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을 돌리기 위해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2:14
성탄절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께서 아기로 탄생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계속에서 예수님께서 아기로 탄생하신 것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아기로 오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해 오신 것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자연인인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우리 성도님은 물질이 스스로 존재했다고 믿습니까?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했다고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질이 스스로 존재해 그것이 시간을 먹고 계속 진화하여 우주가 되고 인간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태초에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했을까요?
이사야 43장 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내가 그를 지었고, 그를 만들었느니라."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탈취하기 위해 반역을 한 것입니다. 영광 탈취범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인데도 인간 높이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도둑질하고, 횡령한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나 느부갓네살 왕이나 엘리 제사장이나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나 헤롯왕 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사냥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인 인간에게는 영광을 갈취하려는 욕구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3절에서는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힘과 권세와 능력, 위대함이 하나님께서 온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로마서 1장 21-2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영광을 받으려는 욕구는 자신의 성취나 가치를 인정받고, 이를 통해 칭찬과 존경을 얻으려는 욕구입니다. 이러한 욕구는 때로는 자아 실현 욕구, 인정 욕구, 권력 욕구 등으로 나타나는데 심하면 단순하게 생존과 번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병적으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과도한 자기애로 자신이 왕으로 인정과 칭찬을 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힘을 가진 자들이 이런 사람이 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자리를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으로 인해 사회는 심각한 경쟁과 폭력이 난무하고 전쟁이 일어나 불행해집니다.
이런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사야 42장 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며, 나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바벨탑은 무너졌고 느부갓네살의 제국은 무너졌으며, 엘리 제사장과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가문이 망했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나 헤롯왕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영광을 끊없이 차지하려고 한다고 그것을 끝없이 누릴 인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횡령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을 계시록에서는 어떻게 소개하는가를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9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대접 재앙 중 하나로,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완악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권세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14장 7-8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진 바벨론(세속적이고 악한 세상)의 멸망이 선언됩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자들의 최후를 상징적으로 묘사합니다.
2. 예수님은 영광 횡령법들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을 한 번 같이 큰 소리로 읽어 보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한 내용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예수님이 아기로 탄생한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영광이라는 말은 헬라어 ‘독사’를 번역한 말입니다. 히브리어는 '카보드'입니다. 이 말은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엄, 탁월, 현저, 존귀, 품위, 가장 영광스러운 상태, 가장 고귀한 상태, 힘, 권세, 의견, 판단, 견해, 평가”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주로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쓰여집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입니다. 어떤 존재의 내적인 탁월성과 위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탁월함과 위대함, 존귀함, 거룩함, 완전함 등을 말합니다. 이 본질적 영광을 본체적 영광과 발산적 영광으로 설명을 합니다. 본체적 영광은 지성과 의지를 가지신 하나님 존재 자체의 영광을 말합니다. 이 영광은 피조물들의 도덕 상태에 의해 영향받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땅에서는 눈비가 오고 안개가 끼고 우박이 내려도 구름 위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과 관계에서 높은 지위와 권력, 능력으로 스스로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단4:28-33,롬1:18-23).
발광적 영광은 인간이 하나님의 본체적 영광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나타내신 것을 말합니다. 칼빈은 창조 세계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라고 표현했습니다.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거기 있는 것으로 알려주는 영광입니다(출 3:1-5: 19:16) 신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신적 현현으로 임재를 드러내셨는데 그것은 그의 '영광'이라고 불렸습니다(성막과 성전의 빛나는 구름: 출 40:34: 왕상 8:10, 보좌와 바퀴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 겔 1:28 등).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피조 세계에 능력으로, 위대함, 아름다움, 광채, 지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요17:21-26).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19:1),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할 것"(민14:21)이고,"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라고 선포합니다. 본체적 영광이 하나님의 내적 영광이라면, 발산적 영광은 하나님의 외적 영광입니다. 우리는 발산적 영광을 통하여 하나님의 본체적 영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현시적 영광입니다.
현시적 영광은 '본질적 영광'에 대한 인격적 존재(인간과 천사)의 반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효과적 영광'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받아들임으로써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을 보십시오. 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습니까?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사60:21) 하나님의 영광의 찬양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엡 1:12,14). 하나님은 피조물을 만들 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적 영광, 현시적 영광이 되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아기로 탄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탄생 700년 전에 이사야가 이미 예언해 놓았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40:5)”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동시에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초림하신 것입니다. 천사는 이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요한복음 1장 1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으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히브리서 1장 3절은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영광’으로 번역된 ‘독사’는 영원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존재 양식 중 하나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는 표현인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홀연히 변화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오신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3.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 안 하십니다
에스겔 33장 1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15장 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0절을 보세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실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간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가지게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심을 통하여 인류가 구원받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요한복음 17장 1절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독사’를 번역한 말로 영광과 같은 말입니다.
