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울면 3류 인생이고 힘들 때 참으면 2류 인생이며 힘들 때 도피하면 4류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 때 도전하면 일류 인생이 된다고 합니다.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도전은 독약이 아니라 보약입니다.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50% 실패한 것이지만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면 100% 실패한 것입니다. 도전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현실 앞에 회피하거나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기의 저항으로 새가 부담이 되지만 공기가 없으면 새는 날 수 없습니다. 물의 저항으로 고기가 힘겹겠지만 물이 없으면 물고기는 살 수 없습니다.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맞아야 합니다. 서리가 알곡을 만드는 법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지만 한 번 실패했다고 도전도 못하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언젠가 인터넷으로 일간지를 보는데 멘 위에 [뇌성마비 장애 딛고 미국 대학 강단에 선 정유선 박사 모녀의 끝없는 도전과 감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밑에 [관악구청장 부인 자살]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한 사람은 힘들 때 도전하는 인생을 살았고 한 사람은 힘들 때 도피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았습니다. 정유선 교수는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4년째 보조공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교수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만성적인 근육통, 일그러진 얼굴, 대학실패, 어려운 유학생활 등으로 심한 우울증도 겪었지만 그 모든 장애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여 하빈이와 예빈이라는 자녀를 둔 어머니로 당당하게 살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정박사는 “돌이켜 보면 내 발목을 붙잡았던 걸림돌들이 모두 내 인생의 디딤돌이 돼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자살한 구청장의 부인은 남편이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불구속 기소되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음독자살을 하였다는 기사였습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분이 당한 인생의 장애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분은 적극적인 도전으로 그 장애물을 딛고 일어서 일류 인생을 살고 한 분은 그 장애물 앞에 무너져 4류 인생으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삶의 과정 속에 다가오는 수많은 장애물을 적극적으로 도전하여 일류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패배주의자가 되어 4류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이 인생의 장애물 앞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삽니까?
사지마비의 중상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재활의학 의사로 거듭난 이승복 박사의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현재 존스홉킨스 의과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약사였는데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아버지는 병원 청소부를 하고 어머니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참으로 힘든 생활을 하였답니다. 여덟 살 나이로 이민을 가 영어를 못하니까 미국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했답니다. 미국 아이들에게 천천히 큰 소리로 말하면 알아들을 줄 알고 말했는데 미국 아이들은 비웃고 상대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모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조 선수가 되어 금메달을 따 어렵게 사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었지만 연습 도중 거꾸로 처박혀 사지마비의 중상을 입었답니다. 고통과 분노, 두려움, 혼란, 죄의식으로 나날을 보내었지만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답니다. 한동안 절망감과 패배감에 젖어 있었지만 그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후 그에게는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걸 확신했다고 합니다. 초자연적인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등을 짓누르고 있던 산더미 같은 벽돌이 한순간 사라졌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답니다. 하늘에선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렸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신을 발견했답니다. 그는 꿈을 가지고 도전하였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뉴욕대를 거쳐 컬럼비아대학에서 공중 보건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다트머스 대에서 본격적으로 의학공부를 시작, 수석졸업한 뒤 하버드대 인턴과정도 수석으로 마쳤다고 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여정에는 고통과 불확실함, 두려움, 혼란, 죄의식, 분노 등이 늘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향한 지극한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소진시켜 결국 자신의 품으로 이끌었습니다. 나를 향한 치밀한 하나님의 계획을 확인합니다.” “제게는 금메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오랜 갈망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기도에 응답해주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그 장애물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 적극적인 도전으로 일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자금의 부족입니까? 실력의 부족함입니까? 건강을 잃은 것입니까? 진학에 실패한 것입니까? 취업을 하지 못한 것입니까? 결혼의 실패입니까?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입니까? 성적의 부진입니까? 잘 나가는 경쟁자입니까? 뜻하지 않는 사고와 장애입니까? 사기 당한 것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장애물 앞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도전하여 일어서기를 원할까요? 쓰러져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기를 원할까요?
