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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르려면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행22:12-29)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200 추천수:3 112.168.96.71
2005-09-04 10:48:44

정상에 오르려면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사도행전22:12-29

이제 긴 여름이 끝나고 풍성한 결실에 접어드는 9월 첫주일입니다.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가을에 풍성한 추수를 하려면 여름의 땡볕을 견뎌야 합니다." "정상에 오르려면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골이 깊으면 메아리는 커집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은 빨리 옵니다." 높은 산일수록 누구든 정상에 오르려면 많은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골짜기를 지나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힘겹다고 골짜기에서 포기해 버리면 결코 정상엔 오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고 그 사명의 정상에 오르기를 소원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인생의 정상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상실감입니다.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어느날 갑자기 건강을 잃어버리고, 뜻하지 않게 재물을 잃어버리고, 부모을 잃고 자식을 잃으면 그 상실감은 평생 영향력을 미치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인생을 포기하고 비참하게 살아 버립니다. 지난주에 이러 오늘 바울의 회심에 대한 간증을 봅니다. 오늘은 바울이 회심하는 순간으로 들어가 접근해 보겠습니다. 용기 백배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을 향하던 바울이 어느날 갑자기 빛을 만나고 시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데 전권을 가지고 일했던 바울이 하루 아침에 골짜기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시력을 잃는 것은 대단한 상실입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신뢰도 잃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억울하게 로마 천부장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갔습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상실의 골짜기, 인생의 밑바닥에서 우리는 어떻게 일어나 정상을 향해 갈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상실의 골짜기에서 사명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들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12-21)

1)바울은 상실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택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14-16)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리는 상실의 아픔은 사람이 참기 힘든 것입니다. 나이들면서 누구가 잃어버리는 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 수 있지만 젊은 나이에 삶의 필수적인 것을 잃어버리면 참으로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는 어느날 시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게되었습니다. 눈이 멀어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살릴 때 자기 힘으로 어쩔 수없이 포기한 상태에서 건지는 것처럼 바울이 깊은 골짜기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바울을 만나 새생명을 주고 제 2의 인생에 이루어야 할 사명과 계획을 알려 주었습니다.
네가지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 상실의 골짜기에 집어넣어 습니다. 그 네가지가 무엇입니까? 14절을 읽어 보십시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둘째는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하는 것입니다. '저 의인(義人)'은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죄인으로 여겨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가 바로 의인이고 메시야라는 말입니다. 인생의 진정 구원자는 예수님 밖에 없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주님 음성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밑바닥에서 세상에 귀를 닫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넷째는 15절에 나옵니다.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격은구원체험, 변화체험, 소명체험을 사람들에게 증거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생명을 구원하는 제 2의 인생을 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하나님 뜻을 깨닫고, 주님 만나고 말씀 듣고 하는 모든 일의 궁극적으로 그를 증인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2)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었습니다.
인생의 골짜기에 떨어지기까지는 자기가 잘나서 된 것처럼 자기 인생 스스로 살았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계획과는 다른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십니다.(17-21)
17절을 보십시오. 후에 예루살렘에 갔을 때란 다메섹 경험 후 아라비아에서 3년 지내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를 말합니다. 인생 밑바닥에서 예수님을 만났지만 아직도 자기 인생 자신이 살려고 합니다. 자기 억울함을 자신을 풀려고 하고 자신이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무엇을 합니까? 기도를 합니다. 왜 예루살렘에 갔을까요? 18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만난 경험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19, 20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때렸던 일, 스데반이 순교할 때 찬성하고 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켰던 일을 변명하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자기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생각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2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 보내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 상실의 골짜기룰 통과하게 한 이유였습니다.

