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기쁨을 주시기 위해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눅2:10-1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84670 추천수:4 218.147.218.173
2024-12-15 16:24:28

기쁨을 주시기 위해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2:10-11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아기로 탄생하여 오셨을까요? 지난 주에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죄와 사망을 물리치고 그것을 인하여 파생되는 분열과 갈등, 전쟁과 불안, 두려움, 염려, 근심으로부터 하나님과 평화, 인간과 평화, 자신과의 냇적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아기로 탄생하여 오셨을까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탄절의 대표적인 노래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입니다.

 

1.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로 탄생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목자들이 밤에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 천사들이 나타났고 주의 영광을 그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반응을 하였습니까? 두려워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로 더럽혀진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33:18-20).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나는 "다른 불"을 드리다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불로 심판받아 죽었습니다(10:1-2).

웃사가 언약궤를 만졌을 때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한 것으로 간주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삼하6:6-7). 따라서 목자들이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목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 천사가 목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죽을까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사가 온 백성에게 미친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주러 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천사는 먼저 목자들을 안심시키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들어본 적이 없는 가장 복된 기쁨의 소식을 그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메가덴)'크고, 놀랍고, 장엄하다'는 뜻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큰 기쁨 소식은 메가톤 급 기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쁨, 온백성이 기뻐할 기뻐할 황홀한 기쁨의 속은 무엇이겠습니까? '큰 기쁨의 소식’(유앙겔리온)이란 곧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우연히 아기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잃어 버린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미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가 5:2)."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며, 그 아이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구원을 가져올 메시아일 것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메시아는 온 세상에 기쁨과 소망을 줄 것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스가랴 9:9)."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메시아의 임재가 기쁨의 이유가 됨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쁨과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여호와께 속한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며 그들의 머리 위에 영원한 기쁨을 띠고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이사야 35:10)."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메시아의 사역을 통해 슬픔이 사라지고 영원한 기쁨이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 예언의 성취로, 인류에게 기쁨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스바냐 317절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는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11절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른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2절에서는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11절에서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이 메이아인 것처럼 백성에게 참된 기쁨을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로마의 황제도, 헤롯대왕도 기쁨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지도자들이 진정 기쁨을 주지 못했습니다. 물질이 인간에게 참된 기쁨을 준다고 유혹합니다. 재미 있는 콘텐츠가 인간에게 기쁨을 준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 인터넷 세계를 헤매고 다닙니다. 