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역대상 22:6-16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 명의 자녀를 낳으면 야만인이라고 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출산 장려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현재와 같은 출산율이 계속 유지될 경우 오는 210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구한말 당시(1천 500만 명)보다 약간 많은 1천 621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2020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가 되 것이라고 하는데 저출산까지 겹치면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즈음은 아이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라고 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현재 서울시에서 자녀를 가장 많이 둔 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몇 명일 것같습니까? 11명입니다. 부인이 22살에 결혼을 했는데 18살 첫째부터 젖먹이 막내까지 11명이라고 합니다. 지금 부부가 40살로 동갑내기라고 하니까 주신대로 낳은 다면 앞으로 몇 명을 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최근까지는 10남매 집이 한 분 더 있어서‘공동 1위’였는데 11번째 아들인 ‘똘이’가 태어나 이분들이 '경쟁자'를 제치고 단독 선두에 나섰다고 합니다. 식구가 많다 보니 의료보험증에는 칸이 모자라 2장을 덧대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 등본을 떼면 두 장 꽉 채운 서류를 보고 담당 공무원이 두 통을 뗀 걸로 착각을 하곤 한답니다. 학교에서 가정조사 설문지를 가져오면 늘 칸이 그려져 있는 만큼만 순서대로 쓰고 나머지는 빼 논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먹어대는 밥만 해도 한 달에 쌀 한 가마니는 넘는데 다행이 식당을 하여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부럽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가족 식구들이 많은 집에서 자란 한 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들 8명 딸 2명 그 중에 8번째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궁중 악사로 일을 했습니다. 왕의 시기심으로 쫓겨다녀야 했습니다. 결혼을 약속해 놓고 파혼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혼하였는데 장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내를 빼앗아 다시 재혼을 시켜버리는 수모도 당해야 했던 사람입니다. 심지어 살기 위해 남의 나라 남의 집에 가서 침을 흘리며 미친 체하며 살아야 했던 사람입니다. 어렵게 왕이 되었지만 신하의 부인과 간통하여 아이가 죽고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들과 신하가 반역하는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권력을 잡자 첩들을 많이 거느렸는데 첩이 아들에게 백주에 겁탈당하는 수모를 당해야만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이분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종대왕을 존경하듯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 다윗입니다. 다윗은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시편에 그 사랑을 절절이 고백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 18:1-2)" 우리도 부족하지만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은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1-4)" 아멘 우리가 부족하여도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참 부족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인생을 뒤돌아보면 참 험한 길을 걸어 온 경우들을 봅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은 변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할 때 자신이 사랑하는 만군의 이름으로 나아가 그를 물리쳤습니다. 선지자가 자신이 죄를 지적할 때 왕이지만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회개하고 또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사도행전을 통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는가가 오늘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성전 짓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자신은 왕으로 화려하게 사는데 하나님의 집 성전이 초라하고 없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성전을 짓기 원했습니다. 왕이지만 정치 중심이 아니라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살기를 원했습니다.(대상 22:1) 성전을 짓는 것은 제사장들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일로 생각합니다. 법궤가 불레셋 땅에 있을 때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오면서 너무나 기뻐 바지춤이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는 성전 건축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대 준비합니다. 필요한 사람들을 준비합니다(2,15). 풍부하게 물자를 준비합니다(3-4). '한없이''심히 많아서' '셀 수 없는' '무수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환란 가운데서도 준비합니다(14). 죽기 전까지 준비합니다(5).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5,6) 얼마나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에 감사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도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성전짓기를 원했지만 거절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 성전을 건축하게 할 것을 말합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지을 것을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깨끗하게 순종합니다(7,8).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인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자기가 다 준비하였는데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뜻을 성취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쓰임받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니다. 모세도 깨끗이 물러갔습니다. 다윗의 성전이 아니고 솔로몬 성전으로 불려 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성전을 지으려는 그의 신앙을 통하여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과 자신의 백성에게 복을 받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이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한 시대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은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니다. 자신이 축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으면 됩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고 여러 가지 단점이 있었지만 그를 통해 아들 솔로몬이 복을 받습니다. 한 시대 혈통적으로 메시야가 탄생하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를 통해 나라가 안정이 되었고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땅, 최대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짓지 못했지만 그를 통해 성전 재료가 준비되었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역사상 성전시대가 개막되고 성전을 통한 축복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평생 살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의 통로 쓰임 받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저주의 통로로 쓰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왕 중에 비교하면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 1대 왕 사울과 2대와 다윗입니다. 