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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5)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사무엘상30: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813 추천수:1 112.168.96.218
2018-10-28 15:56:39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5)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사무엘상30:1-6(구459쪽)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주 교회에 잘 나가던 어떤 40대 남자가 주일날 교회를 가지 않겠다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그러자 평생 동안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주일 예배에 참여한 80대 어머니가 이불을 벗겨 빼앗으며 “빨리 일어나 교회 가라”로 소리쳤답니다. 그래도 아들은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어머니는 큰 소리로 “도대체 이제까지 잘 다니더니 이유가 뭐냐?”라고 물었답니다. 아들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일어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참여하는 온가족 예배를 드리는데 혹시 오늘 아침 이불을 뒤집어쓰고 교회 가지 않겠다고 때를 쓰는 아이들이 있었습니까? 어떤 분은 <교회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라는 책을 쓰신 분도 있습니다. 그 이유 몇 가지를 보면 “각종 모임 참석에 대한 강요가 많아, 고리타분하여, 말 많은 전도사가 싫어, 헌금이 무서워,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을 보지 못해, 교회에 쓸 만한 총각이 없어, 마음 터 높고 깊은 이야기할 친구가 없어” 등 77가지를 나열해 놓았습니다. 아들이 일어나지 않으려고 하니까 어머니가 “왜 이제까지 잘 잘 다녔는데 교회를 안 가려고 하느냐?”고 말하며 아들에게 “교회 가기 싫은 이유를 세 가지를 말해봐”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아들은 “첫째 주일날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은데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둘째, 주일 조금 쉬고 싶은데 하루 종일 교회 붙들어 놓으니까 싫고”, “셋째, 예배드릴 때 장로님의 기도가 너무 길어 가기 싫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80대 어머니가 아들에게 “너 안 나가면 나도 안 나간다”고 말하며 주일날 교회에 가야할 이유 세 가지를 말씀하더라는 것입니다. “첫째 주일 날 예배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둘째 예배는 사람보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니까”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다 서원기도를 하고 아들을 낳아 하나님께 바친 80대 노모는 긴 한 숨을 푹 쉬면서 “셋째는 너는 담임 목사이까 설교하러 가야하지 않니?”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도 어느 날 아들이 교회에 안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는 목사의 아들이니까 교회에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목사의 아들이 교회에 안나오면 교인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겠냐? 아빠가 설교하면 교인들이 네 자식이나 잘 가르치라고 하지 않겠냐?”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교회에 다니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어린 자신에게도 목사의 수준의 삶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무언의 시선이 견디기 힘든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들에게 이 장로님 가정을 보라고 했습니다. “아들과 딸이 다 결혼하여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가 한 교회를 섬기며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보기에도 아름다우냐? 하나님 보시기에도 얼마나 아름답겠냐?”라고 했습니다. 오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날인데 아들과 딸이 결혼하여 멀리 살지 않는다면 같이 한 교회를 섬기며 손자 손녀와 함께 같은 교회에서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삶을 공유하며, 한 주일에 한 번이라도 같이 만나 식사하고, 이 가을에 공원에 같이 나가 온 가족이 단풍 구경도 하며 같이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이들이 자라면 부모를 떠나 끼리끼리 어울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울릴 친구가 없으면 부모를 떠나 친구가 있는 교회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보다 부모 따라 교회 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친구가 부모보다 더 중요한 것 아닙니다. 친구가 학비를 내어 줍니까? 결혼식을 비용을 내어 줍니까? 아프면 치료를 시켜 줍니까? 언젠가는 이 땅을 다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녀 따라 교회 옮겨 다니지 말고 자녀들을 잘 설득하여 온 가족이 함께 교회 생활하도록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3대가 4대가 함께 한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좋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부모도 영원히 이 땅에서 자녀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실 분은 친구도 부모도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도 하나님 한 분 의지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다윗의 생애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마음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 두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세 번째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는 마음, 네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울이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데도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교회를 잘 다니다가 방학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의지하다가 하나님의 떠나 부모 말도 듣지 않고 주일날 교회도 나오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것입니다. 25장 1절을 보십시오. 갑자기 정신적인 스승인 사무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자신에게 왕이 될 수 있도록 기름을 부은 스승이고 자신의 대관식을 집례해야 할 분인데 아직까지도 도망자 신세인데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27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절망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어떤 위협을 당하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은 다섯 가지 오류를 범한다고 합니다.

