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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남(4)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마가복음 5:35-4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851 추천수:0 220.120.123.244
2020-01-26 09:59:07

일어남(4)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마가복음 5:35-43

 

지금 설명절 기간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일가 친척을 만나고 오늘 예배 끝난 후에 또 내일 일가친척을 만나실 성도님도 있을 것입니다. 신문에 보니 명절 잔소리 벌금 메뉴판이 나와 있었습니다. 명절 때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핸드폰 좀 그만하라(3만원), 어느 대학교 갈 거니(5만원), 공부는 잘하니(7만원), 살은 언제 뺄꺼니(10원), 애인은 있니(20만), 취업은 했니(60), 결혼해야지(80원)” 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지만 어른들이야 다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하는 말입니다. 어느 누가 일가친척이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다 가족들이 잘 되어 부자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우리의 소원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많은 고난을 겪은 C.S. 루이스는 “산에서 10마일쯤 떨어져 있을 때만 그 산이 푸르게 보이는 것처럼, 가정도 그 사정을 모를 때만 평범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하게 개인의 고통을 나누다 보면 다 크고 작은 가족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폭력, 말 못 하는 개인적 상처, 중독자 부모로 인한 고통, 가족의 장애, 경제적 어려움, 단절된 친인척 간의 불편한 관계, 크고 작은 아픔과 갈등, 차별과 편애로 인한 분열, 한집에 살지만, 소통은 포기한 채 남남처럼 사는 가족 등 수많은 아픈 가족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사철에 봄바람 부는 가정처럼 충분히 행복한 가정, 충분히 정상적인 가정, 충분히 건강한 가족은 없습니다.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생살이에서 가족 때문에 아파보지 않은 가정은 없습니다. 사철에 봄바람만 부는 꿈같은 소망인 가정은 없고, 태풍 부는 여름, 낙엽 지는 가을, 칼바람 부는 겨울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일어남” 4번째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역경을 만난 한 가정이 예수님 만나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올 한 해 어떤 역경에 처했다해도 일어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하는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가정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역경을 만날 때 예수님을 만나면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홀로 풀 수 없는 역경을 만나면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이 풀 수 없는 그 문제를 풀어줄 누군가를 만나면 역경은 순식간에 순경으로 변해 버립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회당장에게 12살 딸이 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그는 어떻게 합니까?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순경을 만날 때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던 가정입니다. 가족의 불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예수님을 찾아갈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12살 된 외딸이 병들었기 때문에(눅8:42), 자신의 생명처럼 귀중한 딸이 역경을 만났기 때문에, 가정에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역경이 찾아 왔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가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간 경우입니다. 이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 자기가 왕이라고 사는 세상인데 당시 예수님보다 신분이 높고, 많이 배우고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넘어야 할 장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가는데 넘어야 할 장벽은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첫째는 합리주의로 포장된 교만의 장벽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해변에서 과거에 목수 일을 했던 나사렛 출신의 한 젊은이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의 역경을 해결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상대방을 최대한 높이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딸을 위하여 자신의 지위나 체면, 명예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해 신적 권세를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자존심, 위신 체면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못합니다. 아마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입니다. 당시 지위도 높습니다. 아마 학력도 높았을 것입니다. 경제적 능력도 좋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합니까? 동양인은 본시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지위나 체면, 명예 등 예수님을 만나는 걸림돌을 다 버려 버려야 진정 죽음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으로 인생을 인도하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위기를 만나지 않으면 사람은 자신의 교만을 꺾지 않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는 경험주의의 장벽입니다.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간곡히 구하였습니다. 진솔하게 자신의 문제를 간절하게 아뢰었습니다.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고 여러 번 반복해서 예수님께 간청했다는 말입니다. 딸의 목숨을 생각하여 필사적으로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치료되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이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셋째는 이성을 절대시하는 과학주의의 장벽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손만 얹으면 고침을 받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고백입니다. 수술하든지, 약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손만 얹으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님을 이런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어 일어서려면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인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실 분인 것을 믿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능력의 한계, 생명의 한계를 만나야 경험과 이성을 절대시하는 자기 우상을 내려놓습니다.

