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이 깊으면 메아리가 더 크게 울립니다.
사도행전22:1-11
우리는 늘 경험하면서 삽니다. 경험에는 직접경험과 간접 경험이 있습니다. 직접 경험은 간접 경험보다 훨씬 오래 가고 많은 영향력을 줍니다. 직접경험은 일상적인 경험과 특별한 경험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경험은 누구나 겪는 경험입니다. 특별한 경험은 소수의 사람만 겪는 경험입니다. 특별한 경험은 많은 영향력을 줍니다. 어릴 때 부모의 폭력적 싸움을 경험한 사람은 그것이 오래동안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봅니다. 특별한 경험을 통해 인생을 후퇴하는 사람도 있고 그 경험으로 자신의 인생을 발전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한 경험이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의 발전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려면 내가 겪은 특별한 경험이 보편적 가치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온 사도 바울의 경험이 바로 그런 경험입니다. 사울의 경험은 보편적 가치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내 경험이 보편적 가치로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에 대한 구원체험을 분명하게 간증해야 합니다./구원체험
사도 바울이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의 압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민족을 해방시켜줄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언젠나 메시야가 나타나 자신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줄 것인가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부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메시야라고 하니 바울의 가치관으로는 한심하였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 21:23)" 이 사실을 율법에 능통한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메시야로 믿으니 황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죄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믿는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입니다. 5절에 보십시오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옥에 집어넣고 벌주려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서명한 체포 영장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까지의 거리는 약 240km나 된다고 합니다. 한시간에 4km를 걷는다면 12시간씩 걸어도 5일은 걸리는 거리입니다. 얼마나 열심입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1:13-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도덕적으로 난잡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엄청난 큰 죄였습니다. 스데반과 같은 신실한 사람을 돌로 쳐죽이는 살인죄를 범했습니다. 무죄한 남녀를 감옥에다 집어넣고 채찍질한 무서운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백하기를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라고 말합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다고 고백합니다. 누가 보아도 예수를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바울을 선택하여 예수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구원의 백성, 천국 가는 백성,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다가 정오에 엄청난 일을 만났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자신을 둘러 비취는 것입니다. 땅에 엎드렸는데 어디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는냐?" 이 때 바울이 처음 질문한 것이 무엇입니까? 8절 보십시오. "주여 뉘시니이까?" 당신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게 됩니다. 주라는 말은 주인이라는 말이고 그분만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바뀌어 버립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철저하게 변했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어떤 고백을 합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해 배설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는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을 바꾸어 버리는 경험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확실하면 눈이 달라지고 입이 달라지고 발걸음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구원체험이 있어야 힘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형외과 의사이시며 목사이신 정일봉 목사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였지만 술과 잦은 외도 그리고 폭력으로 어머니는 외갓집으로 가면 며칠씩 오지 않아 늘 공포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남동생은 일기장에 “나는 매일 집 뒤의 십자가를 보며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기도한다.”라고 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4남매는 단칸방에 지내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울분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운동에 몰두하며 탈선하였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여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답니다. ‘정일봉 성형외과’라는 간판을 내걸고 개원하였느데 소문이 나 돈을 잘 벌었답니다. 돈을 버니까 자신도 술과 도박에 빠졌답니다. 그렇게 살다가 간호사가 준 설교 테이프를 듣고 눈물을 흘렸는데 친구로부터 한 목사님을 소개받아 그 교회에 나가게 되었답니다. 50여명이 나오는 교회인데 첫날부터 맨 앞에 앉았는데 찬송가 가사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고 설교를 듣자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은 “초신자가 엄청나게 은혜 받았다”면서 좋아했는데 당장 그날 밤 또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벌였답니다. 교회 나간지 2개월쯤 됐을 때 부흥회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몸이 감전된 것처럼 떨렸답니다. 40여년 동안 지은 죄들이 활동사진처럼 스쳐 지나갔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온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답니다. 환상 중에 주님께서 넓은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가족에게 안수해주시는 장면이 보였고 입에서 방언이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성령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답니다. 친구들이 술을 마시자고 해도 마시지 않고 기독인 의사와 간호사들을 모아 울산의료선교회를 설립하여 매주 인근 농어촌을 돌면서 봉사활동을 벌였답니다.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면 빗자루를 들고 교회 인근 골목을 청소했답니다. 그런데 1991년 커다란 시련이 다가왔답니다. 집에서 쓰러졌는데 병원에 검사해 보니 뇌 중앙에 종양이 있다는 것이었답니다. 두 딸이 머리에 떠올랐답니다. 병원에 가 문을 닫고 원장실에 들어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답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내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아내는 교회도 나가지 않는 사람이 남편이 그런 처지가 되니까 기도를 하더라는 것입니다.“하나님,저를 살게 해주시면 하나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제가 계속 살 수 있다면 목사가 되겠습니다. 제가 죽지 않고 산다는 보장만 있으면 바로 신학원에 입학하겠습니다.”다른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답니다. 다시 서울대병원에 예약을 해 놓고 새벽 기도회에 가서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성령을 주옵소서! 성령을 주옵소서!" 성령 체험을 두 번째 주었답니다. “얘야, 의사가 뭐라고 하든 괘념치 말아라. 내가 알아서 할 게.”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병원에 검사를 받으니 뇌종양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의사의 말을 초월했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십 수년 동안 그 일로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4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의사와 목사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2. 나를 변화시킨 예수님에 대한 변화의 체험을 간증해야 합니다./변화체험
