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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1)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사무엘상16:7)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373 추천수:4 112.168.96.218
2018-09-30 08:31:34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1)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16:7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을 국민이 투표를 통해 뽑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대통령을 뽑을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투표합니까? 워싱턴대 월터 윌리엄스 교수는 "미국의 실정"이란 책에서 유능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네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 정책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정치력, 둘째 국가발전을 위해 장기적 목표를 설정, 실행할 수 있는 능력, 셋째 정책을 스스로 분석, 비판할 수 있는 능력, 넷째, 조직적인 통치력이라고 했습니다. 데이비드 거겐은 그의 책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에서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망으로 개인적 일관성, 소명의식, 설득력, 다른 정치인과 협력하는 능력, 취임 초기의 순발력, 숙달된 참모진, 그리고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기업은 어떤 사람을 뽑을까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Mckinsey & Co.)는 작금의 경제 전쟁을 가리켜 그 핵심은 '인재 전쟁(The war of for talent)'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0개 기업 13,000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실제 인재 활용 사례 및 해당 관리 결과에 대한 분석 작업을 5년에 걸쳐 연구했답니다. 연구 결과, 우수한 인재의 발굴 및 유지가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전경련이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국내 굴지의 11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상대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개인 역량 둘째, 국제 감각 셋째, 원만한 대인관계 넷째, 올바른 가치관 등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지도자를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아 쓰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시대 속에서 어떤 사람들을 쓰시겠습니까?

오늘 읽은 7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외모만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여기서 외모는 히브리어로 ‘아인’이라는 말로 눈을 말합니다. 사무엘에게 차기 지도자를 뽑을 때 외모로만 뽑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장로님으로부터 후임자 추천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세 분의 담임목사가 왔지만 결국 신임을 받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답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사람은 인간의 한계 때문에 외모가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혼할 때 마음을 다 비디오로 찍어 보면 결코 외모로만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달 전에 아는 목사님을 만났는데 나이도 있고 돈 많은 사람이 결혼하고 살라고 하니까 살아 보고 결혼한다고 결혼식을 하지 않은 사람을 권면하니까 순종하지 않더란 말을 들었습니다. 살아 본다고 마음을 다 알 수 있습니까? 자기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사사들을 하나님이 세웠는데 사울은 백성들이 뽑은 초대 민선 대통령입니다. 외모가 출중했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 명분가의 아들이었고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이었습니다(삼상9:1-2; 삼상10:23). 효심도 지극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무엘상 9장 2절에는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얼짱과 몸짱의 요소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춘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지도력이 뛰어나 백성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인기 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왕이 되자 외모에 걸맞지 않게 마음이 불량했습니다. 어떻게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았는지 사무엘상 13장과 15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 13장 9절을 읽어 보십시오. 왕이 사무엘 선지자가 오지 않자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교만하여 월권을 행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조금 가지게 되면 자기 지배권을 부당하게 타인에게 확장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결국, 사무엘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사무엘게 제사장권을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왜 그렇게 했냐고 하니까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11). 백성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다 자기 방식의 합리성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 열심히 하던 분이 왜 신앙생활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목회자가 싫어서 방학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잘못보다는 타인이나 환경을 핑계로한 합리적인 이유를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원리보다는 상황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결국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무엘상 15:12를 보면 "사울이 갈멜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자기 우상화에 불과하나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습니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것입니다. 자기를 세워주고, 자기를 칭찬해주고, 자기를 위해주고, 자기를 위로해주는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결국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무엘상 15장 23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그래서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사무엘상 13장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려 하나님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왕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회개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량해졌겠습니까? 근본적인 이유를 사무엘상 16장 14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히니까 그런 것입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헤롯을 보십시오. 아간을 보십시오. 가룟유다를 보십시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정죄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보십시오. 얼마나 마음이 강퍅합니까? 사람의 마음은 중립지대가 없습니다. 악령 아니면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모가 출중하다고 해도 악령에 사로잡히면 교만해지고 거짓이 노예가 되고 자기 합리화에 빠지고 사람 눈치만 보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주어진 스팩으로 제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무엇을 지시합니까?

