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은혜받은 가정(4) 축복의 산실(창49:22~2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52 추천수:1 220.120.123.244
2020-05-24 13:58:57

은혜받은 가정(4) 축복의 산실

창49:22~26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한 시대 하나님의 일반 은혜뿐 아니라 특별한 은혜를 받고 살았던 요셉이라는 가정을 통하여 은혜받은 가정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교훈받고 있습니다. 첫 주에는 은혜받은 가정은 꿈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둘째 주일은 은혜받은 가정은 효도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셋째 주일은 은혜받은 가정은 용서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넷째 주일은 은혜받은 가정은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가정이 저주의 산실이 아니라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처음 한 일이 무엇일까요?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찾아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복을 주신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끝없는 복, 즉 지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세상을 다스리고 번성하며 죽음도, 질병도, 눈물도, 갈등도, 아픔도 없는 지복을 에덴 동산에서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물질, 식물, 동물, 인간 순으로 창조하시고 인간이 가정을 이루어 이 모든 것에 의해 지배받고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며 복을 받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결국 타락하여 하나님이 주신 지복을 읽어 버리고 형벌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저주받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니까 생명을 잃어 버려, 영적인 죽음, 육적인 죽음, 영원적 죽음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어 영적으로 무지하고 죄의 노예가 되어 죄의 지배를 받고, 죄를 좋아하는 친죄 성향을 가진 저주받은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특별한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의 존재 양식입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어느 사람도 예외 없이 인간은 이렇게 살다 가고 가정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영적으로 죽은 영적 죽음의 산실, 살려고 열심히 먹지만 결국 육신적으로 죽는 육적 죽음의 산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만 결국 영원히 지옥에 가는 영원적 죽음의 산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가 없이 살기 때문에 가정은 영적 무지의 산실, 죄의 노예의 산실, 친죄 성향의 산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간들이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주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가정을 복의 산실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인류 제2의 조상 노아의 가정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이 다 죽은 노아의 홍수 후에 하나님이 노아의 가정에 최초로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6장 8절을 같이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이 홍수로 다 쓸어 버릴 때 노아와 노아의 가정 식구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특별한 은혜을 주어 살리신 노아의 가정에 어떤 일을 하십니까? 9장 1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인류 제2의 가정에도 복을 주시며 복의 산실이 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가정이 축복의 산실이 되기보다는 저주의 산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3의 인류의 조상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어 부르십니다. 그리고 처음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2장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특별한 은혜를 받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이 축복의 산실이 되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이 아들 이삭에게, 손자 야곱에게, 증손자 야곱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믿음의 가정에 전달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특별한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가정은 자신도 축복을 받고 자신이 받은 축복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축복의 산실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그 축복을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저주의 통로가 되지 말고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1. 은혜받은 가정은 축복의 말로 축복하는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아버지 야곱을 보십시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아내를 4명이나 두었고, 거짓으로 형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가지고 자 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는 집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인신매매되는 고통을 당해야 했고, 아내 4명과 살며 시기와 질투의 늪에 살아야 했고, 딸이 성폭행을 당하고 자식이 계모를 겁탈하는 비참한 꼴을 보고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마지막 인생은 완전히 변합니다. 하나님의 전적 주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기념할만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자식들에게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자식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할 것을 알고 자식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48장 49장에는 야곱이 죽기 전에 손자와 자식에게 복을 빌어주는 축복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사랑했던 아들 요셉에게 어떤 축복을 합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축복합니다. 감정의 담, 축복의 담, 국경의 담, 환경의 담을 뛰어넘어 요셉이 풍성하고 형통한 삶, 한계를 뛰어넘는 삶, 영향력 있는 삶, 복을 나누는 삶을 축복하는 축복 기도입니다.

축복은 말로 합니다. 마음속에 담아 놓고 있기만 하면 안 됩니다. 마음속의 생각을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표현할 때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축복은 말로 표현할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이삭은 아들 야곱에게, 야곱은 그의 열두 아들과 두 명의 손자들에게 언어를 통해 축복해 주었습니다.

부모가 축복할 만한 도덕적인 삶을 살아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였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도 도덕적으로 볼 때 본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으로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전달자로 축복을 하였습니다.