첫째가 단정입니다. 둘째는 과장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간과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지나친 일반화입니다. 다섯째는 그릇된 가치관을 갖습니다. 다윗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블레셋 나라로 망명해 버립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니까 27장 5절을 보십시오. 비굴의 탈을 씁니다. 8절을 보십시오. 위선의 탈을 씁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거짓의 탈을 씁니다. 아기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왕의 신임을 받기 위해 그술과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과 겐 지역을 공격하였다고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천하의 다윗이 이렇게 밀려가고 추락을 하였습니다. 28장 2절을 보십시오. 왕의 경호원이 되었습니다. 29장 4절을 보십시오. 아기스 왕은 다윗을 이 전쟁에 끌고 갔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다윗의 충성심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진짜 망명인지 가짜 망명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29장 10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 전쟁터에서 쫓겨났습니다. 30장 2절을 보십시오. 목숨이라고 살겠다고 망명 왔는데 달랑 자기 목숨 남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16개월 동안 아기스라는 말처럼 하나님을 떠나 "아, 기를 쓰고 빌붙어 아부하며" 살아간 결과입니다. 재산도, 아내도, 자식들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자기 하나 믿고 따르던 부하들의 식구들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오늘 성경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합니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다윗과 함께 했던 600명의 사람들이 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까? 그렇게도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함께 신앙생활하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원수가 되어 버립니까? 왜 교회를 등지고 떠나버립니까? 왜 가정을, 왜 부모를, 왜 회사를 등지고 원수가 되어 떠나버립니까?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블레셋이라는 이방 땅까지 따라왔는데 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까? 자식들 때문입니다. 아내들은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자식들 때문입니다. 자식에 대한 애정을 참 대단합니다. 특히 어머니들은 자식이라면 꼼짝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가를 갔는데도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 잘 버는 아들 이미 장모 아들 되었는데 그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딸은 예쁜 도둑” 되었는데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고 외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한 할머니가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와 살면서 손자를 키워주었답니다. 어느 날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손자가 다쳤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온 며느리가 “어머니는 얘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냐?” 폭언을 퍼붓더라는 것입니다. 놀란 할머니가 서운해 아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까 “엄마, 당연하지”라고 말하며 자신을 나무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아들 집에 나와 자신 앞으로 있는 아파트를 팔아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다윗 시대도 자식 사랑 못 말렸습니다. 다윗도 자기 자식들 다 잡혀갔는데 자기 자식 생각하면 다윗의 아픔은 헤아리지 못하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심리학 용어로 말하면 `대상상실'인한 극한 스트레스로 인정도 사정도 예의도 법도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이 다윗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란 다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극적인 상황을 만나면 바꾸어집니다. 그렇게도 죽고 살기로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못하면 헤어지고 살인을 합니다. 지난 주 신문을 보니까 27살 총각이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과 혼수 문제로 다투다 여자 친구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부산에서는 서로 사랑했던 사이가 갈라지니까 여자 친구의 아파트를 찾아가 여자 친구와 아버지 어머니 심지어 할머니까지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작년에 이런 애정살인으로 85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지난 9년 동안 824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좋을 때 좋은 것이지 싫어지면 어느 순간 원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의지할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다윗은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형들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왕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부인 미갈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블레셋 장군들에게 블레셋 왕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제 자신과 생사를 같이하며 자신이 거둔 부하들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때 다윗은 정신을 차립니다. 새번역에는 “군인들이 저마다 아들딸들을 잃고 마음이 아파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할 정도였으니, 다윗은 큰 곤경에 빠졌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믿는 주 하나님을 더욱 굳게 의지하였다(새번역)”라고 번역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꾀를 의지하고 살 궁리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극한 상황에 도달하자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광야 생활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훈련을 하나님이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날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충성했던 직장에서 배신을 당하면 원망하며 돌을 들지 말고 하나님이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아브라함도, 요셉도, 바울도 다 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만 의지하자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6절을 보십시오. 크게 다급한 상황입니다. 다급하다(야짜르)라는 말은 “누르다. 좁혀지다. 묶다,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다, 답답하다, 포위하다”라는 뜻입니다. 인생 막다른 골목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진 것입니다. 담대해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막다른 골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담대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 보면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모든 인간의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카네기도 인간의 행복과 성공의 85%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관계에는 네 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자신), 너(상대), 관계, 환경"입니다. 만족할 만한 인생살이를 하려면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상대입니다. 바꿀 수 없는 상대를 내가 바꾸려고 할 때 갈등과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대보다 쉽다는 것입니다. 직장을 그만 둘 수 있고, 교회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관계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 관계도 부부 관계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기를 바꾸는 것보다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먼저 변화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 결정성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선택과 행동의 결과이고 미래도 지금 나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환경, 조건, 사건이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건설적으로 대응하고 행동할 수 있고, 비건설적으로 대응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파괴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건설적으로 창조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용기라고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기를 중요하게 생각한 아들러는 "만일 나의 아이들에게 단 하나의 재능을 줄 수 있다면 용기를 주겠다."라고 용기를 강조했습니다. 용기는 하나님이 앞서 가심을 절대 신뢰하는데서 나옵니다. 용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7-8)