16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왕을 보면서 슬퍼만 하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망만 하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8남 2녀가 있는 이새의 집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새의 아들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첫아들 엘리압을 사무엘을 보았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어떻게 합니까? 16장 6절을 읽어 보세요. “여호와의 기름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에게 기름부으려고 합니다. 아마 사울처럼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합니다. 겉모습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겉모습만 보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아브라함 우상 장사의 아들이었습니다. 모세는 노예의 아들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기드온은 겁쟁이었습니다. 드보라는 당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주부였습니다. 에훗은 장애인이었습니다. 바울은 키는 작고 시력이 약하고 평생 질병을 앓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칼빈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몸과 얼굴이 아주 빼빼 말랐고 눈에는 항상 진물이 흐르는,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몸과 얼굴이 아주 깡마르고 수없이 실패하고 다리가 너무 길어 고릴라라는 별명을 가지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얼굴과 재물, 사회적 지위와 입고 있는 옷, 학식과 소유물로 사람을 판단하여 차별대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남이 아니어도 미녀가 아니어도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어도 사용하십니다. 교회에서 직장에서 자신의 외적 조건만을 보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의 외적 조건만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중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레브’라는 말로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번역에서는 중심이라는 말로 번역했는데 마음보다 더 잘 번역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 속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목회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등록하여 심방하면 좋은 목사님, 좋은 교회 만났으니 이 교회에서 평생 동안 열심히 섬기며 신앙생활하겠다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상황이 바뀌면 하나님과는 상관 없이 중심이 변합니다. 우리 두 분의 장로님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중심을 잡고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참 감사합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첫 아들의 외모를 보자마자 기름을 부르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에게 기름을 붓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만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들 일곱을 다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11절을 보세요. 사무엘이 아들이 더 없냐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이새가 말합니다.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킨다고 말합니다. 딸만 일곱 명 낳다가 마지막 8번째 아들을 낳았다면 애지중지하는 아들이지만 이미 아들 일곱 명을 낳다가 여덟 번째도 아들이면 별로 볼일이 없는 아들로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다윗이 인물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대려오라고 합니다. 사무엘을 그 다윗을 보는 순간 그가 어떤 사람으로 보였습니까?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삼상16:12)” 하나님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순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을 보신다고 해 놓고 또 외모를 보고 왕으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해석할 대 그의 빛이 붉다는 것은 다윗의 볼 혹은 다윗의 머리털이 붉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형들과 달리 다윗이 대장부처럼 늠름하게 생기기보다는 그와 반대되는 외양을 지냈음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억지입니다. 다윗은 잘 생긴 사람입니다. 바로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눈이 총기가 있게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얼짱이라는 말입니다. 사무엘상 16장 18절을 보면 금방 다윗이 당시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을 사울 왕에게 소개하라 때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악기의 전문가입니다. 악기를 타면 귀신이 쫓아나갈 정도였습니다. 뛰어난 시인입니다. 시편 150편 중에 다윗의 시가 73편이나 됩니다. 용기있는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준수한 자"라는 말은 뛰어난 풍채와 외모를 갖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다"는 말씀은 성령의 인도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외모를 보시지 않는 말은 못난 사람만 하나님이 쓰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만, 학벌 없는 사람만, 실력 없는 사람만, 못생긴 사람만, 병든 사람만 쓰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외모와 상관없이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의 중심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사무엘상에 나온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못하여 버림받은 사울과 하나님 마음에 합하여 쓰임받은 다윗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17장 45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7절을 보세요.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사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사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에 기록된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사람이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대제사장 엘리이고 또 한 사람은 사울 왕입니다. 엘리는 제사장은 영적인 책임을 진 지도자이고 사울은 국력을 책임진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다 직위해제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2장 30절을 찾아 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긴다,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 문제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닙니다. 자식 중심입니다. 세상 중심입니다. 사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중심으로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13장과 15장의 사건을 보면 사울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을 가진 사무엘과 다윗으로 하나님은 교체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시편 16장 8절의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항상이라는 말은 혼자 있을 때도, 교회에 있을 때도, 직장에 있을 때도, 가정에 있을 때도, 성공할 때도, 실패할 때도, 권력을 잡을 때도, 권력에서 쫓겨날 때도, 부자가 되었을 때도,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이방 나라에 도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 어떤 경우도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요셉을 들어 사용했겠습니까? 왜 다니엘을 사용했겠습니까? 왜 아브라함을, 왜 에스더를, 왜 느헤미야를 사용했겠습니까? 모두 허물있고 부족한 점이 있지만 공통점은 그들에게는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양들을 기르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라고 노래하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부정하는 진화론적 과학과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지 못하도록 합니다. 교회의 부조리, 신앙적 갈등 등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하도록 합니다.

다윗은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은 결코 인간적으로 완전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이웃집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고 간음하였습니다. 자기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부하를 살인교사시켰습니다. 자식들을 편애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지역주의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 이르렀을 때에도 아들에게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손보아 주라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늙어서도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인간의 악한 마음의 동기로 인구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 장인에게 쫓겨 다닐 때도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아내가 도망가고 자식들이 싸움을 하고 죽일 때도 역시 하나님 중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딸을 겁탈하고 자식이 반역할 때도, 자식이 궁녀를 겁탈할 때도, 이방 땅으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도망갔을 때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하나님이 바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먼 훗날 신약 성경을 기록하면서 바울을 통하여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전무후무한 칭찬을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윗이 성령을 받은 것처럼 우리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다 부패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 비디오로 찍어 드러내 놓으면 눈뜨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 있겠습니까? 성경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가복음 7:21-23)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인간적으로 볼 때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이 성령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에서 예수님은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처럼 바꾸기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하나님 중심의 마음으로 변합니다. 이제는 새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서는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 바꾸는 것이 인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미전향 장기수를 보십시오.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마음이 쉽게 바꾸어 집니까?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윗처럼 어떤 상황이 다가오던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서 몰아내려고 하는 수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평생동안 가져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서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다윗은 하나님 중심의 마음으로 어떻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했습니까?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시편 78:70-72)”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위기 가운데 어떻게 살아갔습니까?

시편 62편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이 고백이 평생 우리가 가질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다 마침내 어떻게 인생을 마감하였습니까?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상29:28)”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바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불행한 인생으로 마감한 사울 같은 인생 살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다윗처럼 해피엔딩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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