야곱이 손자들에게 축복할 때 어떻게 하는가 보십시오. 48장 15-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축복의 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식들이 축복을 받을 만한 조건이 없는데 무슨 축복이냐고 축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후 축복해 주었습니다.

노아를 홍수에서 살려 주신 후에도 축복해 주었습니다. 노아도 술 먹고 주정을 부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에도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축복을 해 줄만한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식의 조건을 보면서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축복의 전달자로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제가 어릴 때 시골에 사는 부모님들을 보면 자녀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을 봅니다. 무서운 욕을 했습니다. “빌어먹을 놈, 개같은 놈, 육실할 놈, 나가 죽으라, 염병할, 지랄하고 자빠졌네, 벼락맞을, 짐승만도 못할, 붙어먹을, 망할 놈” 등 분노와 저주와 악담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격하고 미워하고, 힐책하고, 비하하고, 악담하고, 모멸하고, 미워하는 저주를 퍼붓는 것을 봅니다. 요즈음 그런 부모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저주의 욕을 달고 삽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생의 73%가 욕을 사용하며 이 중 32%는 습관적으로 욕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명 중 1명은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의식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으면 축복보다 저주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16세까지 자신에 관해 17만 3천 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1만 6천 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29.6개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겨우 2.7개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 셈입니다. 의식하고 축복의 말을 해야 가정이 축복의 산실이 됩니다. 말은 각인력과 견인력과 성취력이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어떤 말을 하고 듣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존 가트맨 박사에 의하면 긍정과 부정이 2.9대 1의 비율에 이르면 이혼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다정하고 안정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5대 1 정도의 비율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부부 관계를 망치게 하는 것이 "비난, 경멸, 방어, 담 쌓기"이 4가지라고 합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이혼할 부부인가는 95% 맞춘다는 것입니다. 잘 살려면 비난 대신 요청, 경멸 대신 인정, 방어 대신 존중표현, 담쌓기 대신 대화하라고 말합니다. 자식도 부모가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를 쓴 롤프 가복은 "자녀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는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의 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배에 손을 얹고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소리를 내어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생각은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말로 표현할 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손을 얹고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축복 기도로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3-27)”라고 매일 축복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축복은 이 땅에 행복을 창조하는 고귀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그 축복권을 부모에게 허락하셨다. 축복은 실로 부모의 특권이요, 거룩한 임무다."라고 말합니다. <다니엘 학습법>의 저자 김동환 목사님의 가정이 오늘날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도 어머니의 축복 기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생은 의사가 되고 누이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자신은 목사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불치의 병을 기도를 통해 치료받고 새벽마다 기도하였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단칸방에 살면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와서 자신들이 자고 있을 때 자식들 앞에서 "큰아들은 영적 생명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딸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음악가가 작은아들은 인간의 육신을 살리는 의사가 되게 해 달라"고 축복 기도를 매일 드렸답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그대로 응답되어 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축복 기도 하는 부모가 자식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며,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랍비인 예수 벤 시라크는 “아버지의 축복은 아들의 가정을 세워주고 어머니의 축복은 그 가정에 좋은 것들로 채워준다”라고 했습니다.

은혜받은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은 말로 축복을 전달하는 축복의 산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은혜를 받은 가정은 하나님의 자녀로 주어진 사명을 이루며 살도록 축복하는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다 똑같이 않습니다. 다 재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모양이 다릅니다. 이름은 다 같이 사람이지만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고 하나님은 은혜받은 모든 사람을 고유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길 원하십니다. 부족한 자녀라고, 장애가 있는 자녀라고, 외모가 조금 떨어지는 자녀라고, 단점이 많은 자녀라고 저주받고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할 때 어떻게 축복합니까?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자식들은 다 자신의 분량이 있습니다.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요셉에게는 어떤 축복을 하였습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유다에게는 어떻게 축복합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납달리는 어떻게 축복합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까?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 유다는 사자 새끼, 납달리는 암사슴 같다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아들들의 각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그들에게 존재의 가치와 희망을 실어 축복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매우 가치 있는 존재로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로만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48장 10절을 보십시오. 입 맞추고, 안고 축복을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안수하고 축복을 합니다. 애정이 어린 신체적 접촉을 통해 안정감과 사랑과 보호를 느끼게 하면서 축복합니다.