사울은 저주의 통로로 쓰임 받은 사람이고 다윗은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똑같이 40년씩 통치하였지만 사울은 저주의 통로가 되어 시기심과 질투 속에서 악신에 들려 나라도 어려웠고 자신과 자식들 마저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인도대로 살아 나라도 부강하게 언약을 자손을 낳고 메시아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할까요? 저주의 통로가 되길 원할까요? 하나님을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을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담과 하와를 창조할 때부터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했습니다.(창 1:28) 그러나 범죄로 말미암아 축복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그늘이 덮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자손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받고 우리를 통하여 열방이 돌아오길 원하고 우리를 통하여 세상이 평안해지고 우리를 통하여 가정이 건강해지고 우리를 통하여 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민족이 통일되고 우리를 통하여 세계 복음화가 실현되고 우리를 통하여 양심이 회복되고 우리를 통하여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오늘 나누어드린 축복의 통로를 우리 손을 내밀고 불러 보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주께 예배하게 되리. 주께 사랑 받게 되리. 주께 축복 받게 되리." 서로 인사합시다. 우리 꼭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가족을 향해 인사합시다. 우리 반드시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우리가 어떤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평안을 주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9).
9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성전을 지으려했던 다윗의 요구를 거절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합니다. 다윗을 통하여 한 아들을 그에게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약속을 해 주십니다. 어떤 축복의 약속입니까?
1) 그는 평강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 그 자신이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2)사방에 있는 그의 모든 적으로부터, 평안을 누리도록 보장해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수많은 대적들이 결코 그 평안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란도 위험도 질병도 전쟁도 그 어떤 것도 그 평안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3)그가 사는 날 동안, 내가 이스라엘에 평화와 안정을 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 역시 평안을 누리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을 통하여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평안과 안정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식들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들에게 심지어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도 평안과 안정을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기간적으로 한 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는 날 동안 내내 평안과 안정을 누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살면서 불안과 불안정을 주는 저주의 통로로 사용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이 노예가 되어 가족에게 이웃에게 가는 곳마다 불안과 불안정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해도 평안과 안정을 주어야 합니다. 일을 해도 평안과 안정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평안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아담이 잃어 버린 평안을 우리 주님을 통해 회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두려움이 살아집니다. 불안이 없어집니다. 평안해 집니다.
박명수 교수의 이야기교회사를 보면 우리 나라 초기 신자들의 예수믿는 대표적인 특징이 평안이었다고 합니다. 1895년 늦가을 언더우드는 부인과 함께 황해도 소래교회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최초의 교회입니다. 언더우드 부인은 그 때 방문한 기록을 일기에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일기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공통적인 구원의 증거는 평안이었다고 합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이며 줄 수도 없는 평안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질문하자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주 행복합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초기 한국 교회 신자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체험했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서 '내 마음 평안해'라는 찬송을 힘차게 불렀답니다. 건강도 재물도 미모도 재능도 권력도 명예도 평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로부터 오는 불안을 무엇으로 극복하겠습니다. 감정의 문제로부터 다가오는 오는 불안을 무엇으로 극복하겠습니까? 매일 다가오는 문제로부터 다가오는 불안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라고 하셨습니다. 평안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가정에도, 교회에도, 나라에도, 직장에도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평안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일평생 사역에 있어 보장받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10).
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다윗이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성전을 짖겠다고 할 때 하나님은 거절하였지만 그 아들 솔로몬에게 어떤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을 말씀합니까?
1)그의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일을 맡김 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윗 너는 성전을 짖지 못하지만 아들 솔로몬이 다윗이 준비한 재료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것을 말씀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내 아들이 내 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짖는데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아무나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윗은 그렇게도 짖기를 원했지만 피를 많이 흘렸다고 거절당했습니다. "성막"을 지을 때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쓰임받았습니다. 구별된 사람으로 쓰임받았습니다. 나라에서 기업에서 귀중한 일을 맡김 받으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것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피조물된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복중의 복입니다.
