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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11)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는 마음(사무엘하9:1-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839 추천수:1 112.168.96.218
2018-12-09 19:01:42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11)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는 마음

사무엘하9:1-8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보면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칭해 주었던 다윗의 생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 중요한 사건 속에서 다윗의 어떤 마음을 보고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했을까를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어떤 마음일까를 10번째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11번째로 다윗이 왕이 되어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을 때 일어난 사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골 촌뜨기 목동이었는데 한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든든히 세워져 갔습니다. 8장 1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얼마나 백성들의 지지도가 높아졌겠습니까? 신문에 보면 매주 마다 대통령 지지도를 조사하여 발표합니다. 어제 보니까 50%대라고 하는데 남성의 경기침체와 취업률 하락으로 남성의 지지도는 떨어졌고 감성 정치로 여성의 지지도는 높아졌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사울 왕 때는 나라가 전쟁에 져 초토화되었는데 하는 전쟁마다 이기니까 인기도가 베트남 축구선수 감독인 박항서 감독보다 더 좋았을 것입니다. 외치에 성공하여 나라가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경제는 좋아졌는데 빈부격차는 심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면 아무리 강력한 대통령이라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통치했겠습니까? 8장 1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공의와 정의가 시행되는 나라를 만들어 공정한 나라, 정의 사회를 이룬 것입니다. 내치도 성공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나라 정치를 잘했습니다. 요즈음 낙하산 인사가 전 정권이나 똑같다고 언론에서 비난하는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연고에 의해 자기들끼리만 회전문 인사를 하며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8장 16절 이하를 보십시오. 지역과 전문성 등을 고려하여 공정한 인사정책을 잘 폈습니다. 그야말로 전 정권인 사울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태평성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똑같은 인간이 통치하고 있지만 힘의 원리가 아니라 무엇인가 다른 은혜의 원리가 적용되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신정왕국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오늘 기록한 사건입니다. 힘으로 통치하는 세상과는 다른 당시 근동에서 인간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다윗의 인간적인 처지에서 보면 므비보셋은 원수인 사울의 후손으로 도무지 살려둘 수 없는 인물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혈족이 아닌 사람이 왕권을 잡으면 왕이 될 만한 사람을 다 제거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풍습은 새로운 왕권이 확립되면 왕권 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전의 왕손들을 다 제거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사울 왕가가 망했습니다. 당시 대부분 신흥 왕조는 몰락한 왕조의 잔재를 척결하기 위해 지난 왕조의 중요한 사람들을 찾아 처형해 버렸습니다. 특히 혈통에 의해 왕조가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다시 왕이 될만한 혈통을 철저히 제거해야 하므로 지난 왕조의 3족을 멸하여 씨를 말리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언론을 보면 연예인들 부모가 돈을 떼어먹었다고 해서 연예인 연좌제라고 글을 쓰던데 우리나라 조선 시대 때 가까운 혈연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죄 없는 가족까지 처벌하였습니다. 쿠데타, 반란, 국가 전복 행위 등에 얽히면 대역죄인이라고 하여 능지처참하였습니다. 아버지와 16세 이상 아들은 교수형에 처했고, 15세 이하 아들과 어머니와 딸, 처와 첩, 할아버지와 손자, 형제, 자매, 며느리까지 공신의 집에 노비가 되게 하고 재산을 다 몰수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백부, 숙부, 조카까지 3천리 밖으로 쫓아내었습니다.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의 폐비 조치에 원한을 품고 관련된 사람들을 가문을 멸하게 하는 일을 벌였습니다. 힘이 주어진 다윗도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의 가문을 얼마든지 박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그 가문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고, 전 왕조의 씨를 자르지 않으면 자신이 힘을 잃을 때 얼마든지 다시 일어나 자신의 가문이 몰살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현대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좌제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정의 사회 구현이나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이 잡은 권력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 정권의 힘을 얼마나 무력화시키고 있습니까? 힘으로 통치하는 세상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달라도 아주 달랐습니다. 자신이 최고 통치자로 성공하여 나라가 견고해지니까 무엇을 합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향락을 즐기기 위한 아방궁을 만들라고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20년 통치를 위해 법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개정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인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동성애도 자유롭게 허용하고, 동성애를 죄라고 말 못하게 하는 인권법을 만들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국민이 평등한 대우를 받은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학교나 정부 기관에서 기도도 못하고, 성경도 읽지 못하게 하는 인권법을 만들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울 가문의 씨 중에 아직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사울 가문의 싹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찾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주에도 전 기무사령관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던데 다윗은 전 정권의 비리를 낱낱이 찾아 제거할 사람 제거하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찾았습니까?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찾아 신분을 회복해 주고, 땅을 주고 평생 왕자처럼 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래 너 마음은 내 마음에 꼭 맞아” “내가 너를 잘 보았어.” “너는 다른 왕과는 질적으로 달라”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시간, 물질과 재능을 주시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힘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1. 힘을 줬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입니다.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의미로 “나비가 애벌레 시절 모르고”, “닭이 병아리 시절 모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왕자에는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성공하면 그 성공이 자신이 이룬 것으로 생각하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은혜도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은혜 망각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은혜는 물에 세기고 원수는 돌에 세긴다.”라는 말처럼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요나단의 집이 아닙니다. 사울의 집의 후손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를 그렇게도 죽이려 했던 사울하면 입에도 담기 싫고 생각도 하기 싫은 존재일 것입니다. 심각한 정신적인 상처인 사울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속의 분노로 그때의 일을 다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심적 고통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폐 청산 하기 위해 사울의 혈족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3족을 멸하기 위해 사울의 씨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을 베풀기 위해 사울의 혈족을 찾은 것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은 헤세드를 번역한 말입니다.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표현한 말입니다. 왜 다윗이 이렇게 사울이 씨를 찾아 은총을 베풀려고 합니까?

