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여호수아18:1-10
지난 7월 신앙 월간지 낮은 울타리에서 "은빛 바다에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이라는 이정연 자매의 간증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유방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암이 뼈로 전이되었답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계속되는 구토와 호흡곤란으로 괴로워했답니다. 아픔으로 울부짖었답니다. 그 고통 가운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씀이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뼈로 전이된 암을 치료받던 과정에서 오래 전부터 앓아오던 류마티스로 인해 다리는 굳어지고 모든 관절은 기형이 되어 갔답니다. 생명을 앞에 두고 싸워야 했기 때문에 못 걷는 것에 마음을 둘 여유조차 없었답니다. 손가락 모든 관절은 딱딱하게 변해 버렸고 한쪽 손가락은 심하게 휘어졌답니다. 지체장애 1급이 되었답니다. 이 후에도 피부암과 대상포진이 나타나 고통은 더욱 심각했답니다. 사람이 이정도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답니다. 기도하였답니다. 투병 생활을 하던 중 한 남자가 자매의 마음에 들어왔답니다. 기나긴 통증으로 인해 아픔과 상처들로 얼룩진 인생인데 한 청년이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했답니다. 정상인 남자가 휠체어를 타는, 그것도 암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평생을 가겠다고 하였답니다. 자매는 청년에게 암이 얼마나 무서우며 장애인과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힘든지를 강조했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혼자보다는 둘이 함께 이겨나가자며 설득했답니다. 설혹 결혼하여 죽음의 시간이 온다 하더라도 주신 시간만큼 함께 하자며 물러서지 않았답니다. "주위 친구들은 멀쩡하고 학벌 좋고 집안 좋은 자매들과 결혼하는데 왜 하필이면 나 같이 병들고 가족도 없는 사람과 결혼하려는 건가요?" 청년은 "당신 안에 있는 아름다운 주님의 형상, 그 믿음이 소중한 거지 보이는 것은 잠깐이에요." "평생 당신이 내 휠체어를 밀고 다녀야 할 텐데요?" "휠체어가 뭐 어때서요.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건강한 사람도 살다보면 아프게 마련인데 당신은 단지 조금 빨리 아픈 것뿐이에요." 청년은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었답니다. 주변 사람들은 자매를 향해 그런 몸으로 어떻게 사모가 되려고 마음을 먹느냐 목회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반대하였습니다. 특히 청년의 부모님은 거세게 반대했답니다. 청년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셨답니다. 청년은 아버지를 설득하였습니다. 아들의 뜻이 분명하기 때문에 목사님은 기도해 보자고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목사님이 자매를 보자고 했답니다. 기도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답니다. 청년의 부모님 앞에 앉는데 마치 심판대 앞에 서는 양 심장이 벌렁 거렸답니다. 방 안 가득 긴장감이 맴돌았답니다.
"보기 전엔 걱정만 되더니 막상 아가씨 얼굴을 보니 기쁘고 마음이 평안해지니 신기하네. 아가씨와의 결혼을 허락하기로 했어요. 암만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아가씨가 우리집 며느리란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을 주시지 않는구먼. 허허허"
그러자 이번엔 옆에 있던 그의 어머니가 내 손을 당신의 가슴팍으로 끌어당기시며 다정스런 미소를 지어 보이셨답니다. "비록 몸은 이래도 아가씨는 우리 집에선 귀한 사람이오."
결혼식 전날 밤, 시아버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답니다. "아가, 너는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보내신 선물이란다. 그러니 휠체어 탔다고 부끄러워 말고 당당하게 입장하렴. 이 결혼은 내가 허락해서 하는 것도 아니요. 내 아들이 너를 사랑해서 하는 결혼도 아니요, 하나님이 너희 둘의 만남을 허락하셔서 하는 결혼이란다." 이 자매는 청년과 군산에 있는 섬기는 교회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하였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시댁을 찾아뵈었을 때 어머님이 아무 말 없이 자매를 품에 안으시며 말씀하셨답니다. "하나님이 너를 어디다 숨겨놨다 이제야 주셨는지 모르겠구나. 아가 네가 우리집에 들어오다니 참으로 기쁜 일이다." 남편이 된 그와 그의 부모님을 통해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답니다. 혹시 올해 계획하였던 것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포기하신 성도님은 계시지 않습니까?
