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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신앙생활(10) 유혹과 싸움(창세기39:7-1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590 추천수:1 220.120.123.244
2019-03-10 14:42:32

 

승리하는 신앙생활(10) 유혹과 싸움

창세기39:7-10

 

우리는 계속해서 신앙인의 승리에 대한 말씀을 시리즈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지난주는 핍박과 싸움이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싸움인데 사단은 두 날개를 사용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단은 때로는 우는 사람처럼 달려들어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그것이 핍박입니다. 이 핍박은 위협, 사고, 질병 등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좋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때때로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니까 사단은 믿는 사람들을 넘어뜨릴 때 외적으로는 세상의 힘을 이용한 핍박, 내적으로는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통한 유혹을 사용합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겨야 승리하여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다니엘서를 통하여 핍박을 이기려면 첫째, 핍박을 받기 전 말씀의 원칙을 붙들어야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둘째, 핍박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 핍박이 끝난 후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이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유혹이란 꾀어서 좋지 않은 길로 이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 없는 유혹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음식의 유혹, 성적인 유혹, 소비의 유혹, 돈의 유혹, 권력의 유혹, 미디어의 유혹, 거짓말의 유혹, 이단의 유혹 등 수 없는 유혹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유혹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유혹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떤 유혹 앞에서도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해야 합니다.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이것이 중요합니다. 요셉은 17살에 바로의 친위대장 집에 형제들에 의해 은 20에 인신매매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0년 동안 성실히 일하여 그 집의 일과 재산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미인이었던 라헬의 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닮아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습니다. 27살의 꽃미남이었습니다. 정조 관념이 흐린 보디발의 아내가 27살 먹은 꽃미남 자기 집 종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눈짓하며 한 번 같이 자자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종교도 다르고 신분도 다르고, 격이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몸뚱이만 보이는 것입니다.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욕정을 품고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대부분 유혹은 보는 눈으로부터 다가옵니다. 유혹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을 통해 오는 데 시각의 유혹이 가장 큽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유혹하는 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음식을 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친분이 있는 사람이 성경공부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말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말로 노골적으로 유혹을 합니다. 유혹이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접촉합니다. 붙듭니다. 강력한 지속력이 있습니다. 포기할 줄 모릅니다. 사단을 우리를 유혹할 때 적당히 유혹하지 않습니다. 넘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주 집요하게 유혹합니다. 아담을 유혹할 때도 그랬고, 예수님을 유혹할 때도 그랬습니다. 10절에 보십시오. 날마다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청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옷을 붙잡고 강권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런 강력한 유혹과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요셉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돈 있고, 권력 있는 아줌마의 정부가 되면 아파트도 생기고 자가용도 생길 수 있습니다. 지배력도 더 확보하고, 더 좋은 조건의 미래가 보장될 수도 있습니다. 편하게 일하고 즐길 수 있고 해외에서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습니다. 안락과 쾌락이 보장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은 남편이 이렇게 유혹할 수 있습니다. 이단들이 각종 좋은 것을 주겠다고 성경공부에 참여하자고 이렇게 유혹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요셉은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합니다. 의사를 분명히 밝힙니다. 유혹으로부터 탈출하려면 이 단계가 중요합니다. 어떤 불이익이 다가 온다 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처음부터 하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해도 단호하게 결단하는 것입니다. 중간 지점, 회색 지점에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보십시오. "주인이 집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는 일이 없으니 이 집에는 나만한 권한을 가지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은 나에게 아무것도 금하지 않았지만, 당신만은 금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성경의 어떤 말씀이 떠오릅니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유혹에 넘어간 내용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주시고 선악과만 따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그 '하나'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아무리 달콤하게 유혹해도 처음부터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는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와처럼 하면 안 됩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더냐?"라고 유혹하자 하와는 "동산 나무의 열매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죽을까한 것이 아닙니다. 정녕 죽는 것입니다. 그 길로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유혹에 덫에 걸리면 결국 망합니다. 요즘 이단들이 교회까지 침투하여 성경 잘 가르치는 좋은 선생님이 있으니 한번 배워보자고 유혹합니다.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이단에 빠지면 인생 망가집니다. 가정이 파괴됩니다. 추하게 됩니다. 명예와 권력을 잃습니다. 가난해집니다. 인생 초라해집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사탄이 유혹합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예수님께 먹는 것으로 시험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다니엘을 보십시오. 뜻을 정하여 단호하게 우상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다이어트를 하시려면 음식 유혹이 다가오면 오늘 한 번만 먹고 내일 먹지 말자라고 하면 그것 실패합니다. 이단이 유혹하여 복음방에 가자고 하면 한 번 가보지 하면 실패합니다. 단호하게 처음부터 가지 않아야 합니다. 유혹은 늪과 같아 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중독은 유혹에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중독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유부단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착한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마음이 좋아 거절하지 못하는 ‘거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쉽게 유혹에 넘어갑니다. “딱 한 번 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누구나 이렇게 사는데 뭘” 이때 정확하게 “아니오”라고 선을 그어 거절해야 합니다.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배우는 “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Foot in the Door)”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유혹할 때 사단이 써먹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사냥하는 이단들이 이런 수법을 사용합니다. 신문사 인터뷰라고 설문 조사를 합니다. 심리상담소나 연구기관이라고 설문조사를 하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쓰게 합니다. 영어공부, 봉사활동, 스피치, 자녀교육, 심리검사, 상담, 대학 동아리, 취업, 무료성경공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발들여놓기를 합니다. 결국은 그들이 원하는 성경공부로 인도하여, 그들이 만들 사상을 주입시켜 교리 중독이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중독이 되어 이성적 사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분별력이 없어져 학업을 포기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그것을 가족이 반대하면 가출하고 이혼해 버립니다. 이단들은 치밀하게 간첩처럼 작전을 세우고 교회에 침투하여 교인들을 포섭해 “산옮기”라는 이름으로 오랜 동안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교인들과 친하게 사귀어 목회자와 교회의 흠을 들어내어 교회를 분열시키고 결국 교인과 교회를 탈취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명백하게 구원의 진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우리의 구원을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절대 다른 이단의 교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단의 교주는 자신을 보혜사, 재림주로 대치시키는 선한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종교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수십년 교회에 다녔는데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유혹이나 육적인 유혹이나 유혹이란 늘 새롭고 달콤하고 매혹적입니다. 우리가 우를 불행하게 하는 유혹으로부터 승리하려면 단호하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면전에서 문닫기(Shut door in the face)’를 해야 합니다.

