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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2)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사무엘상17:45-4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921 추천수:1 112.168.96.218
2018-10-07 09:17:27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2)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사무엘상17:45-47(구438쪽)

 

2주 전에 부친 추도식이 있어 여동생이 저의 집에 왔습니다. 딸이 강아지를 기르는데 그 강아지가 아프니까 직장도 가지 않고 울더라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 사진을 찍어 보니 신장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동물병원에 가니 보통 병원에서는 못하고 대학병원에 가야한다고 했답니다. 딸이 밥도 먹지 못하고 고통하는 강아지를 보고 1주일 동안을 울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300만원이 들었답니다. 3만원에 산 강아지인데 300만원을 드려 수술을 했는데 돈을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너무나 기뻐하더라는 것입니다. 참 사람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딸 마음 속에 들어가니까 강아지와 동일체 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강아지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 되고 강아지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 교회에서 목사님이 최빈국 아이들을 위해 3백만원 후원하자고 했으면 무슨 목사가 그러냐고 투덜거렸을 텐데 강아지를 사랑하니까 3만원짜리 강아지를 위해 300만을 써도 아깝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실까요? 목사가 되어 하나님 보다 바둑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실까요? 어떤 목사님은 너무나 바둑만 좋아해서 일주일 내내 바둑만 두다 주일날 강대상에 올라가 성도들의 머리를 보면 바둑알로 보여 바둑을 끊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대표 기도자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라고 하면 "아멘"이 아니라 무심코 "아다리!"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전도 회장은 아파트를 너무 좋아해 아파트를 늘 보러 다니다가 헌신예배 사회를 보다가 “찬송가 108동을 부르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실까요?

지난 주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평생 마음에 하나님을 품고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속에서 퇴출시키고자 하는 어떤 사상이나 환란, 고난이 있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마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제거하려고 유혹을 합니다. 과학의 진보를 통해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을 매일 우리 귀에 들려 줍니다. 진화론을 통하여 인간의 진화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세뇌시킵니다.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고 인권이 최고니까 동성연애, 동성애도 차별하지 말고 인권을 보호하여 남자 며느리도, 여자 사위도 차별하지 말라고 마음에 심어 놓습니다. 돈이 최고하고 돈을 마음에 품고 살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지옥도 없고 천국도 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 쾌락을 즐기며 살라고 유혹합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 두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어떤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할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하나님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다윗의 어떤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마음이라고 했을까요?

 

1. 이 전쟁에서는 다윗의 어떤 마음이 하나님께 꼭 들었을까요?