1. 어떤 어려운 일이 있다하여도 우리 인생은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8월 첫주일입니다. 올해도 이미 7개월이 흘러갔습니다. 올해 목표를 세우고 일한 것이 얼마나 성취되었습니까? 가정에서 맡겨준 일, 교회에서 맡겨준 직분, 직장에서 사회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혹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되는대로 살자라고 이미 목표는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핑계를 대며 망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연초에 "올해는 꼭 담배를 끊으리라. 술을 끊으리라." 어떤 사람은 올해는 "꼭 주일 예배에 참석하리라. 올해를 집을 구입하리라. 올해는 꼭 전도 한 명하리라. 올해는 꼭 매출액을 올리리라. 올해는 꼭 가정 예배를 드리리라" 계획하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이미 늦었다고 이미 끝이 났다고 포기해 버리고 있는 것은 있지 않습니까? 8월은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달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습니다. 세 가지 단계를 통해 그 목표를 이루게 만들었습니다. 1단계는 12지파 공동 출전하여 중요 거점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2단계는 각 지파에게 땅을 분할하는 것입니다. 3단계는 각 지파별로 분할 받은 땅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 과정을 우리 교회에 비유하여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분당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의 중요 거점을 점령하게 했고 각 구역별로 마을 교회별로 분할 받은 선교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우리가 불신 세계의 문화를 점령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나 생명 사역의 반경을 넗혀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두 번째 단계인 기업 분배는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모세에 의한 모압 평지에서 행해졌는데 요단 동편에 기업을 분배받은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그리고 갓지파를 대상을 이루어졌습니다.(민33:50; 34:29) 요단을 건너기 전 가나안 정복 전쟁의 중심지였던 길갈에서 여호수아를 통해 므낫세 반지파, 에브라임 그리고 유다(수14:17)에게 기업 분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업 분배가 멈추어졌습니다. 이스라엘 7지파가 완전한 점령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기업 분배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7지파가 기업을 차지하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오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취하지 않고 망설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을 읽어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수 18:3)" 이미 열조에게 주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고 이삭과 야곱 모세를 통하여 끊임없이 확인된 땅입니다(창12:7, 13:15,16; 17:8 출3:7,8 신1:25). 그 땅을 왜 차지하지 않고 지체하고 포기하느냐는 것입니다. 지체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지금 지체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시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일지라도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헛되이 낭비하거나 나태하게 보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삶은 단순히 나의 생활을 영위해 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한 시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쓰임받기에 늦은 시간이 없습니다. 죽음 앞에 선 강도도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아브라함을 75세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의 작가 <마가렛 미첼>은 신문 기자였습니다. 사고로 기자로 꿈을 펼쳐 보지 못하고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10년 동안 병상에서 소설을 썼습니다. 3년 동안 무려 13개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어느날 기차역에서 출장 가는 밀런 출판사 편집장 레이슨을 만나“한번만 읽어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녀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레이슨은 읽지 않았습니다. 미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번만 읽어 주십시오 - 미첼올림”동일한 전보를 세 번째 보내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작품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6개월만에 100만부가 팔렸고, 미첼은 이 소설로 1937년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만약 다리가 다쳤을 때 포기했다면, 두 번째 전보를 부치고 포기했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뿌리」를 쓴 알렉스 헤일리는 8년 동안 1백 번이 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1976년, 55세가 되던 해에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40살에 살인하고 도망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고 있는 모세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80살의 나이에 불러 민족 구원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아합 왕에게 쫓기며 차라리 죽기를 원했던 노년의 엘리야 하나님은 그 엘리야를 찾아가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먹고 힘을 내 하나님께서 맡겨준 사역을 감당하라고 합니다. 지금 포기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부모도 형제도 다 포기해 버린 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병자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6)라고 물어 보셨습니다. 그의 진정한 문제는 육신의 질병이 아니라 마음의 질병, 영혼의 질병이 문제였습니다. 늘 패배의식에서 살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소외의식에서 살고 있습니다.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인성에 홀로된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모든 것이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만나니까 초상집이 잔치 집으로 변했습니다. 죽음의 행렬이 축제의 행렬로 변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잠 24:16)"다고 했습니다. "환난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라고 말씀합니다. "예수에 이름으로 나는 일어 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2.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배부터 회복되어야 합니다.