이단의 유혹, 음식의 유혹, 이성의 유혹, 물질의 유혹, 성적 유혹, 명예에 대한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 등이 다가 올 때 한 발을 들여놓지 말고 첫발을 들여놓지 않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37절에서 예수님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합니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로 단호하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5:12)에도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받음을 피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2. 유혹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혹 앞에서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 치밀하게 접근하고 유혹은 너무 달콤하고 당장 주는 혜택이 많으며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유혹 앞에 우리의 의지라는 것이 너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머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 수도를 한 사제가 수녀 두 분과 택시를 탔답니다. 한쪽에는 젊고 예쁜 수녀가 앉고 한쪽에는 늙고 안 예쁜 수녀가 앉았답니다. 차가 가면서 좌회전 우회전하면서 쏠림현상이 일어납니다. 늙고 안 예쁜 수녀 쪽으로 기울어질 때는 “주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젊고 예쁜 수녀 쪽으로 기울어질 때는 “주여, 주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는 우스갯소리입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인간의 의지는 강한 것 같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참 무기력합니다. 친한 친구가 현 대통령이 나쁘다고 막 거품을 품고 비난하면 거기에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다니면서도 친한 집사님이 막 담임목사님 나쁘다고 욕하면 거기에서 “아니요”라고 말하면 동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살면서 이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요셉은 이렇게 철저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하며 유혹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성경 기록에서 그 비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입니다. 단지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의식을 신전의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서 신전의식이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신전의식이 강한 사람은 양심이 발달된 사람들입니다. 둘만 있고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나를 cctv로 찍고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혼자 책상 위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더러운 그림이 나오면 그것을 클릭하지 않게 됩니다. 실제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해보았답니다. 기부를 받을 때 컴퓨터 화면에 눈을 그려 놓으면 더 많이 사람들이 기부한다고 합니다. 대학 휴게실에 커피 자판기를 설치한 후 셀프서비스로 양심껏 돈을 지불하게 하고 첫 주에는 자판기 앞에 눈 사진을 붙여 놓았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눈 사진 대신 꽃 사진을 붙여 놓았답니다. 상당 기간 지속해서 바꾸어 가며 실험을 했는데 눈 사진을 붙여 놓았을 때 더 많은 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누구를 의식하면 인간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악한 것을 좋아하고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놓아두면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도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모세와 같은 사람도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도 밧세바를 범하는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아간을 보십시오. 그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 점령을 할 때 물질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보십시오. 물질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나는 늙었기 때문에 유혹에 안 넘어갈 것이고 장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혹은 죽을 때까지 수시로 다가옵니다. 성역 없이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유혹은 숨 멈추는 순간까지 다가옵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지만, 사탄이 아담을 유혹한 것처럼 여전히 모든 사람을 아담을 유혹한 방법으로 유혹합니다. 먹어보라 산다는 것입니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돈을 벌게 하고 출세하게 하고 기쁨과 쾌락을 줄 것이라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것은 요셉은 그런 체험이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각종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인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노예로 팔려왔지만 이만큼 출세한 원인이 무엇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인도 여호와께서 함께 그가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여서 하는 일마다 잘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이 왜 복을 받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요셉을 위해 복을 내려 그의 집안일이 잘되고 재산이 날로 늘어난 것입니다. 좋은 것은 사탄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에 빠지면 좋은 것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쾌락과 명예와 돈을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단 교주에게 빠지면 구원이 주어질 것 같지만 결국 지옥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단이 유혹으로 주는 것은 결국 불행과 파멸, 죽음입니다.

