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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빌립보서21 빌4:21-2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049 추천수:0 220.120.123.244
2019-12-01 14:55:15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

빌4:21-23

 

오승재 소설가가 쓴 단편 소설 <제일교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K시에 역사가 오래되고 큰 건물을 자랑하며 많은 헌금과 재력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제일 교회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누더기를 입은 거지가 찾아 왔습니다. 안내를 보고 있던 집사님은 퉁명스럽게 "여보시오 어딜 올라오는 거요, 내려가 있어요" 하고 돈을 줍니다. 그러자 거지는 돈을 받지 않고 예배를 보러 왔다고 안내위원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뒤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부목사가 어디서 오셨느냐고 정중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예배보는데 어디서 온 게 무슨 상관이요, 나 집 없는 줄 뻔히 알지 않소"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럼 성함은" "나 김부자요" "누구의 소개로 왔습니까" "거리에서 예수 믿으라는 소리를 듣고 왔소"

그날 거지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다 끝나자 부목사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그게 정말이요"라고 말하고 다음 일요일에는 더 많은 친구를 데려오겠다며 살아졌습니다.

다음 주였습니다. 어른 거지 아이 거지 10여 명이 깡통을 차고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거지들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습니다. 헌금 주머니도 그들 앞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거지들의 문제로 제직회가 열렸습니다. 제직회에서는 의견이 나누어졌습니다. 거지가 오는 것을 막자는 측에서는 거지 떼가 오면 교인이 떨어지니 청년들을 동원하여 거지가 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 거지가 다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거지가 오는 것을 막는 것은 부당하니 구제부에서 옷을 입혀 같이 예배를 드리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장로는 거지들은 보통 거지가 아니라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온 것 같다며 거지의 출입을 금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거지들은 그 교회에 출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난 후 아이 거지가 부목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왕초 거지가 보자는 것입니다. 아이들 따라 부목사는 다리 밑에 누워있는 왕초거지를 만났습니다. 그는 폐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목사를 보자 그는 반가운 듯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부목사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구겨진 1000원짜리 지폐였습니다. 헌금을 하고 싶었지만 헌금 바구니가 자신에게는 오지 않아 드리지 못한 헌금이었습니다. 그는 부목사에게 무슨 말인가 가늘게 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작가는 신앙인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만약 우리가 제일교회 성도라면 어떻게 했을 것같습니까?

현대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말구유에 나시고,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대학도 다니지 않았고, 우등상 한 번도 받지 못했으며, 고급 승용차 한번 타보지 않았고, 20평짜리 아파트에서 교향곡 한번 들어보지 못한 예수께서 더벅머리에 수염도 깎지 않고 귀신들린 자, 간음한 자, 세리, 굶주린 자, 소외된 자와 함께 들어오신다면 그 주위에 누가 앉겠습니까? 외적 요인으로 계층화되고 차별화된 도시 화려한 교회들, 그리고 그 교회에 다님으로 자신을 차별된 교인으로 대리 만족을 누리며 사는 교인들, 수적 팽창이 능력으로 착각하는 종교적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종교인들, 그런 교회에 해어진 샌들을 신고 병든 자를 돌보느니라 한 달 동안 빨지 못한 너털거리는 옷을 입은 예수께서 들어오신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할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인 수 1만 명의 미국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했답니다. 청빙받은 담임목사는 노숙자가 되어 교회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기웃거렸답니다. 그는 예배에 참석하러 온 교인들에게 “배가 고픕니다. 음식이 필요한데 돈이 없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돈이나 음식을 주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답니다. 단지, 불과 3명만이 그에게 굿모닝 인사를 하였을 뿐 모두 다 그를 지나쳐 교회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교회에 들어간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았지만 예배 위원들에게 저지를 당하고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겨우 앉게 되었답니다. 곧이어 사회자가 올라와서 오늘 우리 교회에 새로운 담임목사가 부임했다는 광고를 했답니다. “환영합니다. 스티펙 목사님. 교회 영접위원과 안내위원들이 목사님을 맞이하려고 약 1시간 전부터 교회 문밖에 나가 있었는데 미처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 오셨는지요? 목사님 오셨으면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교인들 모두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기대에 찬 눈길로 새로 부임한 목사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모든 교인들은 경악했답니다. 교인들에게, 안내위원들에게, 예배위원들에게 냉대를 받고 맨 뒤로 쫓겨가 앉아 있었던 그 노숙자가 벌떡 일어나 성킁성큼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왔답니다. 바로 노숙자로 변신한 스티펙 목사였답니다. 그는 강단에 서자마자 곧바로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0절까지를 읽어 내려갔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 성경을 읽은 후 스티펙 목사는 이날 오전, 주일 예배 직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교인들에게 말하면서, “저는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봤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회들도 많고 교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제자들이 모이는 교회는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예수의 제자가 될 것입니까?”라고 물으면서, “우리 교인들은 매주 (주일예배) 한 시간만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 것 이상입니다. 그것은 이웃과 함께 그리고 옆에서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으로 첫 부임 설교를 했답니다.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신앙인으로 한 지역교회에서 같은 교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란 서로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할까요?

