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세기13:14-18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 해 일어나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걸어가 하나님이 약속한 땅을 차지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Ⅰ.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일어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조카 롯과 작별하고 새 출발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1) 눈을 들어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라고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 즉 새 시대,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가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본토는 떠났지만 아버지를 떠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국경선인 하란에서 머물렀습니다.(창11:31) 거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떠납니다. 그러나 아들처럼 생각하는 조카 롯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때 나이 75세였습니다.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멀고 인간적인 정은 더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13장 6절을 보십시오. 땅 싸움이 난 것입니다. 재산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롯은 눈을 들어 소돔과 고모라 땅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약속한 땅 동서 남북을 눈을 들어 바라보라고 합니다. 땅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라는 말씀입니다. 방향을 전환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잘못된 길의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바른 목표를 설정하라는 말입니다. 올 한해 각자 주신 사명의 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표가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별 차이가 없는 것같지만 연말이 되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는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였습니다. 아내는 땅에 미련을 두고 그 곳에서 집착하다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사위는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 죽었습니다. 그 자신도 딸들과 동침하는 추태를 부리고 말았습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입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목표를 설정한 결과입니다. 올 한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설정하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2) 너 있는 곳에서 바라보고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목표를 설정할 때 뜬 구름을 잡지 말고 현재를 직시하라는 말입니다. 현재를 무시하고 우리가 목표를 설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지만 이 세상을 떠난 진공상태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현재 나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 작다고 모자라다고 쓸모없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그것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오병 이어가 있었기에 5천명이 먹는 것입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를 이루는 것입니다. 없는 것으로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주어진 것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홍해도 갈라지도 여리고도 무너질 줄 믿습니다.
3) 동서 남북을 바라 보고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좀더 원대한 꿈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동서 남북 어느 곳이든 가서 살 곳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좁은 그곳에서 싸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할 동서남북은 어디입니까? 직장인에게 있어서는 진급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자에게는 학문적 업적이 될 수 있습니다. 사업하는 자에게는 사업의 번창이 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진학이라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결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인간관계로 고통하시는 분에게는 풀어야할 인간관계가 될 수가 있습니다.
올 한해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목표를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영적인 면에서의 성장과 성숙, 경제적인 면에서 결실, 건강, 습관의 변화, 인격의 성숙, 학문적 업적, 사업의 성공, 인간관계의 회복 등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한 해를 출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땅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지금 내 모습 보며 좌절하지 말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상장사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꿈을 주신 하나님, 광야의 도망자로 살아가는 모세를 불러 민족 구원의 꿈을 주신 하나님, 갈릴리 어부 베드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의 꿈을 주신 하나님, 혈기 방자한 바울을 불러 세계 복음화의 꿈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이 시대, 이 사회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길 원합니다. 소명, 비전, 사명,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학교생활도, 직장생활도, 인생도 많은 차이가 납니다.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는 1953년 '목표를 적어두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였답니다. 졸업생들에게 20년 후의 목표에 대해 자세히 정리해 제출하라고 했답니다. 단,이 과제는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알렸답니다. 학생 중 97%는 과제를 무시하거나 대중 써서 제출했답니다. 성의 있게 과제를 제출한 학생은 3%에 그쳤다고 합니다. 20년이 지난 1973년,1953년 졸업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추적 조사하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답니다. 20년 후의 인생 목표를 제대로 써서 제출한 3%의 졸업생들이 나머지 97%의 졸업생을 전부 합친 것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답니다. 소명을 가지고 사는 것, 목표, 비전,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20대를 변화시키는 30일 플랜>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연구소는 어느 사회에서나 65세 이상의 정년 퇴직자들이 3: 10: 60: 27 이라는 비율로 경제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3%는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10%는 퇴직 전과 별 차이 없는 경제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60%는 간신히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고, 27%는 자선 단체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났을까?"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3%는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목표를 글로 적어놓고 수시로 꺼내 읽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10%는 목표는 있었으되 글로 적고 수치로 꺼내 읽는 습관은 갖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60%는 목표가 수시로 바뀐 사람들이었고, 27%는 목표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
이렇게 먼저 현재 있는 위치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꿈을 가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확신하고 일어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나 바라보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약속을 해주시고 있습니까? 15절 16절 17절 말씀입니다. 1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 땅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5,17하).
(1) 보이는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땅이 아닙니다. 지금 볼 수 있는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2)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는 자손이 없습니다.
(3)영원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이 아닙니다. 영원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2)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6).
