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7) 복음은 십자가입니다.
이사야52:1-12
주일이면 한의사인 최 집사님께서 침으로 무료 의료봉사는 하시는데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할머니 두 분이 침을 맞는데 한 할머니가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했답니다. 그러자 한 할머니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할머니를 향해 "십자가를 생각해. 십자가!"라고 외쳤답니다. 그러자 같이 있던 분들이 깔깔대고 웃으면서 "할머니! 갑자기 웬 십자가예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못에 찔려 돌아가셨잖아. 그런데 그깟 침도 못 맞아?’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대표적인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고 기독교 진리의 진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만 전했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 알기 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라고 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라고 했습니다.
이번 주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받은 것을 기념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 구원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 이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보다 700년에 전에 오셔서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한 이사야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1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사 53:1)” 당시 불신앙의 시대를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팔은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사에 개입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지만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2장 37-41절까지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선지자 중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가장 많이 하였습니다.
성경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찾아 읽으면서 밑줄을 그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장 2절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사 4:2)” 예수님께서 여호와의 싹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오실 것을 렘23:5; 33:15 슥3:8에 예언해 놓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언합니까? 이사야7:14, 8:10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이사야9:6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얼마나 자세히 예언하고 있습니까? 의의 왕(사32:1)으로 이방의 빛(49:6)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종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네 차례 예언을 합니다(사42:1-7; 49:1-6; 50:4-9; 52:13-53:12)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종에 대한 마지막 예언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고난의 종(52:13; 53:11)으로 분명하게 예언하였고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대속물(막10:45)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구원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왜 당시 집권 세력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까?
2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불신앙의 요인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님의 비천한 상태 때문입니다. 영광의 왕, 능력의 왕으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한 순 같다는 말은 끊어져 단절되어 버린 나무 밑동에서 새싹같이 연약한 존재로 움터나는 것 같은 것을 말합니다.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멸망한 다윗 왕조에서 메시야가 나온 것을 말합니다. 나사렛 목수 아들로 태어나 배척을 받는 것입니다. 부패한 세상, 완악한 세상은 마른 땅과 같았습니다.
둘째는 매력 없는 외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음도 없었습니다." 외적인 모습이 인간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매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자기 비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거룩한 메시야의 수난성 때문입니다(3)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린바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메시아면 능력을 가지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악한 무리들을 당 징계해 버려야 할 텐데 그냥 십자가에서 침 뱉음과 수치와 모독을 당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라는 말은 문둥병자 취급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었다는 말은 슬픔을 계속 겪었다는 말입니다. 질고를 알았다는 말은 육체적인 질병을 알았다는 말보다는 모든 인생의 고통을 체휼하셨다는 말입니다.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십자가형을 폐지하기 까지 십자가형은 기원전 6세시부터 기원후 4세기 까지 로마 제국이 사용한 것입니다. 아주 잔인한 형벌입니다. 서기 200년경의 법률가 율리우스 파우루스가 남긴 글에 의하면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한 형벌이고 다음으로 화형, 교수형이었다고 합니다. 교수형을 대신하여 짐승에게 찢기게 하는 맹수형에 처하게 했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은 너무나 참혹하기 때문에 로마의 상류 계층에는 적용되지 않고 노예나 이방인 같은 하류 계층에만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을 받는 사람들은 적에게 투항하는 자, 비밀 누설자, 반역을 선동하는 자, 살인자. 통치자의 번영에 대하여 불길한 예언을 하는 자, 야간에 음란한 행위를 하는 자, 마술을 행하는 자, 절박한 상황에서 변절한 자 등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종교 선동가, 율법 파괴자, 황제에 대한 반역자로 로마 총독 법정에 기소되었고 골고다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오늘 날도 예수님을 단지 인간 예수로 바라보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영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조롱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양인이기 때문에 문명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지 때문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3. 왜 예수님은 이런 수난을 당하였습니까?(4-6)
예수님은 왜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질고를 지셨습니다.(4).
둘째,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4)
셋째,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찔림을 당하였습니다.(5) 예수님은 가시면류관과 못과 창으로 찔림을 당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허물, 나의 교만, 나의 오만, 나의 아집 때문입니다.
