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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출3:7-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5862 추천수:15 112.168.96.71
2008-09-21 17:27:47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출애굽기3:7-8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적이고 잔혹한 인종청소는 1933년부터 12년간 나치가 유태인에게 자행한 홀로코스트일 것입니다. 히틀러는 600만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대량수용소에서 가스로 죽어갔습니다. 굶어죽기도 하고, 전기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총살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치는 노동력을 착취하고 실험용으로 죽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엘리 비젤은 그 당시 체험을 바탕으로 [밤]이라는 회고록을 썼습니다. 그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게 되었답니다. 거기에서 어머니와 누이들이 산채로 소각로에 던지어져 불에 타는 것을 용광로의 불꽃과 굴뚝의 검은 연기 속에서 확인하게 되었답니다.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그는 아버지와 함께 부나 수용소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기력이 극도로 쇠약해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이 아버지를 나치 독일의 친위대들이 침대에서 끌어내어 화장장에 쳐 넣어버렸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열여섯 때였다고 합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와 비르켄아우의 화장장과 화장터에서 매일같이 수천수만의 유대인들이 죽어가는 것을 유대인들은 직접 목격했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서 건장한 유대인들은 화부로 뽑혀 살아있는 연약한 유대인을 자기 손으로 화덕에 집어넣어야만 했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화덕에 던져야만 하기도 했답니다. 어느 날 부나 수용소 안에는 두 남자와 한 어린 아이의 교수형 집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그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졌다고 합니다. 사형은 집행되어 두 어른은 쉽게 죽었는데 아이는 몸이 너무 가벼웠기 때문에 쉽게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는 반 시간 이상이나 거기에 그대로 두어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버둥거렸다고 합니다. 그들의 눈앞에서 단말마의 고통을 서서히 당하면서 죽어갔다고 합니다. 이 때 그의 뒤에서 한 사람이 또 물음을 던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그에게 대답하는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어디 있느냐고? 그 분은 여기 있어. 여기 저 교수대에 매달려 있어.“
처절한 이런 고통을 당하면 우리는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살아 계시다면 왜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가 있기 3000여년 전에 바로로부터 인종청소를 당했습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자식을 처형장으로 보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매일 매일 통곡이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강제 노역으로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때 이들은 엘리 비젤이 던져 던 질문을 똑같이 던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왜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시는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분이 어디 계시는가?”
오늘 성경은 이 질문에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1. 우리의 상황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출1-2장)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합니다. 고통당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내 아들 내 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고통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보고(라아)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꿰뚫어지게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역자로 인한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울부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우고를 알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비탄, 괴로움, 슬픔, 극한 상황에 처한 아픔과 고통을 알고(야다) 계시다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뼈저리게 체험적으로 속속들이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고통의 현장에 있습니까? 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고통의 현장에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내 삶의 현장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아무도 나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듣고 계십니다. 아무도 나의 고통을 모를 것 같지만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알고 계십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Thrice Through the Valley)라는 책을 쓴 볼레터 스틸 크럼리(Valetta Steel Crumley)라는 분이 계십니다. OMS 국제 선교회에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세 자녀가 있었는데, 첫째 자녀는 4살 때 백혈병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답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의 고난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답니다. 둘째와 셋째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그만 교통사고로 18, 16살에 천국에 가고 말았답니다. 세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의 고통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답니다. 남편이 목사이면서 선교사였는데 33세에 임파선 암의 일종인 호치킨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에게는 한 사람의 가족도 남지 않았답니다. 이 정도 되면 절규하며 미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느냐?”고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고난의 강에 빠져 죽지 않았습니다. 대만에 가서 선교를 하였답니다. 그런데 고난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크럼리 여사가 57세 되던 해에 선교를 하던 대만에서 살인범을 만나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의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일반적인 사람 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망하며 절망했을 것입니다. 자살해 버리는 사람도 있고 미쳐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소명을 더욱 불태웠답니다. 자신만이 당한 그 끔찍한 경험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에서 그분은 말합니다. '왜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과거를 들추어 가면서 솔직하게 이런 내용을 털어 놓는가?' 한 가지 평범한 진리, 즉 이러한 기가 막힌 고통과 환난을 통해서 자신이 깨달은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펜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진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인생의 비극에서 면죄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환난에도 하나님은 결코 그의 자녀들을 방치해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이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펜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죽어가는 아들을 품에 안고 몸부림치던 밤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을 갖고 자신에게 찾아 오셨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숨 한번 들이 마시기 위해 죽을힘을 다 쓰던 그 밤에도 하나님은 자신을 찾아와 말씀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나니 평소에 건강할 때 상투적인 성경말씀으로 들리던 말씀 하나하나도 절대 거짓이 아니고 진리로 다가왔다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고난에 현장에 있으면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이 뼈저린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는 더욱 순수하고 정직하게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지옥의 형벌을 제거시켜 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고통의 현장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보시고 아시고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서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2.