1절을 보세요.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요나단은 죽었습니다. 요나단과 약속할 때는 므비보셋 나이가 불과 5살(4:4)이었고, 공증을 선 것도 아니고 문서를 남긴 것도 아닙니다. 현재, 브비보셋은 아들을 둔 성인입니다(12). 적어도 2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약속이 당사자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래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개인마다 20년은 30년이 될 수 있고, 60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출세했을 때, 자신이 성공했을 때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에 해당하는 '헤세드' 언약적(言約的) 사랑을 의미합니다. 헤세드는 환경이나 감정 상태나 개인적 취향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사랑을 말합니다. 요나단이 베푼 헤세드를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이 베푼 헤세드는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요나단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혜입니다(삼상 18:3, 4; 19:1-3; 20:4-42). 사울은 여러 차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요나단을 부친을 도와 다윗을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다윗을 죽을 위기에서 구해주었습니다. 부친의 소행을 미리 친구 다윗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헤세드로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둘째는 요나단 생전에 그 가족을 보호해 주기로 약속한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삼상 20:14, 15, 42). 이 약속은 요나단고 했습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삼상20:14-16)” 사무엘상 18장 3절에서는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맹세하기를,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언약은 사울과도 맺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구해주었을 때, 사울도 다윗의 왕될 것을 안다고 말하면서 그때 자기 후손을 끊지 않겠다고 맹세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도 그것을 맹세하였습니다(삼상 24:22). 다윗은 힘이 생겼다고 그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울의 손자이며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찾아 그에게 은혜, 하나님의 헤세드를 베푸는 것은 바로 이 언약 때문입니다. 3절을 보세요. 그래서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푸는 것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헤세드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철저히 알고 그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요나단도 단순히 인간적으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었던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그런 은혜를 요나단이 베풀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는지 사무엘하 7장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다윗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라고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7장 15절을 보십시오. 사울에게는 은총을 빼앗았지만, 다윗과 그 후손에게는 은총을 빼앗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이 어떤 고백을 합니까? 사무엘하 7장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죽기 전에 한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철저히 기억하고 잊지 않았습니다.

시편에서도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시8:4)”라고 고백합니다.

