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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어야 할 성탄의 기쁨(마2:1-1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1839 추천수:17 112.168.96.71
2012-12-23 17:20:19

회복되어야 할 성탄의 기쁨
마태복음2:1-12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릴 때 성탄절이 되면 기쁘게 성극 준비를 하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는데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지 못한 처녀가 있었답니다. 점점 성탄의 기쁨은 없어지고, 성탄절 전야가 되어도 교회에 나가기가 싫어졌답니다. 수십 번 선을 보았는데 짝을 찾지 못하자 다른 사람과 일절 연락을 끊고 두문불출하며 살았답니다. 아무도 그녀를 찾아 주지 않았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그녀는 간절히 기도를 드렸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어릴 때처럼 이번 크리스마스에 저희 집을 방문해서 선물을 주세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놀랍게도 그녀의 집에 산타클로스가 선물자루를 들고 나타났답니다. 그녀는 외롭게 사는 자기 집을 찾아준 산타클로스를 보자 감동의 눈물이 흘러나왔답니다. 그러자 산타클로스가 한 마디 말을 하며 선물자루를 가지고 사라져 버렸답니다. 무슨 말을 했을까요?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 안 준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게 선물은 안주신대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밤에 다녀가신대” 이틀 있으면 성탄절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웃지 않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보통 아이들은 하루에 300-500번 웃은데 성인들은 7-10번 웃는다고 합니다. “일소일소 일로일로”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 번 웃으면 그만큼 더 젊어짐 한 번 노하면 그만큼 늙어진다는 말입니다. 한 번 웃음은 에어로빅 5분 효과가 있고 하루 15초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고 합니다. 웃음도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실제로 기뻐하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학자들이 조사를 했습니다. '뒤센의 미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광대뼈 근처와 눈꼬리 근처의 얼굴 표정을 결정짓는 근육을 발견해낸 뒤센을 기려 붙인 이름입니다. 하커와 켈크너라는 학자가 30년간 대학생 141명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뒤센의 미소가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조사했답니다. 각각 27세, 43세, 52세 되는 해에 연구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비교하였답니다. '뒤센 미소'가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건강하였으며 병원에 간 횟수도 적었고 생존율도 높았답니다. 결혼 생활만족도도 높았으며 이혼율은 낮았답니다. 평균 소득수준도 높았답니다. 혹 뒤센의 미소를 지은 여성들이 예쁘고 매력이 있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하여 연구하였지만 그러나 예쁘고 안 예쁘냐는 그 사람의 건강이나 행복한 결혼 생활 혹은 소득 수준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건강은 웃음의 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잘 웃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김종인 원광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60대 이상 389명을 분석했습니다. 100세 이상 사는 노인 109명, 80-89세 노인 135명, 60-69세 노인 145명을 3개 집단으로 나눠 그룹 간 장수 요인을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100세를 넘겨 장수하는 노인은 80대 노인보다 10배, 60대 노인보다 12배 더 많이 웃는다고 합니다. 웃으면 뇌에서 엔도르핀 분비가 촉진되고 모르핀 분비가 증가되어 기억력이 향상되고 긴장이 완화된다고 합니다. 심장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억제되어 혈압, 혈당이 정상치가 유지되며 혈액순환이 개선된다고 합니다. 폐에는 신경조직 이완을 통해 폐 속 깊은 곳까지 신선한 산소가 공급된다고 합니다. 위와 간, 대장 등 소화 기관에는 바이러스 저항력을 증가시켜 각종 소화기 암을 예방해 준다고 합니다. 엔도르핀 증가로 요통이나 디스크의 통증 완화 시켜주고 억제한다고 합니다. 웃으면 혈액에는 면역기능 증가, 암세포 공격,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수치를 감소시켜 건강하게 한다고 합니다. 『몸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조지 굿하트는 '사람의 생각은 몸에 존재하는 60조 개의 세포가 가장 빨리 눈치 챈다'고 말합니다. 기뻐하는 것은 순식간에 세포가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성탄절입니다. 