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2) 옛 언약 속에 감추인 은혜의 빛줄기
창세기6:8
2025년 6월 8일 주일예배 열린교회 유튜브 연결
지난주 우리나라 국민은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이 되면 성공했다고 할 것입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단순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수많은 요인이 있습니다. 코넬대학교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그의 책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2014년, 미시간 주립대 잭 햄브릭 교수 연구팀은 노력이 성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습니다. 88개의 관련 연구와 실험 참여자 11,135명의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게임, 음악, 스포츠, 학업, 전문직 다섯 개 분야로 나누어 연구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개인 분야에서 노력과 성공의 관계성은 26%에 불과했고, 74%는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음악 분야에서 노력과 성공의 관계는 21%, 스포츠 분야에서는 18%에 불과했으며, 학업 성취와 노력의 관계는 4%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전문직에서의 성공은 노력과 1% 미만의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잭 햄브릭 교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는 것만큼 노력이 성공의 원인이 아니며, 성공의 여러 주요인 중 핵심은 타고난 재능과 능력이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노력의 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능과 비교하면 노력의 자리는 초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노력보다는 재능과 운, 특별한 환경으로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의사이자 코넬대와 홍콩과기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 김현철 박사는 그의 책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인생 성취의 8할은 운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첫 번째로 만나는 운은 **'어디서 태어났는가'**라고 합니다. 세계은행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태어난 나라의 1인당 평균 소득과 불평등 지수만으로 성인기 소득의 최소 50%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개발 국가에서 태어나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만나는 운은 **'부모'**라고 합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의 경제학자 브루스 새서도트가 홀트아동복지재단을 통해 미국에 입양된 대한민국 출신 아이들을 추적 조사한 연구가 있습니다. 입양 자녀는 양부모에게 환경만을 제공받고, 친자녀는 유전과 환경을 모두 받으므로 이들을 비교 분석한 것입니다. 그 결과, 유전이 교육 연한의 44.3%, 소득의 32.4%를 설명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도 명백히 운입니다. 그렇기에 "인생 성취의 8할이 운이다"라는 말은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취의 또 다른 척도인 **'건강'**도 운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선 태어난 나라가 기대수명을 크게 좌우합니다. 그 나라의 소득 수준과 의료 시스템 등이 기대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2017년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팀은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18가지 주요 암의 발생 요인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 결과, 암 발생의 50% 이상이 우연에 기인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의 건강도 운이 8할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20%도 우리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노력할 수 있는 힘조차 사실 상당 부분 타고난 것이기에, 인생 성취의 대부분은 우리가 스스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모든 사람이 홍수로 죽었는데, 노아와 그 가족만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창세기 6장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성경은 '은혜'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운명이나 우연으로 설명합니다. 우연으로 보는 것은 인간이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 의지를 초월한 예정된 흐름이라는 것입니다. 양자 물리학에서는 이를 확률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가 홍수로 죽는 가운데 노아와 그의 가족만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 믿음 좋은 아내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내를 만난 것을 우연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날 우연히 거길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만났어요.”라고 해석할 것입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정해진 운명이었어요.”라고 해석할 것입니다. 확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실제로 일어난 거죠. 일어날 확률은 낮았지만….”이라고 해석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만남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주신 기회였어요. 내가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죠.”라고 해석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연처럼 보일 뿐, 인간의 시야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 담겨 있습니다. 인생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운명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현실이 되는 확률의 영역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선물을 확률도, 공로도, 우연도, 운명도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사랑의 결과로 주어지는 은혜로 해석하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지위, 성공이나 건강, 믿음이나 집 등 모든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받은 은혜는 어떤 은혜이겠습니까?