이 전쟁에 참여하는 다윗의 말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행동과 표정을 보며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말을 보면 쉽게 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수많은 군인들이 있는 앞에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사무엘상 17:45)” 어린 소년 다윗이 왜 골리앗 앞에 모두 떨고 있는데 나간 것 같습니까? 사울 왕도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11)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24). 사울왕이 골리앗을 죽인 사람에게 재물을 주어 부자가 되게 해 주고 사위를 삼고 세금도 면제해 준다고 했습니다(25). 그것을 바라고 어린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아갔을까요?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말을 보세요. 26절을 보세요.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사울왕 앞에 불려가서 하는 말을 보십시오. 3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누구 앞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여호와를 모독하는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겠다고 분연히 일어선 것입니다. 세금 안 내기 위해, 부자가 되어 출세하기 위해, 사울의 딸과 결혼하여 왕의 사위가 되기 위해 골리앗 앞에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동기가 분명합니다. 이것이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남편을 누가 마구 욕하면 가만히 듣고 그래 맞다고 맞장구를 치겠습니까?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모독하면 참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비난하는 사람의 말을 그만 듣고만 있을 어머니가 있겠습니까? 목회자를 사랑하는 교인이 자기 목사님을 누가 마구 비난하면 맛장구를 치며 같이 비난하겠습니까? 사랑하면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비난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죽어다”, “하나님을 정신병이 걸린 대량 학살자”라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그의 고백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 이 말씀은 다윗이 어릴 때 고백한 말씀이 아닙니다. 표제를 보면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5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라는 말이 나옵니다. 왕이 되었을 때입니다. 권력과 부를 가지고 살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 골리앗 앞에 설 때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어린 목동 시절을 회상하는 시편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읋을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처음 하나님을 알았던 어린시절 목동부터(시23편) 수많은 인생의 파란을 거친 후에 왕이 되기까지(시18편)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 고백은 시편에 많이 나타납니다. 다윗이 사랑한다는 “라함(רָחַם)”이라는 말은 매우 애정이 넘치고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애절한 사랑을 말합니다. 단순한 지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매우 감정적이고 감격적이며 달려들어 안기고 싶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원하는 마음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질병과 가난과 환란과 핍박과 고통 가운데 처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길 원합니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길 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예수님을 떠나 갈리리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사랑하느냐고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고백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도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사랑의 고백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37절에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마태복음 10장 37-38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던 자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은 에녹도 평생 동안 하나님과 동행할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평생 동행할 수 없습니다. 노아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동행할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친구라고 할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벗 아브라함”(사 41: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약 2:23)고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고상한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니까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통해 행복해 하며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평생 헌신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목회하든, 사업하든, 자녀교육을 하든, 봉사하든, 직장을 다니든, 선교하든, 헌금하든,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하든, 구역장으로 수고하든, 주방에서 봉사하든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의 모든 일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먼 곳에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몰래 힘들어도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나와는 인간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헌금을 하여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뿐예요 사랑한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아들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2. 우리가 사랑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47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이... 하나님이 너를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다윗에게 넘겨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8편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만큼 다윗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요한1서 4장 19절을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준 희생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 에로스의 사랑을 초월한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 자기 만족을 위한 사랑이 아닙니다. 감각적이며 순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C.S.루이스(Lewis) 교수는 "사랑이 우상이 될 때, 사랑은 악마로 둔갑한다"고 지적했드시 이런 사랑은 순식간에 증오로 변합니다. 이런 생물학적 에너지, 정서적 무드를 말하는 사랑은 홍수처럼 넘치지만 어떤 연애인처럼 서로 고소고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정을 말하는 필레오(Phileo)을 초월한 것입니다. 우정적 사랑은 벽을 만들고 패거리와 파벌을 만들어 서로 적대시하게도 합니다. 이런 사랑은 강하면 강할수록 끼리끼리는 좋지만 다른 사람과는 갈등의 요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아끼는 스토르게(Storge)의 사랑도 초월합니다. 이 사랑은 숭고하지만 역시 이기심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자식이기에 사랑하는 사랑의 노예가 되면 내 사람이 아닌 대상을 향해서는 지극히 냉담하고 무관심한 자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자아의 영역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런 사랑은 아무리 고상해도 자기실현의 욕구, 자기 감정의 충족, 자아 사랑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기호와 무관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내 피가 섞이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약한 사람 추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순간적으로 끝나는 사랑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는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의 은혜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만약에'(if) 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고, 하나님이 병을 고쳐 주고, 하나님이 집을 주면 사랑하겠다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어떤 것을 주는 대가로 받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동기는 이기적이고, 그 목적은 사랑의 대가로 무엇인가를 얻는 데 있습니다. 동기가 자신의 욕망에 있기 때문에 만족을 못하면 증오로 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때문에'(tecause) 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잘 대해 주기 때문에, 부자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랑의 이유가 살아지면 사랑은 식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불구하고'(in spite of) 식으로 사랑합니다. 여기에는 조건이없습니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토마스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형을 좋아하는 제인이라는 소녀의 집에 아저씨 한 분이 놀러 오셨답니다. 소녀는 여러가지 인형들을 내보이며 아저씨에게 자랑을 했답니다. 갑자기 아저씨가 "제인아 너 이것들 중에 어떤 인형 을 제일 좋아하니"라고 물었답니다. 잠시 후 소녀는 “아저씨, 제가좋아하는 인형을 보여드겠어요. 그러나 그 인형을 보여드릴 때 절대로 웃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하셔야 해요” 라고 말했답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약속하자, 소녀는 방안에 들어가더니 코는 주저앉고 팔 다리는 떨어져 나가고 옷은 다 헤어진 낡은 인형 하나를 들고 나왔답니다.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물었답니다. "알겠다. 그러나 한 가지 물어도 괜찮을까? 왜 무엇때문에 제인은 그 인형을 좋아하지?" 제인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제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사랑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사랑할 만한 조건이 없습니다. 죄 많고, 허물 많고, 쉽게 변하는 우리이기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로마서 5장 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이론이나 교훈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증이었습니다. 요한1서 4장 8절에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삶의 현장에서 어떤 결과가 주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삶의 현장에서 네 가지 결과가 주어집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갑니다. 4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자기 손에 넘길 것을 확신합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선포하고 담대하게 골리앗 앞에 나아갑니다. 사랑하게 되면 이렇게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18절을 보십시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신경과학자들은 사랑하면 각종 좋은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도파민이 활성화되어 흥분상태가 되고 페닐에틸아민이 나와 열정적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바소프레신이 나와 지켜주고 싶은 용맹성이 나오고, 옥신토신이 나와 함께 있게 하고 엔도르핀이 나와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상태에 있게하며, 세로토신이 나와 평안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까요? 종이의 원소를 분해해 설명했다고 그 원소를 넣으면 종이가 될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어떤 삶의 현장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집중하고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하며,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질병 앞에서도, 위기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하였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도 사울을 죽이지 않습니다. 기회가 있는데도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위대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편을 보면 얼마나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다윗이 말씀의 사람이었는지는 그의 마지막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23장 1절부터 다윗의 마지막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때 어떤 말을 합니까?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유언을 보면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호르몬에 의한 사랑은 900일 정도 분비되다가 줄어들기 때문에 유효기간은 2-3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 의지적인 사랑은 인생 마지막까지 말씀으로 사는 열정을 불어 넣어 줍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감정적으로 살지 않고 의지적으로 늘 남을 험담하고 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성의 종으로 살지 않고, 신앙적으로 늘 걱정과 근심하며 살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면서 즐거워하고 그 계명과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를 스스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손해가 아닙니다.

신명기 5장 10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1서 4장 20절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인이 붙들어야 할 삼대 명령이 있습니다. 첫째는 창세기 1장 28절에 말씀하신 문화명령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회복하는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둘째는 대명령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대위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입니다. 도덕의 완성은 사랑에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할지라도, 구제하고 몸을 불사를지라도, 사랑의 동기로 하지 아니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넷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4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돌을 던져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물매와 돌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을 다룰 때 쓰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중무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던진 돌이 그의 무장하지 않은 이마에 정확히 꽂혀 그를 죽였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세 번만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했듯이 우리고 다윗이 고백한 사랑을 찬양으로 고백해 보겠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 시며 나의 요새 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활 바위 시요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 주”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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