네째는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하였습니다.(5) 상한다는 것은 뼈가 부서지는 듯한 처참한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군중 앞에서 옷을 벗김 받았습니다. 로마 군병의 채찍을 맞았습니다. 조롱을 당합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힙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옆구리에 창을 찔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잘못 때문에 처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멸시를 당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우리를 사랑하사 대속물로 예수님은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 때뿐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멸시를 당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감수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멸시받고, 천대 받는 것입니다.
롬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 했습니다. 이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 1월 22일, 뉴욕 항을 떠난 연합군 병력수송선 도체스터호는 904명을 태우고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향하고 있었답니다. 항해 12일 만에 그 해 2월 3일 55분 독일 잠수함(u-233)이 도체스터 호에 어뢰를 쏘았답니다. 얼마가지 않아 도체스터 호는 어뢰를 맞고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답니다. 도체스터 호는 아수라장이 되었답니다. 비상 훈련을 기억해내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으며 모두 상대편을 잡고 울부짖었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네 명의 군목들은 매우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나누어 주며 병사들을 구명정 타는 곳으로 안내했답니다. 더 이상 나누어줄 구명조끼가 없었답니다. 그 때 군목 폴링이 한 병사에게 물었답니다. "자네 예수 믿는가?" "아니요" 그러자 군목은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면서 말했답니다. "나는 예수를 믿으니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 너는 이 구명조끼를 입고 살아서 꼭 예수를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네 명의 군목은 모두 다 자신이 낀 장갑과 구명조끼까지 벗어 병사들에게 주었답니다. 도체스터 호에는 점점 물이 차올랐습니다. 자신의 구명조끼마저 병사들에게 준 네 명의 군목은 서로 팔을 끼고 기울어진 갑판에 서서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생존한 병사 Grady Clark은 그들의 최후를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군목들이 기도하는 모습이에요.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어요.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입고 있었던 구명조끼와 장갑을 병사들에게 벗어 주었어요."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수병들이 군목들의 희생을 기억하였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들 4명의 군목 폭스, 구스, 폴링. 웨싱턴을 기리는 예배당을 짓게 했습니다(US Naval Chapel 미해군 예배당)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이 용감하고, 희생적인 4인의 군목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관을 짓고, '4인의 불멸의 군목들'이라는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92년 뮤지컬 작가 J. Swearinge은 이 이야기를 소재로 "영원한 빛(The Light Eternal)"을 제작 ,공연하여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4.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고통을 어떻게 감당하였습니까?(7-9)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고문 받고 끌려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진 고문 앞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첫째, 곤욕과 괴로움 속에서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7) 잠잠한 양같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둘째, 곤욕과 심문을 당했는데도(8) 강포를 행하지 않았습니다(9) 폭력 앞에 강포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넷째, 마치 흉악한 죄인처럼 흉악범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부자 요셉의 묘에 장사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끝까지 십자가에서 순종함으로 돌아가셨다고 말씀합니까? 8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의 싹은 사망인데 사망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성취한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이 사실을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9)”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마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킨 것입니다.
끝까지 순종함으로 인류 불순종한 아담을 대신하여 인류 구원 사역을 완성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이루어진 최절정 사건입니다. 얼마든지 로마 군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류 구원사역을 완성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끝까지 순종하였습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난 당하는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는 최후의 기도를 드렸고, 십자가상에서 7마디의 말씀을 하시면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완전히 성취하였습니다.
내와 무관한 십자가가 아닙니다. 객관적 십자가로만 바라보지 말고 주관적 십자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내가 지옥 가야하는데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지옥의 형벌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십자가가가 아니라 내 인생의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십자가입니다.
나이가 들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경상도 할머니 셋이 교회 초청집회에 참여하여 십자가 설교를 들었답니다. 그리고 집에 와 어느 날 셋이 모여 이야기를 하였답니다. 한 할머니가 "어이, 예수가 죽었단다." 그러자 다른 할매가 물었답니다. "와 죽었다 카드노?" "못에 찔려 죽었다 안카나" "어이구 머리 풀어헤치고 다닐 때 알아봤다." 이 때 암말 않던 할매가 묻었답니다.