유혹에 넘어간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 아간 가족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참하게 온 가족이 죽었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능력의 사람 삼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눈이 뽑혀 연자 맷돌을 돌리다 죽었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아브라함이 첩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끝없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임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3. 유혹과 싸움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지속적으로 유혹받을 환경을 차단해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신전의식을 가지고 유혹을 이기면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경험해 보면 어떤 것 같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라’는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술에 약한 분이 술을 앞에 놓고 하나님이 보시니까 술을 먹지 말자고 다짐을 해 보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양심적 신앙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또 술을 마십니다. 달콤한 과자를 책상 앞에 놓고 하나님이 보고 있다는 신앙으로 건강을 위해 유혹을 이기자고 하지만 그것 마지막까지 이길 수 있습니까? 참고 참다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집어 먹습니다. 게임 중독자가, 드라마 중독자가 컴퓨터 앞에서 텔레비전 앞에서 지속적으로 유혹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유혹과 싸움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중년 여인이 지속적으로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은 어떻게 합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하는 것은 “함께 있지도 않음”입니다. 요셉은 거절하며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도 않고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유혹의 자리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피해버리는 것입니다. 논쟁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유혹받을 자리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유혹을 이기는 무기입니다. 눈앞에 유혹 거리가 없으면 싸울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유혹을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공부에 방해가 되는 스마트폰을 공부할 때는 아예 꺼버리거나 어머니에게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유혹할 때 이단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면 만든 이단성경공부를 하는 복음방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셉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직장에 가야 합니다. 그때 아무도 없을 때 이 아줌마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요셉은 어떻게 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 강요를 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밖으로 나감”입니다. 옷을 버려두고 도망을 갑니다. 유혹의 현장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비겁한 것같지만 도망가고 나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혹의 현장을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한 번만 넘어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유혹은 한 번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피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파란 물속에 들어가면 파란색이 들고 빨강 물속에 들어가면 빨간색으로 물들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친구 관계가 끊어질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직장에서 쫓겨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비난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유혹은 현장에서 피해야 합니다. 현장에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하여 멀리 도망가는 것입니다. 유혹의 현장에 머물러 있으면 언젠가는 범죄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잠 6:27)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잠 6:28)"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유혹의 현장에서 바동거리며 무모한 짓을 하며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을 두지 말고 아쉬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주 단호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30)"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정한 장소에 가게 해서도 안 되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도록 우리를 유혹하려는 사람들과 같이 있게 해서도 안 됩니다. 유혹으로부터 피하지 않으면 그 유혹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노련한 항해사라도 암초가 깔려 있는 해역을 시험 삼아 지나지는 않습니다. 유혹에 넘어질 때 어떤 환경 아래 놓여있습니까? 그 환경을 피하여야 합니다. 계속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제거하여야 합니다.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를 멀리해야 합니다. 떠나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가 롯의 아내, 게하시, 아간, 유다가 재물에 대한 유혹과 싸움에서 실패하고 망했습니다. 과감하게 떠나지 못해 암논과 하몰의 아들 세겜(창34), 야곱의 아들 르우벤(창35:22), 삼손이 성에 대한 유혹과 싸움에서 실패했습니다. 떠나지 못하고 결국 발람(민22:12)이 명예에 대한 유혹과 싸움에서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유혹 앞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이익을 당할까 봐서입니다. 모욕을 당한 아줌마가 분을 참지 못하고 요셉에게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주인은 분노하고 요셉을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그러나 불이익을 받았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누가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간수장의 사랑을 받습니다. 감옥 안에서 제반 업무를 맡습니다. 전혀 간섭하지 않을 정도로 신뢰를 얻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가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가서 왕의 신하를 만나게 되고 그 일로 결국 바로에게 발탁되어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언약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창 15:13)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4)"

