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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7)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사무엘하5:1-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377 추천수:1 112.168.96.218
2018-11-11 16:34:14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7)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

사무엘하5:1-5

 

우리는 다윗의 중요한 인생의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나오는 말씀은 다윗이 명실공히 유다 나라의 왕이 되는 장면입니다. 다윗은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릴 때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두 번째는 사울왕이 죽자마자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장로들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삼하2:4). 세 번째는 북쪽 이스라엘 열한 지파 지도자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습니다.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지 22년, 사울이 죽고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지 7년 6개월이 지난 때였습니다(4,5).

이때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다윗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 것같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사람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 끝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오늘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이 다윗이 있는 헤브론에 왔습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장 4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죽자 바로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연고주의는 정치에서 그 무엇보다 먼저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다윗이 유다 지파이기 때문에 유다 지파 사람들은 사울이 죽자마자 바로 다윗을 왕으로 옹립한 것입니다. 다윗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때까지 무수한 세월을 기다린 것입니다. 사울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될 기회가 있음에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이 죽고 유다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세웠을 때 왕이 되자 어디로 갔습니까? 2장 1절을 보십시오. 헤브론으로 갑니다. 길르앗으로 가서 사울의 잔당들을 제거하고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장 8-9절을 보십시오. 사울의 군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에 가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버렸습니다. 한 나라에 두 왕이 있는 것입니다. 11절 보세요. 7년 6개월 동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다윗을 왕으로 인정할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은 점점 사울 왕가는 기울고 다윗 왕가는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최고 실력자는 아브넬이었습니다. 사울의 사촌 동생입니다. 그는 명목상의 왕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허수아비로 세워 놓고 실제적으로는 자신이 북쪽 이스라엘 11지파를 다스렸습니다. 다윗이 군대를 거느리고 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다렸습니다. 기다리자 문제가 해결됩니다. 적장이 죽었는데도 다윗은 슬퍼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다윗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3장 36절을 보십시오.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백성이 기뻐합니다. 다윗이 제거하지 않았는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도 자객에게 피살을 당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20여 년을 기다린 것은 왕으로서의 소명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정치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백성들의 심리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국제정세에 둔해서가 아닙니다. 나라가 두 쪽으로 나누어 있으면 여러 가지로 어려울 것을 다 알면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인내한 것입니다. 정치적 술수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도 바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지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면 그것을 끝까지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조급하고 성급하게 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은 기다리지 못하여 망한 사람입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왕이 스스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다윗이 기다렸는지 그가 기록한 시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시편 40편을 보겠습니다.

어떻게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1. 기도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 40편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보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지체하지 말고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무작정,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약속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꿈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 도와주심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다림을 고통의 시간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명을 품고 기도하며 충실히 말씀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려주었습니다. 반석 위에 발을 올려 두었습니다. 그의 걸음을 견고하게 하여주었습니다.

 

2. 기다리는 시간에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이 기다리면서 무엇을 했는지 시편 62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입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절을 같이 읽어 보시시 바랍니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을 시켜 신정 통치를 하는 왕으로 자질을 갖추게 해 준 것입니다.

9절 보세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힘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허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40편에서도 기다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4절에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의지하고 교만하고 거짓말하는 인간들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림을 통해 이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상실을 통해 우리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궁에서 쫓겨났습니다.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600명의 측근이 따르지만 결국 그들도 자식들과 아내가 적들에게 잡혀가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다윗은 여호와를 힘입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세 가지 조건을 말합니다. 첫째는 골육이라는 것입니다. 관계를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둘째는 실제 실세였다는 것입니다. 왕으로 실력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 듯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바뀌어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웠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이 다윗이 어려움을 당하니까 어떻게 합니까? 다 배신합니다. 다윗의 대적자들이 되었습니다. 사울왕 이스보셋을 따른 것이 이익이 될 것 같으니까 따르던 사람들이 이스보셋이 죽자 이제 다윗을 따르는 것이 대세이고 힘이 다윗에게 기울어지니까 다윗을 따를 뿐입니다. 힘이 다윗에게 없어지면 다윗을 떠나 버릴 사람들입니다. 압살롬이 반역할 때 압살롬에게 붙어야 살 것 같으니까 다윗을 배신합니다. 솔로몬 때 배신합니다. 인간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만 철저히 의지하도록 하나님은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앞으로 정치를 하면서 수 없는 배신을 당할 텐데 광야에서 훈련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정정치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알지만 아들도 이익 앞에 배신할 것이고, 신하도 배신하지 않습니까? 그때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정치를 합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 볼 때 어떻게 하는 것을 보면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돈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돈 떨어지면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돈이 없어 보아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인지 돈을 의지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떠나 봐야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이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자기를 거슬리고 배신한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을 것입니다. 모세가 이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 백성들을 다 죽여 버렸을 것입니다. 광야의 백성들은 조금만 문제가 있으면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인기를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인기 떨어지면 우울증에 걸려 인생을 방황합니다. 건강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건강 떨어지면 살맛을 잃어버립니다. 사람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사람 배신하면 견딜 수 없어 분노와 증오의 화신이 되어 버립니다.