도전하는 마음
오늘 성경에 중풍에 걸린 분이 나옵니다. 아마 죽지 못하여 사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의학이 그렇게 발달되지 못했고 중풍은 주로 40-60대에 발병하기 때문에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경제적인 고통도 심각했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에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환자 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고통을 당하여야 합니다. 환자와 가족은 부정적이고 우울해 지며 비관적이게 됩니다. 이 사람은 숙명적으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내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끝이다. 이제 나을 수 없다. 이렇게 살다가 가족들에게 피해만 주다 죽는 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 죽었으면 좋겠다. 나는 일어 날 수 없다. 나는 저주받은 인생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자신을 붙들고 있는 생각 즉 중심사고는 "내 병은 못 고친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중심사고하고 합니다. 중심 사고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지배해 버립니다. 이 중심 사고는 세 가지에 의해 생긴다고 합니다. 자신의 환경(경험)과 유전, 그리고 갑자기 당한 강한 자극 등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습되어져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변화되지 않고 그것이 그 사람의 일생을 붙들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 중심 사고가 우리 생활에서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나타납니다. 때로는 선입견, 때로는 고정관념, 때로는 아집, 때로는 관례, 전례, 전통, 주장,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새로운 일을 하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전례대로 해야 한다." "관례대로" "이제까지 해온 전통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합니다. 전례를 벗어나는 것을 큰 일 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사를 안 드리면 큰일 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 부정적인 패배주의적 중심사고를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회복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의 중심사고가 어느 날 변화되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막2:1). 예수님께 나아가면 불치의 병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소문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소문과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 장모가 열병을 알았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셨다는 소문이 들린 것입니다. 각색 병든 자가 났고 정신병자가 나았다는 소문이 들린 것입니다. 심지어는 나병 환자도 치료받았다는 소문이 들린 것입니다. 이 때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중심 사고가 바뀐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만나면 나도 치료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막연하지만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은 믿음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무엇을 보았는지 보십시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 가운데는 중풍병자도 포함됩니다. 그들의 생각을 보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읽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그들은’ 단순히 친구 네 명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 네 명 뿐 아니라 중풍병자의 믿음까지 포함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죄사함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병고침 받는 일, 귀신에게 놓임 받는 일, 죽음에서 살아나는 일도 가능합니다. 아버지의 믿음을 통하여 아들의 병이 치유될 수 있습니다. 목사의 믿음을 통하여 교인들이 기적을 체험 받을 수 있습니다. 본인의 믿음이 없이도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고침 받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의 믿음과 예수님의 절대적 권위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그러나 죄사함 받는 일은 당사자의 믿음과 회개가 반드시 요청됩니다(막16:16 눅7:50 롬4:5) 예수님께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6)"라고 말씀했습니다. 죄사함 받는 것은 구원 얻는 것은 자신의 믿음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7: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에서는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저희의 믿음은 중풍병자를 포함한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숙명적이고 절망적인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만 나아가면 예수님께서 내 질병을 고쳐 줄 수 있고 내 인생을 고쳐 줄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중심 사고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중풍병자와 같이 절망적인 경제 상황입니까? 중풍병자와 같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비관적으로 살아야 할 가정환경입니까? 내 성격으로 인하여, 나의 고치지 못한 습관으로 인하여, 나의 영적 상태가 조금도 진보하지 못하고 중풍병자와 같이 앉은뱅이 신앙으로 있습니까? 한계란 오직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할 뿐이지 그 마음을 주님이 지배하면 얼마든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기분을 바꾸기 위해 대가를 지불합니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 나오는 것은 돈 받는 것 아닙니다.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기분도 바꾸어지고 생각도 바꾸어지고 인생도 바꾸어집니다. 모든 도전은 생각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생각이 변화되어야 표정이 변하고 감정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인생이 변화됩니다. 그 생각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 만나면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라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도 바뀌어 집니다.