인간에게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시고 그 죄와 사람으로부터 파생된 근심과 걱정,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좌절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참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아기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죽음과 공포, 가난과 고통, 죄와 사망의 역사를 끊어버리고 부활과 환희, 소망과 능력, 기쁨과 평화를 주는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알려주는 분기점입니다.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헤롯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심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낡은 정신, 낡은 지식, 낡은 정치가 청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권세는 깨뜨려졌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세계는 진정한 자유, 진정한 행복, 진정한 평등, 진정한 박애가 실현되어 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죽음으로부터,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사탄의 종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과 죄로부터 근본적이 해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통해 이 큰 기쁨이 회복되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까? 삶이 힘겹고 어렵습니까? 되어지는 일이 없습니까?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질병 가운데 있습니까? 부채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보통 아이들은 하루에 300-500번 웃은데 성인들은 7-10번 웃는다고 합니다. "일소일소 일로일로"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 번 웃으면 그만큼 더 젊어짐 한 번 노하면 그만큼 늙어진다는 말입니다. 한 번 웃음은 에어로빅 5분 효과가 있고 하루 15초 웃으면 이틀을 더 산다고 합니다. 웃음도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실제로 기뻐하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학자들이 조사를 했습니다. '뒤센의 미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광대뼈 근처와 눈꼬리 근처의 얼굴 표정을 결정짓는 근육을 발견해낸 뒤센을 기려 붙인 이름입니다. 하커와 켈크너라는 학자가 30년간 대학생 141명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뒤센의 미소가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조사했답니다. 각각 27, 43, 52세 되는 해에 연구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비교하였답니다. '뒤센 미소'가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건강하였으며 병원에 간 횟수도 적었고 생존율도 높았답니다. 결혼 생활만족도도 높았으며 이혼율은 낮았답니다. 평균 소득수준도 높았답니다. 혹 뒤센의 미소를 지은 여성들이 예쁘고 매력이 있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하여 연구하였지만 그러나 예쁘고 안 예쁘냐는 그 사람의 건강이나 행복한 결혼 생활 혹은 소득 수준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건강은 웃음의 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잘 웃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김종인 원광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60대 이상 389명을 분석했습니다. 100세 이상 사는 노인 109, 80-89세 노인 135, 60-69세 노인 145명을 3개 집단으로 나눠 그룹 간 장수 요인을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100세를 넘겨 장수하는 노인은 80대 노인보다 10, 60대 노인보다 12배 더 많이 웃는다고 합니다. 웃으면 뇌에서 엔도르핀 분비가 촉진되고 모르핀 분비가 증가되어 기억력이 향상되고 긴장이 완화된다고 합니다. 심장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억제되어 혈압, 혈당이 정상치가 유지되며 혈액순환이 개선된다고 합니다. 폐에는 신경조직 이완을 통해 폐 속 깊은 곳까지 신선한 산소가 공급된다고 합니다. 위와 간, 대장 등 소화 기관에는 바이러스 저항력을 증가시켜 각종 소화기 암을 예방해 준다고 합니다. 엔도르핀 증가로 요통이나 디스크의 통증 완화 시켜주고 억제한다고 합니다. 웃으면 혈액에는 면역기능 증가, 암세포 공격,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수치를 감소시켜 건강하게 한다고 합니다. <몸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조지 굿하트는 '사람의 생각은 몸에 존재하는 60조 개의 세포가 가장 빨리 눈치 챈다'고 말합니다. 기뻐하는 것은 순식간에 세포가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성탄절입니다. 요즈음 탄핵 정국으로 웃을 일이 별로 없는 때입니다. 탄핵을 원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잠깐 웃을 수 있겠지만 그 웃음도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인 인생의 웃음입니다. 경기가 안 좋아 우울한 분들은 웃을 일이 없다고 하실 것입니다. 진학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한 분들 기쁨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뻐하다보면 기쁜 일 생기는 것입니다. 눈이 웃으면 마음도 웃고 마음이 웃으면 인생도 웃게 됩니다. 입술이 웃으면 인생도 활짝 펴집니다. <웃음은 빙산도 녹인다>의 저자 노사카 레이코는 "웃음 하나로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언17:22).라고 말씀합니다. 기쁜 성탄절입니다. 기쁨을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우리는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무엇으로)

