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신명기31:6-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969 추천수:0 220.120.123.244
2020-11-22 12:30:53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신명기31:6-8

 

코로나 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불안입니다. <불안의 시대(기디언 래치먼 저)>라는 책을 보면 1978-1991년까지를 전환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1991-2008년까지를 낙관의 시대라고 말하고, 2008-현재까지를 낙관했던 모든 것이 흔들리는 불안의 시대라고 구분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은 불안이라는 만성 염증에 걸려 삽니다. 불안은 시대의 암으로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암에 걸리지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집값이 폭등하는데 아파트나 구입할 수 있을까 불안해 합니다. 조금만 통증이 와도 혹시 암이 아닌가 불안해 합니다. 직장을 잃지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부채가 많은데 금리가 오르지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결혼하지 않는 자녀를 보면서 자녀는 결혼이나 할까 불안해 합니다. 자신의 노후 생활에 대하여, 자식의 진학에 대하여 불안해 합니다. 북한 핵이 남한에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진학에 대한 불안, 취업에 대한 불안, 결혼에 대한 불안, 노후에 대한 불안, 잉태에 대한 불안, 건강에 대한 불안, 자녀에 대한 불안... 등 각종 불안이 만성적으로 삶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10대는 진학, 20대는 취업, 30대는 결혼, 40대는 노후, 50대는 고립, 60대 이상은 건강에 대해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는 더욱 불안이 가중됩니다. <세계 미래보고서 2021>라는 책을 보면 코로나 팬데믹 후 마주하게 될 핵심적인 변화를 8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코로나 이후 부의 판도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최근 추정에 따르면 모든 실제 자산의 현재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약 256조 달러 정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금의 종말이 온다고 합니다. 이미 동전을 꺼내 물건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트에서 장으로 보거나 택시를 타거나 현금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주식, 금, 미술품 등 모든 자산은 토큰화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도심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깨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문제로 난리인데 재택근무로 미국은 구글 본사가 있는 켈리포니아 마운틴뷰 지역의 임대료는 30% 떨어졌고,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는 14.3 %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샌츠란시스코 방 1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2019년 6월에 비해 11.8% 하락했다고 합니다. 뉴욕 맨해튼은 25%나 집값이 하락했다고 합니다. 미래를 빨리 읽는 삼성그룹은 최근 2년간 서울 도심에 있는 빌딩 3조 원어치를 팔았다고 합니다. 재택근무 보편화로 도심이 공동화되고 외곽으로의 이주가 늘면서 부동산 시장이 전면 달라지고, 디지털화폐 전쟁과 핀테크의 발달로 금융권도 새로이 재편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교육도 급격히 변화되는데 대학 학위 무용지물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온라인 교육의 보편화, 디지털 학습의 대변혁으로 10년 안에 대학이 붕괴된다고 말합니다. 2020년 7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대학교 졸업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답니다. '포춘 100대 기업' 중 대학 졸업장을 기피하는 기업은 절반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 외 우주시대, 시민, 국가와 정치, 복지, 비즈니스와 일자리, 기술과 문명 등의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 거대하고 급격한 변화들이 속속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불안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과 인식,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역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존재하는 것이 불안입니다. 오늘 성경이 기록될 당시도 불안한 시대였습니다. 민족적 불안이 극에 달했습니다. 모세는 이제 120살이 되어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직 지도자로 검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입니다. 수많은 백성이 한꺼번에 쉽게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이 있습니다. 낙공 불락의 여리고성이 있습니다. 잘 무장된 가나안 7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전술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장되고 훈련된 군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40년 고생하여 요단강 앞까지 왔는데 한 순간에 생명도 가족도 다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전쟁에 참전하여 자식을 잃어버리고 남편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민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예측하지 못할 미래에 대하여 지극히 불안할 때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무슨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까? 우리가 오늘 읽은 8절을 크게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불안해 하지 말라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네”는 모세 대신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야 할 여호수아를 말합니다.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 상태에 있는 두려워하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수능 시험을 앞두고 염려하는 수험생들을 말할 수 있고, 사업에 실패하고 고민하는 사람을 말할 수도 있고, 수술을 앞에 논 환자가 될 수 있고, 몸의 통증으로 큰 병에 걸리지나 않았나 불안해 하는 우리가 될 수 있고, 어려운 때 사업을 접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을 말할 수 있고, 결혼하고 이제 부모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사는 신혼 부부를 말할 수 있고, 직장을 퇴직하고 이제 새로운 삶을 계획하며 염려하는 은퇴자를 말할 수 있고, 건강히 살다 질병이 걸려 수술을 하려고 계획하면서 두려워하는 환자를 말할 수 있고, 새로운 도전 앞에서 불안해하며 망설이는 젊은이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우리 성도님이 될 수 있습니다. “네 인생”, “네가 앞서가면” 무엇인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앞서가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3절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행하신다고 강조해 주시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천국 가시긴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설교한 내용입니다. 첫 번 설교를 할 때도 이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신명기 1장 30절을 보십시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3절을 보십시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기하신 자이시니라” 믿습니까?