시편 103편 2절에서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자신에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윗이 은혜로 살았는가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하 1장 8절에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은 우리가 은혜를 알고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을 가지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은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를 잊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5장 3절에서는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7장 46절에서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은혜를 쉽게 잊고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힘이 주어졌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세상에 있었습니다. 옛날 스텐포드 대학에 다니던 두 학생이 학자금 때문에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답니다. 그들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파데레브스키를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등록금을 해결하기로 하였답니다. 데레브스키에게 공연료로 2000$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학비를 내기 위해 공연을 했는데 예상과 달리 총수익금이 1600$밖에 나오지 않았답니다. 등록금은 커녕 400$이 적자가 나 수익금 1600$와 나머지 400$은 앞으로 갚겠다는 서류를 만들어 파데레브스키에게 보냈답니다. 그러나 파데레브스키는 학생들의 사정을 알고 1600$을 격려하며 학비에 보태 쓰라고 다시 돌려 주었답니다. 시간이 흐른 후 파데레브스키는 폴란드 공화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세계대전으로 전 유럽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을 때 파데레브스키는 미국에 식량원조를 요청하기로 결심하고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자신이 요청서를 보내기도 전에 미국으로부터 식량이 도착했답니다. 그래서 파데레브스키 대통령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후버(31대)를 찾아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하였답니다. 그러자 후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식량이 필요한 것 같아 보내드렸을 뿐입니다. 기억이 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어렵게 대학에 다니던 시절, 당신은 제게 큰 도움을 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정말 곤경에 처해 있었거든요.”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청하여 연주회를 한 두 학생 중에 한 사람이 바로 후버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후버는 은혜를 기억하고 잊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용서해주시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2. 힘을 줬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받는 은혜를 베푸는 마음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받은 은혜를 자신만 누리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가를 바라고 베푸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인 것같습니까? 은혜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은혜를 베풀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3)”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후손에게 베풀고자 하는 은총이 자기에게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므비보셋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가문에 은총을 베풀고자 하시는 이가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말씀합니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잊지 않으면 은혜를 보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살다가 전쟁터에서 아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은혜를 보답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하는 신정국가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은혜를 알면 겸손해지지만, 은혜를 모르면 교만해집니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었습니까?

첫째 그는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시바를 소환했습니다. 시바는 사울왕을 섬겼던 자로 다윗이 두려워 잠적해 있던 사람입니다. 시바를 통해 므비보셋을 소재를 안 후에 로드발로 사람을 보내 므비보셋을 불러왔습니다. 은총을 베풀기 위해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친히 사람들을 그 먼 곳으로 보내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은혜는 은혜를 받는 자가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자가 힘을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런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종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둘째는 인격적 대우를 해 줍니다. 6절을 보십시오. 왕의 어전에서 공적으로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사는 그에게 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줍니다. 애정이 담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인격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 중에 출생하여 망할 우리 인생을 은혜를 베풀어 주어 하나님의 아들 딸 삼아 주었습니다.

셋째는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을 베풀어 줍니다. 7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무비보셋은 이제 죽을 줄 알았는데 평안을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이 노출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증오와 한, 그리고 두려움이 그 정신을 붙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육신적 장애도 문제지만 정신적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받으니까 순식간에 자유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넷째 신분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왕자의 지위가 회복된 것입니다.

항상 다윗 곁에서 왕자처럼 식사를 하게 했습니다. 당시 장애인들은 왕과 식사할 수 없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신체적 결함이 있는 자는 부정한 자로 간주하였습니다. 성전 제사장 직분도 맡을 수 없었습니다(레21:17-21) 그는 두 발이 절은 사람입니다(3,13). 블레셋이 쳐들어와 왕궁을 초토화할 때 므비보셋의 유모가 아이를 안고 가다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그는 다리를 절게 된 겁니다. 아무리 요나단과 약속이 있다지만 율법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신체적 결함을 부정하게 취급하는 율법을 초월하는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다섯째 기업이 회복된 것입니다(7).

사울의 땅을 그에게 다 주었습니다. 마길의 집에서 얻어 먹고 살았습니다(4) 로드발은 '목초가 없는'이란 뜻으로 일종의 황무지 같은 척박한 지역에서 산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그에게 기업을 주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시바로 하여금 므비보셋을 실제적으로 섬기도록 했습니다. 힘있는 사람의 은혜만 받아도 이렇게 삶이 변화가 됩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므비보셋같은 상황에 있다해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경기라고, 고질적인 질병이라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절망의 끝에서 희망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긍정의 힘>을 쓰신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어머니가 1981년에 암으로 몇 주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으셨답니다. 어머니가 아프신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온 가족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답니다. 21일 동안 입원하여 각종 검사를 받고 현대 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선고를 받았답니다. 이때 목사님의 어머니는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답니다. 어머니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지 않고 살 거야.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선포할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장 좋아하는 치유의 말씀을 3O~40개 정도 찾아내 종이에 적어 매일 읽고 큰 소리로 선포하셨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답니다. 조금씩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답니다. 점차 식욕이 돌아오고 몸무게가 불어나기 시작했답니다. 몇 달이 지나자 회복세는 더욱 빨라졌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암에서 완전히 벗어나 20년이 지난 후에도 돌아가시지 않았답니다.