요즈음 대선이 끝나고 내가 지지한 사람이 당선이 안 된 분들은 웃을 일 없다고 할 것입니다. 경기가 안 좋아 우울한 분들 기쁨이 없다고 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진학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한 분들 기쁨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뻐하다보면 기쁜 일 생기는 것입니다. 눈이 웃으면 마음도 웃고 마음이 웃으면 인생도 웃게 됩니다. 입술이 웃으면 인생도 활짝 펴집니다. ”웃음은 빙산도 녹인다“의 저자 노사카 레이코는 ”웃음 하나로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 17:22).라고 말씀합니다. 기쁜 성탄절입니다. 기쁨을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의 기쁨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기뻐할만한 일이 없는 우울한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고, 포악한 군주 헤롯이 통치로 정치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빈부격차의 심화로 상대적 박탈감이 심할 때였고, 가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릴 때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탄생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탄생을 보고 기뻐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그들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9절 보십시오. 동방박사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무엇 때문에 기뻐하였습니까? 그들은 별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10). '매우'는 충만이 넘치는 상태입니다. 크게(메가덴)은 '크고, 놀랍고, 장엄하다'는 뜻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9절을 보니까 그들이 기뻐한 것은 단순한 별이 아닙니다. 그 별이 자신들을 인도하다가 아기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그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메시아이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야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찾던 메시아를 발견한 것입니다. 박사는 "마고이"입니다. 하늘에 있는 별을 연구해서 인간의 운명을 점치고, 꿈을 해석해주는 점성학자로 추정이 됩니다. 동방은 중동의 이란 이라크 지역,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 메시야 오심에 대하여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메시야를 대망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 분을 만난 것입니다(민수기 24장 17절) 그들은 머나먼 길, 고난의 길을 낙타를 타고 왔을 것입니다. 많은 세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사막입니다. 살벌한 광야길입니다. 물도 없습니다. 폭양이 내리쬡니다. 괴로 워도 힘들어도 가야한다고 결심하고 다짐하고 걸어가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생 끝에 그 메시야를 만났던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적이고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쁨이 충만한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왜 기뻐합니까?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기뻐합니다. 아이들이 대학에 합격하면 기뻐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기뻐합니다.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기뻐합니다. 돈을 많이 벌면 기뻐합니다.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쁨이 발생되는 원인은 개개인의 욕구와 만족도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욕구가 충족될 때 긍정적인 정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정동(情動)이라는 말은 희로애락과 같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감정. 진행 중인 사고 과정이 멎게 되거나 신체 변화가 뒤따르는 강렬한 감정 상태를 말합니다. 긍정적인 감정의 대표적인 것이 기쁨입니다. 개인의 욕구가 충족될 때 기쁨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쾌해지고 슬퍼지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된 분들은 기쁠 것입니다. 그 욕구가 강력하면 강렬할수록 기쁨은 더 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들은 슬플 것입니다. 욕구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더 슬퍼 선거 후유증을 격고 있을 것입니다. 텔레비전 뉴스도 보기 싫고, 신문도 보기 싫고, 밥도 먹기 싫고 모든 것이 재미가 없고 의욕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기쁨은 욕구 충족이 이루어질 때 일어나는 대표적인 감정입니다.