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내려와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출3-11 모세를 통하여 12-13장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보시고 끝내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아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려와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려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통의 현장, 아픔의 현장, 억을함의 현장, 슬픔과 눈물의 현장에 친히 개입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통하여 내려오십니까? 모세를 통하여 내려 오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십니다. 그 내용이 출 3장부터 11장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속박으로 벗어나게 하시는 것이 12-13장에 생생하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죽어가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질병에 걸린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건져 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잘 보여 주고 계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제”로 시작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제”로 시작합니다. 그저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개입하십니다. 듣고 알고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내려와 건져내시는 분이십니다. 실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때로는 초월적인 방법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십니다. 고통의 현장에 눈물의 현장, 아픔의 현장, 십자가의 현장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복시켜 주시고', '구출하여 주시고', '고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음에서 건져 주십니다.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건져 주십니다. 압제로부터 건져주십니다. 억울함으로부터 건져주십니다. 가난으로부터 건져 주십니다. 실패로부터 건져주십니다. 외로움으로부터 건져주십니다. 슬픔을로부터, 고통으로부터, 눈물로부터, 공포로부터, 억울함으로부터, 우울로부터, 무기력으로부터 건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마치 전쟁터에서 포로를 구출하듯이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며'(엡 4:8),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어그러진 모습을 치유하사, 성도들을 영광스러운 당신의 자녀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십니다(말 4:2;엡 5:8).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건져 주시기 위해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며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9)”

내 문제 끝없이 해결되지 않고 고통이 끝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울부짖음은 작은 세월이 아닙니다. 자식을 죽여야 하는 일이 무려 80년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낙심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심각한 고통에 처하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려와 건져 주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해방되기 까지는 70년의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38년된 병자를 보십시오. 베데스다 연못에 38년을 기다렸습니다. 만약 37년 째 포기하고 자살했다면 그는 예수님을 통한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체험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38년 절망하고 살았습니다. 38년 경쟁에서 늘 낙오자로 살았습니다. 38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38년 구걸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38년 어느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38년의 질병과 고통을 소상히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있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그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라는 말씀 선포로 그를 고쳐 주었습니다.
12해 혈루증 앓는 주부를 보십시오. 당시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원치 않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입니다. 당시 문둥병과 혈루증은 불치의 병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가정에서도 마을에서도 쫓겨나게 되어 있었습니다.(레 15:25-28) 12년 동안 치료받기 위해 이병원 저병원을 다 찾아 다녔습니다. 결과는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게(막 5:26)"되었습니다. 점점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 여인이 11년 째 포기하고 자살하였다면 그는 그렇게 인생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12년 재 어느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녀를 찾아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까지 부르짖어야 합니다.

38년 동안 점자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아름다움은 마음의 눈으로 보인다.”라는 책을 쓴 이재서 교수님이 계십니다. 세계밀알연합회 대표로 세계 6억의 장애인을 돕기 위해 뛰고 있는 분입니다. 북한 장애인을 돕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습니다. 책을 낸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가 이 교수의 원고를 읽으며 많이 울었고, 이제 자신도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출판 실무를 담당했던 부장 역시 교회에 대한 오해를 씻고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열다섯살이 되던 해 겨울,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답니다. 가족들에게 짐만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겠다 생각하고 감나무에 목을 매 죽으려고 몇차례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제 세상은 끝났다고 생각했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죽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 서서히 정신분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가끔 정신이 혼미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생겼답니다. 형의 손에 이끌려 맹학교에 들어갔는데 목사님이 설교를 하였답니다. “사람에게는 사물을 보는 육안, 지혜를 터득하여 가지는 지안, 마음으로 보는 심안,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영원한 세상을 보는 영안이 있는데 이 네 개의 눈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셨답니다. 대부분 한 가지씩은 부족한 시각장애인이라고. 비록 육신의 눈을 잃었어도 나머지 세 개의 눈이 밝으면 건강한 것이라고‥‥ ” 그 말씀을 듣는 순간 환희로 내 가슴은 벅찾다고 합니다. '난 단지 네 개 중 하나를 잃은거야. 내게는 아직도 세개의 눈이 더 남아있는거야.'라고 외치며 공부했다고 합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집회에 참석한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성령이 역사를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실명으로 인한 상실감, 미래에 대한 우울한 마음이 일거에 사라졌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마음속에 장애인 선교에 대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장애인에게 전도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장애인을 도와주고(봉사), 장애인에 대해 교회와 사회에 바로 알리는 것을(계몽) 사명으로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했다고 합니다. 기도하며 앞으로 펼쳐질 10년의 긴 그림을 그려보곤 했답니다. “밀알선교단이 발전해 전국을 감당하고, 나아가 전 세계로 펼쳐지는 꿈”입니다. 당시로는 현실성도 없고 허무맹랑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다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분은 미국에 유학을 가 10년 동안 피나는 공부를 하여 박사가 되어 교수가 되어 섬기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를 인도하여 그 꿈을 이루는 가나안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그를 도와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에 오면서 조용히 노트 한권을 꺼내들었습니다. 아들이 "무슨 책이에요?"라고 물었답니다. "10년 동안 우리를 도와준 분들의 이름이 적혀있단다. 네가 미국에서 잘 있도록 도와준 분들도 있어." "왜 그것을 지금 꺼내요?" "그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야."
