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신명기31:5-8
2024년 마지막 주일예배입니다. 오늘은 졸업 예배로 유치부, 유초등부, 중고등부, 대학부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단계 매듭을 짖고 새로운 단계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한 해를 매듭짖고, 한 단계를 매듭지을 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전환점은 어떤 사건을 통해 자기 삶이 전혀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전환점(turning point)은 글자 그대로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계기 또는 그런 고비를 말합니다. 그 인생의 전환점은 삶의 흐름이 크게 바뀌는 순간이나 사건으로 개인의 가치관, 목표, 생활 방식, 혹은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거나 완전히 새롭게 설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전환점은 대개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만남은 사람일 수도 있고 책이나 어떤 장면,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이방인’ ‘시시포스의 신화’를 써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는 초등학교 선생님었습니다. 그는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허드렛일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병약한 외할머니, 불구자인 외삼촌과 함께 빈민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초등학교 시절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합니다. 34년 뒤 카뮈가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을 초등학교 스승인 제르맹에게 헌정하였습니다.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은 히로나카 교수는 1970년 필즈상을 수상한 일본인인데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한 소녀를 만남을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교토대 대학원생 시절 그는 길을 걷다가 한 소녀가 자신이 흘린 수첩을 주워서 전달해 주기 위해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답니다. 그때 그는 내가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인지 자문해 보았고, 본인의 삶의 목표와 방향을 생각해 보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윈스턴 처칠과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의 만남은 서로를 살리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 가장 귀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어린 처칠이 어느 날 가족과 함께 한적한 시골 호숫가에서 놀다가 실족하여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답니다. 이 때 한 시골 소년이었던 플레밍이 용감하게 호수에 뛰어들어 그를 구했답니다.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이 소년은 처칠의 도움으로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어 기적의 약인 페니실린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 1940년 5월 영국이 독일군의 침공 앞에 놓여 있었을 때 수상이 된 처칠은 중동지방을 순시하다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그를 살려낸 사람은 기적의 약 페니실린을 발견해 낸 플레밍이었습니다. 헬런 켈러가 탄생하기까지는 설리반과의 만남이 있었고 마이클 조던에게는 딘 스미스가, 플라톤에게는 소크라테스가,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습니다. 귀중한 만남은 인생의 축복이자 전환점이 됩니다. 인생의 전환점은 무엇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평생 살면서 가장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부모도, 배우자도, 친구도 언젠가 다 떠나고 어디에서나 함께할 수 없지만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만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모세도, 여호수아도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고 어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그 하나님과 함께 평생 살면서 주신 사명을 다 이루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인생의 전환기에 앞서가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돌아가시고 여호수가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실 것입니다. 이 때 모세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무슨 말씀을 해 주십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120살이 되어 이제 죽음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출애굽한지 40년이 지났습니다. 출애굽 2세대들입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요단을 건너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이 말을 백성들에게 말했을 때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겠습니까? 한 번도 해 본이 일이 없는 일을 해야 하고,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길을 가야하고,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이제까지 의지했던 지도자가 살아집니다. "이제 끝났구나,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우리 민족은 이제 망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 기둥처럼 여겼던 가장이 병들거나 실직하거나, 천국에 갔다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새롭게 시작하려고 하는데 의지했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습니다. 의지했던 직원이 떠났습니다. 의지했던 물질을, 의지했던 명예가, 의지했던 권력이, 의지했던 지식이 떠났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두려움이 다가 옵니다. 인생은 많은 전환점을 맞습니다. 새로운 일자리, 학업, 결혼, 노년, 혹은 예상치 못한 위기 등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큰 전환점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두려움에는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다른 거의 모든 두려움은 이 기본 요소들의 조합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소멸입니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둘째는 절단입니다. 신체의 부분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셋째는 자유의 상실입니다.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마비되거나, 제한되거나, 갇히거나, 덫에 빠지는 것과 같이 두려움입니다. 넷째 분리입니다, 버려지고, 거부되고, 관계를 잃어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다섯째 자아의 죽음입니다. 실패하고, 거절당하고 창피함, 수치심 등을 당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서 오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무슨 말씀을 해 주십니까? 3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신 31:3)" "네 인생", "네가 앞서가면" 무엇인가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앞서가신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승리하고 성공한다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신명기 1장 30절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하나님이 너보다 먼저 건너가신다는 것입니다. 앞서 가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 네 앞에서 두려워하는 적들을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지 못하지만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가 너희들 앞에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의지했던 사람 떠났으나 새로운 지도자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0절을 보십시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3절을 보십시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기하신 자이시니라" 믿습니까?
시편 68편 7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3장 20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23절에서는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45장 2절에서는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라고 했습니다. 너무 불안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리두지 않습니다.
오늘날 무엇으로 인도하십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지시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셋째는 분별하도록 하면서 인도해 주십니다. 넷째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누가 앞장 서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그 땅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만 꼭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른 막대기로도 홍해를 가르시고, 돌멩이로도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5병 2어로도 5천명을 먹이시고, 나귀 턱뼈로도 천명을 죽이고, 찢어진 옷으로도 물을 가르십니다. 누구의 문제가 아니고 무엇의 문제가 아닙니다. 꼭 능력 있는 사람, 꼭 힘 있는 사람, 꼭 좋은 도구, 능력 있는 도구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면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 하나님은 너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용기의 근거를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믿고 용기를 내라고 예를 들어 주십니다. 4절에 읽겠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큰 장애물이었던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을 하나님께서 이미 멸하신 것을 말씀합니다.(2:24-3:11; 29:7; 민21:21-35).