 

1. 아름다운 교제의 출발은 서로 인사를 잘 하는 데서 시작됩니다(21,22).

구원은 홀로 개인적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삶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신앙생활에는 세 가지 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관계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 셋째는 사역과의 관계입니다. 이 세 축이 건강하여야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아름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방울이 만나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 듯이 우리 신앙인들은 한 지역 교회에서 만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요즈음 정치인들처럼 만나 추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로마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를 마감하면서 어떻게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각각 문안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문안하라는 말은 인사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 편지를 받는 지도자들에게 바울의 안부를 각 성도들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하는 말도 되지만 성도가 서로 인사할 것을 권면하는 말도 됩니다. 바울이 인사하라고 한 대상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다는 한 가지 조건으로 지역이나 학연이나 혈연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신서를 쓸 때 바울이 아주 강조한 말입니다. 로마서에서도 마감을 할 때 여러 사람을 열거하면서 인사하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롬16:3,5,6,7,8,......23) 고린도 전서(고전16:20) 고린도 후서에서도(고후13:11),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 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에서 계속 강조하여 문안을 권면하고 문안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성도와 관계에 있어 인사를 게으르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자신과 함께 있는 형제들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인사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함께 있는 형제들 아마 디모데나 누가일 것입니다. 그들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문안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 집 사람 몇이 문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이사 집 사람은 로마 정부의 가장 높은 관원들로부터 황제에게 고용된 가장 비천한 노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이들은 옥중에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해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왕궁의 고급 신하이거나 그들에게 고용된 종들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를 쓸 때 시작을 문안으로 시작하고 마감을 문안으로 마감합니다. 가장 고상한 형태의 참된 교회의 연합을 강조하고 만유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인종이나 신분이나 계급과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연합과 하나됨으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서로 인사하는 관계가 아름다운 관계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무서운 핍박 가운데서도 놀라운 교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건물 형식 의식 성직 제도 등이 중요시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여 형제애를 나누었습니다. 핍박을 피해 카타콤의 지하에 피해 살았는데 어느 카타콤의 벽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사랑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교제는 집단적 관계보다는 개인적 관계입니다. 몇 천명 몇 만명이 모이느냐가 문제가가 아니가 그곳에 개인적인 교제들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은 신앙인끼리 서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문안(問安)은 문자 그대로 상대의 상황을 묻는 것입니다. 교회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은 교회가 갖는 독특한 정체성이자 사랑의 방식입니다. 서로 문안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역 중의 하나입니다. 관심을 갖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고 예수님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순종이 필요한 명령입니다. 정서적인 접근이나 감정적인 접근이 아니라 의지적인 접근의 영역입니다. 정서가 허락하는 사람만, 감정이 허락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을 의지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미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하나님은 부어 주었습니다. 로마서 5 장 5 절에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도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기로 결심하면 얼마든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강의실이나 극장이나 음식점과는 다른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하나가 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나아가 서로 종노릇하고(갈5:13), 서로 받고(롬15:7), 서로 기도하고(약5:16), 서로 격려하고(히10:24), 서로 짐을 지라(갈6:2)고 말씀하십니다. 