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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음과 거둠의 법칙(갈6:6-1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760 추천수:4 112.168.96.218
2018-06-03 04:34:27

 

심음과 거둠의 법칙

갈6:6-10

 

지난주에 우리 성도님들이 점심시간에 “쉐마 아기학교 텃밭”에 가꾼 상추와 야채를 드셨는데 오늘은 주일이라 아무도 물을 줄 사람이 없을 것같아 제가 오늘 아침 일찍 텃밭에 나아가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주기 전에 상추의 잎을 만져 보니까 이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구나, 비가 오지 않는 사막에서도 식물이 사는 것은 기온차로 밤에 이슬이 맺히니까 살아가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생각을 곰곰이 하면서 오늘 새벽에 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밤이 있어 풀은 죽지 않습니다.

 

피고 지는 것이

우연처럼 보여도

세상 어디에도 우연은 없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잡초 하나도

어미가 있어 그곳에 있고

 

시멘트

사이엔 핀 민들레꽃도

바람이 있어 그곳에 있습니다.

 

사막에

피는 화려한 꽃도

밤이 있어 더 진하고

 

눈물 없이

향기롭게 피는 꽃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힘겨워도

심겨지지 않은 곳에

피는 꽃은 없고

 

싫어도

비바람 없이

열리는 열매는 없습니다.

 

피고 지는 것이

우연처럼 보여도

세상 어디에도 우연은 없습니다.

 

심음과 거둠의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법칙입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 만들어 놓은 법칙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입니다. 사과나무에 사과 열리고 배나무에 배 열리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은 인생 전반에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물질이나 도덕이나 영적 삶에 다 적용이 되는 일반 법칙입니다. 오늘 성경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심음과 거둠의 법칙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4남매를 잘 키워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결혼을 시켰답니다. 이제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싶었는데 그만 중병에 걸렸답니다. 그래서 자식과 며느리 딸과 사위를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키우고 대학에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고 사업을 하느라 7억 정도 빚을 졌다. 알다시피 내 건강이 안 좋고 이제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얼마씩 좀 갚아다오. 이 종이에 얼마씩 갚겠다고 좀 적어라"고 했답니다. 사업을 하신 아버지라 아버지 재산이 좀 있는 줄 알았는데 자식들은 의외였답니다.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가 형제 중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둘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 원을 적었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나머지 자식들은 경매 가격을 매기듯 큰 아들이 2천만 원, 셋째 아들이 1천 5백만 원, 딸이 1천만 원을 적었답니다. 그러자 자식들은 문병 한 번도 오지 않았답니다. 그 흔한 휴대폰으로 안부전화 한번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시 자식들을 모두 불러 모았답니다. 이번에는 며느리 사위는 오지도 않고 4남매만 왔답니다. 이 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말했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이 얼마 되지 않는 유산으로 싸움질을 하고 형제간 반목할까 봐 전 재산을 정리하고 공증까지 마쳤다. 지난 번에 너희가 적어준 액수의 5배를 지금 준다. 이것으로 너희에게 내가 줄 재산상속은 끝이다." 장남 1억 원, 둘째 2억 5천만 원, 셋째 7천 5백만 원, 딸 5천만 원을 상속받았답니다. 적게 받은 자식들의 안색은 사색이 되었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랍니다.

 

1.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무엇을 심기를 원하십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선을 행하되”라고 말씀합니다. 선을 심으라는 말입니다.

1) 왜 우리가 선을 심어야 합니까?

(1) 선하게 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선행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그것은 죄가 되고 그 죄의 대가는 형벌과 징계가 따르는 것입니다. 선하게 살지 않으면 세상이 지옥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선을 도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악을 선으로 이기며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악을 선으로 갚아줍니다(창20:14-18) 다윗이 사울에게 악을 선으로 갚아줍니다(삼상24:17). 엘리사가 아람사람에게(왕하6:22-23)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 다윗이 적들에게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시35:12-14) 스데반이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에게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행7:60) 원수도 선의 재료로 활용하면 복이 되고 상급이 됩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선의 재료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롬8:28)"

'선함'을 잃어버리고 악으로 오염된 인간을 구원시켜 선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선함'을 되찾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생활을 통하여 '선함'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면서 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 선함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입니다. '선함'은 자신 왕이 되어 항상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되 수고하여 선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엡 4:28).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가장 보람있는 일은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3:12)“

 

(2)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에베소서 2장 10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선행을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야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면 선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선한 목자인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게 되고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한 예수님의 선행을 본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선행은 성령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열매입니다.