과기처 장관을 지냈던 세계적 핵물리학자인 정근모 박사(장로)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대단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 관심이 없었습니다. 과학적 지식체계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에도 수석으로 들어 고등학교 과정을 4개월 만에 마치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답니다.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회에 다니는 아내 따라 교회에 나갔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확신이 없었고 "하나님의 존재를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이 거대한 우주 자체가 곧 하나님인가."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열 살 된 아들에게서 '만성 신장염' 증세 나타났습니다. 한 번에 4시간이 소요되는 투석치료를 하였답니다. 아들은 학교생활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답니다. 아들은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답니다. 교회에서 4일간의 부흥회가 열렸답니다. 설교를 듣는 중에 다시 눈물샘이 터져 나왔답니다. 3일 동안 철야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기도하였답니다. 통곡하며 울었답니다. 체면이나 지위도 아랑곳없이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답니다. 그날이 바로 1982년 3월 14일이었답니다. 집에 돌아와 다섯 식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을 터뜨렸고 서로 손을 잡고 교대로 돌아가면서 통성으로 기도했답니다. 그때부터 장로님의 가정과 부부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은 최대의 기쁨이었고, 믿음 좋은 신앙인들과의 교제는 큰 즐거움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건강을 되찾은 후 결혼도 하고 자신감 넘치는 생활로 변했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벌써 신이 아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어찌 과학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 삶을 통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 세미한 음성으로 때로는 위로해 주셨고 때로는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셨던 그 하나님을 믿는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면 더욱 그것을 깨닫게 된다." 역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차원으로 가정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우리는 역경이 다가올 때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일어나는 가정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역경을 과정으로 만들어 일어나는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 간절히 간구하였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자신의 요청대로 예수님이 자신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고 기대와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이제 되었다. 이제 슬픔 끝 기쁨 시작이 되었다. 이제 역경 끝 순경 시작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3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회당장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망도 기대도 다 살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요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괴롭히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절망입니다. 이제 끝입니다. 이제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 때 회당장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간구하였는데 왜 내 딸이 죽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겸손이 매달렸는데, 그렇게도 몸부림쳤는데 왜 딸이 죽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혈루증 여인을 고쳐주시면서 지체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내 딸을 고쳐 주실 수 있었을 텐데 왜 지체하여 내 딸을 죽였느냐고 감정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교회에 왔는데 더 어려워지면 교회에 다녀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교회를 떠나 버릴 수 있습니다. 이 교회에 다녀도 되는 일이 없다고 절에 갈 수 있고 다른 교회를 찾아 갈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좋아지는 것이 없다고 신앙적인 회의에 빠져 버릴 수 있습니다. 교회 다녀도 다 그렇고 그렇다고 가나안 교인이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적 회의를 극복하고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풀리지 않는 역경을 사람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보고 끝이라고 절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회의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다 회의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시각이아니라 내 시각을 절대시하기 때문입니다. “내 때, 내 방법” 대로 되지 않으면 회의하게 됩니다. 회의를 뛰어넘어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면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역경을 끝으로 보지 않고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야이로의 딸의 죽음을 보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울며 통곡하며 심하게 떠들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잠자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끝이라고 생각하면 야이로도 회의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역경을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회의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 때 때때로 역경을 사용하십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40년 동안의 역경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인신매매되었습니다.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자신을 죽이려는 장인에게 쫓겨 다닙니다. 친구에게 아들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기까지는 20여 년 동안 수많은 역경을 만났습니다. 비바람과 눈보라 맞고 자란 들풀이 온실에서 자란 꽃보다 생명력이 강합니다. 생명에게 불편함이 없는 좋은 환경이란 독과 같은 것입니다. 식물은 가물고 바람이 불어야 그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려 더 큰 비바람과 가뭄에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프랭클린 루스벨트,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화상을 입고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지만, 사랑의 전도자가 된 이지선 양, 시각장애인이지만 한국인으로 미 행정부 고위 인사가 된 강영우 박사 등은 역경을 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역경 가운데서도 회의를 넘어서는 믿음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3-4)" 역경을 과정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역경 속에서 어떤 비웃음이 있다 하여도 지속적인 믿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잔다고 하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40절을 보십시오. 비웃습니다. 파지 않은 우물에서 어떻게 물이 나오겠냐는 것입니다. 마른하늘에 어떻게 비가 오겠냐는 것입니다. 끝이 난 집안인데 어떻게 회복되겠냐는 것입니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질병에 걸렸는데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업인데 어떻게 기업이 다시 회복되겠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교회인데 어떻게 그 교회가 부흥하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3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현재형으로 흔들리지 말고 네가 처음 내게 가졌던 믿음을 지금도 그대로 굳게 간직하라는 말입니다. 지속적인 믿음으로 회의를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 성도님과 저에게 들려주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길 바랍니다. 역경 가운데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실제로 개입하여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어 줄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은 역경을 끝으로 만들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역경을 과정으로 만들어 일어나는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아주 오래전 성수대교 참사로 딸을 잃은 집사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남편이 육사 26기인데 대령으로 육군 군수사령부 작전 처장으로 일하던 중 47세의 나이로 부대 내에서 과로로 숨졌답니다. 신앙생활 잘하며 행복한 가정으로 살기 원했던 집사님에게 얼마나 회의가 들었겠습니까? 그런데 다음해 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지면서 서울교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딸이 숨진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지 1년 만에 딸을 또 잃었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딸은 예수님을 진짜 구세주로 믿는 신자였답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던 딸의 유품을 정리한 어머니는 딸의 유작시 1백 20여 편을 모아 시집으로 출간했답니다. 어머니는 또 딸의 비망록에서 '내가 일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라는 제목의 '14가지 소원'을 발견했답니다. 신앙심을 갖고 봉사하는 인생을 살겠다고 늘 되뇌던 딸은 “장학금 제도를 만든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 "…한 명 이상 입양한다…"… 맹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재활 시설을 포함한 복지마을을 만든다.” 등의 삶의 목표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딸의 소망을 대신 이루기로 결심한 어머니는 8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도 국가보상금 2억 5천만 원 전액을 기부해 '승영장학회'를 만들었답니다. 봉사의 삶을 살려는 가난한 신학도들을 교단. 교파를 초월해 지원하는 이 장학회의 도움으로 38명의 목회자가 탄생했답니다. 강원도 산간 곳곳을 돌며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승영 이동도서관'이 만들었답니다. 딸의 장례식이 끝나자 부의금 전부를 들고 목사님을 찾아가 소중한데 써달라고 맡겼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집사님 안에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기 사랑하는 딸의 시집을 냈을 때 그 시집 서문에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나는 1년 사이에 남편과 딸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사람들이 차지했던 자리가 컸던 만큼 내 슬픔과 절망도 컸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슬픔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계셔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주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가족과 함께 남편과 딸이 있는 천국을 사모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돈도, 권력도, 지식도, 명예도, 과학도, 위로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모든 역경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과정으로, 어떤 비웃음에도 신앙 흔들리지 않고 이기는 견고한 믿음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모든 역경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일어나 간증하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 후 어떻게 하십니까?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고 어떻게 하십니까?