성도가 아름다운 교제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아름다운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서로 인사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사하는 것 그것 별거 아닌 것같지만 인사만 잘 해도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함께 잘 살 수 있습니다.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하수근 저)>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사는 놀라운 기적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하수근 목사는 인사는 관심이고 인사는 정복이고, 인사는 나눔이고 인사는 소통이며 인사는 겸손이고 인사는 돌봄이며, 인사는 최고의 리더십이고, 인사는 사랑이며, 인사는 예배이고 인사는 복음이며, 인사는 전도이고 인사는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야신(野神)이라 불릴만큼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치밀한 전략, 카리스마 있는 지도력으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은 선수에게 가장 먼저 인사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인사하는 것을 가장 먼저 가르친 이유는 “인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것이고, 존중이 없다는 것은 겸손이 없고, 겸손이 없으면 오만하다는 뜻이다. 오만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선수들로는 승부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제일 먼저 가르친 게 인사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언젠가 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는 인사를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심방 가서 아이들과 같이 예배드릴 때 매일 이런 인사를 부모님께 하라고 가르친 적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인사만 잘 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이주연 목사는 “때론 백권의 책보다 한 번의 인사가 더 값질 수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선수들의 발목에 붕대나 감아주고, 경기장에 몰래 숨어들어가다가 경비원들에게 발각되어 도망치던 운동을 꽤나 좋아했지만 가난한 월급쟁이였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미국 프로농구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팻 크로스입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담아 <내 안의 위대함을 느껴라>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자기 삶을 개척한 비법에 대하여 최우선으로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을 꼽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적정한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 인사가 기회를 열어 준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반기는 인사 하나가 큰 일을 이루는 현관의 문을 열어 주고 기회를 여는 길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며 큰 비용을 드려야 하는 것도 아니라 진정으로 반가운 웃음으로 전하는 인사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사를 잘하는 사람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가지는데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것이 인사인데 이 간단한 인사를 잃어버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인사는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전류와 같은 것인데 서로 깜깜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례함의 비용>이라는 책을 쓴 크라스틴 포래스는 무례함 역시 전염된다고 합니다. 무례함은 사방으로 퍼지면서 접촉한 사람들 모두의 삶을 무겁게 만드는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무례함을 그대로 방치하면 조직 전체를 풀죽게 만들 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은 덜 친절하고 덜 차분하고 덜 활기차고 덜 즐겁게 만든다고 합니다. 미국심리학회는 무례함으로 직장 내 스트레스가 미국 경제에 입히는 피해액이 연간 5,000억 달러(약 542조 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답니다. 크리스틴 피어슨 교수와 저자가 17개 국가의 중간관리자와 평직원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무례함을 당하는 쪽에 해당하는 노동자들 가운데 48%가 노동력 투입량을 고의로 줄였답니다. 38%가 성과의 품질을 고의로 저하시켰고, 63%가 가해자를 회피하느라 노동 시간을 허비했으며, 78%가 조직에 대한 헌신성이 저하되었답니다. <포춘> 1,000대 기업의 중간관리자와 최고관리자들은 직원들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고 무례함의 후유증을 해결하는 데 근무 시간의 13%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인사하지 않는 상점 가기 싫어합니다. 무례한 당, 무례한 회사, 무례한 병원, 무례한 가정, 무례한 교회에 사람들은 머물길 싫어합니다. 성경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라고 말씀합니다. 예의가 밥먹여주냐고 무례하게 행하면 결국 아내도 밥을 안 해 줍니다. 예의가 밥 먹여줍니다. 인사만 잘해도 잘 삽니다.