3) 우리는 상실의 골짜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들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상실의 골짜기에서 바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명과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자포자기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실의 순간이 바로 내가 내 인생의 바닥을 치고 하나님을 향한 인생으로 새 출발할 때입니다.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영혼 구원의 새일,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새 일을 시작하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일생 살면서 가장 귀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다 잃어 버린다해도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쓰임 받으면 그것보다 고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혹시 건강을 잃어 버려 깊은 상실감에서 아직도 골짜기에 헤매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혹시 재산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친구를 잃어버리고, 신뢰를 잃어버리고, 자존심을 잃어버리고 괴로워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 순간이 바로 예수님을 진정 만나 하나님의 뜻을 알는 순간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되는 순간입니다. 세상에 귀를 기울였던 것을 주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활짝 여는 순간입니다. 나의 구원체험, 변화체험, 소명체험을 사람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전도자로 나서야 하는 순간입니다. 이제는 내 인생이 내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대로 살겠다고 결단하여야 할 순간입니다. 중요한 것 잃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속이라는 골짜기에서 사명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니느웨를 복음화시켰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욥은 상실의 골짜기에서 다시 일어나 배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세도 왕자의 자리를 잃어버린 골짜기를 통과했고 다윗도 끝없이 사울을 통해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했으며 요셉도, 야곱도, 다니엘도,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상실의 위기를 통과했습니다. 인생의 골짜기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골짜기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들고 일어서면 언젠가 인생의 진정한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Crosby는 무려 95세를 사시면서 찬송시를 무려 8,000 여편을 쓰신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도 무려 23편이나 실려 있습니다. 그는 눈을 볼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상실의 아픔으로 살았다면 그녀의 생은 초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실의 골짜기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만나 제 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고백합니다.
"봉사가 되어 어둠속을 살게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며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였다. 만약에 내가 육신의 눈이 떠서 세상의 것들로 고통을 받았다면 내 어찌 그 많은 찬송가를 지을 수 있었으리요" 그녀는 봉사가 된 것을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눈을 뜰 때에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골짜기를 빠져나갈 때 다가오는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22-23)
우리가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명을 가지고 정상을 향해 갈 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수많은 작은 골짜기가 있는 것입니다. 강이 길면 길수록 많은 구비가 있는 것입니다. 우선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합니다. 무기력과 자기 상실감의 포로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골짜기에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확신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미 하나님을 만나 분명한 확신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담을 극복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뜻을 이루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합니다. 과거 동업자들입니다. 과거 뜻을 같이 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뜻을 바꾸고 다른 길을 걸어가려고 하니까 그들의 반대가 가장 거셉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려고 하면 가장 극복하기 힘든 상대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이 될 수 있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고, 동업자가 될 수 있습니다. 22절을 보시시오. 사명의 정상에 오르려는 바울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동족 유대인들입니다.
1) 편협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첫 번째 통과해야 할 장벽이었습니다.
바울의 간증을 잘 듣고 있다가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21절을 읽어 보십시오. 그들은 바울의 입에서 이방인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는 그래도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이라는 말이 나오자 마자 극한 반응을 합니다. 뭐라고 말하는 가를 보십시오. 22절입니다. 이러한 놈을 세상에서 죽이자고 합니다. 살려 둘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덤비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재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도 죽을 각오를 하고 죽이려하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얼마나 그들이 분노가 심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방인은 유대인에게 터부시되는 말입니다. 이방인은 지옥의 땔감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위해 자신을 하나님이 보냈다고 하니 그들의 감정을 지극히 자극한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선민 사상입니다. 어떻게 평생 율법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는 우리와 이방인이 같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가문이 어떻게 너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그렇게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그 만큼 배웠으면 교양있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무식하게 예수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같이 과학문명이 발달된 사회에서 배운 사람답게 우리 가문에 맞는 문화를 가지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유대인의 편견입니다. 가족들이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이것만은 못하겠다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허용해도 이것만은 허용 못하겠다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아킬레스건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 통과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신 뿐 아니라 외부의 세력에 의한 아킬레스건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우월감, 선민의식 다 버렸습니다.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과 같이 살았습니다. 자기의 가진 것을 배설물처럼 생각했습니다. 한 가족이 돌아오는 것도 고귀한데 한 민족이 돌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바울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사명을 이루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2) 우리는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 어떤 장애물이 다가 온다하여도 극복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무엇이든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올라간 사람들입니다. 특히 정상에 오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는 아킬레스건을 극복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킬레스건은 혈육에 대한 정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지 못합니다. 조카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것 극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모세의 아킬레스건은 혈기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하며 그것을 극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노예로 살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이겠습니까?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에서 이것을 철저하게 극복하게 합니다. 억울하게 당해도 말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들은 일에 대하여 침묵합니다. 결국 그는 정상에 올랐습니다. 요나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릇된 애국주의입니다. 하나님은 물고기 배속에 집어넣어서까지 이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자 전무후무한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결국 정상에 올라 그것 때문에 자신도 망하고 하나님 영광도 가리워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다하여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힘겹더라도 반드시 통과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우리 하나님께서 강조해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내 힘으로 되지 않아도 우리 하나님의 힘으로 됩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신 3:22)"
"너는 그들을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신 7:21)"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 31:6)"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3. 우리는 골짜기에서 잃은 것보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최대로 활용하여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24-29)
어떤 상실의 골짜기에 이른다해도 남아 있는 것은 있습니다. 다 상실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골짜기에서 상실된 것만 집착하여 억울해 하면 정상을 향해 나갈 수 없습니다. 상실의 골짜기에서 남아 있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1) 천부장은 바울을 부당하게 고문하려고 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로마 병사들은 바울이 히브리 말로 했기 때문에 바울이 전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로 인해 다시 소요가 일어나니까 폭도들을 막기 위해 다시 바울을 영문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심문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채찍질은 끔찍스러운 고문이었습니다. 옷을 벗기고 가죽끈로 치는 것인데 가죽 끈 끝에는 뼈나 유리 조각을 매달아 쳐 많은 사람들이 그 고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불구자가 되고 죽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고문이었습니다. 아직 죄인인 것도 판명되지 않았는데 바울을 죄인이라고 간주하고 고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부당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2)바울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로마의 시민권을 사용하여 그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28)
25절을 읽어 보십시오. 바울은 당당하게 자신은 로마의 시민인 것을 밝혔습니다. 28절 보십시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부당한 권력 앞에 침묵한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그 권리를 행사했습니다. 합당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회가 다가 오자 분명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민권을 사용합니다. 당시 로마의 시민권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관직에 오를 수 있습니다.(행 22:29, 행 22:28) 우월한 대우를 받는 것이었습니다(행 23:27, 행 25:10)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로마의 정치력이 미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닐 수 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극악한 범죄 행위를 저질러도 식민지에서 때리거나 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로마 황제만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재판할 수가 있었습니다. 만일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구타하거나 핍박하는 사람은 그 자신 이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 잃은 것같지만 아직 남아 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대단한 것들입니다.