성탄절인데도 설렘과 기쁨이 없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기대나 바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처럼 간절함이 없는 것입니다. 동방박사와 같은 기대가 없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나와 상관이 없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내 결혼기념일이나 남편이나 아내의 생일보다 의미가 없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산타클로스가 성탄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선물로 기뻐하지 말고 선물을 주신 분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우리가 참 쉼만 참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무리 우리가 가야할 길이 사막처럼 어렵고 힘들어도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산다는 한 가지 이유로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신앙인이 되어서도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죄입니다. 단테는 { 신곡} 에서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넣어 놓았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여기 왔느냐?"고 묻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의 말이 "다른 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 믿는다고 하면서 기쁘게 살지 못하고 늘 우울하게 한숨만 쉬며 산 죄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말하게 합니다. 신앙인이란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신론적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신앙인의 3대 삶의 지침을 말합니다. 그것을 "항상 기뻐하라 (살전5:16)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이것은 신앙인의 삶의 3대 원리입니다. 그 중 무엇이 가장 앞서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성탄절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기쁨을 회복하는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괴로웠던 것, 슬프고 고달팠던 것 다 십자가에 묻어 버리고 희망의 메시야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쁨을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미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모두 다 나를 떠난다 하여도 우리 주님만은 나를 지켜 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진정 주님 한 분으로 기뻐하며 살 수 있다는 고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복음 찬송: 주예수 사랑 기쁨 내 마음 속에 내 마음 속에 내 마음 속에 있네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맘에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 맘에)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눔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기쁨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 기쁨은 나누는 기쁨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 만난 기쁨을 어떻게 표현합니까?(11)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림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보물은 당시에는 제일 귀한 것이요 가장 값진 것입니다. 이 예물은 의미가 있습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예물로써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심을 보여줍니다. 유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므로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레2:1,2) 몰약은 썩지 않게 하는 약품으로써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 한 것입니다.(요19:39,40)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통하여 예수님께 드림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렇게 기뻐하는데 오늘 성경을 보면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헤롯대왕입니다. 똑같이 예수님 오실 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기뻐하지 못할까요? 예수님 때문에 자신이 손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당대 유대 땅에서 최고의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참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에서의 후손인 이두매 사람입니다. 에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유대인을 다스릴 만한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유대의 왕이 되었고 유대의 왕으로 있는 동안 로마의 황제, 유대 총독이 몇 번씩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25세 젊은 나이로 주전 37년에 취임해 예수님 오시기까지 유대를 통치하는 왕으로 재임하였습니다. 그의 권력욕이 대단했습니다. 움켜쥐기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지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10명의 아내를 거느리며 아내와 아들들을 죽였습니다. 첫째 부인의 첫 아들, 두 번째 부인의 두 아들 죽였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뿐입니까? 예수님이 태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두 살 이하 유아들을 비참하게 살해하였습니다. 오죽하면 "헤롯의 왕자보다는 헤롯의 돼지가 더 행복하다"하는 당시 속담까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종교적 최고 지도자 아리스도 불로가 대제사장이 되었을 때, 오순절 행사 때 백성들이 그를 환호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를 초청하여 파티를 열었는데 그 날 무더워서 목욕파티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장난처럼 대제사장을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고는 그가 익사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헤롯에게 있어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결코 기쁨이 아니었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크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소동할 뿐입니다(3). 거짓을 말합니다(8). 죽이려 합니다(16). 작전을 세워 제거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위치, 자기의 세력, 자기의 영향력에 어떤 침해가 되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마음의 평화도 기쁨도 없습니다. 헤롯은 다윗도 짖지 못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유대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초점이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모든 초점이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 산 사람입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권력 잃지 않을까 평생을 불안하게 살아갑니다. 행복과 기쁨이 없습니다. 자식들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들어갔고 자신은 악질이 악화되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기쁨에는 얻는 것을 통해 얻는 기쁨도 있지만 나눔을 통해 얻는 기쁨도 있습니다. 승리해서 기쁘고, 소유해서 기쁘고, 합격해서 기쁘고, 사랑받아서 기쁘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손에 넣어서 기쁘고, 돈을 벌어서 기쁘고, 선거에 당선되어 기쁘고, 명예를 얻고 기쁘고, 연구 성과를 얻어 기쁘고, 이런 소유의 기쁨, 성취의 기쁨, 욕구 충족의 기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욕구가 실현될 때만 즐겁습니다. 욕구를 실현하지 못하거나 받은 것을 상실하면 금방 슬픔에 잠기고 기쁨이 큰 만큼 슬픔도 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기쁨의 특징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각적인 기쁨입니다. 