해야 할 대상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하고 정죄하고 조롱하고 무시하면서 품위있고 존귀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편을 아내를 부모를 자식을 시부모를 처부모를 장로님을 권사님을 집사님을 목사님을 사랑할 만한 조건이 없더라고 주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비록 남편이 늙어가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예수님의 사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가 늙어 짐만 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존중히 여김을 받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형제 안에서 주의 영광을 보네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이렇게 사랑을 고백하고 실제적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존귀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인간 세상에 품위 있는 세상으로 바뀌겠습니까? 얼마나 교회가 품위 있는 교회, 존귀한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직장이 가정이, 학교가 얼마나 품위있고 존귀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겠습니까?

"너를 사랑하는 것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 귀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관심을 받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존경받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 대하여도 책임감을 갖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2)"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을 위해, 원수 되었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생명을 바쳤습니다. 아가페 사랑으로 주기만 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이타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조건 없이 우리를 좋아하고 돌보아 주며 용서하고 베풀어 주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사람, 나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람, 내 욕을 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품위 있고 존귀한 삶이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쉬운 것이 아닙니다. 특히 매일 매일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도태되고, 경쟁에서 지면 직장을 잃고, 패배자가 되면 철저히 외면되는 세계에서 이웃을 사랑하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글의 법칙 즉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시계 제로의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시장 적응을 해야만 살아남습니다. 핸드폰 시장에서 세계 최강자였던 록키아가 무너졌습니다. 세계 전자시장을 석권했던 소니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강한 기업과 세계일류 기업, 위기관리를 잘하는 기업,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수익을 내는 기업, 먹이사슬과 같은 유통사슬에서 이익과 가치를 확대 생산하는 기업, 자연도태 되지 않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 살아남는 세상입니다. 이런 기업의 원리, 경영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병원도 학교도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기업문화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강자만이 살아 남는 기업문화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성을 최대한 개발해야 한다고 세상을 말을 합니다. 어떻게 하든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공격 본능이 있어 인간은 이웃을 상대로 자신의 공격 본능을 만족시키고, 아무 보상도 주지 않은 채 이웃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웃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이웃을 성적으로 이용하고, 이웃의 재물을 강탈하고, 이웃을 경멸하고, 이웃에게 고통을 주고, 이웃을 고문하고 죽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한스 롯터는 "순수한 의미의 몰아적인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서 불가능하다"라고 말을 합니다. 장 마리 펠트는 바닷속 물고기와 새,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은 물론 우리가 모르고 지나친 작은 식물들까지도 생존과 번식을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만 적용되는 인간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백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웃을 사랑합니까? 경쟁자를 사랑합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합니까?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가능합니다. 영원한 천국을 믿고 살면 가능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1서 4:11)“

존귀한 인생, 품위 있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모독하는 사람, 침뱉는 사람,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사람, 죄를 짓고 십자가에 달려있으면서도 조롱하는 사람 끝까지 사랑했듯이 우리도 품위 있는 존귀함 삶을 살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6.25 직후 나병 환자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 로터리 클럽에서 회원들이 방문했답니다. 그때 미국인 선교사(간호사) 한 사람이 고름이 흐르는 나병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였답니다.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선교사의 뜨거운 인간애의 장면을 본 것입니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한 사업가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것은 백만 불짜리 가치가 있는 사진입니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에게 백만 불을 주어도 이 일을 못 할 것입니다." 이 말은 들은 간호사는 이 사업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저도 그 일을 못 합니다." 이 대답을 듣고 사업가가 당황하면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소?" 간호사는 말했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강권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의 인생은 존귀한 인생, 품위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존귀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 중 최고의 계명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며 살면 존귀한 삶, 품위 있는 삶을 평생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함으로 존귀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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