오늘 목동을 보십시오. 그들이 기뻐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부가 있어서, 권력이 있어도, 나라가 로마로부터 해방되어서, 잔인한 헤롯이 물러나서 기뻐합니까?

목동들이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을 메시아 대망 가운데 살아온 자들이었습니다. 메시아께서 나시리라고 예언된 베들레헴(5:2)'다윗의 동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메시아가 다윗에게 약속된 예언(삼하7:12-16)을 성취할 것이라고 말씀했는데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왕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아기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구주’(소테르)는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크리스토스)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으로, 인류 구속의 사명을 수행할 예수이 왕권과 제사장, 선지자 직을 가지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퀴리오스)라는 말은 본래 단순한 존칭으로 사용된 말이었으나 유대인들이 경외심 때문에 부르기를 꺼려했던 여호와라는 말 대신에 사용한 말로, 예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그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자신들이 전한 메시지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표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당시 베들레헴에는 갓 태어난 다른 아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 가운데 구유에 누워 있는 아이는 오직 예수 하나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헤롯이 통치할 때입니다. 아주 잔인한 독재자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2살 이하의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한 자입니다. 자신을 절대왕으로 생각하고 산 사람입니다. 로마의 황제, 유대 총독이 몇 번씩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25세 젊은 나이로 주전 37년에 취임해 예수님 오시기까지 유대를 통치하는 왕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10명의 아내를 거느리며 아내와 아들들을 죽였습니다. 첫째 부인 첫 아들, 두 번째 부인 두 아들 죽였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종교적 최고 지도자 아리스도 불로가 대제사장이 되었을 때, 오순절 행사 때 백성들이 그를 환호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를 초청하여 파티를 열었는데 그 날 무더워서 목욕파티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장난처럼 대제사장을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고는 그가 익사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잔인한 왕이 지금 말하면 대통령입니다.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번영도 없고 미래의 희망도 없는 나라였습니다. 특히 목자들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남이 집에서 편안히 잠들 때 들에게 양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에 목자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가장 천민 중에 하나였습니다. 남의 양떼들을 밤새 지켜 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제 이름 석자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무식자들이요,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도 바깥 마당에서 서성거리다 돌아와야 하는 천민들입니다. 이들이 어린 아이 예수님을 통해 큰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습니다.(1:46-47) 이 일이 마리아가 그렇게 기뻐할 일입니까요? 나라는 로마의 압제 하에 있습니다. 정치, 종교,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주권을 빼앗겼습니다. 기뻐할 만한 여건이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보십시오. 가난합니다. 당시 가난한 목수와 정혼하였으니 부자였겠습니까? 경제적으로 궁핍합니다. 요셉과 정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쁜 일이 되겠습니까? 수치입니다. 당시는 수치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습니다(신명기22:23).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기뻐했습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찾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리아가 하도 엄청난 일을 당하였기 때문에 정신에 바이러스가 먹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렇게 기뻐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4647절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기뻐합니까?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뻐합니까? 부도 위기에 있는 기업이 회생된 것 때문에 기뻐합니까? 직장에서 진급하여 기뻐합니까? 죽을 병에 걸렸는데 그 병에서 고침받음을 기뻐합니까? 자녀가 바라던 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기뻐합니까? 아닙니다. 영혼이, 마음이 기뻐합니다. 무엇때문입니까?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쁨의 대상이 하나님 내 구주입니다. 자신의 잉태한 아들이 그것으로 근심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수치심을 가질 아들이 아니라,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분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쁨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돈으로 얻은 기쁨은 돈 날라가면 없어지고, 아름다움으로 얻은 기쁨은 늙으면 없어지고, 명예로 얻은 기쁨은 떨어지면 기쁨도 함께 떨어지고, 건강으로 얻은 기쁨은 건강이 있을 때만 얼굴에 머무르고, 권력으로 얻은 기쁨은 그 권력과 함께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이 기쁨은 그 무엇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이 기쁨을 그 무엇이 뺏앗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6:22)"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며 누리는 기쁨은 감각적 기쁨, 성취의 기쁨, 나눔의 기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 기쁨입니다. 죽음에서 해방되는 기쁨, 죄를 용서받는 기쁨, 하나님의 아들이 된 기쁨, 복음으로 자유를 누리를 기쁨 등 인생의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는 기쁨입니다. 감각적으로 기뻐할 것이 없어도, 성취를 못해도, 나눌만한 것이 없어도 예수님 한 분으로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왕으로, 구세주로 믿는 기쁨입니다.

주님을 만나 제자들의 기쁨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2020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20:20)"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그들은 예수께 경배를 드린 후에 기쁨에 넘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24:52)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6)"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8:8)"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13:52)" 라고 했습니다. 안디옥에서 쫓겨 가면서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능욕을 받아도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5:41)"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기뻐합니다. 바울을 죽을 지라도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2:17)”

하박국 선지자는 이 기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3:17-18)"라고 고백했습니다.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고후 7 : 4). 왜 그렇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유의 기쁨 정도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베푸는 것으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존재의 기쁨이고 영적인 기쁨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기쁨입니다. 한 번 아들이 되면 영원한 아들이고 천국에 이르도록 그 어떤 것도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신앙인이 되어서도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죄입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 맨 밑바닥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무슨 죄를 짓고 여기 왔느냐?"고 물으니까 안내하는 사람의 말이 "다른 죄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 때 믿는다고 하면서 기쁘게 살지 못하고 늘 우울하게 한숨만 쉬며 산 죄 때문에 여기에 왔다"고 합니다.