성취 소유에 의한 기쁨의 특징 중 아주 좋지 않은 것은 도덕성 윤리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둑이 도둑질을 해서 자기가 가지고 싶어 하던 것을 소유할 때도 엔돌핀은 분비됩니다. 사기꾼이 남을 속이고 남을 괴롭히면서 자기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에도 엔돌핀은 나옵니다. 성 범죄자가 지나가는 여인을 강간해 놓고도 기뻐합니다. 이 기쁨은 승자와 패자가 같이 누리는 기쁨은 아닙니다. 약자는 고통 받고 고통 위에 서서 승자는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성취의 기쁨보다 오래가고 더 즐거운 것은 주는 기쁨입니다. 있는 것을 주고 가진 것을 나눔으로 얻는 기쁨입니다. 주는 기쁨, 나눔의 기쁨, 드림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특징은 승자나 패자나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있는 자나 힘없는 자나, 약자나 강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가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도덕성이 있고 윤리성이 있습니다. 받아서 기쁘고 주어서 기쁩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이런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건강이 주어지면 건강으로, 지식이 주어지면 지식으로, 명예가 주어지면 명예로, 권력이 주어지면 권력으로, 재물이 주어지면 재물로, 그리스도께 드림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 드리는 기쁨이야 말로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어려운 이웃들과 우리의 것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은 일시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생이 다할 때까지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만난 기쁨을 계속적으로 간직할 수 있는 비법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헌신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성탄절은 나눔의 기쁨을 누려야할 절기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조금이라고 나누면 그 기쁨은 성취를 통한 기쁨보다 더 오래가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잘 되려면 남이 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보다 질 좋은 기쁨은 쌓음이 아니라 나눔에 있습니다. 물은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썩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옥수수 농장을 하는 농부가 신문에 5배 이상의 수확을 올리는 옥수수 종자가 개발이 되었다는 광고를 보고 종자를 사다 심어 5배 이상의 아주 큰 소득을 올렸습니다. 이를 보고 주변의 농부들이 찾아와 그 종자를 나눠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농부는 자신만 풍작을 거두고 싶은 욕심으로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매년마다 수확량이 줄어든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자 다른 농가의 옥수수 농사와 비슷해졌습니다. 농부는 그 씨앗을 판 사람을 찾아가서 사기꾼이라며 강력히 항의 했습니다. 그 씨앗을 판매한 사람이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이웃에 계신 분들이 무엇을 심었습니까?" "모두 보통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씨앗 판매자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이 종자는 우수한 종자지만 주변에 우수하지 않은 종자를 심었기 때문에 그 씨앗이 날라 와 이 종자와 섞이는 바람에 자꾸 희석이 되면서 수확량이 줄어 든 것입니다." 세상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곳입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인은 경제 민주화, 경제 정의, 복지 사회였습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성장과 분배인데, 분배의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성장은 했는데 부(富)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고 다수 대중은 빈곤해지는 빈곤화 성장 때문에 분노하는 국민이 많아진 것입니다. 세계 최빈국 대열에 있었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곳곳에서 대학 등록금· 비정규직· 중소기업· 빈민· 무상급식, 청년실업 등 각 분야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역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학 교수는 그의 책 <수준측량기: 더 평등한 사회는 왜 더 건강한가>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유아사망률도 높고, 살인율과 10대의 임신 비율이 높으며, 학업성취도는 낮고, 정신건강이 좋지 못하고, 장수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빈곤을 탈출하고 부를 축적했지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 신음 소리가 통곡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나눔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할 때입니다. 함께 사는 상생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나눔이 성공이 되는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입니다. 나눔은 손해가 아닙니다. 나눔은 박애의 근간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낮은 마굿간 말구유에 탄생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내년도 봉사하실 분을 임명하였습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시고, 빼앗긴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맡은 직분을 가지고 나눔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림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회복해야 할 기쁨 구원의 기쁨 나눔의 기쁨을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의 기쁨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쁨에는 성취의 기쁨, 주는 기쁨에서 더 나아가 누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을 지속적으로 누리는 기쁨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이 있는데 그것으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혼하여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는데 남편과 아내를 통해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력과 명예가 주어졌는데 그것으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으로 기쁨을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의 문제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헤롯도 제사장도 서기관도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헤롯에게는 권력이 주어졌는데 그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권력욕으로 평생 폭력적 삶을 살다 죽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이 어디에서 탄생할 것인가를 잘 알 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말 뿐입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어디에서 탄생할지 알고 있습니다(6). 그러나 그들에게 기쁨이 없었습니다. 냉철한 머리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할 좋은 기회를 가졌으나 그것을 놓치고 결국 그들의 지식으로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잡이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지식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대적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마27:1-2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결국 빌라도에게 넘겨줍니다. 단지 알 뿐입니다. 인생을 즐겁게 살았던 공자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라고 말하며 인생의 단계를 지와 호와 낙의 3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최고의 단계는 낙의 단계라는 것입니다. 음악을 아는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과 다릅니다.