"주님 만나면 행복해 질 수 있다. 주님 만나면 고칠 수 있다. 주님 만나면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주님 만나면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주님께 나아가면 내 성격 고칠 수 있다. 주님께 나아가면 우리 가정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주님 믿으면 이 땅에서 질병으로 고생하지만 영원한 천국에서 갈 수 있다. 주님 만나면 나의 고질적인 나쁜 습관 고칠 수 있다. 주님께서 나에게 손을 내미시면 내 인생 활짝 열린 수 있다." 라고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지고 현대 과학과 현대 의학으로 어떻게 가능하며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중심사고를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을 들으면 '그래 그 말이 맞아 예수님께 나아가면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어' 이렇게 중심사고를 바꾸는 것입니다. 조지아 주립대학의 데이비드 슈워츠 교수는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를 말하면서 "성공하는 사람은 키나 체중, 학력이나 집안 배경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크기에 따라 평가된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 시도해 보았는데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KFC의 창업자인 커널 샌더스는 스스로 고안한 닭튀김 제조법을 가지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할 때 무려 1005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발명한 에디슨은 전구를 개발하는데 만 번에 이르는 실패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J.K 롤링은 '해리포터'를 내기 위해 8개 회사로부터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뉴욕 백화점의 사장이 된 R. H. 매시는 일곱 번을 실패하고서야 간신히 뉴욕 백화점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홈런 왕 베이브 루스는 1,330번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했답니다. 영국의 소설가 존 크리시는 753번을 거절당한 뒤 첫 소설을 출간했고 그 뒤 563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성공확률이라도 계속 시도하면 그 확률은 예외 없이 100%에 가까워집니다. 성공 확률이 1%만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도전하는 친구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 만나면 자신도 치료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다할지라도 여전히 장애물은 있습니다. 마음의 장애물을 제거한다고 자신의 신체적인 장애물까지 제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 앞에 도전을 접어야 할 형편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스스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은 도전하고 싶은데 돈이 없고, 마음은 도전하고 싶은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마음은 도전하고 싶은데 머리가 둔하고, 마음은 도전하고 싶은데 환경이 받쳐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쉽게 도전하는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 중풍병자를 보십시오. 그의 도전을 도와주는 친구 네 명이 있었습니다. 그를 침상을 메고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중매쟁이입니다. 우리가 어떤 장애물 앞에서 도전하면 우리를 도와주는 친구들이 생기게 됩니다.
세상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다 적과 경쟁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있습니다. 동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줄 사람을 준비시켜 주십니다. 네 명의 믿음의 사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을 보고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약점을 가지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약점을 보완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위로해 주고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어떻게든 도우려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희생을 감당하든지 그를 도와 그의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예수님을 만나게 할 친구들은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생명을 구원할 요나단을 하나님께서는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바울에게는 자신을 진정 이해해 주는 바나바 같은 사람이 있었고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만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 홀로 외로이 신앙 생활하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 칠 천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시킬 자로 세웠을 때 다섯 번이나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론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내가 못해도 하나님이 일하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못해도 하나님은 내 문제를 해결해줄 하나님의 사람을 곳곳에 준비시켜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어 내 문제를 풀어 주십니다.
지난 3월 14일 신문을 보니까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인 조영찬 전도사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지난 해 말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 영화제에서 아시아권 최초로 대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이승준 감독)의 주인공입니다. 목회자가 되려고 3월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저 같은 시청각장애인에게도 도전은 무한합니다." 그가 이렇게 꿈을 향한 끝없는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아내는 다른 사람보기에는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키가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 닿을 정도인 1m 20cm라고 합니다. 세살 때 허리를 다쳐 척추장애인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내 덕분에 달팽이처럼 느리게나마 세상 속으로 그가 나오게 되었다비다. 바로 아내가 그의 눈과 귀가 되어 준 것입니다. 아내가 강의실에서 점화로 강의 내용을 전달해 준 덕분에 지난 달 나사렛대 신학과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도전했답니다.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결혼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만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아내와 같은 날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답니다.