웅덩이를 통해 하나님은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인 왕인 사울을 대체하여 신본주의 왕 다윗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혹독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신본주의 왕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다림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25년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선물로 주시고 그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그 아들 하나 의지하고 살았다면 절대 바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종으로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 생사화복의 주인이 하나님이 신 것을 훈련시킨 것입니다.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바침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라고 부르시면서 독자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니 아브라함의 중심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도 40년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그 동안 무엇을 하나님께서 훈련했겠습니까? 앞으로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할 지도자가 되도록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백성들이 원망하고 배신하고 죽이려 해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명을 감당할 인물을 광야 기다림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기다림이 지루하고 기다림이 더디고 기다림이 힘겹지만,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너무 초초할 필요가 없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3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길고 긴 것같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때였습니다. 요셉도 30살까지 기다렸습니다. 예수님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였습니다. 37살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40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취업이 안 되었다고 결혼을 못 했다고 너무 초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살날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시편 40편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림의 때를 기다리면 신앙 생활하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으신다고 믿음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취가 됩니다.

 

3. 기다림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께 쓰실만한 그릇으로 훈련을 받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에 허송세월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는 기다림의 훈련을 통해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무엘하 5장 1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훈련되어 점점 더 강성한 나라를 만들어 간 것입니다.

우리가 훈련받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 훈련입니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격 훈련입니다. 셋째는 일과의 관계에서 능력 훈련입니다.

다윗은 이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되지 무엇을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땅을 차지합니다. 여호수아도 차지하지 못한 땅이고 이제까지 정복하지 못한 땅을 점령해 버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통하여 야전 사령관으로 전술을 충분히 갖추게 된 것입니다. 골리앗만 이긴 것이 아니라 오합지졸인 떠돌이들을 정예병으로 훈련해 실제 전쟁에서 백전백승하는 용장이 된 것입니다.

 

다윗을 후에 이것을 알았습니다. 기다리게 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왜 기다리게 했는지 시편 40편 2절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까?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을 통하여 인간 관계의 인격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하기를 시편 26편 2절에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그 자리에 올라가도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인격은 하루아침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인격, 위대한 인격은 고난이 없이는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굴러야 합니다. 하류의 다듬어진 돌들은 수 없는 시간 부딪치면서 다듬어진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원만한 인격을 갖추려면 긴 시간 고난의 관정을 통해 다듬어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좋은 그릇은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지도자로서는 진정한 성공을 못 합니다. 웅덩이를 통해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변화시키기 위해 기가 막힐 웅덩이를 통과하게 하는 것입니다. 변화시키기 위해 기가막힐 웅덩이를 통과하게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낮아지고 낮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사람을 얻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비가 온 후에 땅을 굳어지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훈련을 통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10)”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 내 때와 내 시간을 고집하면서 지겨워하고 힘겨워하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때에 이루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를 거절한 이유는 자신들이 보기에는 십자가가 저주이지 구원을 이루는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때 다 하나님의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장수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야고보와 스데반은 짧은 인생 살면서 순교의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인정하고 믿고 따라야 합니다. 고집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고집은 겉으로 믿음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상처와 분열, 다툼을 만듭니다. 내 생각과 주장이 옳음으로 믿음이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확신이요, 자기 의가 되기 쉽습니다. 자기 주관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때를 확실히 믿고 기다렸습니다.

시편 27편 14절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13절에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기다리는 동안 이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나오는 것이고 믿음이 있으면 견디고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있는 순수하지만, 그의 어린 신앙이, 더욱 성숙하여져야 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훈련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금은보화를 주면 그것으로 타락합니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면 그것으로 사울과 같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한 정치를 합니다. 사람은 상황만 바뀌고 무엇인가 주어지면 모든 것을 이룰 것 같지만 하나님은 도구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시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칼을 주면 의사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지만 강도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황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속에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의 내면의 변화, 성숙을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20여 년의 도망자 생활, 아둘람 동굴에서 불량배 같은 400명과 함께 공동체 생활, 블레셋에서 비참한 망명 생활을 통해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같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여 후대의 사람들에게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위로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좋은 음식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기간이 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이었고, 모세는 40년이었습니다. 다윗은 20여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재목은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나무가 되려면 50-100년 기다리는 것입니다. 명작은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기다림에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기다리면 봄은 옵니다. 노아는 120년을 기다렸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너무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합니다. 조급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희망 고문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자연의 법칙이며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산모는 잉태한 후 출산을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은 멈춤의 시간이 아니고 준비의 시간입니다. 기다림은 낭비의 시간이 아니고 창조의 시간입니다. 기다림은 고통도 따르지만, 가슴 떨림과 환희가 있는 소망의 시간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는 늘 희망이 있습니다.

걸작품이 나오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수적입니다. 기다리지 못하면 실수합니다. 사울은 기다리지 못하여 왕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리지 못하고 첩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고 인류의 비극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조급증 때문에 삶을 망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결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알고 판단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함부로 말했다가 말의 올무에 넘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현대가 속도전이라고 하지만 빠른 길보다 바른길이 더 중요합니다. 스피드 시대에 기다림은 지루함과 초조감으로 견디기 어렵지만 기다림의 훈련이 되어 끝까지 남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6)"라고 말씀합니다. 기대하고 사는 사람은 기다림에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눈이 그리우면 겨울까지 기다리면 온 천지가 눈밭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축복을 경험한 다윗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37: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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