존 트렌트ㆍ게리 스몰리의 <축복의 언어>라는 책을 보면 애정이 어린 접촉이 자녀교육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자녀로 양육하고 싶으신 우리 성도님은 <축복의 언어>와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라는 책은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도서관에도 있습니다. 축복의 언어를 보면 뉴욕 대학의 유아교육과 교수인 크리스 박사가 안수 효과에 대하여 연구한 것이 나옵니다. 안수하는 자나 안수받은 자나 심리적 혜택을 받는다고 합니다. 산소를 공급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UCLA의 연구에 의하면 감정적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남녀가 하루에 8-10회 정도의 애정 어린 접촉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갓난아이들에게 애정어린 접촉을 하면 엄청난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이애미 의과대학에서 미숙아들에게 40-50분씩 마사지를 해 주었더니 열흘이 채 못 되어 마사지를 받은 아이는 받지 않은 아이보다 47%가 훨씬 넘는 체중 증가를 보였다고 합니다. 부모의 접촉이 없었던 어린아이들의 실제적인 뼈의 성장은 적절한 접촉을 받은 아이들의 반밖에 자라지 못했다고 합니다. 노인 환자들도 역시 규칙적이고 애정이 어린 접촉을 해 줌으로써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양소 섭취가 상당히 증가했고 이상한 움직임, 물건을 훔치는 것, 반복적인 버릇이 감소하고 기억력도 좋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린아이를 안고 축복하신 것을 성경에서 봅니다(막10:13-14).

그리고 미래의 희망을 실어 축복을 합니다. 축복 기도를 통하여 그가 이룰 특별한 장래를 말하며 축복을 합니다.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유다에 대하여 어떤 축복을 해 주고 있습니까? 8절 같이 읽겠습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특별한 장래가 있을 것을 축복합니다. 축복을 통해 소망과 방향,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고 살면 축복받은 사람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를 부를 때 의사 누구 누구, 변호사 누구누구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사람은 말을 먹고 자랍니다. 자녀마다 고유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다 대통령이 되고, 다 부자가 되고, 다 축구선수가 되고, 다 교수가 되고, 다 사업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 크고 작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요셉으로 소명이 있고, 유다는 유다로서 성취할 일이 있고, 납달리는 납달리로서 평생 사역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각자 잘 감당하도록 희망과 비전을 실어 축복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래전에 한 해에 두 아들이 사법 고시에 합격한 분의 이야기가 신문에 났습니다. 작은 시골 교회 장로님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기사를 읽어 보니 남자만 6형제를 두었습니다. 다섯째 아들은 행정고시와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하였습니다. 막내는 사법 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기자가 자식들이 그렇게 잘된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때 장로님은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재촉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열심히 할 것만 당부했고, 우리 부부는 아이들 앞에 기도의 본을 보이려 힘썼을 뿐이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기도 제목은 자식들이 꾸준한 신앙생활로 모두 장로 직분을 맡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도록 축복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축복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뒤에는 19명의 자녀를 믿음과 기도로 길렀던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가 있었습니다. 19명의 아이들 낳은 동안 몸은 병약해졌답니다. 재정적인 능력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축복 기도로 자녀들을 양육하였답니다. 그 중 9명이 근대 교회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가 나와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찰스 웨슬레가 나와 6000곡 찬송가 지어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무디 아버지는 40세에 천국에 갔답니다. 어머니는 아홉 자녀를 홀로 기르며 밤마다 성경을 가르치고 밤 세워 눈물로 축복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영적 거목이 되어 한 시대 수많은 영혼 주님께 인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 중의 하나는 자녀를 위해 축복기도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암 전문의 원종수 박사도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6살 때 질병으로 돌아 가셨는데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사과와 고구마를 팔면서 자신을 가르쳤답니다. 자신은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비가오던 눈이 오던 날씨가 춥던 덥던,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시며 집에 와 자고 있는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 아들을 제가 어떻게 기르겠습니다. 이 딸들을 이 자녀들을 제 힘으로 어떻게 기르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라며 축복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는 어머니의 기도로 16살에 변화되어 어머니와 함께 새벽기도에 나가며 기도했답니다. 2학년 때 전교 480명중에 410등을 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교에서 410등 하던 사람이 5등이 되었답니다. 결국 1등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의과대를 들어갔답니다. 유학을 가고 세계적인 암 전문의가 된 것입니다. 그는, 그의 책 <너는 내 것이라>에서 '어머니의 기도 속에 자란 자녀라면, 자라서도 영원히 하나님의 길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기도하시고 성경 읽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가 우리를 볼 때 무엇을 기억하기를 원하십니까? 가정은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게 하는 축복 기도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자녀들이 평생 살면서 자신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며 살 수 있도록 축복하는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3. 은혜받은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도록 순종함으로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복은 누가 주십니까? 은혜받은 우리 가정이 복받고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에게 복을 주시고, 노아에게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고 축복의 산실이 되기를 바랬던 하나님입니다. 궁극적으로 누가 복을 성취해 주시겠습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우리 인생의 앞길에는 늘 우리를 향해 화를 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활에 맞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누가 도와 주어 승리한다는 것입니까?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입어서입니다. 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요15:4,5) 가지는 포도나문에 붙어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전구만 있다고 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전선에 매여 있어야 합니다. 욕심 많은 야곱은 살다보니 철이 들어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철이 들면 부모의 고마움을 아는 것처럼 사람이 철이 들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그 때가 되면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진실하게 고백하게 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누가 도와 주고 누가 복을 주십니까? 우리 하나님이 도와 주고 우리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는 단지 복을 비는 기도를 할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우리 자녀들 복받기를 바라지만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가정은 하나님이 도와 주고 하나님이 지켜 주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축복의 산실이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복이 임합니까? 26절에 세가지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복입니다. 아래로 깊은 샘의 복입니다.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입니다. 영적인 신령한 복, 경제의 복, 자손의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을 부모가 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축복 기도할 따름이고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 주실 것 믿고 부모는 축복의 통로로 순종하며 기도하면 되는 것이고 자식들은 아멘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축복 기도를 무엇을 통해 베풀어 주십니까?