구원체험도 중요하지만 변화체험도 중요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인생이 달라졌다고 오늘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처럼 똑같은 그런 유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차이점이 없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였고 당시 최고 학부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말합니다. 유대 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싫어하였고 싫어할 정도가 아니라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믿게 된 후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큰 빛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눈이 멀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나니아에게 가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예수를 믿어야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정 예수를 만나면 이렇게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사실을 간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둠의 옷을 벗어버리고 빛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나서고 옛 모습 그대로 살면 안됩니다. 예수 믿고 복받은 인생을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분입니다. 죽음의 노예로 여전히 살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사탄의 노예로 살면 안됩니다. 아무리 흉악범도 예수님 만나 주님이라고 고백하면 그 때부터 인생은 엄청난 변화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열 여섯이나 죽인 김대두, 일가족을 도끼로 살해한 고재봉도 예수님을 만나니까 인생이 변화되어 감옥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해다 죽었습니다. 4세기의 성인이라고 말하는 성 어거스틴도 사생아를 낳을 정도로 패륜아였고 마니교에 빠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자가 되었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15살 때 술집 바텐더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니까 무수히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인도 복음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윌리엄 켈리는 학교를 126개나 지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믿기 전 평범한 구두수선공이었으나 변화받아 시대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5만 번 기도해서 응답받았다고 하는 조지 뮐러도 예수 믿기 전에는 동네 사람이 다 아는 좀도둑이었다는 것입니다. 노예 매매하며 악한 일을 일삼던 존 뉴톤 같은 사람에게도 예수 믿으니까 완전히 변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날마다 찬송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반드시 세번 놀란다." 첫 번째는 천국에 꼭 들어와 있어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절대 천국에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고 셋째는 노예 상인이었던 존 뉴톤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니까 완전히 변화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도 진정 이런 변화의 간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김성자 전도사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늘씬한 키에 자신 있는 외모로 모델을 하였답니다. 미국 유학을 앞두고 놀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10여일 만에 의식을 찾았답니다. 5번과 7번 척추 뼈가 망가져 신경이 완전히 손상돼버렸답니다. 아름다운 몸이 한 번의 사고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1급 중증 장애인이 되어 버렸답니다. 상반신 30%만 감각이 살아있고 나머지는 시체나 다름없었답니다. 병으로 가진 것 다 잃어버리고 친구도 친지들도 발길이 끊어졌답니다. 대인공포증에 시달리며 대소변을 받아내며 살았답니다. 죽을 내야 죽을 수도 없었답니다. 욕창으로 몸이 썩어져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중고교 동창이었던 한 친구가 그에게 전도를 했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몸이 불편하고 또 고통 가운데 있어도 진정으로 주님을 만났다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전도를 했답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주며 끊임없이 복음을 전해 주었답니다. 편지를 보내었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었고 바로 그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사실로 다가오며 예수님의 그 아픔이 내게 깊숙이 전달돼 왔답니다. 십자가상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되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내렸고 눈에서 눈물이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흘러나왔답니다. 입에서는 처음으로 감사기도가 흘러 나왔고 결국 그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절망의 나락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답니다. 성경을 읽고 절망에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아직 두 눈이 있어 볼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움직이며 입이 있어 먹고 말하게 하시니 감사했답니다. 자기와 같은 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하여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답니다. 점자를 배웠답니다. 편지를 써서 복음을 나누고 전화로 전도했답니다. 장애인선교단체를 돕고 홀로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을 돕기 시작했답니다. 극동방송의 ‘사랑의 꽃이 되어’라는 장애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가 되었답니다. 장애인 봉사를 하다 김성덕 집사를 만났는데 그 집사님이 간청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용변을 처리해 주고 병수발을 다 해준다고 합니다. 남편은 후각이 마비되 냄세를 맡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대전침례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여 전도사가 되어 세상에서 고통 받으며 힘든 삶을 영위한 장애 우들에게 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전도사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기회가 되면 정말 시골 오지, 골방에 갇혀 몇십 년간 외롭게 지내는 장애 우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자비랑 순회전도사가 되고 싶다. 나도 누구 못지 않은 장애를 갖고 있고 그들을 찾아가 전하는 복음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리라 믿는다."