이것은 누구의 말을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누구의 말을 믿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120년 후에 홍수를 내리겠다고 하시며, 홍수를 피할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믿을 수 있는 일입니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은 말씀합니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노아는 말로 전했을 뿐만 아니라,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삶으로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모든 금지를 금지하라'며 육체의 해방을 부르짖었습니다. 이미 그때에도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사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고 느낌을 중요시하며 모든 것을 상대화했습니다. 동성 결혼이 무엇이 나쁘냐고 반문하며 창조 질서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겉모습만 악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생각과 계획까지도 항상 악한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창 6:5). 거인(네피림) 숭배 문화가 판을 치던 시대였습니다(창 6:4).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바벨탑 사건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또다시 아담과 하와처럼 자신들이 왕이 되려 했습니다.
바로 이 가장 어두운 순간에, 하나님은 '노아'라는 한 사람을 통해 은혜의 빛줄기를 비추십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식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은혜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신약 성경은 이때 노아의 믿음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이것이 은혜의 기적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말씀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말씀을 들어야만 생깁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추상적 감정이나 결단이 아니라,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생기는 반응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복음, 즉 구속사적 메시지를 말합니다. 말씀은 믿음의 출발점이며, 믿음은 말씀에 대한 신뢰와 반응입니다. 또한 말씀은 믿음을 자라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은혜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믿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어디 있느냐"고 손가락질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움직이는 용기가 생깁니다. 당시 사람들은 홍수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노아는 그 말씀을 듣고 120년간 방주를 지었습니다.
믿음은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그의 믿음으로 가족이 함께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언약(무지개 언약)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열매로 온 가족이 구원받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세상에 경고했습니다. 결국 그는 의의 상속자가 되어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지성 중심 시대의 회의주의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지성적 요인으로,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는 과학 중심 세계관이 성경의 초자연적 내용(창조, 기적, 부활 등)을 비이성적인 신화로 간주합니다. 역사 비판주의는 성경을 사람의 책이라는 관점에서 영감설을 부정하고 성경의 권위를 상대화합니다. 역사성, 고고학적 논란, 저자 의심 등으로 성경을 믿을 만한 책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상적 요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진리를 상대화합니다. 절대 진리는 없으며, '너의 진리'는 너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 기준을 절대화하며 하나님보다 자기 판단을 더 신뢰합니다. 심리적 요인으로는 엄격한 아버지상, 종교적 상처, 기도 응답의 지연 등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며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문화적 요인으로는 물질주의와 성공주의 세상에서 희생과 섬김은 낡은 가치로 치부되고, 낙태, 동성애, 안락사 등을 금지하는 것을 사랑 없는 판단이나 혐오로 매도합니다.
이에 대해 고린도후서 4장 4절은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은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마음을 흐리게 하며 거짓된 길을 진리처럼 보이게 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고 이 혼미한 세상을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 어두워 보여도, 하나님은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나의 상황이 끝처럼 느껴져도, 하나님은 거기서 시작하십니다. 애굽의 학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은혜를 부어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사사 시대처럼 반복적인 타락이 이어져도 기드온, 삼손, 드보라 같은 사람에게 은혜를 부어주어 그 시대의 빛줄기로 삼으셨으며, 바벨론 포로 시기 같은 절망 속에서도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은혜를 부어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아무리 믿음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된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의 빛줄기를 받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그런 은혜의 빛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집니다.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더 선명해집니다. 창세기 6장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받았고, 그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대에 완전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은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제를 했다는 말입니다. 아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만 가능합니다.
세계 최고의 판매왕 조 지라드는 15년간 무려 13,001대의 자동차를 팔아 기네스북에 '세계 No. 1 세일즈맨'으로 12년 연속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책 <최고의 하루>에서 '35세까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실패한 낙오자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빈민가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며 자랐고, 머릿속에는 늘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아버지의 말이 각인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퇴학당했고, 40여 군데의 직장에서 번번이 쫓겨났습니다. 그의 방황은 소규모 주택건설업자인 에이브 사퍼스타인을 만나면서 끝이 났고, 사퍼스타인은 은퇴하며 그에게 사업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최고의 하루가 있고, 누구나 오늘을 최고의 하루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똑같은 날이지만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그 시간의 질과 의미는 달라집니다. 목동이었던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만난 날이 인생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살인하고 도망자로 살던 모세에게 최고의 하루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날이었습니다. 사기꾼 야곱에게 최고의 하루는 쫓기는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날이었을 것입니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황소 머리」도 쓸모없어 보이던 자전거의 좌석과 손잡이로 만든 것입니다. 아무 쓸모없는 돌일지라도 미켈란젤로의 손에 들어가면 걸작 「모세」가 나옵니다.