순종을 통해 베풀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축복 기도도 자식이 그대로 아멘함으로 순종으로 받아들여야 내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한나에게 엘리 제사장이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1:17)”라고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이 때 한나가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삼상1:18)”라고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대학교수이신 조동식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시어머니는 손이 귀한 가정에서 자녀를 많이 낳을 수 있도록 기도받기 위해 며느리와 함께 목사님께로 갔답니다. 목사님은 아들을 주실 것을 간절히 축복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창피하여 아멘하지 못했답니다. 이에 안타까운 시어머니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자신이 “아멘”하여 그 기도를 받았답니다. 그런데 1년 후, 며느리는 임신을 하지 못했는데 폐경기가 다 된 시어머니가 임신을 하여 낳은 아들이 조동식 집사님이라고 합니다. 어떤 축복 기도도 내가 순종함으로 “아멘” 해야 자신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은 “참으로, 진실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멘은 ‘맞습니다, 옳습니다’의 동의의 표현인 것과 동시에 ‘그 말씀이 내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받은 사람들은 “그 말씀이 제 삶 속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아멘”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20절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시편 106편 48절은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찌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찌어다 할렐루야”라고 아멘할 것을 명령합니다.

순종을 통해 가정이 축복의 산실이 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신명기 30장 20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이 되시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언제나 그분을 떠나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에서 여러분이 오랫동안 살게 될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야곱의 예언적 축복 기도로 12지파는 가나안 땅으로 출애굽합니다. 그런데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기 전 광야의 훈련을 받습니다. 왜 훈련을 시켰습니까? 신명기 8장 2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순종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아담의 가정이 축복의 산실이 되지 못한 단 한 가지 이유가 불순종에 있었습니다. 왜 불순종합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에 더 신뢰도를 가진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탄의 속삭임이 더 믿을 만한 것 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왜 40년 동안 광야의 그 고통스런 훈련을 시켰다고 말씀합니까? 바로 밑에 있는 3절을 읽어 보십시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영생도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죽음과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며 진정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어떻게 하시는 것입니까? 신명기 8장 16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순종을 통하여 은혜받은 가정은 축복의 산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강조하여 하나님은 신명기 28장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신명기 28장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9절을 보세요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은혜받은 우리 가정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은혜받은 우리 가정은 저주의 산실이 아니라 축복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받은 가정으로 축복의 말로 축복하는 축복의 산실이 되게 하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받은 가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주어진 사명을 이루며 살도록 축복하는 축복의 산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은혜받은 가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도록 순종함으로 축복의 산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5.24.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