인생은 부족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서 망하는 것 아닙니다. 성격이 잘 못되었다고 망하는 것 아닙니다. 공부를 좀 못하고, 신체적 결함이 있다고 망하는 것 아닙니다. 주변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실력만 있으면 좋은 직장을 얻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문 직업알선업체를 찾거나, 취직 시험을 통해 취업할 확률은 20퍼센트 정도이고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소개받아서 취업할 확률은 55퍼센트나 된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연고를 통해 취업할 확률이 3배 이상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친구처럼 자주 만나는 사람을 통하여 17퍼센트 성공할 수 있고, 어쩌다 드물게 만나는 사람을 통하여 28퍼센트 성공할 수 있으며, 간혹 만나는 사람을 통하면 55퍼센트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사회과학자들은 '약한 연결의 강한 힘'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를 도와 능력을 한계를 뛰어 넘게 하는 분은 꼭 잘 아는 사람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헬렌켈러가 뜻하지 않게 좋은 선생님 만나니까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해해 주고, 용서해주고, 끝까지 참아 주고 기도해주고 인도해주고 품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망하지 않습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아론과 바나바, 요나단 같은 사람, 숨겨놓은 7천명의 동역자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내 능력 없다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홀로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할 힘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같이 일할 사람 보내 달라고 기도하며 도전해야 합니다. 네 명의 친구는 참 믿음이 좋은 친구였습니다. 우리도 그런 친구 만나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하고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 적극적으로 도전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장애물 앞에서 모험적 도전
마음의 장애물을 뛰어넘고 신체의 장애물을 뛰어 넘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 앞에 가보니 인의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장애물입니다. 막상 가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어 예수님께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질병을 앓고 있는 자들이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동종 경쟁자들입니다. 교회에 왔는데 예수님은 좋은데 목사님의 위선이 싫은 것입니다. 교회에 와 보니 옛날 술집에서 행패 부리던 사람이 교회의 장로라고 있는 것입니다. 사기 친 사람이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각종 사람의 장벽이 있습니다. 오늘 날 말하면 해결한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체의 장애가 능력의 한계라면 사람들로 인해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은 방법의 한계입니다. 마음의 한계를 뛰어 넘으니까 능력의 한계가 다가오고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으니까 방법의 한계가 다가 온 것입니다. 이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귀찮은데 잘되었다. 그만 가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방법의 한계가 핑계거리를 찾는 요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전의식이 강하지 않는 사람들은 핑계거리로 삼고 포기해 버립니다. 길이 막힐 때 방법이 없을 때 핑계거리를 찾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끝없는 핑계거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때문에, 목사님 때문에, 교회 때문에, 자식 때문에, 환경 때문에, 돈 때문에, 시설 때문에, 회사 일 때문에, 사업 때문에, 누구 때문에, 구실과 핑계는 얼마든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핑계가 많으면 은혜 받기가 어렵고, 신앙이 자라지 않고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필요한 것이고 은혜가 크게 느껴지면 질수록 간증 거리는 더욱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험적 도전으로 장애물을 극복합니다.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얼마나 거추장스럽겠습니까? 침상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리고 지붕을 뜯어 침상을 내릴 만나 구멍을 내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다. 그 친구를 고쳐야겠다는 집념입니다. 어떻게든 예수님께만 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중풍 병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스틴 가옥은 지금처럼 아파트가 아닙니다. 지붕은 덤불이나 갈대에 진흙을 이겨서 평평하게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뜯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남의 집입니다. 밑에는 예수님과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설교하는 시간입니다. 상식에도 맞지 않고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평상시가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상식이나 예의가 통하지만 목숨이 걸린 전시입니다. 위기상황입니다. 열차에 휘말려 가는 숙녀가 있다면 손이 아니라 머리라도 잡아 끄집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열차에 빨려 들어가는 숙녀를 보며 숙녀의 손의 예의 상 어떻게 잡느냐고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긴급성의 문제입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중요성의 문제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죽어 가는 데 예의만 찾고 상식만 찾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선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전할 때 방법의 한계성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꼭 문으로 들어가는 것만 전부가 아닙니다. 지붕이라고 뚫고 내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꼭 골리앗을 이기는 데 칼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맷돌로도 이길 수 있습니다. 홍해를 건너는데 꼭 배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데 꼭 성을 부술 대포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38년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환자가 꼭 그 연못에 들어가야만 낫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꼭 포도로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물로도 만들었습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알려진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고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벌과 파리의 환경대응 방식이 다르다고 합니다. 몇 마리인가의 벌과 같은 수의 파리를 병 속에 넣어 바닥을 창 쪽으로 해서 병을 뉘어 놓습니다. 그러면 벌은 밝은 방향에서 출구를 찾다가 끝내 지치거나 굶어 죽을 때까지 병 밑바닥에서 악전고투 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파리는 2분도 채 되지 않아 반대쪽 병 주둥이로 나가 버린답니다. 이 실험에서 벌이 빛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하여 항상 그 쪽으로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벌의 높은 지능이 오히려 우환이 된 것입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성실성입니다. 끈기입니다. 끈기보다 성실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해주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만나면 된다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이들의 도전을 보고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수행하지 않으면 성공할 확률은 0%에 불과합니다. 머릿속의 상상으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단지 공상에 불과합니다. 비록 실패한다하여도 실패할 확률을 넘어서는 시도를 하면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포기에 직면한 순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 성공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도전한 사람들입니다.