실명. 그것은 그분에게 고통이었지만 또한 축복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명 때문에 울었지만, 실명 때문에 웃었다고 했습니다. 실명 때문에 절망도 알았고, 실명 때문에 희망도 알았다고 했습니다. 실명은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 갔지만 내게 모든 것을 가져다주기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제 알게 되었죠. 실명은 축복에 이르는 길이었어요. 나에게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 사역에 사명감과 의무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고난은 이메일로 오듯 빠르게 오지만 그에 대한 설명서는 배를 타고 천천히 옵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다리면 배가 도착해서 설명서를 받아 읽을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우리를 죽음에서, 고통에서, 슬픔에서, 질병에서, 아픔에서, 눈물에서, 억울함에서, 우울에서, 상처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출 18:10)”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삼상 10:18)”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잠 2:12)”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8)”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시며 천한 자의 높임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 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의 생명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94장 1-3절)"

3. 인도하여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출14-18장 광야 인도. 19-40장 가나안에 이르게)
건져 주실 뿐 아니라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젓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 한 번도 가지 않은 땅입니다. 어떤 또 다른 고통과 위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광야길은 알 수 없는 길입니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변하는 길입니다. 예측을 할 수 없는 길입니다. 처음 가는 길입니다. 적들이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출애굽기 14장부터 18장 까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출 13:21)”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1장 30절 이하를 보십시오. 광야 길을 걸은 후 그들의 신앙고백입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신 1:30-33)”
막상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 광야 길 동안 계속 원망하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바로가 병거를 갖추고 추적합니다. 앞에는 홍해가 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모세에게 대어 듭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험악한 말을 합니다. “왜 애굽에서 이끌어 냈느냐?”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합니다. 그 때 모세가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4)”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홍해를 건너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좋아 춤을 추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입니다. 수르 광야로 갔습니다. 사흘길을 가는데 먹을 물이 없습니다. 다시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앞에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 엘림을 준비시켜 놓았는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원망한 것입니다. 다신 신광야에 이릅니다. 애굽에서 나온지 두 달 반이 되었습니다. 또 원망합니다. 애굽 땅에서 고기을 배불리 먹던 때 하나님 손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푸념합니다.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인도에 대하여 의심하고 원망합니다. 우리는 코앞에 있는 일만 보고 원망하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 같으면 이 정도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코 그들을 인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네 멋대로 살라고 놓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끝까지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하여 인도하십니다.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1-6)”
여호와께서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남편의 목자, 아내의 목자, 자식의 목자만이 아니라 나의 목자입니다. 나와 인격적 관계를 가진 목자라는 말입니다. 짧은 시이지만 우리 번역에 '나'와 관계된 말이 14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는 나오기는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지 못하고 돈이 나의 목자이고 텔레비전이 나의 목자이고 컴퓨터가 나의 목자이고, 성공이, 자신이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미국의 기독교 출판 협회가 주는 기독교 작가 금상을 두 번이나 받은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현대인들은 자신이 목자가 된다고 풍자하면서 시편 23편을 이렇게 패러디하였습니다.「나의 목자는 나 자신이니 언제나 부족하리로다. 내가 이 백화점에서 저 쇼핑센터로. 이 병원에서 저 요양원으로 안식을 찾아 헤매고 다니나. 결코 안식을 얻지 못하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기어 다니며 안절부절 하는 도다. 구충제에서부터 전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어머니의 치마 고리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리로다. 매주 열리는 직원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적들이 나를 둘러 쌀 것이며, 집에 돌아간다 해도 하찮은 금붕어 까지 찌푸린 얼굴로 맞을 것이다. 내가 강력 진통제로 두통에 찌든 머리에 기름을 부었으니, 독한 술이 내 잔에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정녕 고통과 불행이 나를 따르리니 죽는 날까지 신에 대한 회의 속에서 영원히 거하리로다.」사람에게는 절대적 만남의 대상이 있고 상대적 만남의 대상이 있습니다. 상대적 만남의 대상으로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즐기고 일을 같이할 수는 있습니다만 참된 만족을 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푸른 초장에서도, 쉴만한 물가에서도, 질병 가운데서도 성공 가운데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윗은 힘이 있는 왕입니다. 40년 간 입법 사법, 행정의 권한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 왕입니다. 얼마든지 스스로 살 수 있다고 고백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가 자신의 목자가 되어 사망의 골짜기에서 인도하시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실 것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스 카르스는 "목자가 양을 선택한 것이지 양이 목자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약 1:5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으며, 빌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피어슨이란 분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간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 간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간다. 지난 20년간 내 인생의 기도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32:9-12)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외로움 속에 신음하십니까? 끝없는 절망으로 포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정녕이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우고를 알고, 우리에게 내려와 건져내시고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내 이름을 넣어 7-8절 같이 읽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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