시편 68편 7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3장 20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23절에서는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45장 2절에서는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라고 했습니다. 너무 불안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리두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은 쓰레기 청소하는 미화원 정도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쓰레기같은 문제만 던져놓고 청소해 달라고 하면 안됩니다. 지난 주 해외 학교를 건축하기 선교헌금을 드렸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그 장로님이 수요일에 점심식사를 하자고 해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할 때 선교를 위해 마련한 헌금인데 이제 나이들어 해외에 선교 봉사도 갈 수 없어 이번 기회에 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노 부부가 하나님을 가장 존중히 여기며 매일 새벽에 나오시고 수요예배에 드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쓰레기처럼 취급하면 내가 쓰레기처럼 취급당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존중히 여기며 시간과 재능, 물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중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하2:30)” 올해 들어와 어느 권사님께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교회에 나와 매주 나와 열심히 봉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존중히 여기며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힘쓰시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축복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불안할수록 더욱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하고 했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나 이제 주를 따라 가려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앞세우고 뒤에서 따라오시며 뒤치다꺼리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에 행하시면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1. 앞서가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3,8)

8절을 보십시오.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라는 말은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3절에 보면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건너가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3절에서는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광야 길은 동서 남북도 분간하기 힘들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기 힘든 곳입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좇아가면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창22:14). 믿음 생활이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인도하시는 사실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무엇으로 인도하십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명하시고 상황을 만드셔서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인도하십니다. 가나안 땅에 가는 것은 모세의 계획도 여호수아의 계획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 400여년 후에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갈 것을 예고해 주었고 하나님이 구원사를 이루기 위해 주권적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 것은 그들을 통하여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시키기 위해 인도하신 것입니다(행16:24-34). 이것은 바울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지시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냥 무작정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해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통해 지시해 주십니다.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490번도 용서하라 성령 충만을 받으라 겸손하라” 등으로 지시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셋째는 분별하도록 하면서 인도해 주십니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의 선택과 결정들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지시 사항이 없습니다. “서울대에 들어갈 것인가? 연세대에 들어갈 것인가?” 이런 경우에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자신의 실력, 자신의 인생 목표, 자신의 장점, 가정 환경, 시대적 필요 등 다양한 것을 참조하여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이성을 통해 분별해야 합니다.

넷째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가운데 고넬료에게 가게합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을 보면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2. 앞서가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3).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앞서 가셔서 무엇을 합니까?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십니다(출17:15). 이 민족은 가나안 땅에 이미 살고 있었던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들입니다(7:1) 하나님이 앞서가시며 어떻게 승리하게 해 주셨는가 예를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서 행하신 것과 같이(2:24-3:11;29:7;민 21:21-35) 그들(가나안 7족)에게도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수아도 임종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수23: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승리에 대한 약속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싸워주셨습니다. 요단강을 가르게 해 주셨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사사시 4장 14-15에 보면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솔 왕 야빈은 철병거 구백 승으로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학대해 왔으나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 행하사 그 모든 병기와 군대를 쳐서 파하게 하신 것입니다. 앞서 행하시며 싸 우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불레셋과 싸울 때도 사무엘하 5장 24절에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단도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지만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며 승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겨주시는 그들은 무엇입니까? 성도님들께 그들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사업입니까? 진학입니까? 성공입니까? 노후입니까? 질병입니까? 결혼입니까? 잉태입니까? 직장입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승리를 보장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리 말라”

