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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민12:1-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3381 추천수:4 112.168.96.71
2005-04-10 17:07:44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민수기12:1-8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농가에서 인절미를 만들고 있었답니다. 이때 그 집 며느리는 옆에 있는 신랑에게 손으로 떡을 소담스럽게 잘라 비벼서 주었답니다. 옆에 있던 시아버지는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나고 입에 군침이 돌아도 체면이 있어서 달라고는 못하고 창 밖으로 먼 산만 보고 있었답니다. 그때 마침 시어머니가 들어오면서 며느리에게 “얘, 아버님 떡 좀 드렸느냐."고 했답니다. 며느리는“아니요, 아버님은 상차려서 잘 해드려야지요”하고 대답하였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떡을 뚝 떼어 주먹만하게 만들어 콩가루를 묻혀 남편에게 “어서 일어나 우선 잡수세요”했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볼이 미어지도록 떡을 한 입에 넣고는 “이놈아 너만 색시 있냐 나도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 같습니다. 누구나 사람들은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이 벽에 머리를 부디칠 때 남자가 잘한다고 하면 계속해서 아픈 줄 모르고 벽을 머리로 박는 것을 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은 우리가 인격적면에서 온유한 사람으로 인정받길 원합니다.(3)/순도
1) 하나님은 모세의 온유함을 인정하였습니다.(3)
모세가 에디오피아 여인을 소실로 맞이했습니다. 아마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돌아가신 후에 재혼한 듯합니다. 아마 이 모습을 보고 속으로 백성들도 비난했을 듯합니다. "늙어서 주책이야 지도자가 이방여인과 결혼하다니"라고 했을 듯합니다. 대통령이 눈 수술만 해도 화재가 되는데 80이 넘으신 분이 재혼하는데 국제 결혼을 했다면 얼마나 구설수에 오르겠습니까?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형님 아론은 정면으로 비난을 했습니다. 미리암 이름이 앞에 나오고 이 적극 주도하고 아론이 동조했습니다. 미리암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미리암만 한센씨 병으로 징계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비방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이방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적 순수성 보존을 위해 가나안 7족속과의 통혼을 금지하셨는데(출 34:16; 신 7:1), 이들은 하나님이 이방인과의 결혼을 아예 금지시키신 것으로 이해한 듯합니다.(창 48:5; 롯 4;13-22). 선민(選民)으로서의 민족적 우월성과 배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그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모세의 탁월한 지위에 대한 그들의 교만한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2절). 2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리암은 여선지자 자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출15:20,21), 모세를 살게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남동생인 모세의 생명을 구출하기 위해 역청을 칠한 갈대상자에 넣어 생명을 살렸고, 어린 동생이 죽을세라 끝까지 갈대 숲을 따라 살폈습니다. 바로의 딸에게 동생이 발견되자 재빨리 달려가 유모를 필요로 하느냐고 묻고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한 사람입니다. 아론 역시 우림(Urim)과 둠밈(Thummim)이 부착된 판결 흉패를 입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거룩한 사역에 동참한 사람입니다(2:1; 출 28:15,30). 얼마든지 모세의 행위에 대하여 비판하며 그의 지도력에 도전할 만한 사람입니다. 모세에게 "너만 지도자냐 우리도 지도자다"라고 모세의 지도력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하나님이 인정을 해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입니까? 백성들이 비난하고 형제들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때 하나님이 모세의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그는 혈기 있는 사람입니다. 의분을 참지 못하고 사람을 죽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아로 새겨준 소중한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고 의분이 충천하여 던져 깨뜨려 버린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불평할 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모세를 죽이겠다고 하자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쳤던 사람입니다. 다혈질적이고 혈기를 참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 말씀하시길 "저의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승하니라"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온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바나"라는 말인데 그 뜻은 "마음을 굽힌다." "뜻을 굽힌다." "굴복한다, 절한다, 구부린다, 낮아진다,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다."라는 것입니다. 온유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부드럽고 온화한 친절"을 의미합니다. 라틴어의 온유는 "말에게 재갈을 먹인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주장과 의지를 포기하는 비굴이 아니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전진하되 타인에 대하여 오래참고 부드러운 친절한 자세를 취하는 태도를 말한다고 합니다. 모세는 비난 받을 때 참았습니다. 얼마든지 형과 누이를 자신도 비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우상을 만들고 우상숭배한 자들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자기 방어를 하려고 들지도 않고, 자기 변명을 하려고 들지도 않았습니다. 조금도 초조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비방을 그 어려운 공격을 다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공격하는 자를 공격하려고 하도 않고 비방하는 자를 비방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2)우리도 모세처럼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비난할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삶의 현장에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속해주시고 우리를 성도,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거룩하고 얼마나 깨끗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댓가를 지불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성도, 왕같은 제사장, 태하신 족속으로 불러 주었습니다. 우리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법정적으로 의인이 되었으니 실제적으로 쓰실 만한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이나 금그릇이나 은그릇이나 다 쓰시지만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어 쓰십니다. 경영정보지 '월간 CEO'에 따르면 국내 기업가들이 존경받기 위한 조건에 대해 '능(能)과 덕(德)을 겸비해야 한다'는 응답이 72%에 달했다. 능력만 있다고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능(能)의 요소 중 가장 중시해야 할 항목으로는 정도 및 윤리경영이 60%로 가장 많았고 탁월한 리더십 발휘가 32%,국제 감각 발휘가 8%였습니다. 존경받는 CEO가 갖춰야 할 덕의 최우선 항목으로는 도덕성 56%,사회 환원 20%,높은 인품 16% 등을 꼽았습니다. 뉴욕대학 경영학 교수 데일 E. 잔드는 "리더십의 3 요소"라는 책에서 " 리더십의 3 요소는 지식, 신뢰, 권력이다." 이라고 말합니다.