다윗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 무엇을 합니까? 기도합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27장부터 모든 것을 잃어 버릴 때까지 다윗은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하자 기도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두려움 앞에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히스기야가 질병으로 죽음의 위기 앞에 있을 때 그 두려움 앞에서 용기 있게 기도하여 치유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던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두려움 앞에서 좌절하고 원망하고 핑계 대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게 기도하여 잉태의 복을 누렸습니다. 다니엘도, 에스더도 두려움 앞에 기도로 용기를 가지고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니까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바로 6백 명을 거느리고 출발합니다. 기도하고 행동합니다. 이 때 다윗은 몹시 지쳐 있을 때입니다. 1절에 보면 아벡에서 시글락까지 3일 동안 달려온 길입니다. 그러나 망설이지 않고 즉각 순종합니다. 브솔 시내에 오자 2백 명의 낙오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지쳐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6백 명이다 가도 모자라는 군인입니다. 그 때 기도하고 출발한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멈추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낙오자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착각이며 교만입니다.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7명은 무관심하고 2명의 비판하고 1명만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이 법칙입니다. 다윗은 따르는 자 4백 명만 거느리고 추격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한 사람이 취할 행동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주인에게 병들었다고 버림받아 밤낮 3일을 굶주린 사람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이 보내어준 인도자가 되어 준 것입니다. 광야의 나침반이 되어 준 것입니다. 200명의 중도 포기자보다 훨씬 다윗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위기를 극복할 키멘을 만난 것입니다. 당시 아말렉 사람들은 반 유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일정 지역에 정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잘 아는 안내인이 없으면 찾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절, 17절을 보십시오. 적은 군인으로 기습 공격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도로 찾아왔고...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찾고, 찾고,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요셉이 형들이 인신 매매 해서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종이 되었지만 중년 여성이 유혹을 거절하니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왕의 신하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해몽해 줌으로 그는 왕을 만나 결국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장인 이드로를 만납니다. 다 자기를 죽일 것같지만 자신을 돌보아 주는 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할 때 왕과 고위 관원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살려주는 왕궁 내시 흑인 이방인 구스 사람 에벳멜렉을 만납니다. 그가 웅덩이에서 예레이먀을 살려 줍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용기 있게 하나님의 의지하고 행하면 한 사람을 붙여 주어 모든 것을 찾고 찾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다윗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하고 기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4.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기도하여 응답받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으로 살아갑니다(10,22,23)

2백 명의 낙오자들에 대하여 다윗을 따른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4백 명의 용사 중에는 악한 자와 불량배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은 자들에게는 전략물을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처자만 돌려주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의 마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했다면 마땅히 공로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공평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에 따라 분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누가 승리하게 했다는 것입니까? 내가 아닙입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전쟁에 갔던 자들이나 피곤하여 남아 소유물을 지켰던 자들이나 동일하니 같이 분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멋지게 사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마음입니다. 모든 역경을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고난을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상실을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돈을 의지하면 돈 떨어지면 모두가 떠나고 실망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관계 나빠지면 배신을 당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인간 마음 좋은 때 좋은 것이지 싫어지면 그렇게 없으면 못살 것 같은 사람도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인 페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신했으나 심한 재정난으로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재물 의지하다 모든 것을 다 잃고 급기야는 격리 병원에 수용되었답니다. 어느 날 아침 낙망하고 좌절한 그에게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 보니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답니다. 그가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매우 친숙한 찬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너 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가 불리고 있었답니다. 그는 그 순간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돌봐 주시옵소서."라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의지하고 다시 일어나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윗이 이 때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했는가는 시편 56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송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3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사망에서 건져 주시고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려고 실족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너무 의지하지 말 것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을 제하여(이사야 3:1)”버린다고 했습니다. 재물 너무 의지하고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시편 146편 3절에서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 너무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37편 5절에서는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 절대 주권이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기도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잃은 것 찾고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은혜를 알고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이 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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