7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백성을 거느리고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에 들어가 차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이 차지할 땅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사업에 성공입니까? 인격 성숙입니까? 자녀 잉태입니까? 취업입니까? 진학입니까? 부흥입니까? 선교입니까? 가족 구원입니까? 원수 용서입니까?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그 땅에 주신 재능을 다 가지고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직, 용기>의 저자 레나테 다니엘은 "지금 당신이 마주하는 실패, 두려움, 불안을 극복하는 힘은 오직 용기뿐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용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물맷돌을 가지고 나아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것은 아브라함의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75년이나 정든 땅이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과감하게 버린 용기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으로 우뚝 서 기적의 가문을 만들려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 과감하게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세가 80살 노인으로 민족을 이끄는 데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풀물불과 사자굴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게 한 것은 그들의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로 수많은 적과 싸우는 데는 용기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엘리야가 이방 신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었던 것도 용기이고,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을 구한 것도 용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행복하게 살려면 어떤 두려움에도 문제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용기,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할 용기, 열등감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 용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미움 받을 것을 피하지 않는 용기,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 싫은 사람을 용서할 용기 등이 있어야 합니다. 변화와 위기의 때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용기입니다. 이미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모바일과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로버트, 빅데이터 등에 의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산업사회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일자리가 살아질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용기는 하나님이 앞서 가시면서 승리하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소멸, 절단, 자유 상실, 분리, 자아 죽음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들은 미래의 불확실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신 31:3)" 마른 막대기로도 홍해를 가르시고, 돌멩이로도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5병 2어로도 5천명을 먹이시고, 나귀 턱뼈로도 천명을 죽이고, 찢어진 옷으로도 물을 가르십니다. 누구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의 문제가 아닙니다. 꼭 능력 있는 사람, 꼭 힘 있는 사람, 꼭 좋은 도구, 능력 있는 도구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불확실 성 앞에서 하나님은 너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농사꾼 아모스, 소모는 엘리사, 장애인 에후, 주부 드보라를 사용하여 민족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성취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소멸되게 하지 않게하고 절단나지 않도록 하면, 우리를 노예로 방치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려 승리하게 만드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담대하게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여야 합니다.

 

3. 앞서가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6,8)

앞서가시며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담대하게 차지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왜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도 말고 그 일을 담대하게 감행하라고 말씀하십니까? 6절을 다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이는”이라는 말은 왜냐하면 이유를 말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죽어 지도력의 공백이 생겨도, 요단강이 앞에 있고, 백성의 수는 많고, 전쟁 경험이 없고, 전략 무기는 없다할 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미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갔습니까? 여리고성을 어떻게 무너뜨렸습니까? 아이성을 어떻게 점령하였습니까?”를 모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든 어느 때든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어떤 경우든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눈빛 하나에도 삐지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원하는대로 대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며 변덕을 부리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며 떠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상 장사의 아들 아브라함, 부인을 누이라고 속인 실패의 사람 아브라함, 살인자하고 도망간 모세,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 여러번 실패하고 예수님을 부인 한 베드로, 기생의 아들 입다, 기생 라합, 바람둥이 삼손, 겁쟁이 기드온 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집 나간 탕자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떠나고 남편이 떠나고 자식이 떠나고 동업자가 떠나고 믿었던 사람들, 친구들이 떠난다 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이 사실을 안 바울은 노년에 사랑했던 데마도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렸고 그레스게도 디도도 떠나 버렸지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났을 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7-18)"

요셉이 노예로 팔렸을 때도,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함께 하셨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라는 책을 쓴 존 파피가 있습니다. 양팔이 없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매일 수많은 절망에 부딪쳤습니다. 옷입고 용변을 보는 사소한 일도 그에게는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실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우등생으로 공부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아 회사를 경영하는 전문 강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할 뿐 아니라 함께 가십니다. 시험장에도 함께 하시고 입원실에도 함께 가시고, 군대에도 함께 가시고, 결혼식장에도 함께 가시고, 분만실에도 함께 가시고, 죽음의 현장에도 함께 가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떠나지도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십니다.

믿습니까?

우리 앞서 행하시며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너가 바로 우리 성도님과 저입니다. 이 백성이 바로 우리 자녀들과 우리 직원들과 우리 교회, 우리 민족,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만 차지할 땅이 아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드로가 함께 그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까?

8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고 해도 신앙 생활하면서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두려워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3,8)

앞서가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3).

앞서가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6,8)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11.22.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