3) 우리도 어떤 골짜기에 이른다해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최대로 활용하여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순교하기기 싫어서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을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다 완수하는 것이 바울이 정상에 오르는 길입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사명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까지는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는데 나에게 있는 것, 아직 남아 있는 것 100% 활용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잃어버린 것같지만 아직 믿음이 있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이룰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직 입술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9)"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입술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로 하늘 보좌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 잃어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아직 건강이 있지 않습니까? 아직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지 않습니까? 아직 돌보아야 할 자녀가 있지 않습니까? 재산을 잃어다하지만 아직 건강이 있지 않습니까?
18년 동안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하다가 진실이 밝혀져 무죄로 풀려나 백만장자로 행복하게 사는 맥킨니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20살 때 살인 강도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답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 죽였다고 검찰은 기소했고 판사는 살인 강도 혐의로 무기징역을 내렸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하루 아침에 인생 골짜기에 떨어진 것입니다. 목숨만 빼어 놓고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어느날 이런 상황을 만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절망감에서 자살을 기도했답니다. 2차례나 동료 수감자가 휘두른 칼에 찔리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포기한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입니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인생의 나락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삶의 밑바닥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것이 그이 인생의 최대의 복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고교 졸업 자격까지 획득하였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니 인생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미 망가져 버렸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기적같이 들어 주셨습니다. 1999년 2명의 동료 수감자로부터 자신들이 버거킹 살인사건에 연루됐으며 살인 용의자도 알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사건은 재수사가 시작됐고 진범이 잡히면서 맥킨니의 결백은 입증되어 2000년 1월 28일 꿈결같이 바깥 세상을 밟았답니다. 그는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넣었던 수사관들을 모두 용서했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판사의 눈물섞인 사죄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고급 자동차도 사양하고 매달 3천 3백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며 백만장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것 붙들며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남아있는 것 붙들고 정상에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장애인으로, 세계적 권위의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 수석 전공의가 된 재미교포 이승복씨의 기사가 신문에 29일날 보도되었습니다. 그는 체조선수였으나 훈련 중 사고를 당해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같았습니다.
그는 사고 순간 G,O,D라는 알파벳 세 글자가 눈 앞에서 뭉게구름처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뉴욕대, 컬럼비아대 공중보건학과, 명문 다트머스 의대, 그리고 하버드 의대의 인턴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여 정상에 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시민권이 있지 않습니까? 참되고 영원한 시민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사탄의 권세가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록에 기록된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시민권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격증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인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걸 100% 활용해야 합니다.
부활하셔서 바울을 만나 주신 예수님이 아무리 깊은 골짜기에 있을 지라도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도 살아서 우리를 붙들고 골짜기를 통과하여 정상에 오르시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상실했습니까? 건강입니까? 재물입니까? 의욕입니까? 비전입니까? 직장입니까? 소망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상실의 골짜기에 머물며 슬픔으로 세월을 보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 잃는다 해도 그것으로 내가 일평생 예수님 한 분 전하는데 시간과 정열을 바친다면 그것은 인생의 최대의 축복입니다.
1. 우리는 상실의 골짜기에서 사명과 하나님의 계획을 붙들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12-21)
2. 우리는 골짜기를 빠져나갈 때 다가오는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22-23)
3. 우리는 골짜기에서 잃은 것보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최대로 활용하여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24-29)
저는 믿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를 골짜기에서 사명을 붙들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라고 하신 것을 믿습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평생 소원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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