"어이 예수가 누고?" "몰라 우리 며늘아가 아부지 아부지 캐쌌는거이 보이 사돈 어른인갑지 뭐!" "그래, 문상은 갔드나?" "아니 안 갔다." "왜 안 갔노?" "갈라 캤더니 사흘 만에 살아나따 카드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내가 마음으로 믿고 내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됨으로 말미암아 이 사실을 믿은 우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죄가 다 용서되었습니다(5,6) 사죄가 성립된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형벌을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5절에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라 말씀합니다. 6절에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형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형을 당하였다는 말입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죄의 삯은 사망인데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완전히 죄의 삯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겠습니까? 무엇인 인간을 죄로부터 자유함을 줄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다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옛 사람입니다. "(롬6 :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기에 못박힌 것은"
(2) 육체의 정과 욕심입니다. "(갈5 :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3) 자아입니다. "(갈2 :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재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이제 이것들은 다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에게 나음을 입었습니다.(5)
우리는 예수님이 질병을 지셨다고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예수님이 질병에 걸렸다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우리가 앓는 질병 모두를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질병을 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 예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사 29:18-19) 그 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 예언은 메시아가 오면 메시아의 능력으로 질병이 치유될 것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꺾어버리고 인간에게 슬픔과 고통을 주는 질병을 메시야가 오시면 해결해 주실 것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예언이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7:2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참된 행복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갖가지 질병을 치료 시켜 주셨습니다. 38년 된 혈루증 환자가 낳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났고, 소경이 눈을 떴으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렸습니다. 오늘 날 병명으로 말하면 열병, 말라리아, 문둥병, 선천성 소경, 파킨스씨 병, 신장염, 관절염, 간질병, 귀머거리, 신체장애, 정신병 등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치유 받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두려움, 불안, 긴장 흥분, 불면증, 우울증 등과 같은 각종 신경성 질환자도 고침 받았습니다. 기능장애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기관 장애가 고침 받았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질병이 변하여 건강을 얻는 길을 펼쳐 놓았습니다. 우리가 육체적 질병과 고통으로 근심하고 고통하지만 예수님께 나오면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질병 때문에 고통하고 있으신 분 있습니까? 육체의 고통 때문에 근심 걱정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마음의 고통으로 근심하며 사시는 분이 계십니까?
나의 질병의 문제, 나의 근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질병, 그 근심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십자가의 피묻은 손으로 우리를 안수하여 주셔서 우리의 질병을 낫게 해 주시고 우리의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당하여 우리의 질병과 우리의 근심을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구리뱀을 바라보았을 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셋째,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5)
5절 말씀에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마땅한 대가를 예수님이 받으심으로 우리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평화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바쳐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참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엡 2:14-19)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십자가가 있는 곳에 동서가 평화를 이룹니다. 십자가가 서는 곳에서는 남북이 하나가 됩니다. 여야가 공존합니다. 지역감정의 담이 무너집니다. 빈부의 담, 남녀의 담, 권력의 담, 학력의 담, 민족의 담, 나라의 담이 무너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돌아가심으로 모든 담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용서하며 화평한 사람을 살아야 합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십자가를 바라보며 부부가 서로 용서하며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교인들끼리 서운한 감정 풀어 버리고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부모와 자식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원수를 만들지 마십시오. 이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참된 평화를 누리십시오. 마음에 참된 평강을 누리십시오. 세상에 용서받지 않고 살만큼 의롭게 사는 사람들 없고 십자가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 있는 사람 없습니다. 아무리 핍박하는 시어머니도 아무리 나의 가슴을 멍들게 한 사람들일지라도 십자가로 얼마든지 용서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유다의 탐욕 때문에, 빌라도의 비겁 때문에 제사장들의 시기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인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죄인을 의롭다 하기 위해, 인간과 하나님을 화해시키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를 열어 주시기 위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새 언약을 주시기 위해, 성전제의가 폐지라기 위해 우리의 영혼의 문제와 우리의 정신, 육체의 문제, 우리의 죽음 문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이 스스로 지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5,6)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5)
마호메트는 나이 60세에 한 여인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크라테스도 7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도 나이 80세에 음식을 잘못 먹고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플라톤도 80세까지 살다가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 가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과 저의 해결할 수 없는 인생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성인이 아닙니다. 메시야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고 구원주이십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받은 이유를 다시 한 번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4절부터 6절까지 우리 대신이 자신의 이름을 넣어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4.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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