3. 나를 사용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명체험을 간증해야 합니다./소명체험
바울은 자신을 사용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간증합니다. 자신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에 대하여 간증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같이 있었지만 특별히 바울만 이 놀라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 때 특이한 신앙 체험을 한 바울이 두 번째 주님께 질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소명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제까지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소명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고 말씀합니다. 아나니아를 만납니다. 아나니아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위해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고 합니다.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바로 이 사명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정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때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을 나가라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떠나라는 것입니다.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사명 앞에 순종하고 인생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변화를 시대를 변화시키는데 사용합니다. 소명체험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뒤집힌 것입니다. 빛의 강력한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관점이 바뀌어 버립니다. 세계관이 바뀝니다. 인생관이 바뀝니다. 진정 유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진정 기뻐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됩니다. 진정 편한 것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실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열심히 이제는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방향이 바뀌어 버립니다. 이제까지 배운 것들이 아무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참으로 유용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바울의 능숙한 헬라어 실력이 쓰임 받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이 쓰임 받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실력이 쓰입받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 아무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사명에 붙들리기 전까지는 양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으니까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다윗의 물매가 소명으로 쓰임받기 전에는 짐승을 물리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소명의 도구로 쓰임 받으니까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민족을 살리는데 쓰임 받게 됩니다. 오병이어 아이의 한끼 식사지만 소명의 순간에 쓰임받으니까 굶주린 5천명을 먹이고 12바구니를 거두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우리를 통해 엄청한 일을 하십니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 소명을 보편적 소명으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서양에서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름이 폴이라고 합니다. 바울입니다.
"소박한 기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마더 테레사의 삶과 믿음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 사람입니다. 테레사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가진 것을 곤경에 처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 힘든 가운데도 가난한 사람들과 가진 것을 함께 나눌 때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알콜중독 여성을 돌봐주기도 하고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노파를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여 음식을 전해주고 집안 청소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얘들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할 때는 말없이 하여라. 바닷물 속에 돌을 던지듯 말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테레사는 열두 살 나이에 소명을 받고 예수님을 위해 일을 해야하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라. 그 분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수녀원에 들어가 벵골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라." 1946년 9월 10일 기차 속에서 마태복음 25장 31절을 일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가장 보 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이 마음 깊이 새겨졌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길가에 쓰러져 비참하게 숨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답니다. 수녀원을 나오니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주님께 기도했답니다. "주님, 주님만이 저의 지원자이십니다. 당신의 부르심을 믿나이다. 저를 내치지 않으시겠지요."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복음 17:20). 살 곳이 없어 작고 소박한 오두막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한 사람이 궁궐 같은 집을 무료로 주었답니다. 약품이 필요하면 약품을 주는 사람이 있고 아이들을 먹이기 위한 음식이 필요하면 음식을 주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하셨답니다. 사랑의 선교회를 조직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돕게 됩니다.
언젠가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마더 테레사에게 15달러를 기부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른손만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답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답니다. "수녀님, 일주일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보내드립니다." 마더 테레사는 그 돈으로 빵을 사서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처럼 대하였습니다. 1990년까지 3068명의 수녀들이 종신서원을 했고, 454명의 수련자들과 140명의 지원자들이 함께 일하게 되었답니다. 아흔 개의 나라에 400개가 넘는 사랑의 선교회 지부를 만들어 봉사하게 되었답니다. 나병 환자, 고아, 가난한 자, 사회의 약자, 매춘자를 갱생시킵니다. 테레사가 이땅을 떠났을 때 인도 국민들은 장례식을 국상 일로 정해졌고, 인도 국민들은 조기를 달았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와 네루의 시신을 옮긴 포차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가 소명을 받았던 말씀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다"라는 말이 제대 위의 십자가 옆에 쓰여졌습니다. 지금도 마더 테레사의 무덤의 하얀 대리석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이 쓰여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개인적 소명이 보편적 소명으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은 설교 부족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의 부족이 아닙니다. 지식의 부족이 아닙니다. 기도 부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결단하는 순박한 실험 정신의 부족합니다. 소명 체험의 부족입니다. 분명한 사명감이 부족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면 성령 체험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덧입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머물고자하는 지역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전 세계 만민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명의 땅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시온산에 모여야만 한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심 운동이 땅끝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원심운동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표준적 삶을 제시하고 모든 기득권을 주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엽적 계급적인 한계를 극복해 버립니다. 복음으로 가정을 살리고 문화를 살리고 시대를 살리게 하는 것입니다.
경험한 만큼 신앙고백은 더욱 확실해집니다
1.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에 대한 구원체험이 분명하게 간증해야 합니다.
2. 나를 변화시킨 예수님에 대한 변화의 체험을 간증해야 합니다.
3. 나를 사용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명체험을 간증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5. 8.28.
열기 닫기
| 쪽지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