 

2. 하나님은 어떻게 선을 심기를 원하십니까?

9절을 보겠습니다. 선을 행하되 어떻게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까?

1) 선을 행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행할 때 낙심은 금물입니다. 낙심하면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이 낙심이라는 말은 "아주 기운이 없다, 지치다, 기진맥진하다. 활기가 없어진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바라던 일이 되지 않아 마음이 상하는 것"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하게 살지 못하도록 사탄이 사용하는 중요한 도구가 낙심입니다. 토요일 식사 준비를 하는데 구역 식구들이 협력해 주지 않고 혼자 나와 봉사하면 얼마나 낙심이 되겠습니까?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는데 비가 온다고 한 명도 나오지 않으면 얼마나 낙심이 되겠습니까? 교회에 열심히 나와 선을 행하던 분이 어느 날 낙심의 덫에 걸리면 선행을 하지 않습니다. 낙심은 선의지를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목자, 구역장, 교사, 성가대, 주차봉사, 식당봉사, 청소봉사, 전도봉사, 선교봉사 올해만 하고 끝내야 하겠다고 낙심합니다.

열심히 노인정에 가서 장애인을 돌보던 사람도 낙심의 덫에 걸리면 그 때부터 봉사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물질을 통해 봉사하던 사람도 낙심의 덫에 걸리면 어김없이 선의지를 꺾어 버립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탄이 중고 가정용품을 경매하였답니다.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위협하고 유혹하고 비난할 때 써먹던 도구들이 탁자 위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각각의 물건들에는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다. 탐욕엔 비싼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군거림의 가격에는 반도 못 미쳤습니다. 교만에는 더 비싼 가격이 붙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교만이 가장 비싼 가격은 아닙니다. 탁자 한 모퉁이에 평범하고 볼품없고 반들반들 광채가 나기는커녕 낡아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물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게 나온 물건 중에 가장 비싼 것입니다. 어떤 손님이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요? 왜 이렇게 비싼 겁니까?" 사탄이 대답합니다. "아, 그거 말씀이군요. 이건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겁니다. 여기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쓸모 있는 도구이기도 하구요. 시기와 탐욕과 나태와 정욕이 성도들을 꺾지 못할 때 이 녀석이 신통하게 재주를 부려서 목적을 이룬단 말씀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이 탁자 위에 있는 모든 도구들로 그리스도인들을 넘어뜨린 숫자보다 이 놈 하나로 넘어뜨린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이름이 뭡니까?" "네, 그건 낙심이라는 물건입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려 할 때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낙심이라고 말합니다. 낙심은 전염성이 아주 강합니다. 열심히 선을 행하는 사람도 "목사가 자기 욕심 챙기고 사모가 부자만 좋아한데"라는 말을 들으면 금방 낙심이 되어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낙심시키는 전문가입니다. 그것 한 방이면 교인들의 선의지를 꺾어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면서 왜 낙심합니까? 아무리 해도 안되니까 낙심합니다. 대가를 바라보고 그 대가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일이 많고 힘들어서 낙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을 받지 않고 일만해서 낙심합니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고통이 계속되니까 낙심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식어져서 낙심합니다. 인정을 받으려는 잘못된 동기로 일해서 낙심을 합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고 일하기 때문에 낙심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선을 심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상한 마음 고쳐 주시는 예수님께 나와 낙심을 뛰어 넘고 선을 행하는데 쓰임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피가 흐르면 어떤 낙심도 치유가 됩니다. 예수님도 보십시오. 인류 구원이라는 선한 일을 위해 전파하시고, 가르치고,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 선한 일을 방해합니까? 끝까지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조롱하고, 협박하고, 고발하고, 모욕을 주고, 배반하고, 비협조적이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처형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낙심하였습니까? 인류 구원 사역을 다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당한 것은 예수님에 비하면 별로 큰 것이 아닙니다. 낙심한 마음은 예수님께 나와야 치유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 하소서 주의 길로 인도하사 자유케 하소서 새 일을 행하사 부흥케 하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 주소서"