우리의 앞길을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이, 정치 지도자가, 과학이, 자신이,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농사꾼 아모스, 소모는 엘리사, 장애인 에후, 주부 드보라를 사용하여 민족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성취하게 하였습니다. 전환기에 미래의 불확실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시어 승리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절대 신뢰하고 하나님과 함께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2. 인생의 전환기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붙들로 형통한 길로 걷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을 절대시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다가오면 자기 생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며 포기해 버립니다. 내가 안되니까 하나님도 못한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과거 가데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땅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살펴보고 와서 하나님의 생각 즉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요단강을 건널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나가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밤새워 통곡합니다. 전쟁을 해 보지도 않고 이미 실패했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주어진 기회를 자학하고 원망하고 포기할 이유를 찾는데 사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 현실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정복하게 해 주신다고 했어 그러니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가자라고 했으면 그 때 가나안은 정복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 실패한 그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출애굽 2세대를 향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5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너희 앞에 그들을 넘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한 것, 목표한 것, 기도한 것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넘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임종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수23:5)"라고 했습니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승리를 보장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리 말라“
7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저와 우리 성도님이 차지할 땅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사업에 성공입니까? 인격 성숙입니까? 자녀 잉태입니까? 취업입니까? 진학입니까? 부흥입니까? 선교입니까? 가족 구원입니까? 원수 용서입니까?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그 땅에 주신 재능을 다 가지고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두려워하면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8절 하반절에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상대가 나보다 현격한 힘을 가지고 있다해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고 맡겨준 사명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내가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시도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보다 자기 자신의 재능이나 환경, 여건을 더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 붙드시기 바랍니다. 이것저것 제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하면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면 사랑하고 포기하라고 하면 포기하고 가라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막막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일지라도 말씀 붙들고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라니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여리고성을 돌라라고 하면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붙들고 도니까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물맷돌을 들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난 것도 말씀에 근거한 용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80살 노인으로 민족을 이끄는 데는 용기도 말씀에 근거하여 나온 것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풀물불과 사자굴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게 한 것도 말씀에 근거한 용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로 수많은 적과 싸운 것도 말씀에 근거한 용기였습니다. 엘리야가 이방 신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었던 것도,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왕 앞에 나아가 민족을 구한 것도 말씀에 근거한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링컨을 보십시오. 부모가 둘 다 문맹이었습니다. 어머니는 9살 때 성경 한권 남겨 주고 돌아가셨습니다. 20세가 넘도록 제대로 된 직업 한번 같지 못했습니다. 그가 점원으로 일한 방앗간과 상점을 인수해 사업을 해 보았지만 1100달러의 빚만 지고 그 빛을 갚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수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결혼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사업하지만 또 망했습니다. 하원의원에도 실패 오랫동안 신경 쇠약으로 고생합니다. 상원의원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물려주었던 말씀을 붙들고 일어났습니다. 결국은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도 미국인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학교 다닌 기간이 채 1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은 신학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용기 있게 살았습니다. 노동자 농부 뱃사공 장사꾼 품팔이 우체국직원 변호사 갖가지 일을 하였지만 단 한번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병들 때, 부채가 무거울 때, 실패할 때, 가정에 어려움 있을 때, 장애물이 다가 올 때, 말씀에 근거한 용기를 가지고 넉넉히 이기시길 바랍니다. 전화기에 내 생각으로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믿고 용기를 가지고 형통한 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인생의 전환기에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전환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내가 너희를 앞서 인도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정복하라고 하는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6절 중반절을 보십시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가 되면 다 떠납니다. 의지했던 부모도 사랑했던 아내도, 함께 했던 친구도 때다 되면 다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습니다.
모세가 죽어 지도력의 공백이 생겨도, 요단강이 앞에 있고, 백성의 수는 많고, 전쟁 경험이 없고, 전략 무기는 없다할 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미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단강을 어떻게 건너갔습니까? 여리고성을 어떻게 무너뜨렸습니까? 아이성을 어떻게 점령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가고 무너뜨리고 점령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는 계속되는 신변의 위협과 역경에 극도로 지쳐 있었답니다. 공회에 나가 변론해야 하는데 잘 못하면 화형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움이 극에 달해 루터가 용기를 상실하고 식음을 전폐한 채 누워 있었답니다. 그 때 그의 부인이 상복을 입고 나타났답니다. "누가 죽었오?" 루터가 묻자 부인은 "하나님이 죽었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하시오"라고 루터가 화를 내자 부인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토록 좌절할 리 없잖아요. 믿음 안에서 다시 일어나세요"라고 말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루터는 용기를 얻고 "교황청 지붕의 모든 기왓장이 마귀라 할지라도 두렵지 않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라고 외치며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어떤 경우든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장사의 아들 아브라함, 부인을 누이라고 속인 실패의 사람 아브라함, 살인자하고 도망간 모세,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 여러번 실패하고 예수님을 부인 한 베드로, 기생의 아들 입다, 기생 라합, 바람둥이 삼손, 겁쟁이 기드온 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집 나간 탕자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어떤 경우든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눈빛 하나에도 삐지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원하는대로 대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며 변덕을 부리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며 떠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환난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것은 없습니다. 다 떠나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아내가 떠나고 남편이 떠나고 자식이 떠나고 동업자가 떠나고 믿었던 사람들, 친구들이 떠난다 해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 말씀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이 사실을 안 바울은 노년에 사랑했던 데마도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렸고 그레스게도 디도도 떠나 버렸지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났을 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7-18)“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너희가 늙을 때에도 나는 그리하겠고 너희가 백발이 될 때에도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이사야 46:4)”.
오늘 6절 말씀 너희는 이라는 말씀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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