은혜를 받은 다윗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고 하나님의 은혜를 므비보셋에게 베풀었습니다. 은혜받은 우리가 은혜를 아는 정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10장 2절을 보십시오.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도 은총을 베풉니다. 왜 아버지가 자신에게 베푼 은총을 그 아들에게 베풀어 줍니다.

 

3. 힘을 줬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받은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게 하는 마음입니다.

벼랑 끝에서 은혜를 받으면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광야같은 인생이 옥토같은 인생으로 변합니다. 고독한 밤이 은혜의 밤으로 변합니다. 감옥같은 인생에 날개가 달리게 됩니다. 벼랑 끝에서 하나님이 날개를 달아 주십니다. 길이 보이지 않던 광야에 하나님이 새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가난의 고통 속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을 주십니다. 두려움의 숲속에서 평안의 샘물을 주십니다. 모든 상실을 덮어버릴 충만한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질병의 골짜기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질병, 사고, 실패, 갈등, 고독, 이혼, 위기 같은 벼랑끝이라는 끝이 아니라 은혜의 받을 시기입니다. 99세된 아브라함의 몸은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임하니까 이삭이 태어납니다. 은혜를 받으면 인생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총을 받은 므비보셋은 어떻게 다윗에게 말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이 종이 무엇이관대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 보시나이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됩니다. 개는 이방이니나 비천한 자를 가리킬 때 사용된 말입니다(신23:18; 삼상17:43). 자신을 죽은 개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자신을 격하시키고 상대를 한 없이 높이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이 다윗 앞에서 어떤 존재인 것을 알았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우리도 하나님이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 9장 6절을 보세요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라고 했습니다.

본문 9장 8절을 보세요 “저가 절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베푼 사람이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번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힘이 주어질 때 은혜 베푼 사람처럼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은 므비보셋은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성경에 자세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는 분명히 알려 주는 정보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가 지속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아들에게 쫓겨나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모든 힘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때 은혜를 받은 므비보셋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시바가 교활한 사람입니다. 므비보셋의 종인 시바가 므비보셋을 배신하고 함께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므비보셋을 중상모략하여 다윗에게 이르기를 므비보셋이 이제야 자기 아비의 나라를 도로 찾겠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볼 때 얼마나 므비보셋이 괘씸했겠습니까? 괘씸죄에 걸린 것입니다.