'지도력의 원칙' 저자 블래인 리(Blaine Lee)라고 하는 교수님 지도력에 대해서 세 가지로 분류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첫째는 강압적 지도력 둘째는 실리적 지도력 셋째는 원칙 중심의 지도력입니다. 이중에 가장 좋은 것은 원칙 중심 지도력이라고 합니다. 원칙 중심보다 더 좋은 것은 섬기는 지도력입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니 나의 멍예를 메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온유의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골3:12). 사회적인 성공은 주로 능력과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진정한 행복은 성격과 관계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거래 분석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나의 과거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면 상대방이 변한다는 이론입니다. 온유한 자가 결국 승리하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실리를 챙기고 온유보다는 포악하고 강포해야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 37: 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 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폭력으로, 칼로 세상을 정복해 보려던 나폴레옹, 히틀러, 뭇솔리니는 다 망했습니다. 공산주의 원리인 폭력주의는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계 최대의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원나라의 시조 징키스칸의 나라도 100년을 넘기지 못했고, 알렉산더 대왕 마찬가지입니다. 사납고 힘센 짐승들은 수가 얼마 않고 기껏해야 험한 산을 차지할 뿐이지만 온순한 짐승들은 수도 많이 번성하고 넓디 넓은 평원들을 차지하고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황실에는 위대한 황제를 만들기 위해 5천 년에 이어서 집대성된 현학들의 지혜의 보고 「제왕학(帝王學)」이라는 비서(秘書)가 전해내려왔다고 합니다. 자오루이가 쓴 그 책을 보면 공자의 다섯 가지 사람 분류법이 나옵니다. 용인(庸人) 사인(士人) 군인(君人) 현인(賢人) 성인(聖人)이 나옵니다. 최고의 인물은 만인과 화합할수 있는 성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성도입니다. 이제 모세처럼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어 한 시대 각 분야의 지도자로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사역적인 면에서 충성스러운 종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3)/충성도
1)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된 종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7)
하나님께서 모세의 무엇을 인정해 주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충성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모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재혼 문제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할 때 그 비난의 소리를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개입하여 그들 간에 진행된 비방문제를 판결하셨습니다. 맡겨준 일을 충성스럽게, 성실하게, 진실하게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상황 아래서도 하나님께 최선의 헌신을 다함으로써 충실하다는 말입니다. 한 시대 쓰임받는 데 인격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격만 있다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으로 고장나 수도 고칠 수 없고 부서진 텔레비전 고칠 수 없습니다.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전문적인 교욱을 받은 사람입니다. 애굽 왕실 교육을 40년 동안 받은 사람입니다. 광야에 나가 40년간 인격 훈련을 받았습니다. 민족의 지도자로 한 시대 쓰임받기 위해 많은 것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충성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충성, 일에 대한 성실이 없다면 그것은 도둑에게 칼을 맡겨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폭군에게 원자 폭탄을 맡겨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모세는 자기 나라 건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충성스러운 종이었습니다. 비록 조금 흠이 있고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충성도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집을 위해 충성했습니다. 자기 아들에게 이스라엘 맡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충성스러운 종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하였습니다.

2)우리도 사역적인 면에서 어떤 일을 맡았던지 충성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보면 사역적인 면에서 마지막 판정의 기준을 세가지로 제시하는 것을 봅니다. 1달란트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첫 번째 평가 기준은 게으름과 부지런함입니다.