시골 소녀도 대통령을 만나 결혼하면 대통령의 부인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든, 그곳에서 진지하게 하나님을 만나면 그날이 최고의 하루가 될 것이며, 그 최고의 하루는 최고의 인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갔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6장 22절을 보십시오. 믿음은 전적인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상황이나 감정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신뢰로 행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일 처음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창 8:20).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예배를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창 8:21). 정결한 짐승을 통한 피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노아 홍수를 통해 하나님은 예배를 회복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실수는 예배의 실패입니다. 가인은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바벨탑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목적도 예배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을 통해 그들을 살리시고 광야에서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율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기록한 것도 성막을 짓고 성막에서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예배에 실패했고, 그 결과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 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라기서를 보면 그들은 또다시 예배에 실패합니다. 예배를 지루하고 귀찮게 여기며 형식적으로 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 그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말 4:5-6). 그 엘리야가 예비한 분이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셨고, 십자가 위에서 친히 어린 양이 되어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예배하는 자들의 대표적인 삶의 특징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 14:23)"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은혜받은 사람, 예배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행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아무리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 받았으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모두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기억되느냐의 문제입니다. 누구에게 기억되느냐의 문제가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창세기 8장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여기서 '기억했다'는 것은 히브리어 '자카르'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여기서 처음 나옵니다. '기억하셨다'는 것은 홍수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노아의 가족과 방주 안의 모든 것을 마음에 새겨 놓은 것처럼 한시도 잊지 않고 늘 생각하며 지켜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쉽게 잊고 배신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4-15)"
가장 큰 저주는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당신의 언약입니다. 창세기 6장 18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후에 노아가 술에 취해 추태를 부려도 하나님은 그 언약을 잊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인간이 타락한 직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첫 약속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속여도, 야곱이 사기를 쳐도, 모세가 살인을 해도, 다윗이 간음해도 하나님은 이 구원의 언약을 잊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구약에 숨겨진 은혜의 흐름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출 2:24-25)"
언약('베리트')은 원래 '자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인간은 언약을 지킬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도 하나님 홀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를 통해 그 언약을 스스로 이루십니다.
홍수 심판 이후, 하나님은 언약의 백성인 남은 자를 통해 새로운 세대를 시작하시며 창조 언약을 기억하시고 축복해주십니다(창 9:1-7). 이는 창세기 1장 27-29절의 축복을 다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은혜받은 우리도 이런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그리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을 약속해주십니다(창 9:16).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주권으로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시는 불가항력적이고(롬 9:14-16) 영원한 은혜입니다(딤후 1:9).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환난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기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의미 있는 주목과 응답, 약속의 성취를 뜻합니다. 즉, 신자의 신실한 태도, 헌신, 눈물, 기도, 의로움을 기억하시고 그것에 응답하며 보상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눈물과 고통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다 기억하셨습니다. 고넬료의 기도를 기억하셨다가 하나님의 때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섬김과 수고도 하나님이 다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사람에게 잊힐까 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다 기억하십니다.
하늘을 나는 새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날개의 힘으로 나는 새와 바람의 힘으로 나는 새입니다. 참새나 메추리는 날개의 힘으로 날기에 분주하게 날갯짓을 하지만 멀리, 높이 날지 못합니다. 반면 독수리나 갈매기는 바람의 힘으로 나는 새입니다. 날개를 쭉 펴고 바람과 기류를 따라 힘들이지 않고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갑니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은혜라는 바람을 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낙엽은 스스로 강을 건널 수 없지만, 바람을 타면 강을 건너갑니다. 태양이 위치를 바꾸면 음지도 양지가 됩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의 빛줄기가 비칠 때, 우리의 삶은 변화될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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