어떻게 영광을 돌립니까? 요한복음 17장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반역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횡령한 인간의 죄와 죽음, 지옥의 형벌의 댓가를 다 지불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게 만드는 공의와 사랑을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삶 전체를 통해 영광스런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사람들에게 알게 해 주시고 사람들이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에베소서 1장 11-12절에서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는데 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존재와 구원은 하나님의 계획과 영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4.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온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은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우리에게 영광을 받을 만한 조건이 있어야 하나님이 영광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게 영광 돌리는 영광은 현시적 영광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짐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서 현시적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힘과 능력, 권력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인정하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존귀를 인정하며,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통해 치유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돌리다라는 말은 ‘디도미’를 번역한 말입니다. 역대상 16장 28-29절에서 "만국의 족속들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여기에서 ‘돌리다’는 말은 히브리어는 ‘야하브’를 번역한 말입니다. ‘디도미’나 ‘야하브’는 모두 "주다, 드리다, 내놓다"를 뜻으로 하나님께 적합한 영예와 찬사를 드리는 행위를 표현합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는 하나님께만 합당한 명예와 존귀를 되돌려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영광을 말하는 독사는 “의견, 판단, 견해, 평가”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에 대하여 생각하다. 견해를 갖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적용하는 대상의 의견, 판단, 생간, 견해의 탁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믿음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돌리며는 ‘디도미’를 번역한 말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행위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사도행전 12장 23절에서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돌리지 아니하였다’는 ‘메 디도미’를 번역한 말입니다. "드리지 않다, 주지 않다"라는 뜻으로, 헤롯이 자신에게 돌려진 찬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헤롯처럼 살아갑니다. 권력과 명예, 돈과 지위, 건강과 행복이 주어지면 다 자신에 의한,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세상이라고 외치며 오직 자신의 영광만을 드러내려는 세상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고후 4:4)"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현대 사회가 암흑에 빠져든 이유를 세 가지로 지적했습니다. 첫째, 인간의 삶에는 자명한 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No Givens). 하나님의 창조나 자연적 도덕 질서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 참과 거짓, 선과 악, 남성과 여성 같은 질서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개인의 시각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관계에 법칙이란 없다는 것입니다(No Rules). 진리는 단지 관습이나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 절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전통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윤리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므로 이에서 해방되는 것이 자유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 황금률, 자연법 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성도 생물학적 증거보다 사회적 재구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No Limits). 충분한 시간과 함께 인간의 독창성이 발휘된다면 인간은 모든 것을 사회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신기술만 발견된다면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영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헛된 믿음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아기로 오셨습니다. 자명한 진리는 있고, 인간관계에서 인간다움 삶을 살기 위한 법칙은 존재하며, 인간에게는 생명의 한계,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구원의 길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진짜 영광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왜 여기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0-1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로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로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던 인간들이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계16:9)“
그러나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계4:9-11; 7:9-12; 19:1-7; 15:3-4). 천국에서 찬양과 경배로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에게 구원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 사역과 의로우신 심판에 대하여 영원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영광은 “장엄 탁월, 존귀, 품위”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 29편 1-2에서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함을 인정하고, 그분을 높이는 자세를 뜻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 사도는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삶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신자의 마땅한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바르게 드리지 못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입니다.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진노를 당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은 이 문제에 실패했습니다. 가인도 예배에 실패했고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애굽의 포로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가서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의 신입니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29:2)라고 했는데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예배를 회복시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예수님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요4:23-24).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단 번에 산 제사를 드림으로 누구든지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영광으로 인도하셨습니다(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3)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영광은 “...에 대한 견해에 영향을 미치다. ...에 대해 제대로 된 의견을 갖게 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견해에 영향을 미치고 하나님에 대해 바른 견해를 갖게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는 분이신지, 자비로우신 분인지, 용서하시는 분인지, 정의로운 분이신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에서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 믿는 성도끼리는 형제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경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4)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5-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7절 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우리 성도는 서로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믿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혼 구원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고 말씀했습니다. 착한 행실을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세상 사람이 '기독교인은 과연 다르다.'라고 생각하며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저절로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선을 베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삶으로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롬 15:9)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하는 것이 복음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복음전도와 선교는 모든 사람과 민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게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세우려는 것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믿지 않은 사람에게 전도와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을 완수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꼭 출세하고 성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4절에서 ".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명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씀입니다. 천사의 노래와 같이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다같이 완성되고, 더불어 예수 그리스 도로 말미암아 구원얻을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요1:14; 고후 1:20). 평생 사명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계신 예수님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십자가의 사명을 붙드신 것입니다. 죽음으로 완성한 사명입니다. 조롱받는 길입니다. 수치를 당하는 길입니다. 자존심이 뭉개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완수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결과 제일주의와 결과 만능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주의나 성공주의 신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인정받은 '잘 됨'이나 '성공'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던 우리가 낮아지고 하나님만 높이려 하는 자세가 바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는 사상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들어내야 합니다. 개인마다 주어진 사역들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됩니다. 음식점 사환이 되어 마당을 쓸어도 하나님이 만든 지구의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는 자세로 살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은 우리의 손에 달린 것도, 우리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만이 영광의 주체이시며 동시에 그 영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은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현시적 영광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은 자기 높이기의 유혹을 평생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삽니다. 누군가 조금만 몰라주어도 서운하고 조금만 자신에 대하여 비난을 하면 참기 어려운 것이 인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제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서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 세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시19편). 우리를 나에게 맡겨준 사명을 완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 돌리는 천국에 참여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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