소년시절의 안데르센의 꿈은 오페라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11살에 돌아가셔서 직물공장 직공이 되었지만 가수가 되는 꿈은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유명한 음악가를 찾아다니며 제자로 삼아 줄 것을 부탁하였지만, 그를 받아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덴마크 왕립 음악학교 교장선생님 댁에 살면서 노래공부를 하였지만 지독한 감기로 인하여 목소리가 변질되어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망하지 않고 가수가 되지 못하면 배우라도 되겠다고 결심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 끝에 간신히 배역 하나를 얻어 첫무대에 섰지만 결과는 "당신은 재능이 부족하므로 무대에 설 생각을 마시오"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절망하지 않고 노래도 못하고 연기도 못한다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동화를 쓰기 시작했으며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게 되었답니다.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물을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게 하는 것입니다.
토인비가 그의 책 『역사의 연구』에서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이나 문명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했다고 말했듯이 지나치게 좋은 환경에서는 문명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토인비는 이집트 문명, 수메르 문명, 미노스 문명, 인도 문명, 안데스 문명, 중국 문명 등이 가혹한 환경에 성공적으로 응전하여 이룬 문명이라고 말합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천문학과 태양력이 발달했고 범람 후의 경지 측정을 위해 기하학이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도르래가 발명되고 수레가 등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기반기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 문명도 마찬가지였답니다. 고대 중국 문명은 기후가 따뜻하고 강물의 흐름이 완만하며 농토가 비옥하여 농사짓기에 안성맞춤인 양쯔강 유역이 아니라 혹독한 추위와 해마다 범람을 반복한 황허강 유역에서 꽃피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골리앗 때문에 영웅이 되었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그녀를 괴롭히는 브닌나 때문에 기도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피는 꽃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정의할 때 성공하기 위한 필요한 조건은 3가지입니다. 첫째 목표를 정하는 것이고 둘째 실행하는 것이며 셋째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던지 위험은 따르게 마련입니다. 모험을 두려워하면 도전하지 못합니다. 위험이 있다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망사고 원인의 20퍼센트는 자동차 사고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탈 수 없습니다. 비행기, 열차, 배로 여행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고 중 16퍼센트가 이런 것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거리에 걸어 다닐 수도 없고 집에 있을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고의 15퍼센트가 거리에서 일어나고 모든 사고의 17퍼센트가 집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소매상협회에서 세일즈맨이 거래실적과 집념의 상관관계를 연구 공개했습니다.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한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25%의 세일즈맨은 두 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15%의 세일즈맨은 세 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세일즈맨 중 오직 12%만이 네 번 이상 권유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의 세일즈맨이 전체 판매량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88%의 세일즈맨이 판매한 상품은 고작 20%에 불과했습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정상은 자리를 내어 줍니다.
도전의 결과
불가능에 도전한 결과는 결국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 용서의 선포를 들었습니다. 영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질병 뿐 아니라 영적인 질병 죄 사함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타락과 방탕을 즐기며 나쁜 죄악에 빠져 있다가 중풍병에 걸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든 이 사람은 죄가 병의 원인이 되었습니다(요5:14). 이 사람에게는 육신의 질병보다 더 심각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할 죄 용서를 받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죄 용서를 선포하는 예수님을 보며 신성모독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데 어떻게 인간이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그들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도 병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 예수님은 죄 사함을 선포하였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죄를 용서함으로 영혼의 질병을 치유시킬 수도 있으시고 육신의 질병도 치유시킬 수 있는 분이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보여 주길 원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질병,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통해 우리 예수님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신앙적인 도전을 통해 곧 일어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장애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켜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놀랬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심히 두려워하며 놀라운 일을 보았다고 간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