두 번째 평가 기준은 충성된 종이냐 불충성한 종아냐는 것입니다.
세 번째 기준은 악한 종이었냐 착한 종이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충성이냐 불충성이냐로 통하는 것입니다. 충성하면 게으를 수 없습니다. 충성하면 악한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란 량으로 그 성공 여부를 따지지 않습니다. 신발 크다고 다 좋은 것 아닙니다. 책 두껍다고 다 좋은 책 아닙니다. 나에게 맡는 신발이 좋은 신발이고 나에게 유익을 주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많은 것에 관심보다는 성실성에 하나님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충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가중데 중에 마음 심자입니다. 중심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해아래 제 자리에서 주인이 없을 때도 마음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아야 합니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잘 될 때나 잘못될 때나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충성을 말할 때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종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능력은 있었지만 충성을 못했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주인에게 충성된 종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잠 20:6)"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는 사람의 조건을 한 가지를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충성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2)"
충성하기는 충성하되 작은 일에 충성하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한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하기 힘이 드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람 보이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죽는 것은 간이나 위, 심장 같은 보이지 않는 곳이 병들므로 죽는 것입니다. 손발 다친다고 쉽게 죽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많을 때 가정과 교회에 세상은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간신열전]에 보면 역사상 간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아주 밝고, 생각이 민첩하고 눈치가 빠르다. 마음 씀씀이가 여간 아니며,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하다. 또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주선하고, 기꺼이 도박(모험)을 하며, 말을 교묘하게 잘한다." 간신들은 혼자의 힘만으로 부족할 때는 "은혜를 베풀어 지지를 얻는다든가 자신의 권세를 과시해 패거리를 긁어모으고 살인으로 권위를 세워 존경과 두려움을 얻는 치밀한 수법까지 병용한다. 또 상대를 제거할 때는 이간질을 밥먹듯 하고 사람을 해치며 겉으로는 치켜세 우지만 속으로는 끌어내리고 일부러 사건을 일으켜 남의 손으로 상대를 죽이고 잘못을 폭로하고 못난 점을 떠벌리며 기회를 엿보아 사람을 조종하기도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 말하기를 간신의 뒤에는 예외 없이 혼군(어리석은 임금)이 있다고 합니다. 왕조의 창업기엔 간신이 드물다가 수성기로 접어들면서 간신이 급증하는 것입니다. 창업군주들은 대개 맨 주먹으로 태어나 고생고생하면서 성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마음을 이길 수 있지만, 수성기 이후의 군주들은 부귀영화 속에서 자라 말 한마디면 무엇이든 가능한 지엄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 간신들이 파고들 허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는 지도자들은 재능만으로 뽑아서는 안되고 잘 따른다고 기용해서는 안되고 가깝다고 뽑아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충성도입니다.
카네기가 후계자를 지명할 때 탁월한 중역 중에서 후계자를 뽑지 않고 쉬브라고 하는 무명의 인물을 택했습니다. 쉬브는 학력이라고 해야 국졸 정도이며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카네기가 그를 택한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충성스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쉬브는 카네기의 회사에 입사할 때 청소부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원만 쓰는 것이 아니라 공장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쓸었습니다. 평상시의 이러한 근무태도를 보고 간부들은 그를 정식 사원으로 채용해 주었고, 직원이 되어서도 남달리 충성하므로 그는 사무직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물샐틈없는 충직함이 인정되어 일약 사장의 비서실에 근무하였습니다. 그후 카네기가 있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든지 그가 있었으며, 그의 손에는 늘 메모지와 펜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공장의 확장과 생산과정에 대한 연구를 하느라고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려고 밖에 나와보니 그때까지 쉬브 씨는 카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네기는 놀라며 "쉬브!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쉬브는 조용히 웃으면서 "사장님에서 저를 언제 부르실지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올 수 있겠습니까 ? "라고 당연한 듯 대답하였습니다.