므비보셋의 땅을 시바에게 다 주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환궁하여 보니 시바의 말이 거짓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9장 2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윗이 왜 나와 함께 가지 않았냐고 하니까 자신은 장애인이라 나귀를 혼자 탈 수 없는데 시바가 자신을 속이고 모함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왕의 처분대로 해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그에게 다시 땅을 주려고 할 때 므비보셋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사무엘하 19절 3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왕 한 분이면 만족하다는 것입니다. 선물을 보다 선물을 주신 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우리의 삶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였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은혜로 통치되는 나라, 은혜가 흘러넘치는 나라입니다. 은혜의 살아가는 삶은 나에게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대양 육대주로 흘러가게 하는 나라입니다. 므비보셋에 중요한 것은 재물도 부귀도 아니었습니다. 왕이 그의 곁에 있는한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다윗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것입니다. 그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다윗으로부터의 자신이 잊히는 것입니다. 은혜 입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내 하나님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모든 보화가 다 있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신실한 신앙인 눈은 그리스도를 향해 집중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재물과 명예, 권세와 같은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받은 우리가 힘이 주어지면 세상을 이런 나라로 만들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수의엔 주머니가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자선사업의 제임스 본드'로 불렸던 면세점(Duty Free Shop)의 창시자이자 아틀란틱 필란트로피 재단의 설립자 찰스 F 피니(Charles F. Feeney·일명 척 페니)이야기입니다. 그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악명 높은 억만장자라는 비난을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면세점 사업과 기업 투자로 악착같이 돈을 벌었습니다. 드디어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돈 밖에 모르는 수전노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1997년 세계적인 면세점 체인 DFS의 매각 문제로 법정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의 사무실은 압수수색을 당했고 이로 인해 그만의 은밀한 ‘비밀 장부’가 발각되었습니다. ‘뉴욕컨설팅’이란 이름의 회사 명의로 15년간 수억 달러를 횡령한 듯한 비밀 장부였습니다. 그는 소송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 수임료마저 깎으려 했던 사람입니다. 경제인 모임에서도 계산을 하지 않으려고 일찍 자리를 뜨는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비밀 장부는 횡령을 위한 분식회계 장부가 아니라 남몰래 약 2900회에 걸쳐 어려운 이웃을 위해 후원한 ‘비밀 기부 장부’였습니다. 그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1982년부터 남모르게 익명으로 9조 5천억원을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5개 대륙, 1천여 개 기관에 그의 후원금은 전달됐지만, 이 중 어느 곳도 벽이나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업체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금 중 운영 자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돈을 대학, 병원, 사회단체 등에 기부했습니다. 하루에 15억 2,865만원씩 기부했지만, 자신 명의의 차도 집도 없었습니다. 부인과 함께 임대주택에 살면서 1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다니며, 동네의 허름한 식당을 즐겨 찾았습니다. 평소 부를 표시하는 여러 가지 장식품과 값비싼 물건들을 불편해했습니다. 사회 부유층과 어울리는 사교모임도 싫어했고, 사업이 한창 번창했을 때도 빛바랜 셔츠에 무명 작업복을 입고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피니는 “돈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한꺼번에 신발 두 켤레를 신을 순 없다”며 나눔을 실천하고 평생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언제나 이코노미석을 타고 여행했고, 언제나 비닐봉지에 신문을 넣어 들고 다녔습니다.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은혜가 흘러가는 세상을 만든 것입니다. 그는 간호사로서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사려 깊은 어머니로부터 어려서부터 타인을 돕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남을 도와 주기 위해 자신도 일이 있는 척하면 일부러 차를 같이 타고 갔다고 그냥 자신은 돌아오는 어머니였답니다. 그는 은혜를 흐르게 했던 카네기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부자란 과시나 허영을 멀리하며 소박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카네기의 가르침을 실천했답니다. 그의 영향을 받아 그를 모델로 삼은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우리 신앙인들은 힘이 아니라 은혜가 통치하는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이 시대은 힘이 지배하며 불평등과 부조리를 만드는 살맛 없는 세상으로 변모되고 있습니다. 20대 80 사회가 무너지고 이제는 10대 90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은 1,000조원가 넘지만 가계 부체는 1,000조원가 훌쩍 넘어갔습니다.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버는 돈이 전체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구조하고합니다.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부가 66% 보유하고 있고 하위 50% 자산은 2% 불과합니다. 부의 불평등과 소득의 불평등은 가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1대 99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세계 상위 1%의 부가 50.1%나 되어 절반을 넘어갔다고 합니다. 연예인 지망생 1백만 명 시대에서 배우생활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10%도 안 되고, 연극만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톱스타들은 회당 몇 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 출연료를 받지만 많은 사람들은 본업을 통해서는 최저생계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900여 개가 넘는 2000명 이상인 대형교회는 차고 넘치지만, 교인 출석 100이하되는 80%나 되고, 85.6%는 교역자는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가 이런 나라일까요? 다윗을 통해 보여주시는 신정통치는 약육강식의 힘이 아니라 은혜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다윗은 다윗대로 므비보셋은 므비보셋대로 카네기는 카네기대로, 녹펠러는 노펠러 대로 주어진 삶의 공간과 시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통치되는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4-25)”

이 시대 하나님의 원하시는 마음은 힘이 주어질 때 은혜를 알고, 은혜를 잊지 않고, 은혜를 베풀고,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은혜로 살아가게 하는 은혜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쓰임받는 은혜를 베푸는 마음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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