 

2) 선을 행할 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심다가 낙심하면 포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교인 중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갈1:1) 교인들 가운데도 그 사람들이 말에 현혹되어 그들을 쫓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갈1:6)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교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예수께 부르심을 받은 사도가 아니며, 동시에 율법과 할례를 따르지 않는 유대인이라면서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결국 바울의 전도를 받고 교회의 중심이 되었던 교인들과 바울을 대적하는 교인들 간에 충돌이 생기면서 갈라디아 교회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이러면 얼마나 낙심이 되고 포기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어떤 비난과 어떤 방해, 어떤 장애물을 당해도 선을 행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 포기할 만한 것이 수없이 깔려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환영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적하는 사람들도 동시에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기 원했지만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고 빌립보에 갔습니다. 점치는 아이를 고쳤다가 감옥에 가 매를 맞습니다. 선한 일 하는데 이런 결과가 오면 우리는 금방 낙심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데살로니에 큰 부흥이 있었지만 계속 깡패 같은 유대인들이 쫓아와 비방하고 때립니다. 베뢰아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대적자들은 스토커처럼 쫓아옵니다. 디모데와 실라를 남겨두고 혼자 아테네로 고린도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지만 고린도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설교 못한다고 조롱합니다. 돈 좋아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떻게 고백합니까?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모세, 예레미야, 다윗, 이사야, 하박국, 엘리야, 엘리사, 세례요한 등 수많은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다가 얼마나 포기할 만한 상황을 만났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선한 일을 하는데 포기하고 사명을 접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선한 사명을 이 땅에 이루어 드렸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해도, 사탄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적하여도 끝까지 선의지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한다고 다 환영해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비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좋은 일만 했는데 다 환영합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고 제자들도 배신하고 떠나고 심지어는 인신매매한 제자도 있었습니다. 선한 일 하면서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면 어떤 선한 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싫은 소리 들어도 그것이 주님이 원하는 일이라면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해 창조하시고 구원했다는 사실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전10:31)"는 삶입니다.

 

3. 선을 심으면서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심으면 어떤 결과가 옵니까?

1) 선을 행하면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을 때가 옵니다.