40절을 보십시오. 비웃는 자들을 다 내어보내 버립니다. 강제로 추방합니다. 믿음의 사람 제자들 셋을 대리고 들어가십니다(37). 딸이 살아나기를 간절히 믿고 있는 아이의 부모를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하십니까? 4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죽은 딸의 손을 잡고 "달리달굼"하십니다. 히브리어 표기로 "탈리타 쿰"입니다. "탈리타"는 소녀야라는 말이고 "쿰"은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42절을 보십시오. 소녀가 일어나 걸게 되었도 사람들은 크게 놀라고 놀랐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며 소리 지르며 절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보며 비웃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상황을 보고 어떻게 됩니까?(42) 크게 놀라고 놀랐습니다. 놀란 정도가 아닙니다. 황홀경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놀랐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울며 통곡하며 훤화합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비웃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녀가 살아나니까 그들은 황홀경에 빠집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가정이 변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설명절 기간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가정입니다.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삶은 고해(苦海)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도 예외 없이 생로병사는 찾아옵니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많이 배웠던, 권력이 있든 상관없이 한 가정도 예외 없이 생로병사는 찾아옵니다. 가정은 따스하고 그리운 곳이지만 동시에 아픔과 갈등의 진원지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우리의 소망과는 상관없이 역경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모든 역경을 이기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하는 간증 거리를 만드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야 그 사람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고 하더니 이 교회 저 교회 108번 교회 옮겨 다니더니 죽으니까 장례로 치워주는 교회 없더라”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야, 그 얘 교회 나가 장로 되었다고 하더니 목사와 싸우고 요즈음은 교회 안 나간다고 하더라” “야, 그 얘 교회 나간다고 하더니 회사 망했다고 하더라” “야 그 사람 자식 잘 되기 위해 별짓 다하더니 그 자식 망했다고 하더라” 이런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야 그렇게 힘없던 아이가 예수 믿더니 그렇게 사회적으로 출세했어? 초등학교 시절 꼴치만 하더니 야 그 얘가 예수 믿더니 박사학위를 받았데, 야 시골에서 살 때 그 집안 꼴이 아니더니 서울에 가서 예수 믿더니 잘되었데, 야 그 공장 망한 줄 알았든데 예수 믿더니 다시 일어났데, 야 그 아이 시집도 못가고 장가도 못 갈 줄 알았는데 예수 믿더니 행복하게 결혼하여 잘 산데."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예수님 말씀 “내가 네게 말하노리 소녀야 일어나라” 네와 소녀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믿고 말씀 붙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게 네게 말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죽어 듣지 못하는 자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그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들면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고,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너무나 지나가는 변하는 세상 말을 붙들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일어나 간증하는 가정이 되기길 바랍니다. 말씀이 역경을 이기게 만듭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19:7-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둘째는 나는 아직 일어나야 할 소녀라고 생각을 가지고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소녀라는 말은 아직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제 겨우 12살입니다. 80대 노인이 아닙니다. 한참 자라야 할 아이이고 이 세상에 할 일이 많은 젊은이입니다. 12살 소녀와 죽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지금 포기할 나이가 아닙니다. 지금 죽을 때가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고, 병을 이기고, 회의를 이기고, 모멸감을 이기고, 한계상황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경기를 이기고 일어서야 합니다. 1%의 가능성에도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임을 믿고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가시지 않고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 가신 것은 결국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신 것을 이 기적을 통해 교훈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살면서 뜻하지 않게 역경이 다가 올 때 “내가 네게 말하노리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말씀이 지금 내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고,

역경을 만날 때 예수님을 만나 일어나는 가정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역경이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만들고 일어나는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마침내 모든 역경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일어나 간증하는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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