땅의 띠끌처럼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땅을 관리하고 그 축복을 누릴 자손을 띠끌처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허황된 것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지금 아들 하나 없는데 어떻게 티끌같이 많아질 수 있습니까? 아들처럼 의지하던 롯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허황된 약속처럼 보입니다. 불가능하다고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불가능도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법칙적 불가능입니다. 중력의 법칙과 같은 물리의 법칙, 생명은 언제나 생명에서 나온다는 생물속생설과 같은 생물학적 법칙, 물은 수소와 산소를 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화학의 법칙, 그리고 수학의 법칙 등 다양한 법칙이 있습니다. 자연법칙은 규칙성과 필연성이 있어 사람이 해를 서쪽에 뜨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둘째는 논리적 불가능입니다. 앞뒤가 안 맞아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셋째는 경험적 불가능입니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로 인한 불가능입니다. 200년 전에 노예해방은 불가능한 것이었고, 100년 전 여성의 투표권 행사도, 식민지에서 독립운동도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전기나 기차나, 비행기나, 우주선이나 15세기에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경험적 불가능과 싸워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머리가 없다고 샴푸를 못파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단정해버리면 불가능의 장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가능성을 믿고 나가다 보면 불가능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절대 회복력(캐런 레이비치, 앤드류 샤테 지음)>이라는 책의 저자는 15년 가까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회복력에 대하여 연구해 보니까 회복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유전도, 아동기의 경험도, 기회 부족도, 경제적 문제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차적인 장애물은 인지 양식(Cognitive style)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고 양식(Thinking style)입니다. 불가능하다고 단정해 버리는 사고 양식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고방식을 바꾸어라. 인생이 영원히 바뀐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불가능한 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믿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솔로몬 시대 때 성취되었습니다. 솔로몬 시대 때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왕상4:2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롬4:18-21절에서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확신하며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큰 꿈을 주면 그것을 확신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확신하되 얼마나 확신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오대 확신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 구원의 확신, 인도의 확신, 죄용서의 확신,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믿음이 삶과 세상을 바꿉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주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이 믿음을 가지고 가면 실상으로 나타나고, 보지 못한 것들이 믿음이 있으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믿고 바라보면 믿음은 힘이 있어 언젠가는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라고 믿음의 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올 해는 건강해 질 것이다. 올 해는 경제적으로 좋아 질 것이다. 올 해는 자녀가 잘 될 것이다. 올해는 믿음이 좋아질 것이다. 올해는 행복해 질 것이다. 올 해는 사업이 잘 될 것이다." 기도했으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소아마비와 천식을 앓아서 촛불 하나도 제대로 끌 힘이 없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열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을거야." 그 후 그는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 의원이 되었고.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었으며.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던 이 사람은 바로 데오도르 루즈벨트입니다. 믿음의 힘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믿음이 마음을 지배하고, 몸을 지배하고 믿음이 행동을 다스리며 믿음이 미래를 만들어 냅니다. 믿음은 강력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일어나 종횡으로 두루 다니며 차지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첫 번째가 바라봄의 법칙이고 두 번째는 확신의 법칙이라면 이 말씀은 순종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꿈을 가졌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1)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그 현장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먼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심적 상태는 어떻겠습니까? 무척이나 낙심하고 있는 상황일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게도 조카를 사랑했는데 전혀 자신을 고려하지 않고 싸우고 그리고 이익을 챙겨 떠나버리는 보면서 배신감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인간의 한계를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낙심하지 않았겠습니까? 함께 잘 살아 보려고 했는데 이제 홀로 남았습니다. 외롭지 않겠습니까? 좀 더 추론한다면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나간 과거 혹은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이 있다면 그곳에서 과감히 일어나야 합니다.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내 인생을 절망의 늪으로 끌고 가는 잘못된 생각, 잘못된 습관, 잘못된 관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과감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패배적인 과거는 잊어 버려야 합니다.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항상 뒤를 돌아보게 하고 성령님은 항상 미래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빌3:13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 가노라" 고 말했습니다. 과거는 잘했건 잘못했건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잘못한 과거를 생각하면 위축이 되어 능력을 발휘할 수 없고 잘한 일을 자꾸 생각하면 교만과 자만에 빠져 실패하기 쉽습니다.
2) 용감하게 결단력을 가지고 모험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땅을 종횡으로 행하여 보라고 말씀합니다. 벤처 정신, 모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 땅이란 네가 서 있는 땅, 네가 목표하는 땅입니다. 약속의 땅입니다. 사명의 땅입니다. 목표를 행하여 종횡으로 과감히 행해 보라는 것입니다. 일을 추진하라는 말씀입니다. 망설이고 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창조적으로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차지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사회는 창의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험정신을 가지고 결단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도 벤처정신을 가졌습니다. 모세도 벤처정신을 가졌습니다. 여호수아도 벤처정신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 나아갈 때 벤처 정신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3)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즉시 행합니다.(18).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듣고 한 첫 번째 한 행동을 무엇입니까? 1)장막을 옮겨 2)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3)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에라는 말은 그리고 즉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은 바로 직후 즉각적인 순종을 의미합니다. 비전을 가졌다고 즉각 무엇이 바꾸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상수리 수풀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실천하였습니다.
생각만 무성하고 말만 무성하고 행함이 없다면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꿈은 행함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다면 그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약속을 확신하면 요단강을 건너라고 할 때 법궤를 메고 찰랑거리는 요단강에 들어가야 합니다. 홍해를 가르기 위해 지팡이를 내밀어야 합니다. 문둥병을 낳기 위해 요단강 물에 들어가라고 할 때 요단강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 합니다. 알고 있는 것 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순종은 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기적은 움직여야 찾아 옵니다. 행함없는 결심은 백일몽에 불과합니다. 표어만 붙여 놓았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이 보일 때까지 파면 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짭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실행이 없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캐나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당대의 부자가 된 깁슨(Gibson)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물방앗간의 심부름꾼으로 출발한 그는 결국 갖은 고생 끝에 산림 20만 에이커(2억 4488만평), 철도 280마일이라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여 아메리카의 거부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깁슨에게 물었습니다. "아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깁슨은 "글쎄요, 굳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한다면 세 가지 신조입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 둘째는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나를 오늘이 있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기자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그거야 누구 나가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 라고 되물었고 깁슨은 웃음 띤 얼굴로 다시 말했습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못됩니다. 누구나가 다 아는 하찮고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깁슨을 거부로 만든 것은 해박한 지식이나 달변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평범한 사실의 실천이었습니다.
성경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올 한해 눈을 들어 바라보고 일어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 올 한해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며 일어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3. 올 한해 하나님은 약속 확신하고 일어나 종횡으로 두루 다녀 차지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차지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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