"(마25:21)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계2: 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눅19 : 17)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3.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 기도 응답 받아 인정받는 사람이 되실 원합니다.(13) /친밀도
1)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13)
하나님은 모세의 어떤 면을 인정해 주었습니까? 9절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떠나자 아무 쓸로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사람들에게 거추장스럽고 추한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노아시대의 홍수때 보십시오. 하나님의 신이 사람에게서 영원히 떠나자 그들은(사람) 육체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고기덩어리에 불과해 하나님은 그 육체들을 물로 쓸어버린 것입니다(창6:3). 10절을 보십시오. 이 일로 말미암아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 살이 반이나 썩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론은 동생 모세에게 주라고 부르며 그 권위를 인정하고 모세에게 살려줄 것을 간구합니다. 이 때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모세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것을 당연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응답하여 미리암의 불치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 때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십니다. 물론 그날 바로 들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7일간의 참회의 기간을 주고 미리암을 치유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8절에 보십시오. 대면하여 명백히 말씀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니 선지자들은 꿈과 이상으로 보여 주었지만 모세와는 대면하였다는 것입니다. 대면하다는 말은 매우 친밀한 교제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일반 선지자들에게 사용하시는(6절) 꿈(dreams)이나 이상(visions)과 같은 계시 방법을 사용치 않으시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직접 그와 가까이서 대화하셨음을 강조한 말입니다. 친밀도가 높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알려주고 모든 것을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출애굽하는 내용을 보면 백성들은 끊임없이 원망하고 모세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주지 않으려고 하자 기도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누가 움직이겠습니까? 먹을 물이 없다고 백성들이 울부짓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출 15:25) 또 르비딤에 가서 마실 물이 없자 원망합니다. 그 때 모세는 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출 17:4) 범죄한 백성을 치시겠다고 하자 모세는 목숨을 내어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민족을 구원합니다. 아말렉 군대의 침입으로 민족이 위기를 당할 때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들어 기도하면 이겼습니다. 누이가 불치의 병으로 죽어갈 때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여 진에 불이 나 온 백성이 타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민 11:2)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다 불뱀에 물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민 21:7) 그들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모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2)우리도 영적인 면에서 기도 응답 받아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렘 29:12)"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기도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나의 인격 바꿀 수 없을 것같지만 바꾸어지게 만듭니다. 기도는 나의 습관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할 것같지만 고치게 만듭니다. 기도는 참 안식을 주고 기도는 기쁨을 주고 기도는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게 합니다. 기도는 병든 자를 고치게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약 5:15)"라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약 5:14)"라고 했습니다.
어제 48세 된 박은진 집사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4남 3녀였는데 25년 전 큰 형님이 젊은 나이에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돌아가셨고 6개월 후 둘째 형마저 밤길에 실족하여 앓다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집안은 비탄에 잠겼고 이러다가 자식들을 다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무당을 불러 액땜 굿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넷째 남동생 마저 수영을 하다 물에 빠져 죽었답니다. 2년 만에 아들 셋을 잃었답니다. 그러다 어느 전도사님의 전도를 받아 집안 식구들이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그 후 믿음 좋은 아내와 결혼하여 중소기업 사장이 되어 잘 살며 사업은
번창이 되었답니다. 사업이 번창되자 점점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아지고 거북스러운 술자리에 갈 날이 많아졌답니다. 이제는 완전히 형식적인 신앙인이 되어 버렸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속이 쓰리고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친구 병원에 들러 검사를 받았답니다. 결과는 위암이라는 청천병력같은 소리였답니다. 한참 일할 나이에 죽게 될 것을 생각하니 하나님께 울부짓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오진이 아릴까하여 다시 검사를 했는데 역시 위함이라는 판정을 받고 15일 후로 수술 날짜를 잡았답니다. 그러다가 수술날짜 5일을 남겨 놓고 21일 금식기도를 작정하였답니다. 병원에서는 계속 연락이 왔지만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합니다. 은혜를 받으니 이제는 암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예수를 바르게 알지도 못하고 바르게 신앙 생활하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답니다. 그동안의 죄악들을 눈물로 회개하고 다시 한번 살게 해주신다면 주님만을 위해 살겠노라고 부르짖었답니다. 21일을 금식기도를 마치자 난생 처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의 충만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보호식을 하며 계속 기도하며 예배를 기뻐하며 살았는데 답답하던 속이 어느새 개운해져 있었고 두려움이 없었졌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니 암이 다 살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답니다. 지금 3년이 지났는데 위암은 재발하지 않았고 전보다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저도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심방했는데 폐렴 기가 있어 딸을 내일 입원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집사님께서 깨끗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윤순남 할머니가 저희 교회에 나왔습니다. 아들이 대사를 하신 분입니다. 지금은 천국에 가셨습니다. 할머니가 나이 많아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찾아가 예배드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다음 주에 예배에 나오시고 구역 예배에도 나오신 것입니다. 구역예배 시간에 어떻게 일어났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간 후 그 날밤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 일으켜 세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어떤 절벽이 있고 강이 있다하여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어 주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도 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의 순도에서 인격적면에서 온유한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하겠습니다(3). 우리는 충성도에서 어떤 사역을 하든 충성스러운 종으로 인정받아야 하겠습니다.(3) 우리는 친밀도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아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는 본문 3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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