소요리 문답에서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니체도 성경을 잘 알았습니다. 칼막스도, 사르트르도, 볼테르도 성경을 잘 안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니체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외치며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메모에서 "신은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내가 미칠 것만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결국 미쳐서 죽었습니다. 싸르트르는 그렇게 자유를 부르짖었지만 1980년 3월 불란서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폐수종을 죽을 때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가를 곁에 서있는 자기 아내에게 묻지 못하고 죽어갔다고 합니다. 볼테르(Voltaire)는 "100년 후에는 지구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미신가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욕을 퍼붓는 나를 가만 두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몸을 떨며 의사에게 6개월만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오, 이제 나는 지옥불에 들어가는구나!" 절규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지만 진정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평생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을 보십시오. 11절 말씀입니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며 기쁨을 누립니다. 그들이 찾아 온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메시야를 만나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크리스마스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주님을 경배하는 날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들의 지위에 비하면 마구간 초라한 곳에 나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큰 기쁨을 가지고 아기 예수님을 겸손하게 경배한 것입니다. 발달된 문명으로 예수님을 초라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초라한 마구간을 유치하게 생각하고 경멸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 때문에 주님을 보는 눈이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지위 때문에 주님께 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나의 가진 지위로, 나의 가진 건강으로, 나의 가진 학식, 나의 가진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경배하는 데 방해받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22)" 예수님 만나면 일시적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죽음도 빼앗아 가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만나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위험과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20:20)"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도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행8:8)"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13:52)" 라고 했습니다. 안디옥에서 쫓겨 가면서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능욕을 받아도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기뻐합니다. 바울을 죽을 지라도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고후7:4). 왜 그렇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유의 기쁨 정도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베푸는 것으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존재의 기쁨이고 영적인 기쁨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기쁨이요 기뻐하기로 작정한 누리는 기쁨입니다. “로사다 비율(Losada ratio)”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9대 1의 비율입니다. 60개 기업을 조사해 보니까 잘되는 기업은 부정적인 말 1이 있을 때 긍정적인 말 2.9 이상이 되었고 잘 안 되는 기업은 긍정적인 말이 2.9보다 낮았다고 합니다. 이 비율은 이 사실을 발견한 브라질 출신 마르셀 로사다의 이름을 따서 로사다 비율(Losada ratio)이라고 합니다. 기업이 잘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를 직원들의 말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가정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존 고트먼은 부부들의 주말 대화를 분석한 결과 동일한 비율을 얻었다고 합니다. 긍정과 부정이 2.9대 1의 비율에 이르면 이혼할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다정하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5대 1 정도의 비율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주 기뻐하기로 마음을 먹고 모든 것을 기쁨으로 해석해 버리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한평생을 산 슈바이쳐 박사는 "물 없는 강처럼 기쁨 없는 그리스도인, 기쁨 없는 신앙, 기쁨이 없는 사랑이 세상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 어려운 피난 생활에서도 여호와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다윗이나 전쟁의 위험 속에서도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하박국 선지자나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 등은 모두 이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7-19)"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시 16:8-9)"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승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욕구 충족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성탄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기쁨은 구원받은 기쁨입니다. 나눔의 기쁨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구원자이시기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누리는 기쁨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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