2) 다윗 자손들과 하나님이 부자관계를 맺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대대로 신앙의 후손이 되겠다는 약속입니다. 대대로 예수를 믿은 집안이 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대대로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3) 세상에서 사역이 보장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왕위를 계승할 것을 말씀합니다. 다윗의 집과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게 설 것을 말씀합니다. 초대왕 사울 왕은 축복의 통로가 되어 자손들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1대로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대대로 왕통이 보장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의 자리에 앉혀놓고, 그 자리를 견고하게 하시어 아무도 넘보지 못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자리를 영원히 이어가게 하겠다는 겁니다. 솔로몬도 죽는데 그 자리가 어떻게 영원하게 됩니까? 그것은 자손이 대를 이어 왕의 자리를 지키다가 만 왕의 왕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그 자손에 가운데서 나게된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메시야 왕국을 이룰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후손 중에 예수님이 탄생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메시아 왕국의 통치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일평생 영육간에 사역에 보장받는 것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돈주고 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은퇴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것 그것만큼 값지고 고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년이 없는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정년이 없습니다. 나 뿐 만 아니라 나의 후손 대대로 이런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복을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쉽게 포기해서는 아니 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환경이 따라 주지 않는다고,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포기해서는 아니됩니다.
사람은 20세 즈음부터 뇌의 신경세포가 죽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50세부터는 10년마다 2%가 감소한다고 합니다. 70~75세에 이르면 더욱 급격하게 신경세포가 줄어들어 치매 등의 문제를 야기되기도 하는데 나이가 먹으면 먹을 수록‘자기애(自己愛)’가 강해진다고 합니다.
보통 20·30대 젊은층에서 나타나는 기질적 성향은 자기 자신보다 일의 성취를 중요시하고 40대가 되면 일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가정과 자식, 자손 등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진다고합니다. 50대에는 지역사회를 많이 생각하는 경향을 띠다가 60대가 되면 지역사회에서 자기 자신으로 정서적 생각이 옮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40대와 70대가 하루에 생각하는 대상과 시간을 보면 40대는 우리 아이, 내 사업(직장), 나 자신 등의 순인데 70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나이기 먹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체력이약해지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만 떨어지고 집중력이며 기억력이 떨어지고 판단력도 감퇴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신 고집과 에고(ego)와 편견이 늘고 더욱 욕심스러워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나는 못하지만 우리 주님께 맡기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쓰시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왕이지만 솔로몬이 자기 힘으로 성전 짖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여 짖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90세에 가나안을 찾아갔습니다. 모세는 80세 때에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80세가 넘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85세가 된 갈렙은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며 평안히 안주하기보다는 아낙 자손이 진을 치고 있는 땅을 정복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여호와께 의지하며 나아가 승리하는 것을 봅니다.(수14:7-12)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영국사람 윈스턴 처칠이 공산권을 [철의 장막]이란 말로 경고한 것은 71세 때였습니다. 78세에 노벨 평화상을 받기까지 젊은이답게 일하였습니다. 38세에 선교 사역을 시작한 씨바이쩌는 77세에도 자신의 이념을 성취하기 위해 집념을 불태우다가 77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뉴욕주 롱 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감리교회의 찰즈 맥코이 목사는 71세에 새출발을 했습니다. 인도 선교사 한 분이 설교를 한 후 교인들에게 선교사 지망을 호소했습니다. 한 사람도 희망자가 없자 담임목사인 맥코이 목사가 "71세라도 늦지 않았소?"하는 질문하였습니다. "늙은 나무에 더 좋은 열매가 맺힐 수도 있다"는 대답을 듣고 이날 결심하고 선교사가 된 맥코이 목사는 86세에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15년간을 중국의 아편 중독자들을 위하여 사랑을 쏟았던 것입니다. 타티안은 98세에 그의 거작 "르판트의 전쟁"을 그렸으며 미켈란젤로는 80이 넘어서 그의 대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는 일평생 사역에 있어 보장받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10).
3.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형통함을 누리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11-13).
11절을 읽어보십시오. 다윗은 이제 아들에게 당부합니다.
1)하나님이 함께 하여 형통의 복을 받아 성전을 완공하기를 원합니다(11).
성전을 짖는 것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려 7년이나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형통할 수 있습니다.
2)여호와께서 주시는 지혜와 총명의 복을 받아 맡겨준 일을 완성하길 원합니다(12).