9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오늘 말씀처럼 "때가 이르면 거두기" 때문입니다. 선의 결과는 보상받을 때가 있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때때로 지치고 피곤하여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언젠가 적절한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때는 나의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입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도 되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얼마든지 선을 행하며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선을 심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선을 행했으면 가정 경제도 좋아지고, 남편도 술을 끊고, 가정도 행복해지고, 마땅히 보상받고 하면 얼마나 선을 행하는 것이 신이 나겠습니까? 그러나 1년 다녀도 2년 다녀도 1년 기도해도 2년 기도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으면 낙심을 합니다. "예수 믿어도 별수 없네, 교회 다녀보았자 똑 같네" 그러면서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질병 치유를 위해, 가난 극복을 위해, 남편의 변화를 위해, 자녀의 미래를 위해 몇 년 교회 다녀보고 안되면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전 3:1-3)"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조급증입니다. 냉장고도 '급속 냉각'을 해야 팔립니다. 승강기를 타자마자 2, 3초를 참지 못해 '닫힘'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웹페이지가 로딩 되는 1, 2초를 기다리지 못해 '뒤로' 버튼을 클릭합니다. 연애도 번개 팅을 해야 합니다. 복권도 즉석 복권을 사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합니다. 파종과 수확 사이에는 기다림의 법칙이 필수적입니다. 추수 때까지는 인내의 시간, 인고의 시간이 파종한 농부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성급한 인생은 잡초인생이 됩니다. 거목은 손자 때나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뿌린 씨앗을 증손자 때 거둘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조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마귀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세가, 유다가 기다리지 못해 어려움 당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려면 50년 100년 기다려야 합니다. 다니엘은 21일 동안 절식을 하면서 기도를 드리다가 비로소 21일 만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만약 20일 째 낙심하고 그만두었으면 그는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을 불을 내려 사를 정도로 기적을 일으킨 엘리야도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비오기를 일곱 번까지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만약 6번째 낙심하고 그만 두었다면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는 체험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9번 가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9번 거절해도 선의지를 꺾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열 번째 가서 또 다시 기적을 일으켜 애굽에서 백성을 해방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들을 준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25년 동안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노아는 120년입니다. 모세는 40년입니다. 다윗은 17년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기까지는 그 지루한 세월의 기다림 속에 더하여 3년이라는 감옥생활의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갈렙은 45년을 기다려 85세에 원하는 산지를 받았습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낙심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가는 것입니다.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아야 축복의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심는 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중국에는 '모소'라는 대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그 대나무는 산이나 밭에 심어놓아도 5년 동안은 땅 밖으로 전혀 솟아오르지 않고 땅속에서 뿌리만 사방으로 퍼져나갈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5년이 지난 다음 해부터는 하루에 한 자씩 무성하게 자라는데 불과 6주만에 15미터 이상 키가 자란다고 합니다. 근시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쉽게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 만나니까 순식간에 그 질병에서 치료되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환자도 38년 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만약 37년 째 낙심하고 그 연못을 떠났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38년 째 예수님을 만나 단번에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세계의 최고의 갑부 작가가 된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를 출판하기 위해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12개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했습니다. 만약 그가 기다리지 못하고 11번째 원고를 불태워 버리고 포기했다면 오늘날 그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의 작가 <마가렛 미첼>은 신문 기자였지만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어 무려 10년 동안 병상에서 소설을 썼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 3년 동안 무려 13개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12번째 방문에서 낙심하고 포기했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 땅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뿌리」를 쓴 알렉스 헤일리는 8년 동안 1백 번이 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려면 50년 100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눈물을 다 씻어 주시고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중이라고 보상해 주실 때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시 37:7)"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애 3:25)"라고 말씀합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믿습니까?

 

2) 사람들은 몰라주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을 다 알아주십니다.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직역하면 "너희는 미혹되지 말라. 하나님께서 조롱받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뿌린 이것을 또한 그가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쉬운말 성경은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속임을 당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임을 당하지 않으신 분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은 다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왜 낙심합니까?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니까 낙심합니다. 열심히 회사에서 일했는데 사장님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승진시켜 주는데 자신은 한직으로 보냅니다. 그러면 사장한테 속았다고 생각하며 낙심합니다. 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낙심합니까? 하나님이 내 사정 내 형편 내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낙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면 왜 이런 고난과 고통에 나를 방치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았다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 우리의 형편, 우리의 헌신, 우리의 무능력, 우리의 눈물, 우리의 기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속으며 조롱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선행을 몰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은밀한 중에 한 선행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다가 왜 낙심하고 포기합니까? 자신의 선행이 인정받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쉽게 낙심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은 인정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정받는 곳에 시간도 내고 돈도 냅니다. 회사에서도 열심을 다해 선행을 행하였는데 이사 승진이 안 됩니다. 교회에서도 정말 열심히 선행을 행했는데 임직자 투표에서 사람들이 인정을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선행을 행하는 것을 낙심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신앙인의 선행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선행이 아닙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오른 손이 모르게 왼손이 모르게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 우리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우리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 우리의 형편, 우리의 선행, 우리의 헌신, 우리의 눈물, 우리의 기도 다 알고 계십니다. 아무도 내 사정 몰라주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을 행하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 다 몰라 준다고 해도 여호와께서 함께 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대하 19 : 11). 우리의 선행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은총을 받습니다(잠 12:2). 우리의 선행을 다 기억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엡 6: 8, 창31 : 9, 시 18: 20, 마6 :4,6,18.에2: 23),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3) 선을 행하면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사람이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기대한 바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대가 없으면 낙심도 없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기대, 부모에 대한 기대, 교역자와 직분자에 대한 기대, 성도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기대가 거품으로 끝날 때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따라 결실의 계절에 그 씨앗의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선한 것을 심었으면 반드시 선한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수확은 결정이 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거둔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7절에 "그대로 거두리라" 8절에 "거두고 거두리라" 9절에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말씀합니다. 8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 선한 것을 심었으면 반드시 선한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열매는 5장 19-21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육체를 위해 심으면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과 이단, 투기, 술 취함과 방탕과 같은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5:22-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성령을 위해 심으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씨를 뿌릴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육체인가, 성령인가? 순간인가, 영원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갈라디아 교인 가운데는 자유를 오해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아 육체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거두도록 심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늘에서 어느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믿음을 심으면 믿음의 열매를 거둡니다. 소망을 심으면 소망의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거둡니다. 용서를 심으면 용서의 열매를 거둡니다. 예수님은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라고 했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0-41)"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면 결국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얻습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2:10)"