일이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선 위기가 많으면 많은 수록 더욱 우리를 망설이게 하고 지체하게 만듭니다. 일곱지파가 땅을 취하러 가지 않고 지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7지파는 다른 지파들이 이미 차지하는 땅이 자신들이 차지할 땅보다 좋기 때문에 불평하며 지체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일곱 지파가 살기에는 너무 좁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유다에 할당된 땅이 너무 많다고, 자신들의 땅은 너무 척박한 땅이라고 핑계대며 지체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런 사실을 여호수아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혹 우리고 이런 핑계로 주어진 사명들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가대 사명이 어떤 유명한 오케스트라보다 하잘 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교사의 사명이 학교 선생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직장에서 직원의 일이란 사장의 일에 보잘것없다고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보모의 일, 집에서 밥하는 일, 구역장 일, 집사의 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가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취하러 가지 않는 백성들을 보면서 가장 첫 번째 한 일이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실로에 회막을 세웁니다. 지금 말하면 자신의 주어진 사업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를 세우자고 하고 교회를 짓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미미하게 생각하며 지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배를 드리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 약속의 땅을 점령하는 것은 그들의 필요에 의해 되어진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7절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어떤 모습으로든 쓰임받으면 되는 것이고 아무리 작은 땅도 아무리 척박한 땅도 은혜이고 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소집합니다. '회중'이란 소집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모인 무리를 말합니다. 모든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난관에 봉착하면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님 앞에 모여 신앙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먼저 실로에 모여야 합니다. 회막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업분배는 단순히 자기 몫을 차지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430년 전에 약속한 그 약속을 성취하는 것입니다(창15:12-21). 이삭과 야곱 모세에게 누누이 약속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체하고 포기했던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무엇보다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이 예배의식입니다. 사명의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만나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붙드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모든 것이 다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파악하기 보다 일을 파악하기 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병든 영혼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믿지 못하는 마음,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는 마음, 천국의 상급에 대하여 회의를 갖는 마음, 하나님의 존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하여 회의를 갖는 마음들이 예배를 통해 먼저 치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병든 마음을 치유받아야 합니다. 시기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 소망을 잃어 버린 마음, 핑계대는 마음, 거짓말하는 마음, 남을 정죄하는 마음, 낙심하는 마음, 우울한 마음, 교만한 마음 치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이런 마음이 치료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병든 몸을 치유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는 안개같은 것들이 제거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리다 보면 분명한 목표가 보입니다.분명한 목표가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제프 데이비슨이 쓴 "60초 혁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갖는냐에 따라 "60초 후 당신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라. 사고방식을 바꾸어라"라고 말합니다. "사회에서는 우선하는 일을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 우선하는 일이 지나치게 많으면, 각각의 일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참된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스코틀랜드의 해방자요 불세출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로버트 1세라는 왕이 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의 침입을 받아 무려 6번이나 패전하여 깊은 산 속을 헤매다가 다 쓰러져 가는 움막에 들어갔답니다. 낙심하고 상한 마음으로 그곳에서 천장을 바라보니 한 마리의 거미가 나타나서 부지런히 작업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첫 번 줄을 치는데 여섯 번이나 땅에 떨어져 실패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올라 결국 거미 그물을 완성하더라는 것입니다. 왕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거미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고 산을 내려와 자신도 일곱 번째 전열을 가다듬어 싸워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거미가 하는 일만 보고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갖은 고난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인류를 구속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우리 주님께서 새 힘을 주시고 하늘의 능력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앞에 나오면 모든죄사하고 주의품에 안기어 편히쉬리라 우리주만 믿으면 모두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205장 1절)"
3.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그림을 다시 그리고 순종과 신앙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땅을 받은 르우벤, 갓, 므나셋, 에브라임, 유다 지파와 달리 정복 사업에 소극적인 일곱 지파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내리고 있습니다. 매지파별로 3명씩을 선정하라고 합니다. 21명입니다. 가나안 정탐을 위해 보내 12명보다 많은 인원입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합니까? 일어나서 그 땅을 두루 다니며 앞으로 받은 기업에 대한 지도를 그려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8절보십시오. 순종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적진입니다. 9절보십시오. 그 일을 완성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지적도를 만들기 위해 정탐에 나섰습니다. 처음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믿음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강한 믿음으로 주어진 임무를 담대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철저한 신앙과 순종은 어려운 역경과 난관을 타개하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에 머무는 신앙인으로 끝나서는 아니됩니다. 약속을 성취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데 쓰임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가치있는 일입니까? 