3)사명을 완성하는 형통의 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받으므로 강하고 담대하게 말씀대로 살 것을 원합니다(13).
요약하면 "형통하여(11절)... 형통하리니(13절)"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 짖는 것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난관과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형통의 복을 받는데는 하나님이 함께 하여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형통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통의 복을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라하며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라고 하면 가면 됩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같지만 결국 형통의 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랬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니까 칼을 들지 않습니다. 성전을 짖는 것 그렇게도 소원한 것입니다. 돈도 있습니다. 열정도 있습니다. 기술자도, 재료도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라고 멈추라고 하자 그대로 멈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통의 복을 누리게 하는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가는 곳마다 형통의 복을 누립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삶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말씀대로 억울해도 묵묵히 걸어갑니다. 종으로 애굽에 팔려가 보디발 집에 갈 때도,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갈 때도 말씀에 따라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치범만 들어온 감옥에서 요셉에게 정치 공부를 시켰습니다. 결국 애굽으로 내려간지 13년 만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앞길에는 복병이 있습니다. 장애물이 있습니다. 강이 있고 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은 건너라고 있고 산은 넘어라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가다보면 사명을 이루는 형통의 복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불렀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합니다. 어린이가 아닙니다. 70대입니다. 익숙한 것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갖가지 장애물이 앞에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 12:3)"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할 터이니 말씀에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형통을 보장받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래의 과업을 보며 떨며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전 짖는 것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솔모몬에게 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 아마존 닷컴 장기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습니다. 200만부 팔렸다는 이 책입니다. 미국에서 사업하시는 강집사님이 몇 달 전에 왔을 때 저에게 선물로 주고가신 책입니다. 우리 말로 "긍정의 힘"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미국 교회 차세대 지도자라고 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가 지은 책입니다. 주일 예배 출석 교인 수가 28,000명이 넘어선 레이크우드 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긍정의 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재능이 부족해서, 집안 대대로 가난해서 학벌이 없고 재산이 없어‘나는 안 돼!', '잘되지 못할 게 뻔해', '왜 하필 나야?'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남 핑계대며 자신을 안되는 방향으로 합리화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재능이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집안 대대로 가난해서, 학벌도 없고 재산도 없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품는 긍정의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동차에 후진 기어를 널 것인가 전진 기어를 널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긍정보다 부정을 선택하고, 기쁨보다 걱정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러한 걱정과 근심이 미래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는것은 착각이라고 합니다. 불행한 사람은 늘 부정적으로 자신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와 조건을 귀신같이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머리와 가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상해야 실제로 그것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비전과 우리의 비전을 일치시키고 긍정적인 마음 자세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인생이 100배 달라지는 최선의 삶을 위한 7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이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씩, 이 말씀을 선포해 보라고 합니다. " 1일 - 나는 비전을 키우는 사람이다." 우리 인생은 현실보다는 기대를 따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2일 - 나는 건강한 자아상을 일군다." 자기를 존중하고 건강한 자아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아상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무의식 속의 ‘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3일 - 나는 생각과 말의 힘을 발견한다." 긍정의 생각과 말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일 - 나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날 것이다." 과거에 받은 상처도 훌훌 털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과거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5일 - 나는 역경을 통해 강점을 찾는다." 살다가 힘든 일이 오면 으레 ‘왜 하필 나한테?’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어려움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기쁨과 행복으로 가기 위한 작은 대가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새 중의 강자 독수리도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날 수가 없고, 바다의 왕자 고래도 물의 저항이 없으면 뜰 수 없다는 말입니다. "6일 - 나는 베푸는 삶을 살 것이다." 받는 데 익숙해 하지말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과 재산과 마음을 주는 일, 베푸는 삶의 즐거움을 가져라고 말합니다. "7일 - 나는 언제나 행복하기로 선택했다" 정말 최고의 삶을 살고 싶다면 열정과 소망을 절대 버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말합니다. "마음에 품지 않은 복은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좋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설픈 지식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실패와 좌절의 악순환은 끊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 우리 사회를 불가능을 가능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축복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1. 우리는 평안을 주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9).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가는 곳에 불안이 아니라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일평생 사역에 있어 보장받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10).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가는 곳에 파업이 아니라 사역이 죽는 날까지 있어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형통함을 누리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11-13).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가는 곳에 불통이 아니라 형통이 있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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