최후의 승리를 얻습니다(잠 14: 19, 삼하 19:10-19, 에 6: 13, 7:8),

말 한마디라도 선을 심어야 합니다. 자식들이 잘 되기를 원하면 자식들에게 선한 말을 심어야 합니다. 힘든 사람 격려해주고, 슬퍼하는 사람 위로해 주며, 아파하는 사람들 감싸주고, 실패한 사람들 일으켜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 칭찬해 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미워하는 사람들 용서해 주고, 상처받은 사람들 치유해 주며, 다툼이 있는 사람들 화해해 주고,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 주며, 의심 있는 사람에게 확신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영성 회장이자 서울 서대문 결핵병원 내 베데스다교회 설립자인 이장로님이 계십니다. 그의 전재산 800여억을 출연하여 사회복지 법인 "사랑의 보금자리"를 설립했습니다. 이 장로님은 33세 때인 69년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결핵이라 의사들은 "가망이 없다."고 했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시립 서대문 병원. 많은 결핵환자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 장로는 "살려만 주시면 여생을 결핵환자를 위해 바치겠다. "며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서원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보고 계셨고 그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기적같이 완쾌된 이장로님은 그때부터 '빛을 갚는 심정'으로 결핵 환자들을 돕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고 합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선의지를 꺾지 않고 지속적으로 결핵환자를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장로님은 지난 40년 간 매월 평균 200명 이상 지금까지 모두 7만 명 이상의 결핵환자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선을 심으로면 선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반 법칙이고 자연의 법칙입니다.

 

4.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에게 선을 심으라고 말씀하십니까?

1) 모든 이에게 선을 심어야 합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도 다 합니다.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자에게도, 나에게 욕하는 자에게도, 나를 원수 시 하는 자에게도 선을 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자꾸 좋은 일하면서 낙심하며 낙심을 전염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거리가 있어도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선을 심어야 합니다.

 

2) 더욱 믿음의 사람들에게 선을 심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선을 심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회 주어졌을 때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되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서로에게 선한을 일을 하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낙심하고 넘어지는 이유 중에 첫째는 믿음의 사람 때문이고 둘째는 돈이고 셋째는 일 때문일 것입니다. 제일 많이 넘어지는 것이 믿음의 사람 때문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십자가에서 선을 해하시는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아야 낙심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가운데도 고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끝가지 더욱 선을 행해야 합니다.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선을 행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함께 천국에 가서 살 사람들입니다. 성도와 만남도 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고 착각입니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기회 있는 대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물질과 시간, 재능을 통해 선을 심는 것입니다.

 

3) 가르치는 자에게 선을 심어야 합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좋은 씨앗을 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이단들은 목회자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허물을 드러내어 교인과 이간질을 시킵니다. 자기 교주를 신처럼 우상화하며 기성 교회 교역자를 삯꾼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역자가 교회에서 생활비를 받는다고 해서 삯꾼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눅10:7)”라고 말씀하면서 교역자의 생활비에 대하여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전 9: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6:38)"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선을 심으면 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가끔 보면 교인들 가운데는 목회자나 장로 교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데 열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참 좋은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점을 찾아내거나 지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소문을 냅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 사람을 진짜 나쁜 사람으로 알고 부정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악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던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상대를 나쁜 사람을 만들므로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에 내 이름을 넣어 9절 말씀을 크게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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