신앙인이란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신론적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게 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는 예수님과 함께 얼마든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죽음에서 구원받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죄 용서받고 참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 주님을 통하여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안감과 모멸감, 고립감과 좌절감, 그리고 상실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 기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비록 사업이 잘 안되고, 건강치 못하고 모든 것이 소원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만왕의 왕 예수님을 만난 기쁨,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기쁨 그 기쁨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구세주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승리해도 기뻐할 수 있고 실패해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병들어도 기뻐할 수 있고 건강해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가도 기뻐할 수 있고 핍박을 받아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육신적 기쁨이 아니라 영혼의 기쁨입니다. 외적인 기쁨이 아니라 내적인 기쁨이고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언제든지 기뻐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일시적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죽음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으로 기쁨을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괴로웠던 것, 슬프고 고달팠던 것 다 십자가에 묻어 버리고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쁨을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모두 다 나를 떠난다 하여도 우리 주님만은 나를 지켜 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진정 주님 한 분으로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어린 아기로 오신 주님을 믿음으로 기쁨을 누리여 합니다. (어떻게)

큰 기쁨을 좋은 소식을 들은 목동들은 이 기쁨을 어떻게 누립니까?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을 부르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들여주시는 소식을 듣고 그대로 믿었고 그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리아에게 전했습니다. 그들은 믿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 주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쁨을 충만케하는 은혜의 통로의 문을 열어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수도꼭지를 잠가 놓고 물이 안나온다고 투절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무수한 공기가 있는데 코를 막고 있으면서 공기가 없다고 짜증을 부리는 사람은 얼마나 무지한 사람입니까? 차를 사주면서 키를 주었는데 차문이 열려있지 않다고 짜증을 부리는 사람은 얼마나 모자라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이 큰 기쁨을 우리에게 주었는데 그것은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이라는 큰 저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의 저수지에 수도관을 놓듯 기쁨관을 놓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놓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은혜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 목동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태어날 것에 대하여 천사가 말할 때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1:30)"

그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 선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주었지만 마리아가 그것은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고 왕이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기쁨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보장받은 인생에 대한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내 생에 전환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구원의 기쁨이 삶의 과정 속에 가득차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로 이루어지는 기쁨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신앙인의 삶에서 지속적인 기쁨의 원천입니다. 시편 1611절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분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게 하십니다.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말씀으로 인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인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며 지혜와 평안과 기쁨을 제공합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1516절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19111절은 "주의 증거들은 나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있을 때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시편 100:2)."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기도와 예배와 찬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교제할 때 형제 자매와 교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살전3:9; 1:3-5)

믿음이 있을 때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고(1:2-3; 5:3-5),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벧전1:8).

로마서 1417절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했습니다.

신앙인의 기쁨은 환경이나 세상적인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그분의 말씀과 약속,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의 확신과 소망을 믿는 믿으로 나아갈 때 그 믿음이 우리의 참된 기쁨을 누리게 만들어 줍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목동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헤롯에게 있어서 첫 성탄절은 결코 기쁨이 아니었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해서도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목동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식적으로 성경을 목동들 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지식이 교만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도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신론적 신앙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디에서 예수님이 탄생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기쁨이 없었습니다. 냉철한 머리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할 좋은 기회를 가졌으나 그것을 놓치고 결국 그들의 지식으로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잡이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오광남 박사가 쓴 [예수는 없다]를 썼습니다.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불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자들을 대변하는 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 책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많은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은 실존인물일 가능성도 희박하고 단지 그 당시 존재하던 구약성경의 예언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일 수 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에 근거한 사고를 통하여 예수님은 단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은 전혀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무신론자인 까닭은 과학적인 사실들에 연유한 것이 아니라 무신론이 그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에 바탕을 둔 판단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믿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8)"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10:3) 증거가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으려고 하니까 증거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눈만 들어 보아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얼마나 많이 널려 있습니까?

믿음이란 아무라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믿게 해주시는 선물입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12.15.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