요셉은 모든 유혹을 이기도 이 사명은 완수했습니다. 국무총리가 되었고 형제들을 애굽으로 오개 하여 출애굽할 때까지 살게 만들며 출애굽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만들었습니다.

유혹을 이기도 떠나면 나중에 친구도 알아줍니다. 사장도 알아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유혹만 이겨도 우리 인생은 성공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유혹 이기지 못하여 롯의 아내, 게하시, 아간, 유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재물의 유혹을 이겨 성공했습니다.(창13:8,창14:19-20,창14:22) 성에 대한 유혹 이기지 못하여 다윗(삼하11:2,삼하11:6-13), 암논과 하몰의 아들 세겜(창34), 야곱의 아들 르우벤(창35:22), 삼손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창39:9) 성에 대한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명예에 대한 유혹에 발람(민22:12), 야고보와 요한(막10:37)은 실패했지만 기드온(삿8:23)은 성공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유혹을 에서는(창25:27-34) 실패했지만 다니엘(단1:8)은 성공했습니다.

로버트 그린은 "유혹의 기술"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유혹으로 통한다"라고 말했듯이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는 수없는 유혹이 있습니다. 눈만 뜨면 "욕망을 채워줄 터이니 나를 선택하라."는 광고가 널려 있습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고후11:14)로 가장하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속임수의 명수입니다. 거짓의 아비 사단을 유혹으로 집요하게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혹과 싸움에서 꼭 승리해야 합니다.

유혹과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저 어떤 유혹 앞에서도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해야 합니다.

유혹과 싸움에서 이기려면 홀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유혹과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지속적으로 유혹의 현장을 피해야 합니다. 한 번 피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피하여 유혹으로부터 튀어나온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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