 

2. 아름다운 교제를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것은 은혜입니다.(23)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빌립보서를 마감하면서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 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심령에 있도록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단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서로 교회 내에서 권력다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사람에게도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축복 기도는 바울 서신 첫머리와 끝부분에 빠짐없이 기록되어있습니다.(롬1:7 ,롬16:27; 고전1:3,고전16:24; 고후1:1-2,고후13:13; 갈1:3,갈6:18; 엡1:2, 엡16:23-24; 빌1:2,빌4:23; 골1:2,골4:18; 살전1:1,살전5:28,살후1:2,살후3:18; 딤전1:2,딤전6:21,딤후1:2,딤후4:22; 딛1:4,딛3:15; 몬1:3,몬1:25) 바울의 13서신 중 26문장이 있습니다. 당시 일반 서신들은 안녕히라는 끝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항상 은혜를 강조하며 끝냅니다. 바울이 성도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중요시 여겼는가를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은혜는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성도의 교제에서도 은혜는 기초요 윤활유요 기둥과 같은 것입니다. 은혜 아니면 아름다운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은혜 아니면 바울을 시기하는 사람의 문제가 해결될 수도 없고, 은혜 아니면 두 여인에게 한 마음을 품으라고 교훈은 했지만 권력다툼도 멈출 수 없습니다. 은혜 아니면 바울에게 선교 후원금을 보낼 수도 없고, 은혜 아니면 바울과 끝까지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초대 교회 교회들에게 편지 하면서 항상 은혜를 강조하는 이유를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초대 교회의 여러 문제들이 은혜 아니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바울 서신들이 대부분 그 편지를 받는 교회에 문제가 있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고린고 교회를 보십시오. 교회 분열 문제, 십가에 대한 오해, 성령의 계시에 대한 무지, 근친 상간 문제, 불신 법정에 송사 문제, 도덕적 태만, 이혼, 우상 제물, 방언 부활 교리 등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교훈하고 마지막 은혜를 간구합니다. 교훈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서로 누리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평안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 인간은 한순간도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영혼 구원을 받는데도 은혜가 필요하지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서로 살면서 평생 아름다운 관계를 가지는데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 떨어지면 그렇게도 좋은 관계도 한 순간에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다윗을 그렇게 아끼던 사울이 은혜가 떨어지니까 한순간에 시기심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죽여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성자로 은혜가 떨어지면 악마로 변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프란체스코의 제자가 꿈을 꾸었답니다. 하나님이 한 아름다운 자리를 그에게 보여 주며 그 자리는 프렌체스코의 자리이니 아무도 안지 못하게 하였답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는 너무나도 부러워서 선생님 어떻게 선생님은 이렇게 훌륭하게 될 수있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답니다.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가장 큰 죄인이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제자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프란체스코는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주었다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은혜 충만할 때는 모세가 불평하는 백성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지만 은혜 떨어지면 같은 모세지만 지팡이로 반석을 치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은혜 충만하면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성전을 건축하지만 똑같은 솔로몬인데도 은혜 떨어지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수많은 여인들을 첩으로 거르리며 정략 결혼을 합니다. 은혜 충만하면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을 무너뜨리지만 은혜 떨어지면 똑같은 다윗이지만 이웃 여인을 탐하여 간음하고 살인하는 짓을 합니다. 유다의 8대왕 요아스가 은혜가 충만할 때는 얼마나 선한 왕이 되었습니까? 그런데 은혜가 떨어지지니까 배은망덕한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은혜로 하나님의 성전에 피해 목숨을 건졌는데 성전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합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는 왕이 되자 마자 무너진 성전을 보수합니다. 매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은혜 떨어지자 성전도 버리고 하나님도 버렸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모든 것이 부담으로 받아들여 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부담이 되어 선지자를 통해 전해주는 말이 자신을 정죄하는 말로 받아들여 집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바른 말을 전해 주는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열매는 사라지고 거짓, 교만, 탐욕, 보복, 악독, 변절, 시기, 이기심, 증오, 분노, 배은망덕, 음란, 우상 숭배 등이 마음을 지배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무수한 사람을 죽인 스탈린(Stalin)은 기독교 계통 학교를 다니며 신학교육까지 받은 사람이었지만 은혜가 떨어지지까 아름다운 관계를 파괴하는 살인마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김일성도 모친이 권사였고 본인도 교회를 다녔지만 은혜가 떨어지니까 동족 전쟁을 일으켰고 북한 땅의 교회를 없애버린 악마로 변한 것입니다.

강도도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성자도 은혜가 떨어지면 마귀로 변합니다. 천사도 은혜 떨어져 교만해 지면 마귀로 변하지만 살인자도 은혜를 받으면 성자가 됩니다.

목사도 은혜 충만하여야 성도를 사랑하지 은혜 떨어지면 성도를 종교 사업 수단으로 보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어느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다. 집이 참 좋아 보였답니다. "집사님, 집이 참 좋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예, 저희 남편이 아주 성실한 사람이라서 열심히 일한 덕분이지요." 아들이 쓰는 방을 보았더니 벽에 상장들이 많이 붙어 있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물어 보았답니다. "아들이 공부를 참 잘하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집사님은 기분이 좋아서 대답했답니다. "이 집안의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늘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내친 김에 목사님은 한 마디 더 칭찬을 해주었답니다. "집사님은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도 많으십니다." 그런데도 그 집사님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또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물이야 부모님을 잘 만난 덕분이지요." 잠시 뒤에 집사님은 다과를 준비해 나왔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았답니다. 그러니 함께 간 사람들도 덩달아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집사님을 보면서 목사님은 넌지시 이렇게 말했답니다. "목사는 다과를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사는 존재랍니다. 제가 다시 물어볼 테니까 이번에는 잘 생각해서 대답해 보세요." 그러면서 차례차례 다시 물어답니다. 집사님도 목사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바르게 대답했답니다. "이 집이 참 좋군요."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군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지요." "집사님은 남편도 잘 만나셨고, 아들도 잘 두셨고,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이 많으십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남편과 아내가 아름다운 관계로 끝까지 가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풍성히 부어 주어 건강하게 해 달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식과 부모가, 목회자와 성도가, 성도와 성도가 숨 멈추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관계를 가지려면 은혜가 필요합니다. 서로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해 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한 것처럼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천국에 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처럼 아름다운 교제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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