내가 이루는 것은 좋지 않은 땅이라고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많은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성경전체에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 1,600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이 약속을 성취하여 누리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목입니다. 가나안을 주셨으면 그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을 밟아야 할 사람은 우리입니다. 가나안 땅을 약속하였다할지라도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려야 할 것은 우리의 목입니다. 이 일을 하는데는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진정 과제를 이룰려면 과제를 써서 눈에 띄는 곳에 붙여 두어야 합니다. 정말로 건강하고 싶으면 포스트에 운동하기, 절식하기, 건강검진 받기, 마음 깨끗이 하기 등 구체적인 목표를 써서 여기 저기에 붙여 놓아야 합니다. 과제가 크건 작건 눈에 띄는 곳마다 써 붙이게 되면 메시지에 반복적으로 노출이 되어 결국에는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면 마음에도 자리를 잡게 됩니다. 좋은 것을 얻는데 위험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지도를 그리면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재미없다고 하기싫다고 성과급이 없다고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재미없는 임무는 시간이 지나도 재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기 싫은 일은 시간이 지나도 하기 싫은 것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들은 재미있고 하기 쉽은 것들이 아닙니다. 재미없고 하기 싫어도 해야할 일이 세상에는 괴귀한 것들입니다. 마구간을 청소하는 일 따위는 뒤로 미룰수록 점점 더 하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믿고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따라 순종하고 나가다 보면 습관도 바뀌고 인격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진해야 합니다. 비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비전의 눈을 떠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비관적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과는 어떤 일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레나 루즈벨트 여사는 고아출신의 불행한 어린 시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긍정적이고 밝은 얼굴로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답니다. 6명의 자녀 중 1명이 죽자 "내가 아직까지 사랑할 5명의 자녀가 있다"고 자신을 위로하였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휠체어를 타고 아내에게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느냐? 고 질문하자 "내가 당신의 다리를 사랑한 줄 아십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향해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혼잣말을 할 때 무슨 말을 하는가』의 작가 섀드 헴스테터는 마음속 대화의 80퍼센트 이상이 자신의 결점을 화제로 삼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안될 것이라고 사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당당해 집니다. 당당하게 성공하는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십시오.
이미 늦었다고 아직 때가 아니라고 지체해서는 안됩니다. 완벽한 시간은 없습니다. 일을 시작할 완벽한 기회를 노리고 있다면 그것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최상의 시작 시간은 '지금 당장'입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즉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라는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1년에 1조원의 매출액을 올려 세계의 화제가 된 나까지마 가오루는 그의 책 "시작하는데 포기란 없다"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면, 무엇인가를 느꼈다면,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이 들었다면, 바로 그 순간이 시작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작하자.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빠른 때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분석하는데 시간을 다 투자하고 그 분석으로 망설이는 인생을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약속 붙들고 나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성공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말리 매틀린은 스물한 살에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제시카 탠디는 여든 살에 같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제임스 미치너는 마흔두 살에 첫 번째 소설을 썼고, 엘비스는 마흔두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치너는 아흔 살에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베스트셀러를 계속 만들어 냈습니다.
강철왕 카네기가 젊은 폴레온 힐을 만났답니다. 면담을 하는데 세 가지를 질문했답니다.‘당신은 당신이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아주 가능성이 있는 길이라고 할 때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갈 의욕이 있소?’카네기는 초시계를 책상 밑에 들고 60초 이내에 대답을 못하면 체용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나폴레온 힐이 29초 만에 '하겠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두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20년 동안 당신이 그 길을 갔는데도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당신은 포기하지 않고 가겠소?' 그래도 '가겠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20년 동안 당신에게 보장된 보수가 없다는 것이오. 당신에게 보장된 보수가 없어도 그 길을 가겠소?'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나폴레온 힐이 '아니, 회장님 그러면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다가 쓰실려고 저에게 그렇게 질문하십니까?'라고 반문했답니다. 그러니까 '일단 대답하시오'라고 했답니다. 이 때 나폴레온 힐은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그 때 카네기가 같이 일하자고 했답니다. 나폴레온 힐이 20년 동안 카네기에게 배운 여러 가지 것을 저술해서 번 돈이 20년동안 자기가 정상적으로 일해서 벌을 수 있는 돈보다 몇 백배를 더 많이 벌었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사명입니다. 오늘날 회사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먼저 돈부터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사명주시면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확실이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약속의 땅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그 약속 믿고 순종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2-3)"라는 약속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8월 첫주일입니다. 다시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망설이며 지체하고 포기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1. 어떤 어려운 일이 있다하여도 우리 인생은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시간은 없습니다.
2.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배부터 회복되어야 합니다.
3.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그림을 다시 그리고 순종과 신앙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약속의 땅은 축복으로 임할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5.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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